청국장을 한동안 먹지 않았던 (략 3년 이상을) 계기가 있었으니
그건 내가 만든 청국장을 먹고 난 뒤였다 -_-
실수로 청국장을 너무 많이 넣어서 온 집안에 냄새가 진동하고
걸죽하게 맛도 없는 그것을 먹다가 나는 그만 토할뻔했던 기억이 -_-


아, 지금 속이 울렁울렁하여, 현재 상태로는 당분간 먹지 않을 것 같은 음식이 있으니
그건 바로, 미역국


그러니까, 내일, 아니 오늘은 엄마의 생신
나는 1년에 한번 국을 끓이는데, 그게 엄마의 생신에 끓이는 미역국이다
엄마의 미역국을 엄마가 직접 끓이는 건 어쩐지 서글프니까.


평소에는 사실 '노동'만 내가 할뿐 엄마의 훈수아래 했는데
(가끔은 간도 엄마가 와서 맞춰주고)
오늘은 내가 너무 늦게 들어와 엄마는 이미 주무시고 계시고
내가 홀로 미역국을 끓이는 상황

일단 검색 '미역국 끓이는 법'

몇년을 끓였는데 이걸 검색하냐 물으신다면,
1년에 한번밖에 안끓였는데 어찌 기억하냐 답할 밖에
검색결과보니 별거 아니네, 홍홍

냉동실에서 다진마늘과 소고기를 꺼내고, 미역을 불리고, 자르고
소고기를 볶아야지 했는데, 이게 해동을 안해서 덩어리....
두덩이로 나눠놓은 것 보니 한덩이가 1회용인듯 하여 한덩이를 넣을까 하다가
엄마 생신이니까 풍성하게 두덩이 다 넣지 뭐, 하면서 두덩이를 넣고 볶는다

불을 지피면 익어서 떨어지겠지 했으나,
안은 여전히 빨갛고 겉은 타기 시작한다.
어, 어, 이를 어쩌누

일단 사태 해결을 위해 미역을 넣고 같이 볶아야지
그리고 참기름을 막 찾는 내게 동생의 한마디

참기름 없을걸? 들기름으로 해


(내참, 집에 참기름 없는 걸 동생이 나보다 잘 알고 있다니.)

얼마 남지 않은 들기름을 들이붓고 들들 볶는다
아놔 도무지 언제까지 볶는거야
지루해질쯤 물을 붓기 시작한다
나는 조미료 없이 소금과 간장으로만 미역국을 끓이겠다며
보글보글 끓는 미역국에 간장 조금, 소금 조금 넣어 간을 한다
아놔, 국간장도 없구나, 몰라, 진간장
그리고 잠시 후 아 맞다! 마늘. 하며
얼린 다진마늘을 넣는다.

그리고 조금 끓이고 미역국을 티스푼으로 한숟갈 간을 봤는데
우웩



니맛도내맛도아닌맛에 마늘과 냉동실의 냄새가 묘하게 섞여있다 
큰일났다. 소금을 더 넣을까? 훌훌훌 털고 
간장을 더 넣기엔 국간장이 아닌 진간장이라 색깔이 좀 묘하고

다시 먹어볼까?
우웩




이것저것 시도한 끝에 나는 결국 다시다를 넣는다
그리고 다시 먹어볼까?
욱! (정화된 우웩)


몰라, 몰라, 몰라,
일단 소금을 좀 더 넣고, 좀 더 끓이니
먹을만은 한데, 너무 맛이 없는거다 인간적으루다가 ;;;


아, 고기는 이미 두덩이나 넣었지, 다시 끓일 수도 없고...
이것저것 계속 번갈아 넣어가며 간을 맞추다가

아! 참치를 넣어볼까? 라고 생각하며
참치 한통을 털어넣는다
그리고 먹어보니 음, 살짝 더 먹을만하다



몰라, 이제모든걸 운명에 맡기고
약한불 켜놓고 와서 나는 잠시 이 글을 쓴다
이 글을 다 쓰면 다시 가서 맛을 볼 작정이다


아.....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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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08-09-06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으로 떼우게(?) 되더라도 너무 상심 마시길..;;

웽스북스 2008-09-06 03:47   좋아요 0 | URL
으흠, 이상해요, 이제 혀가 굳었는지
좀 맛있을라고 해요 ㅋㅋㅋㅋㅋ

시비돌이 2008-09-06 08:23   좋아요 0 | URL
장금이처럼 미각은 잃은 것은 아니굽쇼? ㅋㅋ

웽스북스 2008-09-06 21:32   좋아요 0 | URL
미각을 잃었다기보다는,
계속 지날수록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서
찌푸릴 미간을 잃어버렸나봐요 ㅎㅎ

Jade 2008-09-06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원래 미역국은 좀 끓여야 맛이 나는것 같아요~ 초반에는 미역 특유의 비릿맛도 나고 영 맛이 안나는데~ 웬디님표 미역국이라면 분명 맛있었을 거예요 ㅎㅎ

웽스북스 2008-09-06 21:32   좋아요 0 | URL
아, 그래서 어제 약한불로 은근히 계속 끓였어요
이제 방법은 없다, 니들끼리 알아서 맛이 섞여라
하는 마음으로 ㅋㅋㅋㅋ

무스탕 2008-09-0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께선 그래도 제일 맛있는 미역국이라 하실거에요 ^^

(전 미리 고기볶고 어쩌구 안하고 처음부터 고기,미역,마늘,물 몽땅 넣고 끓여요. 오랜기간 끓여 귀찮음이 앞서면 이리 됩니다..;;)

웽스북스 2008-09-06 21:33   좋아요 0 | URL
어후, 역시 무스탕님, 우리 엄마 마음을 제대로 잃으셨어요
물론 엄마가 소금간을 좀더 하긴 했지만요 ㅎㅎㅎ

저도 사실 어제 그랬던 거나 다름 없어요 ㅎㅎㅎ 무스탕님은 내공이라도 있지, 전 뭘 믿고 그랬는지 ㅎㅎ

깜소 2008-09-0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딸이든 아들이든 부모님 생신날에 미역국 긇여 상차려내는 자식들 드물답니다...그 마음 정성 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요리가 되었습니다^^ 생신날 아침에 문안인사드리고 상까지 차려내면 더더욱 금상첨화겠지요....우짜둔둥 웬디님의 찾아랏 미역국맛~!! 페이퍼 때문에 심하게 웃고 갑니다..ㅎㅎ 부모님과 함께 건강한 주말 나세요~~^^

웽스북스 2008-09-06 21:34   좋아요 0 | URL
우옷 깜소님 심하게 웃으셨어요? 흐흣
이렇게 한줄기 웃음을 드린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하지용 ㅎㅎ

아침은 다같이 먹으려고 나름 계획 다 세워놨는데
늦잠 자는 바람에 다 망했어요 으흑

바람돌이 2008-09-06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제가 아플때 옆지기가 한번 흰죽을 끓여서 제게 갖다 바친적이 있지요. 그 이후로 저는 절대 못아프답니다. 또 그 흰죽 먹어야 할까봐서요. ㅎㅎ (뭐 미역국이 아무리 맛없다 하더라도 그 죽만큼은 아닐거라고 확신합니다. )
그래도 그 성의와 마음만은 참 오래 남아있다구요. ^^

웽스북스 2008-09-06 21:35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바람돌이님 너무 재밌어요
그런데요, 맛이 없으면, 본인이 먹어보고 알지 않나요?
저는 그래도 제 음식에 평가는 객관적으로 내려져서
어떻게든 맛을 맞춰보려고 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감으로 툭툭 음식 하시는 어머님들 존경스러워요

세실 2008-09-06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미역국에 소고기, 참치까지...완전 짬뽕이네요.
다음엔 전자렌지에 해동해서 쓰세용.
어머니 생신 축하드립니다^*^

웽스북스 2008-09-06 21:3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정말 미역 짬뽕이었나봐요 ㅋㅋㅋ
왜 전자렌지에 해동할 생각을 안했을까요
사실 전, 그냥 가열하면 녹으면서 고기가 툭툭 뛀어질 줄 알았어요
ㅎㅎㅎ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메르헨 2008-09-06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하....^^뭔 맛일지 살짝 감이 오는건 왜 일까요?
첨에 니맛도내맛도 아닌 미역국 끓인날 생각나요.
결혼후에 첨으로 끓였는데 ...ㅡㅡ^ㅋㅋ
그래도 말이죠. 계속 좀 졸아들면 미역국 맛도 살짝 나요.^^
엄마는 그래도 즐거이 드셔주실거에요.^^축하드립니다~

웽스북스 2008-09-06 21:37   좋아요 0 | URL
오늘 교회에 제가 미역국 끓인게 또 다 소문이 나서
제가 과정을 설명해드렸더니 다들 쓰러지시면서
아니, 그래서 어떻게 했니? 라고 다들 물으시길래
그냥 계속 끓였다고 답했어요 ㅋㅋ

역시 시간과 노력이 중요한가봐요

순오기 2008-09-07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쇠고기를 두 덩이나 넣고 참치를 또 넣다니~~꺅~~~ㅋㅋㅋ
그래도 엄마의 생일에 손수 미역국 끓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 그 마음이 이뻐요.
난 그래서 내 생일에 미역국 안 끓여요. 우리 딸년은 스무살이 되었어도~ 하긴 올해 작년 기숙사에 있었으니 하고 싶어도 못 했겠구나~~ 앞으로 3년은 기대하지 말아야지.ㅎㅎㅎ

웽스북스 2008-09-08 13:00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이쁜 민주가 저보다 훨씬 맛있는 미역국을 끓여낼테니~! ^^

민정 2008-09-10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래도 엄마가 맛있게 드셨으면 된거지 뭐... ㅎㅎㅎ
웬디의 난감해하는 표정을 계속 상상하는 중...
너무 재밌어~~

웽스북스 2008-09-11 00:1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진짜 난감한 정도가 아니었어요
정말 우웩! 이 절로 나왔다니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