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하필 식장은 본가가 있는 의정부. 태어나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역이다. 꾸물꾸물하다 보니 1시간쯤 지각이 예상된다. 서울역쯤 오니 결혼식 시간이 다되가는데 ;; 그냥 확 서울역에서 내려서 빈둥거리다가 다섯시 약속을 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래도 오늘 식은 못봐도 나중에 결혼식 마치고 오셨을때 "저 갔었어요"라고 말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눈 질끈 감고 갔다. 환승역은 익숙한 창동역
창동역은 G언니의 가게에 가느라 몇번 간 적이 있었다. 역시나 처음 가보는 곳. 의정부행 열차를 기다리는데 어떤 할머니가 다가오신다. 저, 여기는 어딜 가는 전철을 타는 건가요? 우리의 친절한 웬디씨. 아, 네, 어디로 가시는데요? / 아, 난 00역을 가는데... / 아 그러세요? 잠시만요, 저도 이 동네가 익숙지 않아서요- / 나는 휴대폰을 꺼내 지하철 노선을 검색했다. / 아니, 요즘은 그런 것도 되요? / 아, 예 검색 기능이 들어있어요. / 그러나 할머니가 말하는 역은 휴대폰에 입력돼있지 않았다. 내 휴대폰이 만들어지고 난 뒤 새로 생긴 역인가보다. / 아, 제 휴대폰에는 나와 있지 않는데요, 아마 신규 개통된 역일 거에요, 여기서 저랑 같은 걸 타면 되실 것 같은데. / 어느 역까지 가는데? / 아, 저는 의정부까지 가요
아니, 그게, 나는 이쪽에서 타면 되거든요. 그러니까, 의정부, 덕소 방면은 이쪽인 것 같은데, 학생이 거기 서 있어서, 나는 거기는 어디 가는 열차를 타는 건가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어요 / 헉!!!!!! 나는 그러니까 반대편, 아무 열차도 오지 않는 곳,으로 추정되는 플랫폼에 서 있었던 것이다. 흑 이렇게 창피할 때가 ㅠ_ㅜ / 아......그렇네요... 감사합니다, 실은 제가 이동네를 잘 몰라서 (라고하지만 일주일 전에도 여기서 지하철을 타지 않았더냐 -_-) 덕분에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내가 지나치게 민망해하자 할머니는 아니라며, 그냥 그 쪽으로 지하철이 진짜 오는 건가 궁금했던 거라며, 내 어깨를 툭툭 치신다. 민망하고, 고맙고, 창피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 지하철이 온다. 의정부까지만 가는 열차라 할머니는 타지 못하고 나만 타고 갔다. 이런 건 미안하게도 조금 다행스럽다. 같은 칸에서 계속 민망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시 타인 속에 섞이게 될 테니까.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고 오리발을 내미는 심정으로 나는 의정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PS
1시간이나 늦은 결혼식에 나는 다행히 축의금을 낼 수 있었고 (돈세고 있는데 가서 냈다 -_-) 음식은 맛있었고, 불굴의 비굴한 의지로 폐백 마치고 인사 돌 때까지 기다렸다가 얼굴도장도 콕 찍고 왔다. 이렇게 뿌듯할 수가.
제가 이 글을 쓰며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한마디는 무엇일까요? 한 단어이고 주관식입니다. 맞히는 분께는 '웬디의 독심술상'을 드리며, 상품으로 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를 보내드립니다. 새 책은 아니구요, 5일쯤 전에 받아 오늘 다 읽은 헌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