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과 십자가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1. 

리버스는 읽지 않는 책을 수집했다. 한때 독서를 즐겼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책을 고르는 안목이 높아진 것도 그 이유중 하나였다. 과거에는 좋든 싫든 한번 펼친 책은 무조간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렸었다. 하지만 이제는 열페이지 넘도록 재미가 붙지 않으면 미련없이 덮어버렸다. 

맞다. 나도 그래. 나이들어 변한것중 하나다. 

초반에 재미가 붙지 않으면 덮어버린다는 것. 미련이 좀 남을때도 있지만 욕심을 버려야 오히려 효율적이다.  

재미없는 책을 덮어야, 세상에 많고 많은 재밌는 책을 더 볼수 있으니까. 



2. 

타탄느와르 라고 소개되어 있어서 검색해봤더니 

스코틀랜드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범죄소설이라고 하네. 

스코틀랜드 전통 체크무늬 이름이 타탄이라고. 

범죄소설 장르에 이런 고급진 이름을 붙여주는 문화적 분위기의 스코클랜드가 부러워졌다. 

명품을 들고 미국을 흉내애야 고집지다고 생각하는 한국이 쫌 촌스럽다고 생각해. 


"이래봬도 베이컨 샌드위치는 기가 막히게 만듭니다." 그가 말해다. 

"안타깝네요." 그녀가 말했다. "난 채식주의자예요."

"맙소사. 채소를 전혀 먹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왜 항상 이런 식이죠?" 그녀가 쏘아 붙였다. "육식동물들은 왜 항상 그런 농담을 하죠? 여성해방운동 얘기가 나와도 마찬가지고.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우리 남자들은 그런 여자들을 두려워하거든요." 술이 깬 리버스가 말했다. 

정말, 육식동물 남자들은 늘 왜 저런다니.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에 가끔 놀란다. 

뭐랄까. 자유로운 분위기의 유럽 남자들은 대한민국 마초들과는 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어차피 똑같다는 것을 알때의 놀람 


에딘버러의 렌딩도서관은 서점과 은행 사이에 낀 낡은 건물에 자리하고 있었다. 도서관 안은 잠깐 눈을 붙이러 온 노숙자들로 바글거렸다. 춥고 배고픈 그들은 다음 달 국가 보조금이 지급될 때까지 아늑한 쉼터가 되어주는 도서관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하루나 이틀만에 보조금을 모두 탕진해버렸다. 

스코틀랜드는 노숙자들이 바글거리며 쉬는 곳이 도서관이구나. 

한국의 역전보나 좋으네. 무엇보다 역전은 난방이 안되니까 춥다. 

매달 국가보조금도 받고. 


리버스는 과거 8년동안 낙하산부대에 근무했는대 

그는 훈련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공포와 불신의 악취, 비명, 기억속의 비명도 

독방에 갇혀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읽는 내내 궁금하다가 그것이 정말 새로생긴 특별한 훈련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황당했다. 

인간의 몸과 영혼을 파괴하여 망가뜨리는게 훈련이라니. 

뭐니. 대한민국 군대도 적군이 아니라 맨날 지들끼리 싸우고 총질해서 죽이던대, 군대란 원래 그런가봐.

아무리 특별한 상황이라도 그렇지, 아군이 훈련이랍시고 멀쩡한 청년을 고문하니까.  

결국 군당국이 바란 괴물이 되어, 사회에 복수를 하는거다. 


시리즈의 시작이 주인공 리버스 형사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인하는 범인이라는 설정부터가, 무리하고 과하다. 

적을 죽이기위해서 아군을 죽이는 꼴인 특수훈련의 상황도 과하고 

캐릭터는 아직 미완히지만 , 기본적으로 리버스는 보수적인 마초 정체성이고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를 배경으로 하는 음산한 소설  



3. 

미숙하다. 무리하고, 어설프다. 그러나 재밌다. 

블랙캣을 통해 부활하는 남자들에서 리버스를 처음봤고, 아주아주 좋아서 

꼭 전작이 출판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것이 5년전이다.  

이제 나왔으니 물론 오픈하우스에게 고맙다.

미숙한 이언 랜킨을 보는것도, 나쁘지 않다. 풋풋하고 어설픈 랜킨을 보는것도 즐겁다. 

리버스는 첫작품에서부터 이미 이혼남이었고 이미 알콜중독이었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봤다. 

좋다. 다시한번 오픈하우스에게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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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묻어버린 것들
앨런 에스킨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들녘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1. 

들녘이 왜 표지를 저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속도와 가학을 즐기는 정신분열의 크라임스릴러 같이 보인다. 

책이 갖고 있는 진지함과 성찰, 인물들의 유난한 색깔, 뭐하나 표현하지 못하는 저 표지는 참 안어울린다. 



2. 

도서관 다른 장소를 보면 책장이 전부 영웅적이고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문서보관창고에는 위궤양 걸린 기자들이 귀 뒤에 꽂아놓은 연필을 가지고 쓴 신문기사들이, 어디서나 만날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 조용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보관되어 있었다......문서보관창고에서는 교회 비슷한 느낌이 났다. 조그만 병에 담긴 향로처럼 수백만의 영혼들이 마이크로필름 속에 보존되어, 누군가가 그들의 본질을 느끼고, 맛보고, 빨아들여 숨 쉬어주기를, 단 한번 만이라도 그래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조 탤버트 

알콜중독자 어머님 때문에 어릴때부터 더 어린 자폐아 동생을 돌봐야 했던, 가난한 청년 

그가 전기문 쓰기 숙제를 왜 하필 살인범으로 선택했을까, 싶었다.

앨런 에스킨스는 가난한 삶. 벼랑끝에 내몰린듯이 불안하고 위태로운 그을린 삶을 섬세하게 쓴다. 

문장이 좋아. 

읽다보면 멀미나는, 남루하고 지루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조가 왜 칼을 선택했는지 알아진다. 


14살 소녀를 살해하고 불태워버린 혐의로 3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췌장암에 걸린 노인이 되어 3개월 

이제 3개월 밖에 더는 살 수 없는 몸으로 요양원에서 하루하루, 째깍째깍 죽어가는 

시체처럼 보이는 두 팔은 근육이나 지방이 전혀 없어 뼈에 얹힌 힘줄만이 두드러졌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어린애가 나뭇잎을 집어들듯 그의 팔을 들어올려 햇빛에 비추어 볼 수 있을것 같았다. 

조와 칼이 처음 만난날, 서로 질문하고 답하는 장면을 보며

서로 외롭고, 병들고, 가난하고 심지어 억울한 사람끼리 주파수가 통해서, 이 우정이 서로에게 빛이 되기를 

주인공들에게 남다른 힘든 삶을 안겨놓고, 그들의 끈질긴 삶의 마무리 까지 비참하다면 

앨런에게 화 날것 같았다. 


칼의 분대장은 키가 작고 욕을 잘하는 깁스 하사였다. 잔혹함이라는 가면으로 내면의 심각한 심리적 외상을 감추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장교와 사병 모두에 대한 분노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명령이 내리면 불만이었고 '씹병아리(신병)'들은 병을 옮기는 쥐새끼처럼 취급했다. 그는 자기가 가진 야만성의 가장 날카로운 부분을 베트남 사람들, 즉 '국'들에게 겨누었다. 깁스의 세상에서는 베트남 사람들이 모든 악의 근원이었다. 그들을 모두 박멸해버리지 않는 지휘부의 뜨뜻미지근한 태도가 그의 성질을 긁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 시체를 보는것이 일상이 되는 전쟁이라는 상황의 경험이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물론 그도 피해자이겠으나, 이런 사람들 실제로 보면 엄청 혐오스럽다. 

관에 동원되어 생존이 걸린 싸움을 하는 농성장을 망치러 오는 사람들 중에 군복을 차려입은 참전 용사들이 있더라고.  


가끔 미국의 대중소설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성적 회고가 보인다.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보슈 시리즈 첫번째 편도 그랬고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중 하나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칼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기억이다. 

총을든 적군이 아니라,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경험에 노출된 칼은 베트남에서 죽고 싶었고, 살아나와서는 잊고 싶었는대 

이웃소녀를 죽인 누명을 쓰고는 차라리 감옥에 가서 30년을 산다. 

민간인을 학살하는 가해자였던 그의 양심은 세상이 온통 감옥으로 조여와 죽고 싶었고 

차라리 감옥에 가는것이 묻어버린 것에 대한 댓가인듯이 느껴저 그렇게 산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서의 학살을 미국을 건국하며 원주민들을 학살했던 경험과 동일한 것으로 회고하는 것도 인상적이고 

미국의 성찰이 반갑다. 그래야 사람이다, 라고 쓴후 

대한민국 소설에서 이만큼 베트남을 반성하고 성찰한 적이 있나, 생각에 이르러

우리는 아직 사람이 아니구나.   



3. 

라일라 

조와 제리미의 어둡고 습한 일상에 나타난 햇살같은 라일라. 

부디 그녀가 외롭고 서투른 형제에게 따듯한 손길이 되어주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다가 

그녀가 알았을까? 그녀의 키스가 남긴 맛은 내 입술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고, 그녀의 손가락이 닿았던 뺨은 아직도 얼얼했다. 그녀의 살갗에서 풍기는 향기가 마치 중력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앨런은 스토리와 구성을 잘 엮는다. 

조와 자폐아 동생이야기. 조가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갖게된 죄책감

조가 학교숙제로 자서전을 쓰게된 살인자 칼의 사연, 칼의 베트남 참전 경험

남다른 공감능력을 지닌 라일라의 사연 

그리고 조와 라일라의 사랑이야기 

이 각각의 이야기들이 흩어졌다 엇갈렸다, 만나고 나뉘면서 

마치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순리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퍼즐들이 맞춰진다. 

우리가 묻어버린것이 무엇인지. 이렇게 솔직한 제목이 있을까 싶다. 


오래간만에 진지하고 담백한 이 소설이 심지어 해피앤드라는 걸 확인한 순간 

앨린 에스킨스, 다음 작품도 부탁해. 

좋아. 들녘. 표지 따위 안좋아도 좋으니까, 다음 에스킨스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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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그레이 1~2 세트 - 전2권 -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또 다른 이야기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E L 제임스 지음, 박은서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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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달콤 쌉싸름한 연애의 제1법칙은 밀당이다. 

따로 사회심리학 분석책까지 나온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1권 밖에 못봐서 아쉬움이 있었는대 

도서관 신간코너에 있길래 냉큼 들고와서 퇴근후 이틀밤이 흥미진진 하였다. 


중학교, 고등학교때 수업시간에 몰래보던 로맨스소설은 뭐랄까, 

소설이라기 보다는 잠도 안오는 수업시간의 킬링타임용으로 딱이랄까.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스토리는 뻔하고 

고등학교 졸업하고는 로맨스소설을 다시 찾지 않았는대, 워낙 유명해서 봤더니 


맞아. 그때부터 지금까지 재밌는 로맨스소설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밀당이다. 

너무 쉬워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어려워도 안된다. 약올리듯이. 간지럽히듯이. 


아나와 그레이의 경우 이 밀당은 서브미스트. 과연 그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기꺼이 복종할 것인가. 

너무 쉽게 복종하면 당근 재미없지. 21세기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하는 자존감 높은 여성들이 동화하기 어렵잖아. 

아나가 너무 뻣뻣하여 복종하지 않아도 재미없지. 21세기 자존감 높은 여성들이 도덕교과서를 볼려고 그레이를 보는것이 아니거든.

서브미스트가 되는것. 

아나는 함부로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을 똑똑한 입으로 꼬치꼬치 따지며 똘망똘망 눈을 빛내며, 그러나 화끈하게 복종한다. 

반대로 또다른 긴장은 주인님 그레이가 서브미스트 아나에게 꼼짝못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적이지 않은 앞뒤가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 스토리라인의 실력이다.

평범하고 똑똑한 여자가 왜 그의 명령에 복종하게 되는지, 거부하지 못하는 유혹이 무엇인지가 독자와 작가의 밀당이라면 


그레이와 아나의 톡톡튀는 대화와 인터넷 편지들은 아주 잘 만들어진 양념이다. 

그레이와 아나의 밀당은 모두 그들의 대화로, 양쪽이 전혀 지지 않으면서 핑퐁처럼 오간다. 

이 책은 두사람의 대화와 편지만 읽어도 될 정도로. 두사람의 밀당이 재밌다. 



2. 

또하나의 밀당은 노골적이고 섬세한 침대장면들 

노골적이기만 하면 감정이입이 잘 안되고, 섬세하기만 하면 재미가 떨어지겠지.

작자 제임스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정말 해봤을까. 궁굼해지고.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당혹스러움 

잘 모르는 단어들 인터넷 검색하면서 읽게 만드는 흥미로움  


재밌네. 

리뷰들의 평가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영화는 안봤는대, 영화도 한번 찾아서 볼까. 생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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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야수 블랙 캣(Black Cat) 24
마거릿 밀러 지음, 조한나 옮김 / 영림카디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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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블랙 캣 시리즈를 좋아한다.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C.J 샌섬. 블랙캣을 통해 알게된 대가들이다. 

요즘은 북유럽 작품들도 가끔 소개되지만 헤닝 망켈 다음으로 블랙 캣을 통해 인드리다손을 보았고 

미국과 일본 일색인 출판시장에 영국과 북유럽을 알려준 시리즈로 나는 기억한다. 


캐나다는 유럽 감성이 강하다. 

마거릿 밀러가 남편 로스 맥도널드 보다 먼저 미스터리 소설가로 데뷔하여 인정받았다더니, 

재밌네. 

캐릭터가 선명해서 저절로 스토리가 흘러가는 느낌이랄까. 



2.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아 그냥 가만히 있어도 끊임없이 재산이 늘어나는 헬렌

그녀는 삶의 일상적인 감각을 잃었다. 

중년여성처럼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 싸구려 호텔에서 은둔한 채 살아간다. 

그녀가 사건을 의뢰한 블랙쉬어는 은퇴 직전의 시니컬한 투자상담가

헬렌을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동정심이 일어,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핑계로 그녀의 의뢰를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스릴러의 탐정처럼 거리를 쏘다니며 사건을 추적한다. 그는 이 일이 재밌는 것 같다. 


소설의 시작이 낯선여자가 헬렌에게 전화해서 협박하는 장면이다. 

도대체 이 미친여자는 뭐고, 수정구슬은 또 뭐니. 

궁금해 하며 블랙쉬어를 따라 쫓아 다니다 에블린의 정체가 확인되면 일단 한번 놀란다. 

이제부터는 헬렌이 뭘 잊고 사는 것이고, 에블린은 왜 복수의 화신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다시한번 헬렌과 에블린의 관계를 알게 된 순간 

헬렌이 사는 싸구려 모텔은 은둔처 일 뿐 아니라 헬렌이 스스로 세상과 단절시킨 감옥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스스로 만든 그 고립의 상태가 또한 얼마나 허술한지 알게된다. 

중요한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


에블린은 매우 독특한 설정이다. 

그녀의 사악한 이중인격의 핵심은 증오와 복수심에 가득해서 사람들을 이간질 시킨다는 것.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를 넘어 내 정체성이 나를 공격한다. 

에블린의 파괴력은 그녀가 일말의 진실을 말한다는 것. 

우리 모두 그것이 거기 있다는 것을 외면하는것, 그것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에블린의 수정구슬이다. 

다면적인 인물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할 뿐 아니라, 에블린 캐릭터는 막무가내로 독특하고 악의적인 아우라가 넘친다. 


사람의 약점을 찾아 꿰뚤어보고 협박하는 에블린의 수정구슬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순간 

아니 그 수정구슬이 무엇인지, 설마, 설마 하며 짐작하는 순간부터, 반전의 마지막을 확인하며 소름끼친다.

내 안의 야수, 라는 제목이 갑자기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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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
최혁곤 지음 / 시공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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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명 '바리깡맨'이라고 불리는 연쇄살인범으로 시끄러운 서울에서 기자인 나에게 

이제는 유명연예인이 된 옛 애인이 납치되어 도와달라는 전화가 온다. 

두가지 사건, 바리깡맨과 옛 애인의 납치사건이 잘 어울려져 있을 뿐 아니라 

다음으로 이어지는 연작들에서도 베이스처럼 분위기를 잡다가, 아귀를 맞추어 딱 맞게 마무리된다. 

좋네. 


연쇄살인범 이름이 바리깡맨이 뭐니. 

딱 요만큼의 유머와 냉소가, 뭐랄까. 

고상한척 하는것 싫고, 인생 뭐 있나. 재밌으면 그만이지. 

그래도 권위와 위계는 분명 싫고, 아카데믹의 고루함도 뿌리치는 최혁곤의 고집이 느껴진다. 

맞다. 원래 하드보일드는 뒷골목의 보잘것 없이 비열한 사람들의 정의였다. 

한국형 하드보일드를 보는 구나!


조깅용 트랙을 벗어나자 어둠이 더 짙어졌다. 습하고 새까만 공기가 얼굴에 묻어 날 것만 같았다. 

문장도 나쁘지 않고, 


"늙다리 중국 재벌과 사귄다는 한류스타 K양이 누구야? 실명 안 밝힐거면 기사를 쓰지나 말지. 망할 기자 새끼들. 레바논 파병 이런거 지원하면 목돈 좀 땡기냐? 중학교 담벼락에 세워둔 트럭 폭발. 이건 또 뭐야. 가만히 있던 트럭이 왜 터져? 이건 동네 양아치들 불장난이겠지?" 

갈호태가 신문을 보는 저녁이다. 

이런 대사는 모국어로 추리소설을 읽는 즐거움이다. 


전직 신문기자인 나와 전직 강력계 경찰이었던 갈호태, 탐정이 아닌 두사람의 콤비가 수작이다.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에서 '이기적인 갈사장'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운영하는 전직 강력계 경찰이라니. 

주인공의 별병은 퍽큐다. 

캐릭터가 정말 기가 막히지 않은가. 


"쯧쯧, 그 지랄병 아직도 못 고쳤냐? 허세 쩌는 속물과 말 좀 섞는다고 손등에 두드러기 나는 놈은 세상에 네놈뿐일 거다. 대충 사셔. 인생 뭐 별거 있음? 혼자 고고한 척하는 것도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갈사장이 나에게 하는 말이다. 

매우 심각한 상황을 시시껄렁 하게 툭툭 내뱉는 농담으로 너무 어둡거나 가라앉지 않게 조절한다. 

어깨에 힘 꽉주며 무게잡는 스타일 아니고 

당장 드라마로 고칠수 있을 정도의 현실 대중문화와 가까운 곳에서 리얼하다. 장점이다. 

대화가 시니컬을 넘어 자학의 수준으로 경계를 넘어갈때는 살짝 튄다는 느낌 


지금까지 읽은 모국어 추리소설 중 가장 현실에 가깝고, 가장 현실을 진지하게 성찰하며 

심파없이 쿨한것도 좋다. 심지어 짜임새있고 경쾌하다. 

하드보일드 뒷골목 탐정이 서울에 와서 유머러스의 옷을 입었다. 

최혁곤. 동시대를 사는 사람이 모국어로 동시대의 재밌는 추리소설을 발표해주니 고맙다.



2. 

경찰과 기자와 서울도심과 변두리 달동네의 노인과 이주노동자들의 풍경까지. 

생생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집요한 관찰력이 느껴진다. 

처음 본 최혁곤에게 신뢰가 가는 이유다. 

어떻게 이렇게 현실에 굳게 발딛고 있는 추리소설을 쓸 생각을 했을까. 


우리는 거의 동시에 씹던 껌을 어둠 속 멀리 날려 보냈다. 자세를 낮추고 잠입.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녹슨 계단이 텅텅 울렸다. 역시,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것들은 모두 위태롭다. 

이런 문장도 좋다. 


"그냥..., 뭔가 허세 쩔고 삐딱하면서도 의협심 넘쳐 보이지 않아?"

그렇게 보여. ^^

열심히 일해도 도무지 먹고살 길이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대중적인 정서를 최혁곤이 잘 읽어 쓴다. 

편견없는 시선도 미덕이고 

서울이라는 익숙한 도시를 배경으로한 모국어로 추리소설을  읽는 즐거움 

이주노동자와 청년실업, 재개발 등의 현실사회 이슈를 적절히 배치하는 것도 좋다.  

미스터리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고도리 저택의 개사건은 상황 설정도 재밌다. 매우 독특한 유머감각이다. 

서울인근의 돈있는 부자들이 사는 고도리. 

지방경찰청장을 역임하고 퇴직한 갈호태 선배의 부탁으로 개 덕식이를 찾으러 다닌다. 

일명 고도리 덕식이 실종사건이다. 


우리는 이 모양새 빠지는 사건을 빨리 해결하고 떠나기 위해 영화 <맨 인 블랙>의 두남자처럼 선글라스를 끼고 의기투합했다.

가볍게 말하지만 가볍지 않다. 

길거리 난장같은 농담의 모국어로 이렇게 재밌는 소설을 읽을수 있다니. 즐겁다. 

쿨하게 유머감각있는 한국형 추리소설 처음인것 같아. 

최혁곤의 발견이 즐겁다. 

특히 고도리 저택의 개사건은 정말 재밌다. 


안타깝게도 하마 영감의 월담은 사실이었다. 상황이 좋지 못했다. 최악을 가정해 정리하면 이렇다. 술에 취한 전직 경찰 고위간부가 속옷 차림으로 개를 끌고 걸그룹 숙소 담을 넘었다. 정상 참작해 정리하면 이렇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갑자기 담을 타고 옆집 마당으로 뛰어들어 놀란 주인이 붙잡으려다 같이 미끄러졌다. 


폭발직전의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경찰서에 등장한 걸그룹의 안대박 사장에게 갈호태가 말한다. 

"제 새끼 같은 개새끼를 잃은 이웃의 슬픔을 조금만 헤아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빵 터졌다. 안 보면 후회한다. 


하마영감과 갈호테, 박희윤의 미제사건수사반의 활약이 기대된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최혁곤을 더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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