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
최혁곤 지음 / 시공사 / 201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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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명 '바리깡맨'이라고 불리는 연쇄살인범으로 시끄러운 서울에서 기자인 나에게 

이제는 유명연예인이 된 옛 애인이 납치되어 도와달라는 전화가 온다. 

두가지 사건, 바리깡맨과 옛 애인의 납치사건이 잘 어울려져 있을 뿐 아니라 

다음으로 이어지는 연작들에서도 베이스처럼 분위기를 잡다가, 아귀를 맞추어 딱 맞게 마무리된다. 

좋네. 


연쇄살인범 이름이 바리깡맨이 뭐니. 

딱 요만큼의 유머와 냉소가, 뭐랄까. 

고상한척 하는것 싫고, 인생 뭐 있나. 재밌으면 그만이지. 

그래도 권위와 위계는 분명 싫고, 아카데믹의 고루함도 뿌리치는 최혁곤의 고집이 느껴진다. 

맞다. 원래 하드보일드는 뒷골목의 보잘것 없이 비열한 사람들의 정의였다. 

한국형 하드보일드를 보는 구나!


조깅용 트랙을 벗어나자 어둠이 더 짙어졌다. 습하고 새까만 공기가 얼굴에 묻어 날 것만 같았다. 

문장도 나쁘지 않고, 


"늙다리 중국 재벌과 사귄다는 한류스타 K양이 누구야? 실명 안 밝힐거면 기사를 쓰지나 말지. 망할 기자 새끼들. 레바논 파병 이런거 지원하면 목돈 좀 땡기냐? 중학교 담벼락에 세워둔 트럭 폭발. 이건 또 뭐야. 가만히 있던 트럭이 왜 터져? 이건 동네 양아치들 불장난이겠지?" 

갈호태가 신문을 보는 저녁이다. 

이런 대사는 모국어로 추리소설을 읽는 즐거움이다. 


전직 신문기자인 나와 전직 강력계 경찰이었던 갈호태, 탐정이 아닌 두사람의 콤비가 수작이다.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에서 '이기적인 갈사장'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운영하는 전직 강력계 경찰이라니. 

주인공의 별병은 퍽큐다. 

캐릭터가 정말 기가 막히지 않은가. 


"쯧쯧, 그 지랄병 아직도 못 고쳤냐? 허세 쩌는 속물과 말 좀 섞는다고 손등에 두드러기 나는 놈은 세상에 네놈뿐일 거다. 대충 사셔. 인생 뭐 별거 있음? 혼자 고고한 척하는 것도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갈사장이 나에게 하는 말이다. 

매우 심각한 상황을 시시껄렁 하게 툭툭 내뱉는 농담으로 너무 어둡거나 가라앉지 않게 조절한다. 

어깨에 힘 꽉주며 무게잡는 스타일 아니고 

당장 드라마로 고칠수 있을 정도의 현실 대중문화와 가까운 곳에서 리얼하다. 장점이다. 

대화가 시니컬을 넘어 자학의 수준으로 경계를 넘어갈때는 살짝 튄다는 느낌 


지금까지 읽은 모국어 추리소설 중 가장 현실에 가깝고, 가장 현실을 진지하게 성찰하며 

심파없이 쿨한것도 좋다. 심지어 짜임새있고 경쾌하다. 

하드보일드 뒷골목 탐정이 서울에 와서 유머러스의 옷을 입었다. 

최혁곤. 동시대를 사는 사람이 모국어로 동시대의 재밌는 추리소설을 발표해주니 고맙다.



2. 

경찰과 기자와 서울도심과 변두리 달동네의 노인과 이주노동자들의 풍경까지. 

생생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집요한 관찰력이 느껴진다. 

처음 본 최혁곤에게 신뢰가 가는 이유다. 

어떻게 이렇게 현실에 굳게 발딛고 있는 추리소설을 쓸 생각을 했을까. 


우리는 거의 동시에 씹던 껌을 어둠 속 멀리 날려 보냈다. 자세를 낮추고 잠입.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녹슨 계단이 텅텅 울렸다. 역시,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것들은 모두 위태롭다. 

이런 문장도 좋다. 


"그냥..., 뭔가 허세 쩔고 삐딱하면서도 의협심 넘쳐 보이지 않아?"

그렇게 보여. ^^

열심히 일해도 도무지 먹고살 길이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대중적인 정서를 최혁곤이 잘 읽어 쓴다. 

편견없는 시선도 미덕이고 

서울이라는 익숙한 도시를 배경으로한 모국어로 추리소설을  읽는 즐거움 

이주노동자와 청년실업, 재개발 등의 현실사회 이슈를 적절히 배치하는 것도 좋다.  

미스터리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고도리 저택의 개사건은 상황 설정도 재밌다. 매우 독특한 유머감각이다. 

서울인근의 돈있는 부자들이 사는 고도리. 

지방경찰청장을 역임하고 퇴직한 갈호태 선배의 부탁으로 개 덕식이를 찾으러 다닌다. 

일명 고도리 덕식이 실종사건이다. 


우리는 이 모양새 빠지는 사건을 빨리 해결하고 떠나기 위해 영화 <맨 인 블랙>의 두남자처럼 선글라스를 끼고 의기투합했다.

가볍게 말하지만 가볍지 않다. 

길거리 난장같은 농담의 모국어로 이렇게 재밌는 소설을 읽을수 있다니. 즐겁다. 

쿨하게 유머감각있는 한국형 추리소설 처음인것 같아. 

최혁곤의 발견이 즐겁다. 

특히 고도리 저택의 개사건은 정말 재밌다. 


안타깝게도 하마 영감의 월담은 사실이었다. 상황이 좋지 못했다. 최악을 가정해 정리하면 이렇다. 술에 취한 전직 경찰 고위간부가 속옷 차림으로 개를 끌고 걸그룹 숙소 담을 넘었다. 정상 참작해 정리하면 이렇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갑자기 담을 타고 옆집 마당으로 뛰어들어 놀란 주인이 붙잡으려다 같이 미끄러졌다. 


폭발직전의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경찰서에 등장한 걸그룹의 안대박 사장에게 갈호태가 말한다. 

"제 새끼 같은 개새끼를 잃은 이웃의 슬픔을 조금만 헤아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빵 터졌다. 안 보면 후회한다. 


하마영감과 갈호테, 박희윤의 미제사건수사반의 활약이 기대된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최혁곤을 더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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