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하우스의 비극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푸아로 셀렉션 8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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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금가지의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와 포와로 셀렉션은 내용보다 먼저 멋진 표지로 눈을 유혹한다. 

필적할 만한 시리즈는 열린책들에서 내 놓은 조르주 심농 시리즈 정도일 것이다. 

사실 추리소설은 2류도 하니고 3류로 취급하면서 책의 모양새와 편집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똑같은 황금가지라도 크리스티 전집의 표지는 정말 최악이라고 할 만하다. 

어떻게 그렇게 일관되게 어둡고 칙칙하게 만드니. 

물론 아주 오래동안 표지가 문제가 아니었지. 

번역의 오류로 악명을 떨치면서도 동서미스터리 북스는 추리소설 매니아들에게 늘 환영받았고 

편집의 답답함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해문의 미스터리는 단비 같았어. 

두 시리즈 모두 지금도 좋아.


이제 이렇게 어엿하고 예쁜 크리스티 시리즈를 보면서, 흐뭇하고 기분이 좋아. 

조카에게 행복의 맛이라고 큰소리치며 선물해 버렸지. 

예쁜 표지를 보며, 그동안 억울하게 천대받다가 이제야 마땅한 대접을 받는 친구를 보듯 새삼 기분이 좋아 서론이 길었다.



2. 

언제봐도 좋은 크리스티

세상의 모든 추리소설은 크리스티로 부터 나왔다고 생각하는대, 코지미스터리는 특히 그렇다.


푸와로가 늙었다. 

은퇴를 선언하고 사건 의뢰를 받지 않지만, 늘 그렇듯이 연로한 푸와로에게도 사건은 찾아온다. 

푸와로와 헤이스팅스의 핑퐁같은 대화가 늘어 재밌네. 이 양반들이 나이들어 만담을 하는 구먼. 


"제발, 제발, 헤이스팅스. 가르마 좀 옆으로 타지 말고 가운데로 타라구! 좌우대칭이 돼서 얼마나 보기 좋겠나. 그리고 구렛나룻을 기르려거든 제대로 좀 길러. 내 것처럼 아름답게."

소름끼치는 상상을 억누른 채 나는 포아로가 내민 쪽지를 홱 낚아채 방을 나섰다. 


빵 터졌다. 포와로가 헤이스팅스에게 헤어스타일과 수염에 대한 잔소리를 하다니. 

엄청 튀면서 촌스러운 패션 감각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포와로가 젊잖은 신사 헤이스팅스에게 할 소리는 아니다. 

푸아로가 나이들어 여성호르몬이 늘어난 모양이야. 재밌어. 


크리스티 스러운 작품이고 크리스티 스럽다고 할 만한 반전의 마무리 

사실 현대작가가 이런 마무리를 했다면 반칙이라고 하겠지만, 크리스티니까. 

오래되어 익숙한 친구와 주말에 수다를 떠는 것은 늘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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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감옥
찰스 스트로스 지음, 김창규 옮김 / 아작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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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는 영국 출신 SF작가다. 

문장도 좋고, 스토리 텔링도 좋고, 철학도 좋다. 

27세기의 상상력도 좋고, 21세기 결혼한 여성이 되어 갇힌 유리감옥을 표현하는 부분도 좋다. 

27세기의 미래에 대한 사상력은 사실 SF소설의 역사적 기반으로 일정 유통되는 공식이랄까. 

경향성의 흐름이 있기 때문에 그런 선배들의 상상력에 하나씩 보태며 납득가능한 세밀화를 그릴 수 있다. 

오히려 21세기 결혼한 여성이라는 유리 감옥이 27세기의 상식적인 인류가 보기에 얼마나 황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인지 

21세기 결혼한 여성이라는 지위 그 자체가 유리감옥에 갇힌 죄인과 같다는 것을, 참으로 구석구석 시시콜콜 잘 그린다. 

그리하여 효과적으로 답답하다. 

아, 그녀는 이 감옥을 어떻게 버틸까. 

그녀는 이 감옥에서 탈출 할 수 있을까. 

21세에서 결혼한 여성으로 살고 있는 나는 27세기에서 온 그녀의 답답함을 절감한다.

아, 나는 이 감옥을 어떻게 버틸까. 

나는 이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아니. 난 지금 여기서 빠져나간다는 얘기를 하는 거야."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는 덫에 갇힌 동물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렇게 조재론적인 황량함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이럴때면 우리가 현실 속 균열을 임시로 가리기 위해 몸 둘레에 두르고 있던 거짓말의 고치가 흐느적거리며 녹아내리고, 아주 추악한 무언가를 직시하게 된다. 제니스에게도 그런 벌레가 있었다. 


SF의 세계는 보통 기계가 극도로 발달한 세계이고 기계와 인간의 불화를 다루며 인간의 존재를 탐구한다. 

보통 문장은 의도적으로 건조하거나 차가운 경우가 많은대 

찰스의 문장은 촉촉하다. 이 점도 좋다. 

가끔 매우 시적인 SF도 있고,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는 최고 였다. 

필립과 다르게 찰스도 좋다. 

뭐랄까. 삶을 관통하는 직관이 느껴지는 문장들, 한 문장이 길지 않고 짧게 끊어서 한문장에 하나씩 정확하게 표현한다. 

읽기 수월하고, 그러나 짧은 문장들을 숙고해서 신중하게 쓴 느낌 

구성도 좋고, 퍼즐을 맞추듯이 하나씩 전체 그림을 완성해 가는 

다만 너무 길다. 

굳이 탱크였던 시절과 과거의 이야기들을 그렇게 구구절절이 

그냥 현재를 설명하는 개연성을 맞추는 정도만 하지 

과거의 설명이 길어질 때마다 27세기 시스템과 기술을 설명하느라, 반복해서 난해해지고 

전체 스토리와 떠서 늘어진다. 뒤로 갈수록 가독성이 떨어지고 지루하다.

그래도 더 번역된 것이 있나 찾아서 찰스를 읽어 보려고. 

21세기 결혼한 여성의 답답함을 절묘하게 서술해 준것 만으로도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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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 미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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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유명한 잭 리처 시리즈 

집도 휴대폰도, 가방도 없이 미국 전역을 떠도는 잭, 독특한 지위의 사람이다.  

탐정도 경찰도 FBI 특수요원도 아니고 물론 법의관도 아니고 첨단시대의 보헤미안이라니.

집도 휴대폰도 가방도 없이 여행을 하지만, 아마도 돈은 넉넉한 모양이야. 홈리스는 아니거든. 

추적자를 몇번 시도했다가 지루해서 실패했는대 

이번에는 재밌었다. 


마더레스트. 이 마을에서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2. 

잭 리처 캐릭터의 가장 특이한 점은 그가 끊임없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딱 죽기직전에 적들을 교란하여 상황을 반전시킨다. 

총을 쏘면서 세발의 총으로 세명을 쏴 죽이면서 그 사이에 4페이지의 생각을 한다. ^^;

총을 집어드는 각도, 킬러들의 위치, 탄환이 속도, 상대의 움직임. 

총을 세번 쏘는 순간은 찰라의 순간이다. 탕탕탕. 

이 순간을 위해 4페이지의 리처의 생각을 읽으라는 거다. 

독자들에게 이런 요구는 사실 무리하다. 

실제 저런 순간에는 생각을 안하지는 않겠지만, 생각이라기 보다는 숙련된 감각으로 움직여지지 않겠는가 말이다. 

리처는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독자들을 피곤하게 한다. 심지어 탕탕탕의 순간에도. 

이게 리처의 매력이다. 


체격좋고, 몸도 좋고, 생각을 엄청 많이 하는 떠돌이 잭 

댓가를 바라는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대로 어느 곳에도 묶이지 않고 다니다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면 올인하여 물러서지 않고 해결한다. 


말보다 생각이 많은 하드보일드라니. 

지루하기도 한 그의 생각을 따라 읽으며 거 참, 독특하네. 반복해서 중얼거리다가 

마더스 레스트, 마을 이름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세상에 이럴수가. 정말 딱 맞는 표현이지 뭔가. 

지루한 리처의 생각을 더듬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처와 장의 관계도 적절해서 마음에 든다. 

질척질척함도 가증스러운 밀당도없다.

쿨하고 뜨겁게 섹스하고, 서로 염려하고. 물론 리처는 천상 마초지만 장의 조언을 못이기는척 따르기도한다.  

좋네. 깔끔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결말. 궁금했던 앞부분의 호기심을 모두 보상하고도 남는다. 

게다가 리 차일드의 문장은 어쩌면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건조하고 차가운가. 

사랑도 싸움도 열정도 모두 차갑고 허무하다. 

그렇게 다시 길을 떠난다. 

그래서 또 찾아 읽게 되나봐. 현대인들의 외롭고 고독한 정서와 잘 맞나봐. 



3. 

마이클은 무쾌감증이다. 

스스로 느끼는 행복수치가 최저 0, 최고 0 인 상태. 이런 병이 정말 있을까?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늘 우울하다니. 기쁜일이 있어도 우울하다니. 


장의 폰이 추적된다는걸 알면서 왜 켜는 걸까. 

잭은 주도면밀하고 위험을 경계하는 동물적 감각이 있으며 매우 논리적으로 최악을 상정해서 계획을 세우는 캐릭터인대

킬러들에게 추적되는 폰을 켜다니. 이런 대목은 긴장을 떨어뜨린다. 


배경은 미국이지만 최근 유행하는 크라임스릴러에 비하면 촘촘한 전개가 느리다. 

떠돌아다니는 상황 설정의 독특함 때문인지, 스토리의 전개는 매우 시시콜콜 리얼하게 구성한다. 

스토리텔링이 단단해. 호기심을 유발하는 구성도 좋고. 

잭은 하드보일드 탐정의 후예다. 필립 말로나 루 아처의 분위기. 

말이 많지는 않지만 과묵하지는 않다. 해야 할 말은 직설적으로 쿨하게 해서 시원한 스타일

재미붙이고 잭 리처 시리즈를 읽어볼 생각이다. 

근면성실한 영국 소설의 전통을 따르는 미국식 하드보일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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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파르나스의 키키
윤진 옮김, 카텔 뮐레르 그림, 조제 루이 보케 글 / 인벤션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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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 현대소설들은 대체로 지루하고 알아들을 수없는 말을 해서 왠만해선 안 읽는다. 

그런데 어째서 프랑스산 그래픽노블들은 이렇게 재밌을까. 

대체로 수작이고 개성적인 그림들도 예쁘다. 무엇보다 감정의 표현도 좋아. 


단순하고 굵은 선의 그림이 시원하다. 

키키처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키키의 삶과 닮은 키키스러운 그림이 아름답다. 


책을 펴면 알리스(키키)가 너무 예쁘다. 가난한 사람들의 밝은 기운도 화사하고.

1910년대 12살 아이에게 파리는 가혹하다.  

1918년 17살 쥘리에트가 알리스에게 묻는다. 


"넌 어때? 알리스? 네 꿈은 뭐야?"

"먹고,마시고, 따뜻한 데 사는 거."


1차 세계대전 시대의 프랑스 파리 뒷골목, 가난한 여성들, 외국인들, 예술가들, 폭군들, 모두 생생하다. 

그녀는 모델을 한다. 창녀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직업

키키는 몽파르나스의 젊은 예술가들과 어울려 삶을 즐긴다. 

씩씩하게, 시원하게, 그들의 뮤즈가 되어.



2.

프랑스 몽파르나스에서 예술가들의 여신이 된 키키 

내일을 걱정하지 않으며 다만 오늘을 최선을 다해 즐기며 산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나이들어도 철들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키키는 특유의 발랄함으로 예술가들의 여신이 되지만 

왕성한 호기심과 불같은 성격은 나이들어도 바뀌지 않아 가는곳마다 키키스러운 사고를 치고 

냉정하고 성실한 만레이가 수습을 한다. 

섹스, 마약, 술, 노래, 그림 그녀는 에너지를 모두 모아 탕진하듯이 산다. 


"저 사람들은 양성애자인가요?"

"정상적인 사람은 원래 아무하고나 할 수 있고, 심지어 아무거나 하고도 할 수 있어요. 인간의 본능은 맹목적이니까......"

맞다. 

내가 조금 더 빨리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불변의 진리처럼 이성애만이 정상이라는 완고한 생각을 의심없이 믿지 않았더라면 

맹목적인 인간의 본능에 대한 실험을 해 봤을지도 몰라. 

어쩌면 설레이는 사랑이 더 쉬웠을 지도 모르지.


자유로운 영혼은 에너지가 넘쳐서 중독성이 있고, 전염성도 있다.  

스스로 자유롭게 살아 세상을 더 풍료롭게 채색한 키키와 키키를 부활해 놓은 조제와 카텔 

한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한 인벤션 출판사에게도 모두 고맙다. 

어쩌면 표지 까지 저렇게 예쁘냐구. 


책을 덮으며 만레이가 찍었다는 키키의 사진이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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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유희
시마다 소지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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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마다 소지는 독특하다. 

점성술 살인사건의 트릭은 물론 베스트지만 트릭 뿐 아니라 작품의 분위기를 만드는 실력이 더 빼어나다. 

뭐랄까. 이야기를 맛깔나게 끌어가는 기발한 재주랄까. 


이번에도 이야기 초반 제법 길게 배경 설명을 하는대 전혀 지루하지 않다. 

부디 용와정이나 식인나무처럼 너무 많은 시체와 피의 낭자함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오래간만에 과거의 소지를 즐겁게 읽었다. 


미타라이 기요시. 명석한 탐정과 로드니 라힘이라는 독특한 캐릭터 

과거와 현재, 욕망과 원망이 교차되는 스코틀랜드의 작은마을 

강렬한 인상의 사건이 반복되는것에 비해 스토리는 유연하게 흐른다. 

끔찍한 살인이 어둡게 흐르지 않는 것은 

설레발치는 알콜중독자 시인 버니와 코끼리 같은 등짝의 배글리서장 콤비의 만담 덕이다. 

수선스럽게 핑퐁핑퐁 주고받는 말들을 따라가다보면 순식간에 페이지가 휘리릭 넘어간다.  

재밌어. 

독하고 강한 미타라이나 라힘이 아니라 

순하고 약하지만 말속에 위트를 담는 버니와 느리고 뚱뚱한 배글리서장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재밌다. 



2. 

미타라이는 실제 티모시에서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런던에서 라힘을 인터뷰하고 그의 그림을 봤으면서 

왜 그림과 똑같은 상황의 살인사건이 반복되는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입을 닫고 있는 걸까. 

왜 모른척 하지? 이상해. 이상해, 이러면서 책장을  넘겼는대 

왜 그랬는지 알게 된 순간 웃어버렸다. 뭐야. 소지 아무리 분위기의 작가라지만 이런 트릭은 반칙이다. 


으시시한 분위기에 스토리를 즐기면서 읽으면, 사건의 인과나 개연성의 많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큰 흠이 되지는 않는다. 

아직 초반의 소지니까. 감안 한다면 더욱 즐길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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