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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 살인사건 ㅣ 잭슨 브로디 시리즈
케이트 앳킨슨 지음, 임정희 옮김 / 문학사상사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1.
케이트는 일상을 꼼꼼하게 관찰하는 영국여성작가들의 계보에 충실하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거실을 문학의 배경으로 등장시킨 제인 오스틴처럼
여성들의 수다를 문학으로 우아하게 승격시킨 크리스티처럼
시골동네 할머니, 아주머니, 귀족부인부터 전문직 여성과 주방에서일하는 하녀까지
크리스티의 여성들은 모두 말을 한다.
소문을 탐하고 퍼트리며
삶의 진실에서 떨어져 나온 한조각이 어느 모퉁이의 파즐 조각인지 귀신처럼 더듬어 찾아내는
머리 나쁜 여자들의 값싼 수다를 현명한 여성들의 삶의 방식으로 승격시킨
케이트가 제시하는 케임브리지의 세 사건, 아니 네가지 살인사건을 보면 영국 여성들이 보인다.
시골마을에 사는 평범한 여성들이 마루를 쓸고 닦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시시콜콜
그녀들에게 우호적인 눈빛으로 재치있는 위트를 담아
이 모든 비극이 '평범함'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이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라는 것이 더 슬프기도 하다.
특별한 비극이 아리나 평범한 비극 이라는 건대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이라니 다행이고 다행이다.
2.
지리멸렬하고 기운것처럼 누추안 익숙하지만 당혹스러운 일상과 만난다.
로즈마리는 열여덟살 때 빅터와 결혼했다.
빅터는 수학자였고 서른여섯 살이었다. 나이가 두배나 많은 남자와 결혼한 셈이다. 큰딸 실비아는 지금 13살이다.
만약 5년뒤에 실비아가 서른여섯 살짜리 도둑놈을 약혼자로 데려온다면(특히 그 약혼자가 서른여섯 살짜리 수학자가 되겠다고 말한다면) 로즈마리는 고기 써는 칼로 남자의 심장을 도려낼지도 모른다.
열여덟살에 결혼해서 실비아, 아멜리아, 줄리아, 올리비아 딸이 넷이고
남편은 가족이 침범할 수 없는 고상한 정신세계에서 사는 수학자라니.
상황은 암울하고 비참한대 그녀의 냉소 섞인 문체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하는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생산적이다. 잭슨은 완전히 게으름을 피우는 것처럼 보일때 가장 심오한 통찰력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잭슨은 따분해 하지 않았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끔 수도원에 들거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욕하고 은둔하는 선불교의 스님이 되고 싶었다.
웃었네. 동의해. 아무것도 안하는것이 생산적이라는 말에 완전 동의해.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 있는 주말을 나는 예찬한다. 딩굴딩굴 집에서 쉬는 날의 보람이라니. ^^
이런 문장 덕분에 술술 책장이 넘어가고, 재미있다.
12년 동안 케임브리지셔 경찰대의 일원이었고 2년전부터 사립탐정이 된 잭슨은 작고 초라한 신념이긴 하지만 자신의 일은 사람들의 나쁜 것을 벌주는게 아니라 착하게 살도록 돕는 일이라고 믿었다.
이런 신념을 갖은 대한민국 경찰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대한민국 경찰은 사람들의 나쁜 것을 벌주는 것도 신념이 아닌듯이 보여.
신념이란 것이 없이 먹고사는 사람들처럼 보이고 경찰이 아닌 사람들보다 나쁜것을 더 많이 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잭슨의 저 신념은 가마슈경감과 비교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문장이 좋다.
캐나다의 루이즈 페니와 느낌이 비슷해. 물론 다른점이 더 많지만
페니의 문장이 더 여성적이고 섬세하고 앳킨슨은 페니보다 더 냉소적이고 직설적으로 내뱉는다.
그래도 그녀들의 인간에 대한 신뢰와 동물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헤아리는 밝은 눈도 공통점이고
물론 가마슈경감은 탐정 잭슨에 비하면 고상한 신사이고 도덕교과서 같은 사람이지만
그리고 잭슨은 거친 스릴러의 뒷골목 탐정이라 가마슈에 비하면 가난하고 누추해 보이지만
아주아주 많이 다른 캐릭터이고 말투도 많이 다르지만
캐나다와 영국의 닮은 감성과 신념을 보며 부러웠다.
3.
탐정 잭슨 브로디의 누나 니암과 형 프랜시스의 죽음에 얽힌 No.4의 사건기록을 읽은 순간 눈이 번쩍 했다.
아. 영드 '살인의 역사'의 원작이구나!!!!
정말 재밌게 본 독특한 시리즈라고 생각했었는대 이렇게 탄탄한 원작이 있었구나, 감탄했다.
묘하게 우울하지만 인간적인 탐정과 살인에 얽힌 사연들이 쿨하고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의
원작도 드라마도 모두 좋은 경우다. 왠지 내가 흐뭇해 졌다.
4.
사건기록 No.1 올리비아 실종사건부터 No.4 니암이 살해당하는 사건까지
각각의 사건에 얽힌 피해자와 가족들의 이야기
케이트 소설의 장점은 모두를 이해할 수 있게 써준다는 거다.
누구 한사람 악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도끼 살인마'라고 불리는 사람조차 사악한 싸이코 패스가 아니라 평범한 이웃이었다.
모든 피해자들이 순결하고 착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케이트는 공평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공들여 섬세하게 공평하게 표현해준다.
심지어 이 책은 중독성도 있다.
내일의 일정을 무시하는 독서삼매경, 책을 읽다 밤을 새우는 당혹스러움
이제 어쩌면 밤새 책을 읽고 다음날 피곤해서 무거운 몸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안해야 하는 나이 인지도 모른다.
모든 캐릭터가 생생하다.
잭슨, 빈키, 테오, 아멜리아, 줄리아
심지어 잠깐 등장하는 프랜시스, 니암, 스탠 까지 어쩌면 이렇게 잘쓸까.
끝없이 죽고 다시태어나던 라이프 앤 라이프 보다 좋다.
잭슨 이 탐정 마음에 드는대, 또 써준다니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