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탐정 이상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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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진의 경성탐정록을 재미있게 읽었던 맛이 기억나더라. 

색깔은 많이 다른, 전혀 다르지만 


꼭 조울증 환자처럼, 그의 시를 보면 정말 그런 것 같지만 

과장되게 잘난척하고 산만한 이상과 성실하고 정직한 구보의 콤비가 잘 어울린다. 

전형적인 홈즈와 왓슨 커플이다. 

중편 단편 모두 빠지는 작품 없이, 스토리도 재밌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것이 좋다. 

마무리는 좀 억지스럽더라. 


1월부터 이사해야 한다는 마음이 괜히 바빠서 그동안 읽은 책의 리뷰를 쓰지 못하고 

적어놓은 메모가 쌓여있다. 

쌓여가는 메모들을 보며 소화되지 않은 속처럼 더부룩 하였는대 

이사한 후에도 날마다 조금씩 하는 정리가 산만하다. 


지난주 토요일 이사를 하고 처음으로 리뷰를 쓰며 뭘 먼저 쓸까 하다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이상과 구보 콤비로 한다. 

새집에서 새사람과 살게 되는 나와 기식 커플도 잘 어울려 살길 바래. 

간만에 열어본 서재가 반갑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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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 살인사건 잭슨 브로디 시리즈
케이트 앳킨슨 지음, 임정희 옮김 / 문학사상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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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케이트는 일상을 꼼꼼하게 관찰하는 영국여성작가들의 계보에 충실하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거실을 문학의 배경으로 등장시킨 제인 오스틴처럼 

여성들의 수다를 문학으로 우아하게 승격시킨 크리스티처럼 

시골동네 할머니, 아주머니, 귀족부인부터 전문직 여성과 주방에서일하는 하녀까지 

크리스티의 여성들은 모두 말을 한다. 

소문을 탐하고 퍼트리며 

삶의 진실에서 떨어져 나온 한조각이 어느 모퉁이의 파즐 조각인지 귀신처럼 더듬어 찾아내는 

머리 나쁜 여자들의 값싼 수다를 현명한 여성들의 삶의 방식으로 승격시킨 


케이트가 제시하는 케임브리지의 세 사건, 아니 네가지 살인사건을 보면 영국 여성들이 보인다. 

시골마을에 사는 평범한 여성들이 마루를 쓸고 닦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시시콜콜 

그녀들에게 우호적인 눈빛으로 재치있는 위트를 담아 

이 모든 비극이 '평범함'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이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라는 것이 더 슬프기도 하다. 

특별한 비극이 아리나 평범한 비극 이라는 건대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이라니 다행이고 다행이다. 



2. 

지리멸렬하고 기운것처럼 누추안 익숙하지만 당혹스러운 일상과 만난다. 


로즈마리는 열여덟살 때 빅터와 결혼했다. 

빅터는 수학자였고 서른여섯 살이었다. 나이가 두배나 많은 남자와 결혼한 셈이다. 큰딸 실비아는 지금 13살이다. 

만약 5년뒤에 실비아가 서른여섯 살짜리 도둑놈을 약혼자로 데려온다면(특히 그 약혼자가 서른여섯 살짜리 수학자가 되겠다고 말한다면) 로즈마리는 고기 써는 칼로 남자의 심장을 도려낼지도 모른다. 

열여덟살에 결혼해서 실비아, 아멜리아, 줄리아, 올리비아 딸이 넷이고 

남편은 가족이 침범할 수 없는 고상한 정신세계에서 사는 수학자라니.

상황은 암울하고 비참한대 그녀의 냉소 섞인 문체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하는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생산적이다. 잭슨은 완전히 게으름을 피우는 것처럼 보일때 가장 심오한 통찰력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잭슨은 따분해 하지 않았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끔 수도원에 들거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욕하고 은둔하는 선불교의 스님이 되고 싶었다. 

웃었네. 동의해. 아무것도 안하는것이 생산적이라는 말에 완전 동의해.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 있는 주말을 나는 예찬한다. 딩굴딩굴 집에서 쉬는 날의 보람이라니. ^^

이런 문장 덕분에 술술 책장이 넘어가고, 재미있다. 


12년 동안 케임브리지셔 경찰대의 일원이었고 2년전부터 사립탐정이 된 잭슨은 작고 초라한 신념이긴 하지만 자신의 일은 사람들의 나쁜 것을 벌주는게 아니라 착하게 살도록 돕는 일이라고 믿었다. 

이런 신념을 갖은 대한민국 경찰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대한민국 경찰은 사람들의 나쁜 것을 벌주는 것도 신념이 아닌듯이 보여. 

신념이란 것이 없이 먹고사는 사람들처럼 보이고 경찰이 아닌 사람들보다 나쁜것을 더 많이 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잭슨의 저 신념은 가마슈경감과 비교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문장이 좋다.

캐나다의 루이즈 페니와 느낌이 비슷해. 물론 다른점이 더 많지만 

페니의 문장이 더 여성적이고 섬세하고 앳킨슨은 페니보다 더 냉소적이고 직설적으로 내뱉는다. 

그래도 그녀들의 인간에 대한 신뢰와 동물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헤아리는 밝은 눈도 공통점이고 

물론 가마슈경감은 탐정 잭슨에 비하면 고상한 신사이고 도덕교과서 같은 사람이지만 

그리고 잭슨은 거친 스릴러의 뒷골목 탐정이라 가마슈에 비하면 가난하고 누추해 보이지만

아주아주 많이 다른 캐릭터이고 말투도 많이 다르지만 

캐나다와 영국의 닮은 감성과 신념을 보며 부러웠다. 




3. 

탐정 잭슨 브로디의 누나 니암과 형 프랜시스의 죽음에 얽힌 No.4의 사건기록을 읽은 순간 눈이 번쩍 했다. 

아. 영드 '살인의 역사'의 원작이구나!!!!

정말 재밌게 본 독특한 시리즈라고 생각했었는대 이렇게 탄탄한 원작이 있었구나, 감탄했다. 

묘하게 우울하지만 인간적인 탐정과 살인에 얽힌 사연들이 쿨하고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의 

원작도 드라마도 모두 좋은 경우다. 왠지 내가 흐뭇해 졌다. 



4. 

사건기록 No.1 올리비아 실종사건부터 No.4 니암이 살해당하는 사건까지 

각각의 사건에 얽힌 피해자와 가족들의 이야기 

케이트 소설의 장점은 모두를 이해할 수 있게 써준다는 거다. 

누구 한사람 악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도끼 살인마'라고 불리는 사람조차 사악한 싸이코 패스가 아니라 평범한 이웃이었다. 

모든 피해자들이 순결하고 착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케이트는 공평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공들여 섬세하게 공평하게 표현해준다. 


심지어 이 책은 중독성도 있다. 

내일의 일정을 무시하는 독서삼매경, 책을 읽다 밤을 새우는 당혹스러움 

이제 어쩌면 밤새 책을 읽고 다음날 피곤해서 무거운 몸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안해야 하는 나이 인지도 모른다. 

모든 캐릭터가 생생하다. 

잭슨, 빈키, 테오, 아멜리아, 줄리아 

심지어 잠깐 등장하는 프랜시스, 니암, 스탠 까지  어쩌면 이렇게 잘쓸까.  


끝없이 죽고 다시태어나던 라이프 앤 라이프 보다 좋다. 

잭슨 이 탐정 마음에 드는대, 또 써준다니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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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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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하네스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마약 중독에서 벗어난 경우는 마약과 똑같이 중독적인 무언가에 빠졌을 때 뿐이었다. 마약이 주는 황홀감만큼이나 강한 동기를 부여하고 자극적이어야 했는대 그럴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았다. 신을 만나거나 사랑에 빠지거나 아이가 생기는것 정도

누명쓰는 이야기 별로 안좋아 하는대 

해리 홀레가 아닌 요 네스뵈를 호기심을 갖고 읽었다. 

자극적인 헐리우드를 많이 닮아 있지만, 여전히 요의 문장은 좋다. 심플하게 내리치는 느낌 


소니 로프투스. 매력적인 인물이다. 

로망이던 경찰 아빠가 비리를 저질렀다는 유서를 쓰고 자살하자 삶을 포기하고 마약에 빠져서 

심지어 살인사건을 자백하고 교도소에서 10년넘게 마약에 취해 산다. 

그러다가 어느날 운명처럼 아빠가 비리경찰이 아니고 억울하게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탈출하여 복수한다. 

요 대목이 중요하다. 

탈줄해서, 복수하는 과정이 

긴박하게 쫓기며 아슬아슬 위태로울줄 알았는대 

10년넘게 감옥에서 마약에 쩔어 살았으니, 사실은 감옥을 탈출하는 것만 해도 불가능해야 하는대 

소니의 첫번재 매력은 너무너무 쉽다는거다. 

마약을 끊는것도 탈옥하는것도 사실 이정도로 쉬우면 리얼리티가 떨어져야 하는대  

디테일이 워낙 시시콜콜 살아있다보니 거짓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탈옥하는 방법이 매우 대범해서 오히려 자연스럽다. 재밌어. 


10년넘게 감옥에서 마약에 쩔어 살아 세상물정 모르는 소니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겸손한 것은 두번째 매력이다. 

사람을 함부로 쉽게 스윽 죽이는 소니가 

택시기사에게 친절하고 마약중독자에게 너그럽다. 

노숙자쉼터의 마르타와는 러브라인까지. 


엉망진창인 세상. 배우고 힘있고 돈있는 놈이 장땡인 세상에서 

정의롭게 경찰하다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소니 

인류가 오랫동안 즐겼던 권선징악의 단순한 스토리지만 

냉혹한 킬러와 착한 미소년의 이미지를 겹처놓아 소니는 매우 매력적이다. 

아슬아슬 억울하게 쩣기면서 긴장시킨지도 않으니 요 네스뵈에게 고마울 따름 

킬러를 사랑하고 싶어진다니까. 



2.

"그자는 일란성 쌍둥이야. 열한살이 됐을떼 이틀 연속으로 동생을 죽이는 꿈을 꿨지. 둘은 일란성 쌍둥이니까 그는 동생도 자기와 똑같은 꿈을 꿨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러니 이제 남은 건 누가 먼저 선수를 치느냐는 거지."

이름이 너무 많아서 본명이 뭔지도 모르는 쌍둥이라는 별명의 거물 악당에 대해 

시몬이 카라에게 설명해 준다. 

저 설명을 읽고 섬찟했다. 

열한살, 꿈, 일란성 쌍둥이, 그리고 존속살인에 대한 암시가 선명하다. 

그런데, 저 쌍둥이의 암시가 결국 시몬의 자기 암시였다는 것을 안순간 한번더 놀랐다. 

역시 네스뵈. 


요 네스뵈는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전작들에서도 본줄기의 스토리말고 등장하는 인물들이 이렇게 저렇게 자기이야기나 건물에 얽힌 옛날이야기 같은걸 

재미있게 잘 들려주었는대, 이번에도 그렇다. 

마르타가 들려주는 일라센터가 입주한 건물의 옛날이야기는 오래된 흑백영화로 본적이 있는듯한 스토리가 재밌다.


조연조차 캐릭터가 생생한 것 또한 요 네스뵈의 장점이다. 

잠깐 등장하는 사람들도 금방 알아볼 수 있을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요의 애정이 느껴져.  


"아니. 하지만 자네가 모르는 사람이라니까 하는 말인데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이 갖는건 옳지 않아. 저 집을 좀 보라고! 여긴 노르웨이지 미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야. 우린 그저 끔찍하게 추운 북쪽의 척박한 나라에 불과해. 하지만 다른 나라에는 없는 한가지가 늘 있었지. 모종의 평등, 모종의 공정함 말이야. 그런데 이젠 우리 스스로가 그걸 무너뜨리고 있어." 

이런 문장때문에 내가 북유럽 소설을 좋아한다. 

비록 척박한 땅이지만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한가지가 '모종의 평등'이라고 말하는 국민들의 나라에 

한번 살아보고 싶어. 

풍요로운 땅이지만 한 사람이 더 많이 갖는것을 찬양하고, 모종의 불평등과 모종의 폭력이 일상인 나라말고 


일란성 쌍둥이 암시와 함께, 삼총사 그리고 아들 이라는 말의 의미가 절묘하다. 

비록 시몬은 죽지만 결국 마르타와 차를 타고 꿈의 땅 베를린으로 떠나는 마지막 장면의 소니는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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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 블랙 로맨스 클럽
제인 니커선 지음, 이윤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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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푸른 수염이야기는 처음 읽었을때도 참 이상한 동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중요하고 보여주기 싫은것이 있으면 열쇄를 주지 말든지, 열쇄를 주면서 보지 말라는 것은 뭐고 

비밀의 문을 열었다고 죽이는 것은 또 뭐고 

처음 읽었던 10대때 부터 뭐 이런 재미없는 동화가 다 있을까 했다. 


부자집 남자에게 시집가는 여자는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죽음에 이른다는 스토리

묘하게도 푸른수염이야기는 푸른수염을 잔인한 남자로 그리지 않고 비밀이 있을뿐인 매력적인 남자, 

사랑하는 아내에게 번번이 배신당하는 남자로 그린다.  

오히려 호기심때문에 금지된 문을 여는 그녀를 단죄한다. 사실 그녀는 피해자인대. 

가난한 너에게 부유한 삶을 주고 사랑도 주는대, 왜 시키는대로 못하니. 

감히 남편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쓸데없이 호기심에 굴복한 어리석은 여자의 운명은 죽어 마땅하다는 듯이

푸른수염이야기는 그 자체가 여성을 조롱하고 경멸한다.  

어쩌면 가장 솔직한 현실인지도 모르지만, 푸른수염은 재수없다. 

돈많아서 미녀를 쟁취하여 시험하고 죽이는 연쇄살인마일 뿐이다.  



2. 

19세기 노예제가 횡횡하는 미시시피 

유럽의 백인들이 총들고 아메리카로 이주해서 원주민들을 내몰고 목장을 운영한다. 

아프리카에서 사냥해온 니그로인들을 노예로 부려먹던 시대의 미시시피. 농장주들의 욕망이 노골적이다. 

원시림과 이글거리는 태양. 원색적인 욕망과 야만 

신사의 옷을 입은 호색한 드라큘라와 성서와 주술이 뒤섞여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느낌이 있다. 

뜨거운 낯과 칠흙같은 밤 

영혼이 파괴된 노예들의 고통으로 신사들의 욕망이 호탕한 붉고 검은 미시시피 



3. 

"덕워스 부인의 최고의 기쁨은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뭐든 간에 그녀에게 알리시오. 그럼 그녀가 그것을 구해줄 거요. 물론 그것을 내가 먼저 알게되어 구해주지 않는 경우에 말이지. 우리는 그대를 응석받이로 만들계획이니까. 알아두시오."

드 크레삭이 가정부 덕워스부인을 소개한다. 

으리으리한 저택의 겁나 부자인 잘생긴 남자가 날 위해 뭐든 다해주겠다는 이런 선언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부적절한 판타지다.  세상에 꽁짜가 어딨니. 


니커선은 익숙한 동화의 감성으로 섬세하게 사물을 그려낼 뿐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포획되어 팔려온 노예들을 개성을 갖춘 사람으로 조심조심 그려낸다. 

유럽에서 온 귀족풍의 농장주와 여주인공의 신데렐라 이야기만이라면 훨씬 밋밋하고 심심한 동화였을 것이다. 


제인은 어떤 이야기가 잘 팔릴 것인지의 안배의 느낌이 아니라 

푸른수염의 이미지를 새롭게 해석하여 원작의 모순과 부당한 불편, 의혹들을 잘 섞어 풀어 놓았다. 

잔인한 원작보다 세련되고 우아한 동화다. 


소피아 캐릭터도 그렇다. 

붉은 머리에 복숭하같은 피부를 지난 소피아는 호기심이 많고 가난했으나 인텔리 변호사 아버지를 두어 

형제들과 북적대며 자란덕에 노예의 존재가 불편하고, 그들과 친구가 되고싶은 

인간적인 마음씨의 교양과 미덕을 갖추었다. 

신데렐라 이야기의 여성들이 백마탄 황자에게 잘보이기 위해 예쁜 옷을 입는것 말고는 할줄 아는것이 없는것에 비해 

소피아 캐릭터는 혁명적이지 않지만 호기심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봉건영주 푸른수염의 근대적 아내 소피아인 셈이다. 

그녀는 큰소리로 주장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눈을 빛내며 꿈틀거린다. 살아있다고. 

그의 애장품 조각이 아니라고. 


푸른수염의 가장 적절한 해석이다. 

어떤 괴물같은 연쇄살인마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부장제의 가정. 화목하고 돈도많아 안락해보이는 가정안의 일방적인 권력관게가 

비록 손찌검도 없고 물리적으로 그녀를 때리지 않더라도 어떻게 그녀에게 명령하고 가두는지 

왜 부자집 안주인인 그녀의 처지가 노예와 다름없는지 

그래. 아무리 돈이많고 잘생기고 교양있는 남자라도 권력관계가 일방적으로 흐르면 거기가 감옥이다. 

드레스를 입고 있다해서 감옥이 집이 되지는 않는다. 

모든것을 다 알아서 해주는 왕과 사는것이얼마나 답답하고 끔찍한 일인지 

푸른수염의 아내들이 왜 죽음에 이르도록 고통스러웠는지. 설득력이 있다. 

왕비면 뭐하냐고. 왕을 위해 1년 365일 대기중인 휴가없는 노예인걸. 


문장은 섬세하다. 이런 문장 오래간만이야. 

내 취향은 헤밍웨이나 심농처럼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문장을 선호하지만

링씨가 이중문을 열어젖히고 내 이름을 호명할 때쯤, 내 입은 목화솜처럼 말라 있었으며 손은 너무도 끈적끈적한 나머지 손지갑에 들러붙을 지경이었다. 

미시시피의 밀림을 마차를 타고 가로질러 도착한 피로와 후견인을 만나는 긴장 

목화솜처럼 마른 입, 이라니. 예민하고 섬세한 이런 표현들이 많다. 

로맨스의 감성으로 휘리릭 무겁지 않게 책장도 잘 넘어간다. 

긴장도 과하지 않게 흥미롭고  


그리하여 근대의 딸 소피아가 봉건영주 크레삭을 어떻게 요리하는지 

심지어 해피앤딩이라 반짝반짝 촉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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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파일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4
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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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탐정이 아닌 두남자의 밤을 보고 너무너무 재밌어서, 최혁곤을 찾아 읽었다. 

이번에도 재밌다. 

뒤표지의 선전처럼 최혁곤이 한국스릴러의 새지평을 연 것이 맞다. 


역사추리소설은 백탑파시리즈의 김탁환이 있고, 한동진형제의 경성탐정록도 재밌었지만 

동시대를 배경으로 하드보일드 스릴러는 최혁곤이 최고이고, 내 기준으로는 그가 시작이다. 

모국어로 이정도 완성도와 만족감을 주는 스릴러는 처음이다. 


최혁곤 이사람 기자 출신인가봐. 

그바닥 생리를 잘알고 디테일의 묘사가 실감난다. 

인물과 상황과 배경과 디테일이 모두 현실에 발딛고 있어 신뢰가 간다. 


은행원, 고참기자, 신참기자 그리고 킬러 

모든 캐릭터가 살아있고 스토리와 엮여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가난한 아이 모두 소외된 인물들을 현실감있게 그렸다. 

킬러라는 직업이 대한민국에도 있는지 모르겠는대 아니, 아마도 있겠지. 

작년인가 뉴스에서 1억에 청부살인을 한 사람에 대한 기사를 들을적 있는것 같아. 

청부살인이 있다면, 킬러도 있는거겠지. 무서운 세상이다. 

현실의 킬러는 무섭겠지만, 소설속의 미호는 가엾다. 

상상이 잘 되지 않는 킬러 캐릭터까지 모두 그럴듯하게 개연성을 갖고 그려저서 리얼하다. 


마지막 원더랜드와 주린은 좀 산만하고 흐릿하다. 

뭐랄까. 풍선에 바람을 너무 많이 넣어서 잘 통제되지 않다가 한꺼번에 푸시시 김이 빠지는 느낌 

그래도 작품을 망칠정도는 아니라고 봐주기로 한다. 


모국어로 이정도의 하드보일드를 볼 수 있다니. 행복해. 

감성이 질척거리지 않고 쿨한것도 좋아. 

시니컬이 과하다는 느낌도 있지만, 많이 넘지는 않는다. 

최근 한국영화들은 하드보일드 스릴러도 잘 만드는대, 소설은 잘 안나오더니 

드디어 소설도 나오는 구나. 

재밌는 추리소설, 최혁곤에게 고맙다. 다음 작품을 더 빨리 써달라는 아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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