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 블랙 로맨스 클럽
제인 니커선 지음, 이윤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1. 

푸른 수염이야기는 처음 읽었을때도 참 이상한 동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중요하고 보여주기 싫은것이 있으면 열쇄를 주지 말든지, 열쇄를 주면서 보지 말라는 것은 뭐고 

비밀의 문을 열었다고 죽이는 것은 또 뭐고 

처음 읽었던 10대때 부터 뭐 이런 재미없는 동화가 다 있을까 했다. 


부자집 남자에게 시집가는 여자는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죽음에 이른다는 스토리

묘하게도 푸른수염이야기는 푸른수염을 잔인한 남자로 그리지 않고 비밀이 있을뿐인 매력적인 남자, 

사랑하는 아내에게 번번이 배신당하는 남자로 그린다.  

오히려 호기심때문에 금지된 문을 여는 그녀를 단죄한다. 사실 그녀는 피해자인대. 

가난한 너에게 부유한 삶을 주고 사랑도 주는대, 왜 시키는대로 못하니. 

감히 남편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쓸데없이 호기심에 굴복한 어리석은 여자의 운명은 죽어 마땅하다는 듯이

푸른수염이야기는 그 자체가 여성을 조롱하고 경멸한다.  

어쩌면 가장 솔직한 현실인지도 모르지만, 푸른수염은 재수없다. 

돈많아서 미녀를 쟁취하여 시험하고 죽이는 연쇄살인마일 뿐이다.  



2. 

19세기 노예제가 횡횡하는 미시시피 

유럽의 백인들이 총들고 아메리카로 이주해서 원주민들을 내몰고 목장을 운영한다. 

아프리카에서 사냥해온 니그로인들을 노예로 부려먹던 시대의 미시시피. 농장주들의 욕망이 노골적이다. 

원시림과 이글거리는 태양. 원색적인 욕망과 야만 

신사의 옷을 입은 호색한 드라큘라와 성서와 주술이 뒤섞여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느낌이 있다. 

뜨거운 낯과 칠흙같은 밤 

영혼이 파괴된 노예들의 고통으로 신사들의 욕망이 호탕한 붉고 검은 미시시피 



3. 

"덕워스 부인의 최고의 기쁨은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뭐든 간에 그녀에게 알리시오. 그럼 그녀가 그것을 구해줄 거요. 물론 그것을 내가 먼저 알게되어 구해주지 않는 경우에 말이지. 우리는 그대를 응석받이로 만들계획이니까. 알아두시오."

드 크레삭이 가정부 덕워스부인을 소개한다. 

으리으리한 저택의 겁나 부자인 잘생긴 남자가 날 위해 뭐든 다해주겠다는 이런 선언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부적절한 판타지다.  세상에 꽁짜가 어딨니. 


니커선은 익숙한 동화의 감성으로 섬세하게 사물을 그려낼 뿐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포획되어 팔려온 노예들을 개성을 갖춘 사람으로 조심조심 그려낸다. 

유럽에서 온 귀족풍의 농장주와 여주인공의 신데렐라 이야기만이라면 훨씬 밋밋하고 심심한 동화였을 것이다. 


제인은 어떤 이야기가 잘 팔릴 것인지의 안배의 느낌이 아니라 

푸른수염의 이미지를 새롭게 해석하여 원작의 모순과 부당한 불편, 의혹들을 잘 섞어 풀어 놓았다. 

잔인한 원작보다 세련되고 우아한 동화다. 


소피아 캐릭터도 그렇다. 

붉은 머리에 복숭하같은 피부를 지난 소피아는 호기심이 많고 가난했으나 인텔리 변호사 아버지를 두어 

형제들과 북적대며 자란덕에 노예의 존재가 불편하고, 그들과 친구가 되고싶은 

인간적인 마음씨의 교양과 미덕을 갖추었다. 

신데렐라 이야기의 여성들이 백마탄 황자에게 잘보이기 위해 예쁜 옷을 입는것 말고는 할줄 아는것이 없는것에 비해 

소피아 캐릭터는 혁명적이지 않지만 호기심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봉건영주 푸른수염의 근대적 아내 소피아인 셈이다. 

그녀는 큰소리로 주장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눈을 빛내며 꿈틀거린다. 살아있다고. 

그의 애장품 조각이 아니라고. 


푸른수염의 가장 적절한 해석이다. 

어떤 괴물같은 연쇄살인마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부장제의 가정. 화목하고 돈도많아 안락해보이는 가정안의 일방적인 권력관게가 

비록 손찌검도 없고 물리적으로 그녀를 때리지 않더라도 어떻게 그녀에게 명령하고 가두는지 

왜 부자집 안주인인 그녀의 처지가 노예와 다름없는지 

그래. 아무리 돈이많고 잘생기고 교양있는 남자라도 권력관계가 일방적으로 흐르면 거기가 감옥이다. 

드레스를 입고 있다해서 감옥이 집이 되지는 않는다. 

모든것을 다 알아서 해주는 왕과 사는것이얼마나 답답하고 끔찍한 일인지 

푸른수염의 아내들이 왜 죽음에 이르도록 고통스러웠는지. 설득력이 있다. 

왕비면 뭐하냐고. 왕을 위해 1년 365일 대기중인 휴가없는 노예인걸. 


문장은 섬세하다. 이런 문장 오래간만이야. 

내 취향은 헤밍웨이나 심농처럼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문장을 선호하지만

링씨가 이중문을 열어젖히고 내 이름을 호명할 때쯤, 내 입은 목화솜처럼 말라 있었으며 손은 너무도 끈적끈적한 나머지 손지갑에 들러붙을 지경이었다. 

미시시피의 밀림을 마차를 타고 가로질러 도착한 피로와 후견인을 만나는 긴장 

목화솜처럼 마른 입, 이라니. 예민하고 섬세한 이런 표현들이 많다. 

로맨스의 감성으로 휘리릭 무겁지 않게 책장도 잘 넘어간다. 

긴장도 과하지 않게 흥미롭고  


그리하여 근대의 딸 소피아가 봉건영주 크레삭을 어떻게 요리하는지 

심지어 해피앤딩이라 반짝반짝 촉촉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