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dohyosae > 약탈 혹은 발굴?

80년대 지금은 철거된 중앙청에 자리잡았던 중앙 박물관에서 서역 문물전을 개최한 적이 있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들어갔지만 벽화를 뜯어낸 유물들만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하체는 뱀이고 상체는 여인인 벽화가 눈을 끌었는데 그 그림의 주인공은 중국 신화에 나오는 인류의 어머니라는 <女왜>였다.

이때 전시된 소장품은 <오타니大谷콜렉션>이라 불리는 서역의 약탈품이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오타니콜렉션의 1/3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서역은 결코 우리에게 혜초나 고선지의 여정처럼 멀리 있는 곳이 아니었다.

대영박물관의 문화재를 원주인에게 돌려준다면 남는 것은 건물뿐이란 웃기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서구 유럽이 제국주의를 확장하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유물을 약탈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쉴리만의 트로이 유적 발굴인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도굴이며, 약탈행위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도적행위를 트로이 유적을 발굴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면죄부를 주고 있다.

솔직히 서구 열강이 중앙 아시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러시아의 남진 정책 때문이었다. 특히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식민지였던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이란을 연결하는 남진 저지선을 구축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왜 중앙 아시아 탐험의 원조인 스웨덴 사람 스벤 헤딘이 영국에서 기사작위를 받고 옥스브리지-옥스포드와 캠임브리지를 합쳐서 영국인들은 이렇게 부른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지 유념해야할 것이다. 오엘 스타인 역시 헝가리출신 유대인이었지만 영국의 식민지 인도의 라호르에서 행정교육을 담당한 사람이었다.

이들 덕택에 중앙 아시아 지역이 샅샅이 탐험되고 더 이상 지도상에 Terra incognita-미지의 땅-로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 댓가는 너무나 참혹했다. 중앙 아시아에는 더 이상 그 지역의 역사적 사실을 증명할 유물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직 남아있는 것은 폐허와 바람과 모래언덕 뿐이다. 자신의 역사적 실체를 갖지 못한 민족은 그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것이다. 그 지역은 지금의 신장성新疆省지역이다. 그곳은 먼 옛적 서하가 건국되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에 흡수되어 자신들의 역사를 망각하고 존재마저 위태로운 지경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들이 그곳에 존재했었다는 또는 자신들의 위대한 조상이 이곳에 있었다는 존재감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유물의 발굴이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철저하게 약탈당한 민족은 그 존재마져 위태로운 것이다. 서역의 모래바람은 이제 한 민족의 정체성마저 황량한 타림분지의 고비사막 속으로 뭍어버리려하고 있다. 그 시발점에 약탈의 역사가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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