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여왕 시기(17세기 초)에 여왕의 총애를 받던 신하 가운데 월터 롤리 경이라는 교양 있는 귀족이 있었다.(여왕의 정부였다는 설도 있음) 그런데 말년에 어떻게 미움을 받았는지, 런던 교외의 외딴 성에서 옥살이를 하게 된다.

수감생활이라고는 하지만, 귀족에다 여왕의 총신이었으니 좋게 말하자면 정무에서 물러나 느긋하게 쉴 기회가 된 셈. 롤리는 자신의 필생 과업이라 생각해온 <세계사>의 집필에 들어간다. 아는 것도 많고 머리고 좋고 문장력까지 있었으니 집필 작업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기거하는 탑 아래에서 농민들끼리 싸움이 붙었다. 별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으나 무료하던 수감자는 그 사건의 전말을 기록해놓는다.(대저 기록이란 역사가의 사명이 아니던가!)

그런데 다음날, 하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사건에 대해 화제가 돌아갔는데, 이 하인이 설명하는 상황이 자기가 보고들은 것과는 또 영 딴판이라... 열받은 롤리 경, 간수고 보초고 다 불러서 그 상황에 대해 설명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사람들 이야기가 또 다 제각각인 것이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냥 지나쳐버렸을 에피소드. 그러나 머리 좋은 롤리 경, 한참을 곰곰 생각하더니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른 자신의 원고, <세계사>를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이렇게 작은 사건에 대해서도 다 말이 다른데, 수백 수천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공정하게' 쓸 수 있냐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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