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헤라자드 1
아사다 지로 지음, 김석희 옮김 / 베틀북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지금까지 읽어본 아사다 지로의 작품들 가운데 '재미'로서는 가장 뛰어난 소설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이 왜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는지 조금 의아스러울 정도. 선택한 소재에 비해서는 우익적 냄새도 그리 심한 편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대만해협에서 미국 잠수함의 어뢰에 맞아 의문의 침몰을 당한 호화여객선 미륵호, 수십 년이 지나 그 미륵호를 인양하겠다는 수수께끼의 중국인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사건에 휘말려든 전직 은행원과 그의 애인인 신문사 기자, 관련된 인물들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그들이 마주한 진실은, 미륵호가 종전 직전에 동남아시아에서 일본군이 모은 막대한 금괴를 운반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연합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수천명의 인질을 태웠으나, 결국 운송작전은 성공하지 못했다.

소설은 두 장면이 교차하며 진행된다. 1945년 미륵호를 운송하여 임무를 완수하려는 일본군 장교들, 그리고 1980년대(?)에 생존자를 찾아다니며 사건의 전말을 밝혀보려는 은행원과 기자. 적절한 지점에서 장면이 넘어가면서 소설의 함축적인 여운이 살아 있다.

주요 줄거리 외에도 태평양전쟁 시기 육군과 해군의 갈등, 호화여객선 선원들의 뱃사람들로서의 자존심, 일본군 점령하 동남아시아 국민들의 미묘한 정서, 그리고 현대 일본 샐러리맨들의 로맨스, 죄의식에 사로잡힌 전범들의 삶... 여러 가지 주제들이 아기자기하게 녹아들어가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다만 주인공들 사이의 만남이 너무 우연하게 이루어지는 부분이 꽤 되고, 미륵호에 고아들을 실어보낸 작전사령부 주체들의 심리적 갈등이 좀 어색하게 그려진 것이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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