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 20세기 제약 산업과 나치 독일의 은밀한 역사
노르만 올러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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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 지휘관들에게 병사들의 사기는 항상 중요한 문제이다. 병사들의 사기가 높으면 높을 수록 통제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군의 사기는 알 수 없는 힘을 지닌다. 야전에서 대대장의 조그만 배려에도 병사들은 힘이 넘치고 그 지휘관을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휘관들은 병사의 사기를 지속시키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한다. 롬멜이나 구데리안 같은 지휘관은 최전선에 수시로 나타나 자신이 책상물림 지휘관이 아니라 자신들과 같은 인간임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지휘관 역시 병사들과 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게티스버그에서 패배한 리 장군은 병사들에게 후퇴를 명하면서 이 모든 패배의 책임이 자신의 탓이라고 말함으로써 남부 패배의 서막을 알리는 이 참사를 위대한 패배의 신화로 바꿔버렸다. 이때 병사들은 늙은 장군의 자책감에 그 패배가 지휘관의 지도력이 아니라 자신들이 좀더 용기를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면에서 나치의 지휘관들은 현명했다.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자신의 인격이나 병사들의 자발적 복종이 아니라 '약물'에 넘겨버린 것이다. 병사들은 약물에 의존해 전투를 하면서 자신들은 무적의 병사로 착각했고, 조국 혹은 당의 대의를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지친 몸을 쉬기 보다는 약물에 의존해 전투를 지속하려 하였다. 이런 종류의 병사들은 현대전에서는 거의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약물은 연합국 병사들에게는 식민지의 미개한 병사들이 사용하는 방법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치의 독일군은 전 병력이 약에 취해 숫자의 열세를 극복했던 것이다. 

하지만 약물은 이중적인 모습이 있다. 전투력의 극대에 효과가 있는 반면 전투력 손실에도 큰 영향력을 미친다. 월남에서 미군의 약물중독이 전투력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독일군은 이를 지휘관의 통제에 소속시킴으로써 전투력을 극대화했던 것이다. 결국 나치독일의 군은 약물에 의해 전쟁 기계가 되어버렸고, 점령지에서의 잔혹행위에 대해서도 무감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무적의 독일군은 없었던 셈이다. 그들은 약물에 취한 무감각한 존재였던 것이다. 독일군이 이렇게 된 것은 히틀러라는 약물중독자가 정상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불구자는 자신의 주변을 불구자로 만들어 안심하기 때문이다. 약물은 주입할 수록 단위가 높아진다. 결국 중독자가 되었을 때 약물에 의존하지 않으면 전투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독일의 패배는 병사들이 중독자가 되었을 때 예견된 것이었다. 

한비자에 부상당한 병사의 상처에 고름을 입으로 빨아준 장군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말을 들을 병사의 어머니는 울었다 한다. 사람이 물으니, 장군이 그렇게 해주면 죽기 살기로 싸워 결국 죽을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전투력은 약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훈련과 전우애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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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애덤 호크실드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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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은 책을 늦게 올리는 것은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인민전선측에 가담했던 패배자들이기 때문이다. 승리자의 기록을 읽고 검토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읽기도 쉽고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지만 정작 중요한 점에서는 모호하다. 이 역시 패배자의 기록도 마찬가지이다.  패배의 기록에는 언제나 회한이 넘치기 때문이다. 

스페인 내전은 인민전선과 공화파의 싸움으로 알고 있다. 공화파는 독일과 이탈리아아의 지원을 받은 프랑코와 팔랑헤당이 주축을 이루었고, 인민전선은 소련의 지원과 프랑스의 동정을 받으며 잡다한 이념주의자들의 연합체였다.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가 인민전선이란 커다란 대의 아래 뭉쳤지만 이들은 공산주의자들이 득세하여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할 때까지는 모래알같은 집단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래알이었어도 민주적 자유란 열기로 충분히 유리로 바꿀 수 있는 힘과 지성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실패하였다. 즉 개인은 강했지만 집단은 허약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산주의자들은 바르셀로나 쿠데타를 통해 인민전선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다양성을 존중하던 좌파는 획일적 체제로 바뀐다. 

다양한 토론과 의견 개진을 통해 자유로운 분위기를 창출하던 인민전선은 공산주의자들이 득세하면서 숙청과 서로에 대한 고발이 난무하며 자신들 안에서 상처를 입히고 그 상처에 소금을 뿌려댔다. 좌파에서 가장 피해를 본 집단은 무정부주의자였다. 드루티로 대표되는 무정부주의자들은 스페인 내전에서 잃을 것이 가장 많았던 집단이었다. 이들은 정치적이라기 보다는 실제적인 집단이었다. 이들은 교회와 지주, 국가에 수탈을 당했던 사람들의 자율적 집단이었다. 이들은 더 집요했고 자율적이었다. 이들에게 공산주의자들의 획일성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과 가장 유사한 집단이 자유여단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이었다. 베를린 올림픽에 대항하여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노동자 올림픽에 참여하기 위해 왔던 외국인들이 내전이 시작되자 대의를 위해 좌파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상성보다는 낭만성이 짙은 집단이었다. 이들은 무정부주의자처럼 우익과 좌익 모두에게서 위험한 집단으로 의심을 받았다.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자유여단의 자유는 사라지고 여단만이 남게 되었다. 그들은 언제나 의심스런 집단이었다. 공산주의자에게는 사상성이 약한 집단이었고, 공화파에게는 좌편향된 존재였다. 그러기에 이들은 언제나 가장 빈약한 무기로 가장 위험한 전선에 투입되었다. 그들의 자유는 포탄과 총알속에서 사라져갔던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고 이들은 외치지만, 공화파의 의용병으로 참전했던 한 독일 병사는 본국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어머니, 오렌지 향기가 바람에 날리는 길을 따라 북으로 전진하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오렌지 향기는 지금도 흩날리고 있지만 우리는 사라져 버렸다. 스페인 내전은 그래서 슬프고 안타까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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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 테크놀로지와 기술제국 소련의 몰락
로렌 R. 그레이엄 지음, 최형섭 옮김 / 역사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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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현 중공의 지도자들이 왜 이렇게 청화대 출신의 엔지니어-테크노라트들이 많이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제정을 뒤엎은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급속하게 발전시키려 시도하였다. 이 결과 그들은 엔지니어 그룹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이 기술자들이야말로 낙후된 러시아-새로운 쏘비에트 인민 공화국-를 서구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팔친스키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엔지니어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조국을 근대화 시키는데 있어서 기술 입국은 분명히 맞지만 그 방법에는 공산당 지도부와 생각이 달랐다. 이들 엔지니어들은 '기술 시스템'의 신봉자였다. 이들은 경제발전과 개발은 학술적 아마추어 방식이 아닌 다각도에서 문제를 분석할 줄 아는 냉정한 현실적 엔지니어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보았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레닌이나 부하린 같은 혁명 초기의 지도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먹혔지만 그들의 후계자인 스탈린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이들이 주장하는 기술적 우위는 스탈린의 사상적 우위에 당연히 밀리게 되었던 것이다. 

팔친스키로 대표되는 이들 기술 관료들은 소비에트 당국 및 공산당과 산업을 계획하고 러시아를 부강하게 만드는데 참여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자신들이 속한 부서를 공산당이 장악하는 것에는 강력하게 저항했다. 그리고 팔친스키는 소련의 엔지니어들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가나 자본가의 역할을 맡게 되기를 희망했다. 이렇게 되면 모든 계획은 공산당이 원하는 기능적 계획이 아닌 지역계획으로 부터 수립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공산당이 선호하는 거대한 산업체계와는 결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팔친스키는 지역계획의 신봉자가 된 것은 개별 기업의 차이는 설비나 기술력이 아니라 노동자에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미국의 포드 시스템이나 테일러 주의가 주는 효율성과 생산량의 증가에 팔친스키도 반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에 따른 노동자의 복지와 교육이라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를 위해 팔친스키는 새로운 체제에서 엔지니어에게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고 중앙집중식 산업화를 추진하던 쏘비에트는 좋은 기회의 장소로 생각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스탈린 주의와 자신의 생각이 충돌하면서 무너지게 된다. 스탈린은 전문가 집단에 자율성을 보장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즉 팔친스키와 스탈린은 정치적 권위를 누가 갖는가에 대한 통제권의 문제였다. 팔친스키는 주어진 범위내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주장한 반면 스탈린은 초인적인 노력을 요구하였다. 이런 스탈린의 생각은 드네프르 강의 자포로제 발전소, 마그니토고르스크 제철소와 백해 운하의 건설이란 비국을 탄생하게 한다. 팔친스키는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마술사가 아니다'란 중용을 외쳤지만 스탈린은 볼셰비키가 함락시키지 못할 요새는 없다'는 주장을 함으로서 '인간 요인론'과 '기술결정론'이 충돌하였다. 이 결과는 팔치스키의 체포와 처형이었다. 

이후의 과정은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이다. 침묵하는 엔지니어와 무리한 계획경제는 쏘비에트를 완벽하게 파멸시켰고, 지도체제에 편입된 엔지니어들은 오로지 전문적인 기술만을 배운 테크노라트가 됨으로써 전체적인 안목을 보는 교양을 상실하였다. 이 결과 쏘비에트는 거대한 영토와 막대한 자원을 가지고 계획경제란 낭비의 잔치를 벌임으로써 공산주의가 끝장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에 외골수로 빠진 정치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의 천국을 계획하면서 빵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믿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빵을 어떻게 하는가는 기술적 능력이 아니라 인간적 교양과 가치라는 것이다. 

또 하나 문화혁명을 거친 현 중공의 지도자들은 과연 자신의 나라와 세계에 대한 비전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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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신학 - 역사적 변천과 주요 교리
존 메이엔도르프 지음, 박노양 옮김 / 정교회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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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학과 비잔틴 신학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가톨릭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하면서 성호를 이마, 가슴, 왼쪽, 오른쪽으로 긋는다. 반면 비잔틴 신학이 말하는 동방 정교회는 이마, 가슴, 오른쪽, 왼쪽으로 성호를 긋는다. 이 차이는 아마도 두 종교의 신학적 관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가톨릭은 신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즉 성자는 성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바라보는 신학인 것이다. 그러기에 성호를 그을 때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긋는 것이다. 

반면 동방정교회의 신학은 하느님의 품에 안긴 우리의 모습으로 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기에 가톨릭은 십자가상의 예수를 제단에 걸어 놓는다. 반면 동방 정교회는 이코노스타시스가 제단 앞을 장식한다. 

동방 정교회의 이콘은 이들의 신학을 극명하게 대변한다. 성모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의 시선, 판토크라토르-전능자 구세주-의 시선. 이는 우리에게 신의 형상을 닮아 오메가 포인트로 달려가는 우리의 여정을 보여준다. 

가톨릭의 고난의 예수 앞에 선 초라한 우리 역시 이 고난의 역정을 극복해 나감으로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과 같다. 

기도의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목적은 하나, 얼마나 자신을 신과 가까이 혹은 닮아가게 하는가에 달려있다. 동방과 서방의 종교는 이 목적을 위해 자신을 하느님 앞에 극도로 낮춘 죄인의 모습으로 시작하는가 아니면 자신을 하느님의 품에 안긴 자녀로 시작하는가의 차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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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줄리아 보이드 지음, 이종인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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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가지고 있던 오래된 강의록을 들춰 보았다. '선善이란 무엇인가?'로 들었던 것이었다. 선은 분명히 진리이고 하나이며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런 선도 집단에 따라서는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는 의문이 제기된다. 예를들면 공산주의자에게 있어서 선은 무엇일까?란 질문에 대한 답은 '임무의 완수'라는 것이다. 그것은 무척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당성과 임무/과업의 완성이라는 점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가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선은 전혀 다르게 이해된다는 점이다. 

히틀러 시대의 독일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이런 오류에 빠졌던 것이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평화와 히틀러의 독일이 추구하는 평화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착각에 빠져 독일의 전체주의적이며 집산적인 모습을 건전한 독일로 가는 발걸음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대중들이 일사불란하게 오른손을 높이 쳐들며 일사분란하게 '하일 히틀러'를 외쳤을 때 서구의 여행자들은 괴기함이나 오싹함보다는 독일이라는 민족성의 한 단면, 성실함과 복종심을 보았던 것이다. 일부 소수만이 이 집산주의적인 성실함과 복종심이 그릇된 정치가로 인해 잘못되었을 때 인류에 커다란 불행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이들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민주주의가 어떻게 히틀러에 의해 왜곡되었는지 정확하게 바라보려 하지 않았다. 그 많은 서구의 독일 전문가들 조차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을 완독하거나 정확하게 그 속뜻을 파악한 사람들은 없었다. 그져 전쟁에 지치고, 베르사이유 조약에 분개한 독일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헤프닝으로 바라 보았다. 히틀러식 민주주의가 강박적 집착, 모든 비판의 억압, 당에 가장 오래 근무한 사람이 가장 좋은 보직을 맡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결코 믿을 수 없었다. 

여행자들은 독일인의 상명하복에 의한 규율을 친절로 오해했고, 베를린 올림픽의 질서정연함과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의 규율성을 착각했던 것이다. 문인들마저 히틀러의 독일이 현대세계의 무질서와 퇴폐성을 정화시키는 선봉장으로 착각하곤 했다. 그들은 독일 각지의 광장에서 책이 불타오를때도 그것은 하나의 사실이 아니라 상징적인 행위로 이해했을 뿐이었다. 하이데커가 나치당에 입당했을 때도 독일대학의 강의실과 성당의 제대 앞에 나치 깃발이 걸려도 사람들은 지식과 종교가 그 사악함에 굴복했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서구의 여행자들에게 독일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극복하고 다시 강대국의 대열에 합류한 서구의 강력한 일원의 하나로 생각했지 그들이 자신들에게 총뿌리를 겨눌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독일은 친절하고 물가가 싸고 중세의 풍경을 간직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을 때도 자신들의 국가에서도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있음을 들어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이들 서구의 방랑자들은 독일이 추구하는 선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선과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선은 히틀러와 나치의 선이었고, 스탈린이 생각하는 선과도 달랐다. 이런 순진한 착각은 결국 자신들에게 커다란 짐으로 다가오게 되었던 것이다. 

삼인성호三人城虎라는 말이 있다. 성안에서 세 사람이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도 이를 사실확인도 하지 않고 믿는다는 뜻이다. 나치는 바로 이 프로파간다에 방점을 두었던 것이다. 그들은 서구를 향해 끊임없이 볼세비키란 호랑이를 막기 위한 독일, 이들을 격파하는 선두의 독일을 선전하면서 자신들의 군비확장을 정당화했고 자신들만의 정치색채를 독일적인 것으로 선전함으로써 서구는 독일의 선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선과 다르지만 유사한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히틀러는 이런 선전선동을 통해 끊임없이 서구를 속여왔다. 그것은 비단 여행자들만이 아니었다. 정치가들도 이 선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뮌헨에서 독일은 서구를 상대로 모든 것을 다 얻었다. 서구의 정치가들은 이번만 양보한다면 항구적인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독일은 이번것을 얻으면 다음 것을 요구할 작정이었다. 이렇게 서로가 공유한 단어 중 하나를 잘못 이해하여 결국 서구와 독일은 건너지 않아도 되었을 불의 강을 건너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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