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감각 투시
W.E.버틀러 / 정신세계사 / 199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독자들로서는 놀라게 될 만한 부분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저자가 초감각투시를 믿지 않거나 의아해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떠한 배려(?)도 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어떻게 하면 감각을 개발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자전거를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수영을 배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안내하는 것처럼. 그에게 초감각의 계발이란 너무나 당연한 실체였던 모양이다.

책의 앞뒤에는 저자에 대한 소개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역자 후기를 보면 자신에 대한 말을 거의 하지 않아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에 병사로 참전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 된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비주의-오컬트 서적 명저 가운데에는 19세기말 20세기초 제국주의의 황금시기에 영국인이 쓴 것들이 꽤 된다. 세계대전 이전의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시민이라면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하고 지혜를 탐구하며 신비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일까?

이 책의 구성은 크게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투시력(clearvoyance) 텔레파시(telepathy)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 그리고 오라(aura).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바로 사이코메트리였다. 어떤 물건이 지닌 사연, 역사를 알아내는 능력이라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역사학에 대혁명이다. 박물관에 놓인 칠지도를 잡고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발휘하면 칠지도가 백제 왕이 일본 왕에게 준 건지 일본 왕이 백제 왕에게 준 건지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아래 리뷰 쓰신 분은 '실질적인 방법론이 없다'고 하셨는데, 내가 볼 때는 오히려 이 분야 책들 가운데서는 구체적 방법을 비교적 자세히 거론한 편이다. 예를 들어 흑거울을 만드는 법(48페이지)에서 '가급적이면 직경 9cm정도가 적당하다, 자기 것은 13cm짜리다, 어떤 사람은 검은 옺칠을 한 찻쟁반을 대용품으로 사용했는데 결과가 좋았다." 라든가,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 충전된 실험판을 사용하는 방법(177~178페이지)에서 '7*2cm짜리 나무판 다섯 개를 준비해서 번호를 표시한 뒤 각자 다른 감정을 투사하고 천에 싸서 보관했다가 나중에 판독하는 훈련을 하라. 한 개의 판을 충전하고 나서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시간은 15분 정도 허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영향력이 다음 물건에 혼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는 지침 등은 충분히 구체적이고 상세하지 않은가? '내용 자체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주관적 감상은 인정할 수 있지만,  덮어놓고 '실질적인 방법론이 없다'는 비난은 책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은 심령현상에 대한 마구잡이 신비화를 경계한다. 예를 들면 오라를 봤다고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한 곳을 집중해서 보다 보면 망막에 착시 현상이 생겨 대상물의 컬러와 보색인 색상이 스치는 경우가 있다(190페이지)는 사실을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체험하고 도달한 초감각투시의 상당 부분은 아직 대다수의 대중에게 황당하게 보인다. 자신이 그 능력을 계발한 과정, 그 훈련 과정에서 실수한 경험 등을 좀 덧붙였으면 좋은 책이 되었으리라 본다.

오래 된 책이라 도표나 일러스트 등이 거의 없어 읽는 재미가 많이 떨어지지만, 이곳저곳에서 엿보이는 오컬트에 대한 깊은 이해(신지학회, 카발라, 동양 종교의 사상체계 등)나 군데군데 튀어나오는 영적 깊이는 예사롭지 않다.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여러번 읽으면 그리 질이 떨어지는 책은 아님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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