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안에 잠든 요정을 깨워라
제레미 W.헤이워드 지음, 백영미 옮김 / 예문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이런 책들을 많이 보아 온 덕인지, 이제 문장을 보면 저자의 마음공부 수준이 어떤 정도인지를 대충 파악할 수 있다. 제레미 헤이워드는 분명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사람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달라이라마와의 친밀한 관계, 쵸걈 트룽빠와의 남다른 인연, 거기다 케임브릿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정통 과학자... 잘만 풀어냈으면 끝내주는 이야기가 나올 뻔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헤이워드는 그 경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초프라나 라즈니쉬, 김용옥보다 크게 떨어진다.
이 책은 아버지로서 딸 바네사에게 물질세계의 구성원리에 대해 영적 차원에서 이해하도록 돕는 25장의 편지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편지 하나 하나를 놓고 보면 꽤 근사한 주제들이 많지만, 순전히 말로만 풀어놓은 내용이고 뒷마무리가 흐지부지되어 독자들의 호기심을 사그라들게 해버린다.
예를 들어 이야기 일곱, '마음과 두뇌의 경계는 어디일까?'는 제목은 근사하지 않은가? 이 제목만으로도 신과학-뉴에이지 책 한 권을 낼 수 있겠다. 앞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몸-마음과 세계 사이의 이 창조적인 춤에 대해 얘기하려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번째는 사람이 순간순간 창조하려는 세계가, 그가 성장하면서 흡수해온 관념에 얼마나 깊이 규정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싶어서야."(98쪽)
이야~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어가면서는 뇌의 구조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더니(전두엽, 변연계, 베르니케 영역, 시상 등) 시각적 이미지가 뇌에 전달되는 과정은 일종의 전기 회로와 같다고 설명하면서, "하지만 전기적 형태가 어떻게 의식적인 상이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라고 얼버무리고 "우리 사회의 과학 비과학계의 권위자들은 마음이 뇌라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하고 있어. 그러한 노력이 성공한다면, 마음은 결국 물질로 축소되고 마는 거야"라고 끝내버린다. 이게 뭐야~
앞부분의 전제를 확인하려면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사람의 뇌가 순수하게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가운데 단지 2%만을 뇌에 정보의 형태로 전달하고, 그가 선호하지 않는 정보는 아예 보았거나 들었다고 느끼지도 못하게 필터링 처리한다"(이건 다른 책에서 본 것임. 이 말이 눈에 확 들어왔음) 정도의 설명을 덧붙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또 정통 과학자가 쓰는 글인만큼 사진이나 그림이 보강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로만 설명하니 신과학의 성과들을 감잡기가 쉽지 않다. 편지글이라는 형식 때문에 그런 점들을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초걈 트룽빠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핼리팩스에 들이닥친 빙산들 이야기 (84~85쪽)도 사진 한 컷이면 독자들에게 얼마나 강한 인상을 남겼을 것인가!
그러나 저자가 과학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와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덕에 칼 융의 집단무의식 담론, 일본 신도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신앙, 티벳불교의 가치관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흥미롭게 읽었다. 본질적 가치에 비해서는 포장과 가공이 부실한 탓에 너무 덜 알려져 안타까운 책이다.(표지도 꼭 무슨 페미니즘 에세이처럼 해 놔서...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