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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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에 대한 설교였습니다."
"지옥이 어떤 곳인지 너희 머릿속에 잘 주입되었겠구나."
"그럼요. 모두들 그 설교를 듣곤 새파랗게 질렸으니까요."
"너희들에게는 그런 설교가 필요하다고. 너희를 공부하게 하려면 그런 설교가 더 많아야지."- p. 195
 
   

  으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율리시스>에서 나온 스티븐 데덜러스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이었다니! 그럼 난... 2권 완결인 책을 지금 거꾸로 된 순서로 읽었다는 것인가 의사양반!!! (그것도 한 중간쯤 읽고서야 깨달았다.)

 아무튼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가치를 일구어내지는 못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까 앞에서 말했던 대로 1000장이 넘는 율리시스 이야기를 마스터했다보니 자꾸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쪽의 문체와 비교가 되었다. 그리고 성찬에 대한 회의라던가 종교에 대한 비판은 톨스토이가 훨씬 더 깔끔하게 감정을 정리해서 잘 썼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혼합되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장에 따라 너무 문체가 딱딱하게 나눠져있는 것 같아서 좀 거북스러웠다. 고등학교 시절을 서술할 땐 현실을 관조하는 모습만 드러내다가, 대학교 시절을 서술할 땐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줄줄이 늘어내는 모습만 드러내다니. 그러다가 갑자기 훌쩍 아일랜드를 떠나지 않나. 아무리 의식의 흐름 때문이라곤 하지만, 상당히 변덕스러웠다. 어쩌면 제임스 조이스가 자신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조금 들지만. 하지만 제임스 조이스 특유의 부정적이고 삐딱한 모습은 뭐니뭐니해도 <더블린 사람들>에서 매우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책에서 스티븐의 말투에서는 어느 정도 낭만주의와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설렘과 기대가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제임스 조이스는 자신의 수기같은 이 글을 쓰면서 눈치챘을까? 아일랜드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해결못할 분쟁을 벌이고 있으리라고, 미션 스쿨이 아직도 살아남아 학생들을 농락하고 있으리라고, 혹은 전세계적으로 명확한 기준도 의지할 곳도 없는 혼잡한 시대가 나타나리라고... 이제 <피네간의 평야>만 보면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을 전부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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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초록 삼각형이다
오순택 / 을지출판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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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속초

속초는
눈 속에 숨어 있더라.

눈 속에 숨어서
배시시 눈을 뜨더라.

설악은
눈의산이라서
눈을 덮고 자더라.

설악은
햇빛 받아 눈부시더라
멀리서 바라보니
어머니 같더라.
우리 어머니같이 펑퍼짐하더라.

속초는
영랑호를 끼고 자더라.
설악의 발가락이
영랑호에 젖더라. 

- p. 99

 
   

 어릴 때 어머니가 사준 동시집이다. 이 책을 어떻게 집으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지 감동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문득 이 동시집이 기억나서 중고로 하나 구입해두었다가 설악산으로 가는 길에 집어들었다. 15년 후에 두번째로 접하게 되는 동시집이라서 기대가 컸다. 물론 이 시집은 나의 기대에 놀랄 정도로 잘 부응해주었다. 원래부터 내용이 좋아서 성인일 때 읽어도 그렇게 똑같이 감성이 느껴지는가 보다. 부끄럽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어린 시절 <유관순누나 생각>에서 무턱대고 유관순언니가 불쌍해서 펑펑 울어댔었더랜다. 지금은 그 시를 읽으면서 울지는 않았지만,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시인은 삼일절날 유관순이 그려진 우표를 들여다보고 이 시를 쓴 것일까. 그 당시 '태극마크가 작아보이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었을까. 동시집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서 여기서 생각을 중단하려 했으나, 어떤 방식으로 보던간에 인상적인 시였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겨울 속초>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고 계시는 분 같아서 반갑기도 했다. 이 시를 읽던 시절엔 서울에서 살고 있었는데, 눈을 감고 '속초가 대체 어떤 나라일까' 상상했더랜다. 그 이후 아버지의 사업상 사정으로 속초에 내려가 7년 동안은 직접 질리도록 설악산과 영랑호를 마주치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어릴 적의 소원 하나가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이 시를 읽게 되었을 땐 '그래, 어렸을 땐 이런 시도 읽었었지.'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마음이 매우 훈훈해졌었다. 눈이 바스락바스락 내리는 날 사방이 조용한 가운데 이 시를 가만가만 읊으며 그대로 시의 언어 속에서 감싸여있고 싶다. 현재는 시낭독모임에 한번이라도 나가보는 것이 소원인데, 시간이 없어서 계속 미루고 있지만 만일 기회가 있다면 이 시를 처음으로 시작하고 싶다.

 이 시집의 제일 큰 장점은 시들이 연쇄적으로 모여서 하나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이 자아내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고 생동감이 있다. 오순택 시인은 그 흐름을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간결한 언어에 모든 뜻을 품고 있는, 자연을 닮은 자연에 대해 쓴 시들. 내 취향에 너무나도 잘 부합했다. 어쩌면 나는 이 사람의 시를 읽으며 내 시적 취향을 키워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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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생태 2011.10
자연과생태 편집부 엮음 / 자연과생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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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건 그런 거다. 떠다니는 것들은 눈길을 끌지만 지나치면 이내 휘발되고, 가라앉은 것들은 오랜 시간, 속에 들어앉아 때로는 짓누르고 때로는 찌르다가 마침내 그중 어떤 것이 어떤 때에 사람 눈에 자꾸 밟히다가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다. -p. 62~63  
   

 이번 표지에는 전어와 나비사진의 언밸런스한 조화가 특히 눈에 띄었다 ㅋ 가을이라고 해서 그런지 전어를 특집으로 뽑아서 글을 썼는데, 처음부터 쉽고 정겨운 주제로 나가서 그런지 다른 글들도 눈에 쏙쏙 들어와 하루만에 다 읽었다. 간단하지만 두물머리에 있는 생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적어주셔서 기뻤다. 혹시 이 기사를 쓰신 사진기자 분도 두물머리 강변가요제에 가셨는지 궁금하다. 팔당댐을 지킬 겸 4대강을 반대하는 취지에서 만든 음악회였는데, 갔다오신 분의 말씀에 의하면 대성황이었다고 한다. 나도 같이 가고 싶었으나, 일요일날 아르바이트가 있었고 한 달에 두 번을 쉴 수가 없어서 안타깝게도 보지 못했다.

 10월호는 새삼 색상도 선명하고 윤곽도 뚜렷한 사진들이 눈에 확 띄었다. 사당리 푸조나무가 머리카락마냥 가지들을 사방으로 늘어뜨려 하늘을 덮는 광경은 매우 신비스러워보였고, <마음 따라 발길 따라> 코너에서 흑백사진이 나왔을 땐 왠지 정겨워보였다. 무엇보다도 생물교과서에서 잠깐 봤던 팔색조가 으리으리한 천연색깔로 등장해서 깜짝 놀랐다. 그야말로 눈이 부신 새였는데 그 새가 부리에 징그러운 지렁이를 한웅큼 물고 있었을 때엔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네' 이런 생각도 들었다. 팔색조는 말 그대로 자기 새끼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있을 뿐인데, 그것을 가지고 무의식적으로라도 어울리지 않는다 징그러워 보인다라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편견에 벌써 상당히 물들어버린 것일까. 그저 씁쓸할 뿐이었다.

  <숲에서 자라는 아이들> 코너는 항상 관심있게 읽고 있다. 항상 생물들을 사용하여 다양하게 학습하는 생태학교를 다루고 있는데, 이번엔 오동나무로 만든 악기들을 모아 드림서클 방식으로 음악을 직접 연주해보는 수업을 했다고 한다. 이런 글들을 보고 있으면, 다소 시대에 맞지 않더라도 간디학교라던가 생태학교 중 어느 하나에서 잠깐이라도 미래의 내 아이를 맡기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물론 가정이 생기고 아이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즐거운 고민이겠지만;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그 기쁨을 맛보게 해줘야 감수성이 풍부해지지 않을까... 살아가면서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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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세트 (양장) - 전3권 - 한정 양장본 열하일기 5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 돌베개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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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온 세상이 비를 바랄 때에 이렇게 한 뜨락만 비로 축인다면 이 역시 일은 다 된 일인 성싶다. -p. 455  
   

  윗 글은 좀 설명이 필요한데, 박지원이 열하를 들러서 축제를 구경하던 중거북을 탄 선인이 비를 부르는 장면을 구경하면서 쓴 문장 중 하나이다. 거북이 물을 뿜는데, 그 물의 양이 상당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에만 떨어지고 구경하는 사람들에겐 떨어지지 않는 장면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는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혜택을 바라고 있는데, 정작 모든 혜택은 천자에게만 돌아가고 있는 세태를 비판한 것이다. 뭐랄까... 근본적인 이념의 배경이 유교라는 게 치명적인 단점이긴 하지만 조금 더 진보적이면 사회주의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편적 복지를 추구한달까.

 중권은 박지원이 사신들과 함께 열하에 들러 사람들을 만나고 중국의 여러가지 요술과 풍속들을 좀 더 세세히 구경하다가 돌아가는 내용이다. 이 중에 중국의 한 서생과 한 이야기를 써놓은 글이 제일 길다. 당시 청나라와 우리나라의 말만 다르고 한자는 같았기 때문에 중국인과 마치 현재의 채팅처럼 서로 종이를 놓고 글을 쓰면서 대화를 했다나. 상권에서 박지원이 열심히 땅바닥에다 무엇을 그렸다길래 대체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는데 의사소통하려는 노력의 일종이었음을 이제서야 알았다. 글을 읽는데 마치 두서없이 쓰여진 중국의 역사를 좔좔 읽는 느낌이라, 주석이 없었더라면 아미 중간도 못 가고 책을 덮어버렸을 것이다. 밤을 새면서 몇 날 며칠을 하루종일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면서 대화를 했다고 하니, 하도 재밌게 떠드느라 밥상이 온 줄도 몰랐다고 한다. 지식으로 보나 집중력으로 보나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19세기라면 서양에서도 낭만주의가 시작되는 때이며, 박지원이 40대가 되었을 때 영국에서도 워즈워스가 태어났다. 국가를 막론하고 그 시대 문인들이 얼마나 훌륭했을지, 그들의 친교가 얼마나 깊었을지 짐작이 간다.

 에피소드가 있다. 은행을 갈 일이 있어서 이 책의 끝부분을 읽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 차례가 되어 데스크로 갔다. 한창 은행직원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태연히 내 책을 집어가더니 밖으로 나가는게 아닌가. 급히 붙잡으려고 뛰어갔으나 어디로 증발했는지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그분ㅠㅠ 그 책을 읽으려고 가져갔다면 모르지만, 내 생각엔 아무래도 이 책이 두껍다보니 중고책방에서 돈과 맞바꾸려고 무작정 들고 나가신게 아닐까... 책을 챙겨가지 않은 내가 잘못했지만, 어떻게 돈도 아닌 책을 소매치기 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책이 한낱 돈으로 보이는 더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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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2011.10 - 온누리달호
녹색연합 편집부 엮음 / 녹색연합(잡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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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평습지의 철새도래지에 도착했다. 제방 위에는 그곳 일대의 풍경과 서식하는 철새들 사진이 담긴 표지판이 있었다. 거기에는 '현재 이곳은 세계적인.. (This is...)' 라고 나와있었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그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no 'is', was!" (과거 이곳은...) 라는 짧은 '진담'을 남기고 돌아섰다.- p. 77  
   

  한두번 하는 생각이 아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와 <자연과 생태>는 겹치는 부분이 정말 많다. 둘 다 환경에 대한 이슈를 다루니까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번 호는 별로 쓸 것이 없기도 하고, 최근 어떤 분이 <자연과 생태> 잡지에 관심을 가지고 계셔서 이 글을 빌려 새삼 두 잡지의 차이를 비교하려 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환경과 예술의 조화를 꿈꾸며 사회의 이슈를 지적하는, 다소 조잡하지만 의외로 내용은 소박한 잡지. <자연과 생태>는 정말 별의별 실험들이 등장하고 사회이슈보다는 생물들의 전문적인 분야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 잡지. (그런데 최근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한 의견을 대놓고 넣는 경향을 보인다.) 전자는 작아운동의 내부에 있는 책씨 활동을 하는 보답으로 받고 있으며, 후자는 녹색당 모임 중에 비열하고 더러운 방법으로(...) 게임에 이겨서 1년 무료 구독권을 받았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알라딘 사이트나 오프라인 매장들에서 정가 4000원으로 구입가능하며, <자연과 생태>도 마찬가지의 경로를 통해 12000원으로 구입가능하다. 혹은 둘 다 정기권을 끊을 수 있다. 일단 현재 환경에 대한 기사들을 편하게 접하고 싶으면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보시길 바란다. 자연에 관련된 시와 그림을 언뜻언뜻 볼 수 있을 뿐더러 재생종이의 찰진 감각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전문적인 자연과학에 관심이 있는데, 어려워서 논문같은 건 접하지 못하겠다'라는 사람이 있다면 <자연과 생태>를 추천한다. 만일 한 달 전에 잎벌레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면, 요번 달엔 한국 잎벌레의 종류에 대해 세심하게 짚어보는 식으로 심화학습을 시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태공부를 깊이 할 수 있다. 게다가 기상천외한 실험들과 자잘한 사진들은 눈을 즐겁게 한다. 음... 사실 본인은 전문적인 접근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연과 생태>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이번에 나온 호는 동네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마음에 들었다. 자취하는 곳에서 10분만 걸어가면 구름산이란 곳이 있는데, 어렸을 때 발을 들여놓은 기억만 있고 그 안에서 보았던 것들은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마을을 들여놓는다 야영장을 설치한다 부산을 떨어서 너무 많이 변한 까닭도 있고. 무튼 본인의 근육으로 다져진 찰진(?) 다리는 3살 때부터 아장거리며 올랐던 구름산 탓. 건강해지고 싶으면 멀리까지 가지 마시고 당장 자신의 마을 뒤에 있는 자그마한 산부터 올라가시길. 잠시 딴 소리를 하자면, 본인은 다음주 토요일 일요일 1박 2일로 설악산을 오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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