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의 희생자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박형섭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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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난 밤에, 혼자가 될 거야. 진창에...- p. 53

 

 매우 짧은 내용이지만, 간만에 생각이 많아지는 책을 빌리게 되었다.

 한 부부가 살고 있는 집에 어느 경찰관이 집으로 들어온다. 그는 부부의 집에서 예전에 세들었던 말로란 사람을 찾으러 경비에게 갔으나 허탕을 쳐서 옆에 있는 이 집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매우 강압적인 성격의 경찰관이 이 집으로 들어와 나약한 성격의 남자 슈베르에게 말로를 찾으라 협박하면서 전개는 급격히 흘러간다. 슈베르는 결국 마지못해 시키는대로 의식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처음엔 다소 프로이트적인 설정이 돋보였다. 사랑받지도 못하고 버려진 자신에 대한 연민, 부모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과거의 온갖 고행을 다시 겪은 슈베르는 해탈의 경지에 다다랐으나 다시 지상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경찰관의 명령에 따라 말로란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게 그의 지상에서의 의무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말로라는 사람을 기억해내야 하는 일 때문에 하늘에 올라가서 할 수도 있었던, 어쩌면 슈베르에게 더욱 필요했을지도 모를 일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결국엔 경찰관은 살을 포동포동 찌워서 날아가지 못하도록 슈베르에게 빵을 억지로 먹인다. 그리고 그가 거부하려는 몸짓을 보이면 폭력을 행사한다. 

 슈베르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 그에겐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 주변의 사람이 잘 되면 그를 다시 땅바닥으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못된 심보가 있게 마련이다. 

 

 왜 '말로'를 찾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뒷배경은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경찰관도 '말로'라는 사람을 찾으라는 명령만 받았지, 왜 찾아야 하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결국 명백한 결과도 모르는 목적으로 인해 수단이 쓸데없이 장황해지고, 잔혹해졌다. 그런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누군가를 죽이거나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의무는 무엇일까? 고작 폭력이란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의 의문을 제기해본다. 세상에는 수많은 의무가 있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면 대학교에 합격해야 할 의무,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에 가야 할 의무 등등. 그것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조차 프로그램에 맞춰서 행동한다. 사람들이 전부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진채 행동한다는 시나리오는 애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사실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고 시위를 할 경우, 법을 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들이 잡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들조차 '의무의 희생자'라고 한다. 그들은 사람들을 단속하기 위해 24시간 근무를 서야하고, 길바닥에서 자야하며, 맛없는 도시락을 꾸역꾸역 먹어야 한다. 거대하게 보자면 전쟁이 그렇다. (부수적으로 자기네들의 잔인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도 있겠지만,) 미국은 환경대체에너지로 충당할 수도 있었던 이라크 석유를 뽑아가기 위해서 엄청난 전쟁을 벌이고 이라크의 민간인들을 수없이 죽였다. 그렇다면, 이 '의무'란 것은 대체 언제부터 모든 사람들을 속박하고 희생자로 만들 만큼 거대해진 것일까? 몇몇 극단적인 진보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보자면, '의무'는 위에서 99%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1%의 부호들이 만든 쇠울타리이다. 하지만 그 부호들마저 피해자라는 설정이 가능한가? 아니면 그것은 공기 중에 나돌며 숨쉴 때마다 우리 뇌를 틀어막는 하나의 비생명체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질문은 연극대본에서 답이 지정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조리극은 그저 물음표를 제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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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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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
나딘 고디머 엮음, 이소영.정혜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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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기 힘들었던 모든 일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새로운 시작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켰다. 언젠가는 승리하지 않겠는가?-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 중 아들의 죽음 p. 294

 

 일단 이 책을 네이버에 검색하면 8점의 양호한 점수가 나온다. 그리고 좀 더 자세한 정보를 보기 위해 클릭하면 책소개가 나온다.

 "이 책은 199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나딘 고디머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글을 모은 것이며, 수익금을 남아프리카 공화국 에이즈 구호 단체에 기부했다. 한국어판의 수익금은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 기부된다."

 정말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본인은 그저 다른 책들처럼 사람들이 훈훈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풍경을 그려주면서, '아이들아,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단다' 운운하며 마지막엔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를 화려하게 그려놓는 책인 줄만 알았다. 사실 수익금도 에이즈 구호 단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백혈병 아이들을 위한 것인 줄 착각했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서문에 길게 쓰는 것도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뻔한 것에 대해서 사죄하기 위해서이다. 뭐 어쨌던 그런 내용인 줄 알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보기 위해 쭉 펼쳐보았다.

 첫번째 소설에서는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두번째, 세번째, 네번.. 째...

 

 

 

뭐지 이건 긍정적인 내용은 커녕 꿈도 희망도 미래도 없어.

 

 사실 이 책을 구입하신 분들은 단편들의 제목을 유심히 들여다봤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소설을 빌려준 분이 어떤 취향인지를 파악했어야 했다. 그 분도 사실 나처럼 하드코어 SF물과 고어물을 엄청 좋아하신다... 그래. 이 사람이 장래가 아름다운 소설을 좋아할리 없지. 굳이 단편들이 교훈을 주는 것이라 하면 이런 게 아닐까? '아이들아, 세상은 이렇게 더럽단다. 동년배의 친구가 병으로 인해 죽어가는 다른 친구를 보고 도망가는 노인들, 핸드폰 너머에서 죽어갈지도 모르는 누군가가 연락을 하지만 개의치 않고 섹스를 하는 커플이 있지. 아들의 원수에게 돈을 주고 아들의 시신을 되찾아갈 수밖에 없는 부모들이 있고, 거리에서 태어난 흑인 아이들은 부유한 백인 가정에 팔아치워진 다음 청소년이 되면 총으로 자살하기도 해. 너희가 살아가야 할 곳은 이런 곳이야. 한마디로,'

 

 정말 충격적일 정도로 솔직한 내용들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나 단지 절망과 어둠만이 이 책 안 단편소설들이 내제되어있는 공통점은 아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에선 사회적 소수자들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혹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이야기하며, 보기 좋게 포장되어있는 세상을 사정없이 벗겨내고 그 그로테스크한 표면을 드러낸다.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은 그 병의 속성상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목욕탕에서 머리를 빗다가 에이즈에 걸렸건, 혹은 외국에서 창부들과 놀다가 에이즈에 걸렸건 에이즈 환자는 '환자'이다. 심지어 타액으로 감염되기 때문에 악수쯤으론 전염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상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심지어 병원 내 다른 병에 걸린 환자들 사이에서도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다. 노벨문학상 자리까지 오른 문학가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굳이 내 생각을 표현하자면, 아마도 나딘 고디머를 포함한 이 작가들은 좋았던 나빴던간에 인생은 '단 하나뿐이기에'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코끼리를 만지던 장님들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한 장님은 코를 만지고 있고, 또 다른 장님은 귀를 만지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장님들은 코의 감촉과 귀의 감촉이 각각 코끼리 '전체'에 해당한다며 말다툼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 의견을 통합한다면, 즉 각각 만지고 있는 각 부위의 감촉을 배열한다면 코끼리의 윤곽이 잡혔을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나딘 고디머는 현대 작가들의 단편들을 배열해서 '세상'이라는 큰 윤곽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것이 어렴풋이 보인 듯하다. 결국, 사회적 소수자이던 사회 부적응자던간에 각각 인생을 경험했고, 세상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차별'과 '패러다임'으로 눌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도 세상이라는 퍼즐의 한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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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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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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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올빼미가 있어."
"올빼미는 숲의 수호신이고, 뭐든 다 아니까, 우리에게 밤의 지혜를 가져다줄 거야."- p. 217

 한 가지 말해둘 게 있다면, 이 소설은 1권부터 완결까지 전부 쌓아놓고 쉴새없이 읽어야 한다. 그래야 작가가 던지는 사소해 보이던 떡밥들이 눈에 확 뜨이고 줄거리가 제대로 이해된다. 이 책은 3권까지 나왔으며, 아직까지 완결이 안 된 상태이다. 1권부터 3권까지 전부 다 묵직한 책들이라서 중간에 스토리를 잊어버린 사람들이 많았다. 내용때문에 빈축을 산 일도 많았고. 일단 아오마메가 자신과는 거의 거리상 접점이 없던 시점에서 덴고의 아이를 얻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기독교인들의 반발을 사리라 생각된다. 뭐 2권부터 아오마메가 그 일을 위해서 덴고한테 한 짓(...)도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상당히 충격적이라서 적당한 동화판타지로 예측하고 이 책을 펼쳐든 사람들을 떨궈냈겠지. 아무튼 2권에서의 그 영문모를 행위는 바로 아오마메의 임신을 위해서, 다른 시점으로 보면 공기번데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제서야 스토리가 점점 잡혀가는 것 같다. 아오마메가 후카에리의 부친을 살해했으므로 리틀피플은 인간과의 접점이 없어지고 아마도 그 접점을 다시 만들어내기 위해서 도터를 품고있는 마더 아오마메로 추적의 방향을 잡았던 듯하다. 그리고 우시카와를 사용해서 공기번데기를 하나 더 만들고. 말하자면 크리스트와 안티크리스트가 만들어지는 셈인가.. 리틀피플의 시점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공기번데기, 즉 아오마메의 아이가 안티크리스트일지도... 아니 어쩌면 그런 개념 없이 그냥 두 아이를 맞붙게 만드는 게 목적일지도 모른다. 스토리를 이렇게 열거하면 참 재밌어보이긴 하는데, 읽으면서 계속 뒷장을 넘겨보게 되고 왠지 모르게 지루함이 느껴졌던 것은 왜일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식 설교' 말투를 너무 과하게 사용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그저 스릴러에 너무 맛을 들여서 재미없게 느껴졌던 것일까.

 

  

하기사 이 소설 보기 전에 나란 놈은 쿼런틴 2라는 좀비영화를 봤었지.

으아악 뭐라 할 말이 없어

 

 우시카와라는 인물이 갑자기 중요한 인물로 등장해서 적잖게 당황했었다. 이 인물은 덴고와 아오마메를 역으로 추적하여 딱히 1~2권을 보지 않아도 그 전에 있었던 사건들을 떠올려보게 만든다. 또한 굉장히 현실적인 성격에 '달을 한 개밖에 볼 수 없는 사람'으로서 덴고와 아오마메를 이해하는 시각을 표현해낸다. 그가 아무리 집요한 프로라고 해도 결국 두 개의 달을 현실적으로 이해하려는 일반인에 지나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결국 리틀피플에게 이용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오마메는 다른 세계를 살아가려는 적응력이 뛰어났고, 덴고는 다른 세계를 보게 되자 매우 당황했으나 상황을 상황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그래서 그 둘은 결국 1Q84, 혹은 고양이 마을에서 만나 또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 있었다.

 뭐 계속 읽어보니 소재가 매우 좋다. 이제 큰 흐름의 시작 부분에 도달한 것일까, 스토리도 점점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자꾸만 소설 안에 있는 복선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4권이 나오면 속절없이 구입할 듯하다. (내 생각에는 덴고 회사의 편집장이 계속 뭔갈 감추고 있는 것 같은데.) 완결 내기 전에 죽지만 마세요 무라카미 하루키님 ㅠㅠ 노르웨이의 숲같이 이상하게 완결내지 마시고...

 

 

 

그래요 사실 저 무라카미 하루키 싫어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라면 환장하고 지르는 분들도 잘 이해 안되고; 

왜 이 분의 글이 무라카미 류보다 대중성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나마 재미는 있으니까 보고 있는 거지.. 교훈성이 있다고 보지는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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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use on Mango Street (Paperback) - 『망고 스트리트』원서
산드라 시스네로스 지음 / Vintage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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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you leave you must remember to come back for the others. A circle, understand? You will always be Esperanza. You will always be Mango Street. You can't erase what you know. You can't forget who you are.- p. 105

 예전에도 이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유치원 때. 여기서 본인이 좋은 유치원을 다녔구나, 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니 얼른 그 생각을 수정하시길 바란다. 내가 살던 곳을 같이 가봤던 남자친구도 인정한 사실인데, 그 유치원은 주변 환경이 많이 안 좋았고 당연 알파벳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하는 쓰레기였다. 난 그 유치한 수준에 질릴 대로 질려 윤선생을 공부했었다. 지금은 외국인 교사들이 있어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윤선생은 정말 싸고 효율적으로 공부하기엔 완벽한 프로그램이다. 문학작품을 접할 수 있고 외국인 선생님들이 문학작품을 읽어주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기분이 내킨다면 직접 녹음을 할 수도 있다. 게다가 학원과는 달리 무한반복도 가능하다. 아무튼 이 작품을 내가 어째서 대학에서 돈 내고 들어야 한단 말이냐. 그것도 다 공부한 것도 아니고 반만 공부한다니! 아무리 2학년 수업이라지만 이건 정말 해도해도 너무했다. 이야기가 너무 옆으로 샌 것 같다. 아무튼 초등학교 아이들, 영어를 좋아하고 책읽기를 좋아한다면 유치원에서도 읽을 수 있으니 어머님들에게 제발 기죽지 마시고 이런 책들은 원작으로 구입하시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아니 어떻게 대학에 가서도 이 책을 모르는 아이들이 있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다른 학과도 아닌 영어영미문화와 영어영문학과가? 난 정말 깜짝 놀랐다. 거의 충격을 받았다고 봐도 되겠다. 정말 이 초라한 영어관련학과를 졸업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기초 지식도 없이 여길 들어온 건가? 무슨 깡으로? 적어도 기초문학은 공부하고 들어와야 정석 아닌가? 나중엔 이런 정말 이런 명작개념소설들은 뒷전이 되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설이 판치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아니면 돈 버는 법 자기개발하는 법같이 '너네도 이렇게 해보세요~' 뭐 이렇게 떠들고 다니는 비소설들만 판치려나?

 

 아 모르겠다 내 새끼 교육을 똑바로 시키면 되지. 여기서 끊고 본론 들어가겠다.

 

 망고 스트리트는 에피소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소개'란을 펴보면 어떤 이쁜 여성의 그림이 나온 다음 '그녀'에 대한 주구장창한 설명이 나와 있다. 그러나 응당 소개란은 프롤로그가 아닌 이상 가볍게 넘어가는 편인지라 나는 담담하게 다음 장을 펼쳐보았다. 주인공은 '아름다운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싶은 야심찬 소녀이다. 지금 우리나라 돌아가고 있는 형편을 보면 대략 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의 어느 사람이 '나는 적어도 욕실이 3개는 있고 지하실도 있고 계단도 확실히 안에 있고 굉장히 큰 뒷뜰이 딸려 있고 나무가 주위를 둘러싼 하얗고 아름다운 집을 갖고 싶어. 월세도 전세도 아닌 구매로.'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뭐 대충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혹시나 미국은 땅값이 싸서 그런 걱정 없다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노파심에 미리 하는 말인데, 이 여자애의 가족들은 전부 스페인계 이민자들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소녀가 딴 집으로 이사가자고 하면 '복권 긁을께'라고 말하시는 분이다. 더 이상 그 집안 사정에 대해 말해 무엇하랴.;

 

 이 소설에서는 이렇게 앙증맞고 담대하기 그지없는 소녀의 시각으로 망고 스트리트에 사는 다른 사람들을 하나하나 둘러본다. 상황은 정말 절박하고 심각하기 그지없는데 말하는 사람의 어투는 유머스러움이 넘치고 재밌기만 하다. 그러나 샐리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더 이상 그 유머스러운 분위기를 이어나갈 수가 없게 된다. 어렸을 땐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는데, 이해가 가니 샐리를 그냥 어디 구석에서 쥐어박고 싶을 만큼 밉살스럽다. 저런 여자때문에 여자들이 단체로 욕먹지. 그러나 주인공은 진심으로 샐리를 친구로서 대하고 불쌍하게 생각했는가보다. 그녀의 심성은 이렇게 자신 주변의 불쌍한 인간들을 못 본체 하지 않는다. 사실 그래서 더더욱 이 책이 재미있고 따뜻하게 읽혀졌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지금 점점 희망도 없이 어둡게 침체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시대와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참 구차한 일이긴 하지만 어쨌던 망고 스트리트의 여자들은 참하고 돈 많은 남자를 낚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도로 위에 서 있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갔다와서 가방을 내려놓기만 하면 뛰쳐나가서 놀기에 바쁘다. 그리고 어쨌던 망고 스트리트는 그녀에게 확실히 작별 인사를 하고, 추억으로서 남았다. 이 말이 매우 적절하다. 소설 속 화자는 '자신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는' 추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를 제외한 사람들은 아마 망고 스트리트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녀는 암시한다. 주인공은 망고 스트리트의 온갖 추접스러운 남자들에게 시달리고 있는 샐리를 보며 마음 속으로 소리친다. 왜 저항하지 않냐고. 왜 싫다고 말하지 않냐고. 결국 그녀는 사회의 불합리한 현실에 저항하여 공간적으로는 그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망고 스트리트를 빠져나오려면 망고 스트리트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을 보여야 한다. 즉 망고 스트리트를 알고 있어야 한다. 망고 스트리트를 망각하고 있거나 혹은 망각하려고 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는 빠져나왔을지 몰라도 공간적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다. 끙, 말이 너무 어렵군... 어떤 분은 이 것을 '망고나무의 저주, 악연의 굴레'라고 표현하셨지만, 난 생각이 조금 다르다. 오히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굴레에 갖혀 사는 게 아닐까. 인력으로 광화문 광장을 강제점령한 조현X, 그리고 친히 명박산성으로 베리어 쳐주신 우리 대한민국 각하, 미쳐가는 세계를 탓할 줄은 모르고 시위대를 탓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여기까지 하겠다.

 

자세히 보면 눈 썩는다. 가까이 가서 보지 말자.

 

 참고로 이 책은 정말 동화책같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리고 이 책의 작가도 자신만의 아담한 집이 있다. 다른 일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 인구 많은 미국에서 이 책을 안 읽는 애들이 없다고 하니 그녀는 아마 소설만 팔고도 집을 살만큼의 여유가 있었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집을 책을 써서 돈을 벌어 자신의 집까지 살 수 있다니, 대단히 존경스럽고 한편으로는 부러운 여성이 아닐 수가 없다.

 

출처: 돋을새김 http://blog.naver.com/doduls/150033523999

아... 내 경우에는 저 벽을 핑크색이 아닌 보랏빛으로 칠하면 될 것 같다.

2008년에 찍은 사진이라 한다. 나이도 드셨을 텐데, 참 곱게 늙으셨다고 해야 할까. 아름다우시다.

 

 P.S 시험도 안 끝났는데 이 상황을 어찌 해야 할까,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 서평을 2000자 이상 쓰다니. 으아아아 시간이 벌써 저렇게 되었어... 이젠 어쩌면 좋지? 물 같은 걸 끼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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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생태 2011.12
자연과생태 편집부 엮음 / 자연과생태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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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5~10분 안에 금방 접어서 만들 수 있는 것들만 주로 만든다. 공예가니 예술가니 하는 소리를 듣는 것도 싫고 또 그런 틀에 갖히기도 싫다. 그냥 좋아하는 풀잎 접기를 해서 여러 사람들이 즐겁고, 또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돈만 벌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풀잎이라는 소재가 지닌 숙명이자, 그런 풀잎을 소재로 한 초편공예의 참 가치라고 생각한다.- p. 50

 12월이다. 겨울이다. 날씨가 유래없이 따뜻해서 실감이 안 나고 있었지만, 우리의 존재를 깨달아달라는 듯 겨울바람이 점점 싸늘해지고 있다. 동물들이 동면에 들어가고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는 계절이다. 게다가 서울에는 아직 눈도 안와서, 상당히 조용한 계절이다. <자연과 생태>도 동면에 들어갔는지, 조용한 내용들이나 혹은 씁쓸한 내용들이 많았다. (혹은 본인이 시험기간에 읽었던 것이라서 우울해보인 것인지도.) 사진에 찍힌 담비는 매우 귀여웠지만, 등산객들의 이기적인 정복욕심으로 인해 마음대로 산등성이를 뛰어다닐 수 없다는 글이 슬프게 들렸다. 그 다음 제주도 어느 창고에 자리잡힌 둥지에서 목을 불쑥 내민 붉은부리찌르레기 새끼가 조금 귀여워보였다. 그러나 '한강의 강물은 서울로 통한다'에서 다시 마음은 우울해졌다. 그 구정물에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생물들이 있다는 소식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흘러가는 강물이 막히면 결국 사람들의 마음도, 생명도 막히고 만다는 사실을 높으신 분들은 왜 모르는 것일까. 그나마 큰 웃음을 주었던 기사는 어김없이 정병길 기자의 실험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쓰여져 있는 글을 다시 베스트에 올리기엔 다른 기사들이 너무 주목을 받지 못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기사를 쭉 읽어보았다. 그러다가 우리나라 최초의 초편공예가이신 김봉원 님을 접하게 되었다.

 

책에서 나온 곤충은 진짜 살아 움직일 것처럼 보였다. 

 

 중앙정보부에서 일하셨던 이력도 있다던데 왜 길거리에서 몇 푼 안되는 작품들을 팔고 계실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 분은 진정한 자유인이시다. 주말에만 작품들을 팔고 그때 번 돈으로 월화수목금을 논다니.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직업의 우선순위로 꼽는 것 같은데, 이 분은 직접 실천하고 계시지 않은가. 사실 인사동에서 그를 내쫓았다는 상인들도 그가 돈을 많이 벌어서 질투한 것이 아니라, 그가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고 질투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일이 직업이 되는 즐거움은 둘째치고, 온종일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으니 말이다. 본인에게 직업이 생긴다면, 저렇게 몰두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 인간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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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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