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이태원참사 2주기가 다가온다.
1주기 책에는 인터뷰어로 참여했지만 2주기는 여러 여건 상 참여하지 못했다.
대신 해설글 한 편을 실었다.
편집자와 의견을 주고 받으며 분량이 약간 줄어들었는데... 왠지 아쉬워 초안을 여기에 남겨본다. 때마침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도 축하할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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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기
“특조위(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 막 조사관으로 일을 시작했을 당시, 조사 방법 세미나 모임에서 한 팀장급 조사관이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조사보고서를 참고 자료로 가져왔다. 다른 재난조사보고서를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왜 성격이 다른 과거사위원회의 사건보고서를 검토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졌다.” (박상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진실의 힘, 2020)
진상규명이란 무엇인가
특조위의 그 팀장이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통치 시기 자행되었던 공권력에 의한 국가폭력 사건들을 다룬 과거사위원회의 보고서 대신 1988년 중국 상하이에서 수학여행 중이던 일본 가쿠게이고등학교 학생들을 태운 열차가 맞은 편 열차와 충돌한 열차사고(이 사고로 학생 26명과 인솔교사 1명, 그리고 중국인 열차 검사원 1명 28명이 희생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일본에서 우호적인 중일 관계가 중요하다는 논리가 압도하면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도 되지 못한 채 서둘러 배상과 보상 절차가 마무리되었다.)에 관한 자료나 1989년 영국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인파 관리 실패와 구조물 붕괴로 관중 97명이 숨진 참사의 보고서(힐스버러 참사 직후 영국 경찰과 언론은 사건의 원인과 책임을 훌리건들의 난동으로 몰아갔으나 참사 20주기인 2009년 영국 정부는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만들어 재조사에 들어갔다. 2012년에 발표된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장의 구조적인 위험이 존재했고, 경찰은 진술조서를 왜곡해 자신들의 책임을 덮었으며 잘못된 응급구조로 59명이 추가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를 가져왔다면 어떠했을까? 만약 9.11사태 이후 구성된 9.11위원회에서 조사한 뒤 발표한 보고서였다면?(‘9.11테러 보고서’는 이례적으로 출간 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후 만화책으로 제작되기도 했을 만큼 ‘성공’한 보고서로 평가된다. 한편 9.11위원회는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이 이 사건을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전제하고, 당시 부시 행정부의 책임은 묻지 않기로 하며, 왜 테러조직의 공격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는가라는 아주 제한적인 내용에 대해서만 조사하기로 한 정치적인 타협의 산물이기에 불충분하고 한계가 명확한 보고서라는 비판도 있다.) 또는 바다 밑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로 인해, 그렇지만 쓰나미 직후 정부와 도쿄전력의 무능으로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면서 그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3.11 동일본대지진 보고서였다면?
세월호 참사는 이러한 재난참사들 사이 어디쯤에 놓인 사건일까? 아니면 이들과는 전혀 또 다른 성격의 사건일까? 질문은 꼬리를 문다. 재난참사에서 진상규명이란, 진실이란 무엇일까? 수많은 희생자와 피해자가 나온 참사에서 진실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너무나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10.29이태원 참사에서 159명 희생자의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갖고 있는 의혹들이 빠짐없이 해소되는 것이 진상규명일까? 100가지 의문점이 있다면 그 중에 몇 십 개가 규명되면 진실이 밝혀졌다고 할 수 있을까? 참사를 야기한 문제에 대해 그 권한을 가진 책임자들이 합당한 책임을 지고 참사의 인적, 구조적 원인이 온전히 밝혀진다면 그때는 진상규명이 다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국가애도기간이라는 국가폭력
2022년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열린 핼러윈 축제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한 뒤 윤석열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곧바로 정부는 유가족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희생자의 명단은 물론 유가족들 간에 정보도 공유하지 않는 채 희생자의 이름도 영정도 없는 정부합동분향소를 일방적으로 설치하고, 11월 5일까지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함과 동시에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했다.
“한없이 무능하다가도 놀랄 만큼 유능”(4.16세월호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조사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 중에서.)했던 정부의 조치들은 11월 8일 국정감사에 나온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의 “국정상황실은 대통령 참모조직이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선제적 행위였을 뿐이다.(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에도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발뺌이 이미 나온 바 있다.) 참사 유가족들이 어떠한 정보도 제공받지 못하고 모이지도 못한 상황에서 내려진 정부합동분향소 설치와 국가애도기간 선포는 그 형식적 절차에 반해 유가족은 물론 대형 참사를 마주한 시민들의 추모와 애도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절차에 따라 희생자 유가족들이 분리되고 고립됨으로써 이들에게 주어진 사건에 대해 알 권리, 참사의 진실에 접근할 권리를 정부가 애초부터 가로막았다는 점이다.
그 뒤로도 국정조사는 물론 2024년 1월 31일 국회에서 통과된 특별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까지 윤석열 정권은 이 참사의 진상규명에 대해 방관과 외면, 회피, 비협조와 방해로 일관했다. 그리고 지난 2024년 5월 2일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핵심으로 하는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10.29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제정되었음에도 여전히 정부와 여당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이 글의 집필 시점인 2024년 9월 초까지 윤석열 대통령은 별다른 이유 없이 국회가 전달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들을 임명하지 않고 있다.)
과정으로서 진상규명
윤석열 정권의 이러한 태도와는 별개로 세월호 참사 이후 만들어진 여러 특별법과 비교해보면 10.29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의한 특별조사위원회의 권한이나 규모, 조사 기간은 턱 없이 부족하다. 그러하기에 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거기서 조사를 한들 별 다른 성과 없이 끝날 것이라고 지레 예단할 필요는 없다. 한국사회는 이미 세월호 참사 이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소중한 경험과 교훈, 성과들을 축적했고, 재난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는 그것에 굳건히 발 딛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를 참사의 진실을 밝혀가는 기나긴 여정 중 하나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일방적으로 선포한 국가애도기간에 설치된 분향소의 명칭은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였다. 국회에서 ‘10.29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통과되었음에도 여전히 집요하게 ‘핼로윈 참사’라는 명칭을 고집하는 언론과 특정 집단이 있다. 세월호 참사가 아니라 ‘세월호 사고’여야만 하는 이들, 3.11 동일본대지진이라고 하지 않고 3.11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라고 하면 불편하고 못마땅한 사람들, 그런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재난참사, 특히 대규모 참사는 매우 정치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고 참사의 진상규명에서 정치적 협상이나 정치 세력 간의 타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정치적 사건이기에 서로 다른 관점과 견해가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지난한 과정을 거쳐 그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며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 연장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유 중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의 의무가 제외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10.29이태원 참사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 심판의 결과 무죄가 나온 것 또한 단순한 실패나 시행착오가 아니라 국가 최고 권력자와 행정 전반의 책임자에게 사법적 책임을 면하게 함으로써 재난참사에서 사법부의 책임 있는 역할이 과연 무엇인가와 함께 참사의 책임자에게 어떻게 온전한 정치적, 사법적 책임을 물을 것인가라는 숙제를 한국사회에 남겼다고 생각한다.
작별하지 않는다
2020년 10월, 나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활동 종료를 10개월 앞두고 세월호 참사 피해지원 실태 보고서를 쓰기 위해 조사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내게 맡겨진 보고서를 마무리한 뒤 다른 개별 조사보고서와 종합보고서를 찬찬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보고서들을 읽어나가며 이 또한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세월호 침몰원인을 밝히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밝혀진 진상조사 결과를 설명하고 세월호 참사의 현재적 의미를 되새기는 데도 실패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울감이 몰려들었다.
그 무렵 아직도 이 나라에서 적당한 이름을 찾지 못한 ‘제주 4.3사건’을 다룬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중 “그렇게 끝없이 연기되고 있는 바로 그 상태가 그 일의 성격이 되어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라는 문장에서 묘한 위로를 받았다. 또한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어떤 상태가 그 일의 성격이 될 수 있다면 과정 그 자체가 진실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여름 서울 을지로에 있는 ‘별들의 집’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한 분을 만났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에서 모집한 재난보도 모니터링단에게 이 참사의 의미와 이해를 돕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먼저 시민대책위원회 활동가에게 참사의 전반적인 개요를 들은 뒤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을 순서가 되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첫 마디는 “우리 아들 이야기를 조금 해도 될까요?”였다.
‘이태원 참사는 어떤 사건인가요?’라는 추상적인 물음에 유가족은 희생자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본인과 어떤 관계였는지, 희생자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유가족에게 참사는 다른 무엇도 아닌 너무나도 소중했던 사람을 잃은 사건이라는 사실, 그리고 진상규명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어쩌면 진상규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어리석은 질문은 정해진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여러 가지의 질문의 갈래들과 마주하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진실은 숨겨져 있다 어디서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는 단 하나의 무엇이 아니라 여러 가지 모양의 단편적 진실로 존재하고 그 퍼즐을 맞추는 가운데 구성해야 하는 것 아닐까. 참사의 진상규명이 무너진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면 그러한 퍼즐 맞추기를 통해 사법적 정의와 회복적 정의, 역사적 정의가 구현되는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 전까지, 그 뒤에라도 희생자와 그리고 진실과 헤어지지는 말아야하겠다.
“제목이 뭐야?
밀폐용기에 담긴 것을 나무 숟가락으로 덜어 주전자에 넣다 말고 인선이 물었다.
우리 프로젝트 말이야.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그녀는 주전자에 생수를 부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제목을 묻지 않았어.
나는 대답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
작별인사만 하지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
아직 주전자의 부리에서 김이 솟지 않았다. 비등점을 넘어서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
완성되지 않는 거야, 작별이?
흰 실타래 같은 증기가 주전자 부리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맞물렸던 뚜껑이 달그락거리며 반쯤 열렸다 닫히길 반복했다.
미루는 거야, 작별을? 기한 없이?
앞문 너머로 보이는 숲의 아래쪽이 거의 검어졌다. 눈에 덮여 둥글고 부슬부슬한 윤곽선을 새로 얻은 나무 밑동들이 박명 속에 희미하게 빛났다.
저 어둠을 뚫고 갈 수 있을까, 나는 생각했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 1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