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0월에 개봉할 예정인 데이빗 핀처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The Social Network)>는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제 극장에서 예고편을 보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라디오헤드의 「creep」과 이렇게 잘 어울리는 소재가 있을까요?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들리는 외톨이들의 노래가 이렇게 처절하게 심금을 울리게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을 영상화한 <상실의 시대(ノルウェイの森)>를 기대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게다가 감독도 (개인적으로)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트란 안 홍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 역시 예고편을 보고 무너져버렸습니다. 아무리 영화가 엉망이라 하더라도, 비틀즈의 「Norwegian Wood」가 스크린에 흘러나오면, 전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두 편의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정말 기대됩니다. 제발 예고편이 전부인 영화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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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7-24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실의 시대는 저도 기대가 가질 않는군요.
소설을 하도 재미없게 봐서 그런지...
음악에 누가되지는 않을런지 의심해 보십시오.ㅋ
소셜네트워크는 좀 기대가 되네요.^^

Tomek 2010-07-26 06:33   좋아요 0 | URL
아무리 미덥지 않은 감독의 작품이더라도 일단은 나오기 전까지는 기대하는 주의라... :D
실망보다는 기대가 나은 것 같아서요. 혹여 나중에 실망하더라도. :)

마늘빵 2010-07-25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실의 시대가 영화로 나오는지는 몰랐는데. 소셜 네트워크 이거 예고편 보고 저도 꼭 봐야지 했습니다. 시기도 잘 맞춰 나온듯. 트윗 열풍 불 때 나와서는.

Tomek 2010-07-26 06:34   좋아요 0 | URL
예고편 음악이 정말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
이 영화로 페이스북과 트윗터는 주가를 또 한 번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D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7월 2주

 

며칠 전에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하얀 리본>을 봤습니다. 이 영화는 인디포럼 월례비행에서 본 정재훈 감독의 <호수길>처럼 보는 순간 극도의 인내를 요하는 힘든 영화지만, 보고 난 후에야 정말 엄청난 영화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즉각적인 반응에 휘둘리는 것이 아닌, 온전히 경험하고 나서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1913년 오스트리아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을의 의사가 외진을 다녀오는 길에 낙마하는 사고를 겪습니다. 누군가가 길에 줄을 묶어 놓아 일부러 사고를 일으킨 것이죠. 증거가 없어 사건은 흐지부지 되어가는 와중에 소작농 부인이 사고로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마을을 지배하는 남작의 관할지에서 벌어진 사건이지만, 사건은 부인의 잘못으로 처리됩니다. 그 후 남작의 아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되고, 마을은 공포에 떨게 됩니다.  

<하얀 리본>은 몇 줄로 이야기를 설명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제가 낑낑대며 쓴 줄거리는 영화를 1/10도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얀 리본>은 몇 명의 주인공에 집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마을을 둘러싼 불길한 기운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한적한 시골마을은 불길함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엄격한 목사는 잔인한 방법으로 자식들을 통제합니다. 인자한 의사는 자신의 딸과 근친상간의 관계이고, 마을의 산파와 밀회를 갖습니다. 아이들은 이상한 비밀을 지닌 듯 무리를 짓고 다니고, 그 중 한 명은 꿈속에서 다음 희생자를 봅니다. 이것은 언뜻 <트윈 픽스>의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마크 프로스트와 데이빗 린치가 창조해낸 가상의 마을 트윈 픽스 또한 같은 이야기를 다룹니다. 차이가 있다면, 데이빗 린치는 이 이야기들을 '불길하게 드러냅니다.' 사운드는 뒤틀려 있고, 화면은 어두우며 인물들은 하나같이 기괴합니다. 외부인인 데일 쿠퍼가 마을에 들어가 사건을 해결하지만, 결국엔 그도 그 마을의 일원이 됩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착한 데일은 '검은 오두막'에 잡혀 있고, 나쁜 데일이 트윈 픽스에 있게 되죠. 데이빗 린치는 트윈 픽스의 미스터리를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 '밥(BOB)'이라는 악의 형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트윈 픽스>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볼지, 아니면, 숲에 거주하는 악의 소행으로 볼지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미카엘 하네케의 방식은 다릅니다. 그는 이 기괴한 이야기에 감정이 개입할 수 없도록 흑백으로 찍었습니다. 음악도 영화 속에서 연주되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한 곡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흥미로운 이야기의 살을 다 발라내고 뼈만 남겼습니다. 그럼으로써 그가 다루는 것은 (저 너머에 있는 이상한 힘이 아닌) 반복되는 폭력의 순환입니다.  

<하얀 리본>의 작은 마을은 계급 사회입니다. 남작이 지배하고 부르주아 계급인 목사와 성직자가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작농으로 살고 있지요. 계급을 막론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폭력은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는 아이들을 다루는 방법입니다. 새장 안에 갇혀 길들여진 새는 자유를 모르기 때문에 새장을 벗어나 살 수 없습니다. 어른들은 폭력으로 아이들을 제어하고 협박하며 자신의 시스템 안에 길들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하기 마련입니다. 폭력으로 점철된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시스템을 만들고, 그 시스템에 복속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어른들의 방식으로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이 지나치도록 무서운 폭력의 순환! 속하지 못하면 내치는 전체주의의 발로! 작은 마을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새 국가와 시대에 대한 이야기로 바뀝니다. 일련의 죽음들 속에서, 사라예보에서 암살된 황태자의 죽음으로 끝나는 영화는 묘한 울림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유럽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테니까요. 

 

자신들만의 공고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빌리지>가 있습니다. 끔찍한 사회를 견디지 못해 문명 세계의 모든 기억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건국해 살아가는 어른들은 옆 마을(바깥세상)에 관한 아이들의 호기심을 말끔히 지워버립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공포를 조장하는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미신의 시대에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는 엄청난 법이니까요. 어른들의 편리로 아이들은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새장에 갇힌 새처럼 갇혀 지냅니다. 결국 모든 비밀이 밝혀지지만,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눈이 먼 소녀입니다. 그녀는 마을로 돌아가 그녀가 겪은 일을 자신의 상상력에 기대어 이야기 할 것이고, 그렇게 마을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공고히 다져질 것입니다.  

<하얀 리본>의 하얀 리본은 정직과 순수를 의미합니다. 목사는 저녁 식사 시간을 지키지 않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매질을 하며 하얀 리본을 매게 한 후, 이 하얀 리본을 보면서 정직과 순수를 떠올리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은 강제로 맨 하얀 리본을 통해 배웠습니다. 마을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폭력, 위선, 시기, 절망, 분노가 바로 아이들에게는 하얀 리본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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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7-09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캐이블에서 해줬던 스티븐 킹 원작의 살렘스 롯(뱀파이어 빌리지)도 분위기 하나 만큼은 끝내주더군요.

Tomek 2010-07-10 07:11   좋아요 0 | URL
전 살렘스 롯하고 옥수수밭의 아이들하고 자꾸 헷갈려요... ㅠㅠ 저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 듯...
 

    

6월의 마지막 날, 흔히 <서유쌍기>라 불리는 <서유기 월광보합>과 <서유기 선리기연>을 씨너스 이수에서 연달아 감상했습니다. 처음엔 이 영화를 극장에서 굳이 봐야하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를 평균 2년에 한 번 꼴로 주기적으로 여러 번 감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시 스크린의 위용은 대단했습니다. 비록 여러 번 감상했지만,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자, 저는 다시 한 번 손오공의 시간여행에 기꺼이 동행할 수밖에 없었지요.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두 편의 <서유기>가 15년이라는 세월을 견디는 동안, 웃음의 정서가 많이 휘발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재미있고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막힌 패러디와 인용의 연속이지만, 의외성에서 비롯되는 웃음(혹은 공포)은 익숙해지면, 더 이상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성치폐인은 될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폐인이라면 모를까...)  

대신 눈물의 정서는 15년의 세월을 견디었습니다. 두 편의 서유기가 지금까지 시간의 무게를 견딘 것은 <선리기연>의 멜로 정서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중경삼림>과 <동사서독>의 패러디(혹은 인용)로 소박하게 시작했으나, 결말부에서는 원본에서 느낀 감정의 진폭과 맞먹는(혹은 뛰어 넘는) 진심이 있었습니다. 500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결국엔 엇갈리고 포기하는 애절한 사랑, 그리고 고전 『서유기』를 훼손하지 않는 영리한 구성 또한 이 영화를 견디게 한 이유입니다.   







 

전 이 영화를 1997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저녁에 골방에 틀어박혀 친구와 함께 봤습니다. <월광보합>을 보고 배꼽이 빠져라 굴러대고 후속편인 <선리기연>을 보며 기어이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을 때, 전 이 영화가 감정의 진폭이 너무 크다고 느꼈습니다. 분명히 웃기는 장면이 넘쳐나는데, 저는 울고 있기 때문이죠. <선리기연> 같이 웃음과 눈물의 정서를 극단적으로 오간 작품은 나카시마 테즈야 감독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드라마로는 노도철 PD의 <소울메이트>가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은 정말 웃다 울다 정신 못 차리게 하죠. 단, <선리기연>과 차이가 있다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과 <소울메이트>는 관객들이 웃음과 울음의 경계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반응하는 반면, <선리기연>은 다소 모호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극장에서 <선리기연>을 보면서 놀랐던 점은, 이 영화를 끝까지 코미디로만 인정하려는 관객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분명 <선리기연>의 후반부는 애절함과 비통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일부 관객들은 그 장면조차도 코미디로 받아들였습니다. 잔혹한 죽음과 상실의 고통을 분노로 승화시키는 장면에서조차도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저는 이것을 주성치라는 배우를 코미디라는 장르에 머물게 하려는 팬들의 의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혹시 모르죠. 정말 새로운 관객이 도착했는지도.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은 컬트와 고전의 경계에 선 작품입니다. 15년 만의 개봉으로 우리는 이 영화가 소수의 숭배를 받는 컬트에서 벗어나 고전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솔직히 주성치의 영화를 보고 컬트니 고전이니, 웃음이니 눈물이니 하는 선긋기는 별 의미 없는 것 같습니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우리를 위로해주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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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7-02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대단하심다. 소울메이트가 그렇게 괜찮나요?
함 봐야겠슴다.^^

Tomek 2010-07-03 10:14   좋아요 0 | URL
아~ <소울메이트> 정말 최고죠! 지금까지도 드라마 게시판에 글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이건 정말 중독입니다.
DVD가 나왔을 때 바로 샀어야 했는데... 이제는 구할 수도 없는 작품이 되었어요... ㅠㅠ

니나 2010-07-08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빛요정만루홈런의 <주성치와 함께라면> 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거기에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년이라는 가사가 나오거든요. 그게 주성치 영화 속 대사인줄은 Tomek님 페이퍼 보고 알았네요. 캡처해놓으신 장면들이랑 글 잘 보고 갑니다 ㅎㅎ

Tomek 2010-07-20 12:15   좋아요 0 | URL
뽀로뽀로미~ 뽀로뽀로미~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년! 얼마전에 씨너스에 찾아오셔서 노래도 불러주셨죠. :D


니나 2010-07-09 16:00   좋아요 0 | URL
아~ㅎㅎ 뽀로뽀로미도 이번에 검색해보고 알았어요 >.<

Tomek 2010-07-10 07:27   좋아요 0 | URL
비디오로 처음 봤을 때는 <이상한 나라의 폴>에 나오는 주문인줄 알았었는데, 나중에 홍콩판 DVD 자막 보고 "아.. 이런... (심오한) 뜻이었던가..." 했던 기억이...
:D

herenow 2010-08-12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야바라밀~!" 절묘한 이미지 캡처들이네요.
동굴에서 무한반복 뽀로뽀로미를 외치는 그 한 장면만 더 있었더라면... ㅋㅋ
웃음의 정서와 눈물의 정서에 대한 설명이 정말 무릎을 치게 합니다.
막연하던 느낌을 누군가가 글로 딱 짚어내었을 때 느껴지는 그런 시원함이 있네요. ^ ^
(한 달 내내 뽀로뽀로미 하고 광고하던데 놓쳐버려 후회하고 있는 중입니다 ㅠ.ㅠ)

Tomek 2010-08-12 08:52   좋아요 0 | URL
아마 조만간 다시 개봉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게 컬트의 숙명이니까요.
부족한 글 좋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숨고 싶은 마음이예요.
 

『다세포소녀』는 B급 달궁(채정택)의 온라인 연재만화로 시작했습니다. 딴지일보에서도 연재했던 기억이 있는데, 무쓸모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성(性)에 대한 이야기를 매회 풀었습니다. 교복 입은 고등학생과 한계를 넘어서는 수위 때문에 변태만화라는 오명도 들었지만, 명랑만화와 순정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의 필력 때문에 연재 당시 엄청난 열광을 이끌어냈던 만화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차용한 이재용 감독이 만든 <다세포소녀>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만화에서는 다 가능했던 이야기들이 배우들의 연기로 육신화하면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로 변질됐던 것이죠. 이재용 감독은 그동안 작업했던 로맨스라는 장르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다세포 소녀>를 선택했지만, 영화는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김옥빈)의 로맨스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장편 영화라는 함정이 있습니다. 원작은 에피소드별로 진행이 되지만, 장편 영화는 기승전결의 내러티브가 필요한 법이죠.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억지 결말식의 이무기(?!)의 등장은 이 영화를 더욱 기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반면에, 극장판과 거의 같이 작업을 시도한 시리즈 <다세포소녀>는 원작의 흥취를 담으면서 시리즈의 매력을 흠뻑 맛보게 한 작품입니다. 원작의 인물과 상황을 차용하지만, 그 해석은 신선하고 각 에피소드별로 장르를 달리해 "골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며칠 전 <다세포소녀> 시리즈를 보던 중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습니다. <똥파리>, <집나온 남자들>의 배우(이자 감독)인 양익준 씨의 모습이었죠. 물론 고등학생(!) 역입니다. 지금 본다면 뜨악한 설정이었겠지만, 당시엔 무명이라 어느 정도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우선호 감독의 <뽀르노의 추억> 에피소드는 말 그대로 학창시절의 포르노테이프에 대한 수다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성담론으로 가득한 무쓸모 고등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열남(양익준)은 이런 이야기들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열남은 포르노테이프에 대한 잊지 못할 추억이 있습니다. 

  

열남이 어렸을 때, 열남의 아버지(박광정)는 장롱 속에 무엇인가를 숨겨놓고 있습니다. 열남은 장롱 속을 궁금해 하지만, 열쇠를 찾을 수 없습니다. 열남은 손재주가 좋은(?) 친구를 데려와 장롱을 열어봅니다. 그 안에는 엄청난 양의 비디오테이프가 있었고, 열남은 더 이상 장롱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열남은 친구들과 돈을 모아 세운상가에 가서 포르노를 살 계획을 합니다. 마침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어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른이 열남이 아버지입니다.   







 

 

<뽀르노의 추억>은 그렇게 특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대부분(?) 경험해봤음직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뻔한 이야기가 울림을 갖는 이유는 지금은 사라진 포르노‘테이프’, 세운상가, 그리고 연기자 박광정 씨에 대한 회한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선호 감독은 지금은 모두 사라져버린 존재들에 대한 강한 회한을 학창시절의 포르노테이프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선호 감독은 세운상가가 철거될 줄은, 박광정 씨가 유명을 달리할 줄은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옵니다. 종묘를 앞에 두고 세운상가 계단 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의 모습은, 지금은 모두 사라진 풍경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련하고 애틋한, 상처뿐인 풍경.   







 

이제 포르노테이프라는 물리적 저장매체는 야동이라는 파일로 존재합니다. 세운상가는 철거되었고 그 자리엔 공원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욕구(포르노테이프)와 돈을 조달하는 아버지의 자리는 다른 것이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곳은 처음부터 빈자리로 남아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그 자리를 채워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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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6-22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암이었죠.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비굴함과 섬찟함을 함께 보여주는 보기 드문 배우였는데. 종종 드라마나 영화의 조연의 모습을 보며 저 배역에 박광정씨였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Tomek 2010-06-23 05:31   좋아요 0 | URL
생각할 때마다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ㅠㅠ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6월 2주

 

이번에 개봉하는 <H2: 어느 살인마의 가족 이야기>는 롭 좀비 감독의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의 속편입니다. 국내 포스터 제작사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단 우측부에 표시된 <2009 충무로 국제 영화제 공식 상영작>이란 문구를 보고 거의 쓰러졌습니다. 이런 센스쟁이들 같으니라고. 이건 누가 보더라도 '칸 영화제'같아 보이는데!  

<할로윈>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존 카펜터 감독의 원작을 이야기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감독 롭 좀비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역겹고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4편의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 롭 좀비(Rob Zombie)는 1990년대 음악계의 한 구석을 차지한 화이트 좀비(White Zombie)의 리더입니다. 마를린 맨슨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음악은 온갖 금기시 되는 내용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아마도 번역된 가사를 읽으신다면 청심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만큼 이들의 음악은 듣는 이를 불안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이 세계를 회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롭 좀비가 감독 선언을 하고 만든 작품이 있으니 바로 <살인마 가족(House of 1000 Corpses)>입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토브 후퍼 감독의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의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젊은 남녀들이 어떤 외딴 집에 들르게 되는데, 그 집은 가족 전체가 살인마라는 이야기! 영화의 원제처럼 그들이 머무는 집에는 1000구가 넘는 시체들로 쌓여있고, 영화는 시간, 악마주의, 생체실험, 인육식사 등 온갖 금기시되는 것들이 흘러듭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단순히 유희에 끌려있다는 점입니다. 어떠한 쾌락도 없고 반성도 없이 영화는 그저 변태적 고문 쇼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정말 "내가 왜 이런 영화를 보고 있나"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라는 매체와 공포라는 장르에 대해 회의를 불러일으킵니다. 매체와 장르에 대한 자기반성? 그렇다고 보기에 이 영화는 너무 치기어리고, 야심이 가득하며, 게다가 자신의 취향까지 꾹꾹 눌러 담은 신인감독의 영화입니다. 살인마 가족이라는 구성과 각 캐릭터는 놀랍고 친근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아찔하지만, 영화는 그 이상을 나가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는 2001년에 유니버셜에서 제작했으나, 너무 지루하다는 이유로(롭 좀비의 말에 따르면 너무 끔찍하다는 이유로) 공개를 하지 않다가 감독 자신이 판권을 사서 캐나다 영화사 라이온스 게이트에 팔아 2003년에 개봉했습니다. 뮤지션 출신의 영화감독은 한 편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 그가 2005년에 <살인마 가족2(The Devil's Rejects)>를 내놓았습니다. 이 영화는 정말로... 끝까지 간 영화입니다. 영화는 전편의 이야기에서 바로 시작합니다. 경찰들이 이 가족의 존재를 알아채고 들이닥칩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경찰들이 죽고, 살인마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합니다. 베이비, 오티스, 스폴딩(딸, 아들, 아빠의 관계)만 도망치고 이들은 추격을 받게 됩니다. 이 도주 상황에서도 이들 가족은 끔찍한 유희를 벌이는데, 잔인한 장면은 없지만, 정서적으로 정말 견디기 힘든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정말로 '악마도 거부'할 것 같은 무시무시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쫓는 보안관 윌리엄 또한 이들과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는 공권력의 힘을 한껏 이용하여 전편에서 죽은 그의 형에 대한 복수를 합니다. 살인마 가족들은 결국 그에게 잡히고, 그는 가족들에게 그들이 행한 고문을 똑같이 합니다. 여기서부터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데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살인범을 처단한다는 통쾌함의 쾌감보다는 피해자 입장의 안타까움을 느끼는 기이한 경험을 합니다. 물론 이런 주제는 크쥐시도프 키에슬롭스키 감독이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 이미 다룬 주제이지만, 롭 좀비는 극단까지 밀어붙입니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단순한 유희로 1000여명을 학살한 괴물들을 그와 똑같이 고문한다면, 우리는 그 자격이 있는 것인가? 아니, 우리는 견딜 수 있을까? 우리도 똑같이 괴물이 되는 것 아닐까? 롭 좀비 감독은 아주 지독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현란한 액션과 고문 사이에서.   

 

그래서일까요?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을 리메이크한다고 했을 때, 여러 감독이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낙점된 것은 롭 좀비였습니다. 이 두 작품을 본 관객들은 도대체 롭 좀비가 어떻게 <할로윈>을 그려낼지 궁금했습니다.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은 사실 급조된 프로젝트입니다. 제작사측에서 할로윈에 개봉할 기획영화를 준비하고 있던 차에 존 카펜터가 바로 수락하고 한 달이 안 되는 기간에 영화를 만들었지요. <할로윈>은 '부기맨' 이야기와 보모 이야기를 결합한 싸이코패스 스릴러입니다. 살인마의 시점으로 그려낸 영화의 오프닝은 오손 웰즈의 <악의 손길>에 맞장 뜰만 하고, 시네마스코프 사이즈를 최대한 활용한 마이클 마이어스의 등장과 제이미 리 커티스의 비명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업적은, 가면 쓴 살인마의 원형을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이후 80년대 이후 슬래셔 영화에서 <할로윈>의 영향을 벗어난 영화가 얼마나 있는지 한 번 확인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은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상황을 보여주고, 진행을 한 후 조금씩 그 빈자리를 정보로 채워주지만, 그 정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짐작만 있고 설명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무력하게,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할로윈>뿐 아니라, 70년대에 등장한 많은 영화들, 윌리엄 프레드킨의 <엑소시스트>,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 리처드 도너의 <오멘>, 토브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데이빗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 등의 영화들이 다 그렇습니다. 설명은 없고 불긴한 기운이 감돌며 엔딩은 거의가 배드엔딩이지요. 이런 분위기는 당시 베트남 전쟁의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사력을 다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은 지옥을 보여주었고, 그 지옥은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분위기는 "아마도 지금이 종말에 가까운 순간"이라 느꼈으며, 그 당시를 반영한 이런 공포영화들은 선은 악을 이기지 못하고 혹은 이기더라도 그 악은 사라진 게 아니며, 진정한 구원은 자신만의 세계로 침전하는 것뿐이라는 탄식에 가까운 절망을 보여주었습니다.   

 

롭 좀비 감독이 리메이크한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은 원작에서 10여분에 그린 이야기를 한 시간에 걸쳐 이야기합니다. 이 부분이 <할로윈> 리메이크의 강점이자 단점입니다. 강점이라 생각되는 이유는 원작에서 설명을 하지 않았던 부분을 주의 깊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마이클 마이어스가 내면이 텅 빈 인물임을 알고 있지만, 그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알지 못합니다. 롭 좀비는 그 깊이를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작에서는 유령같이 보였던 마이클이 리메이크에서는 실체가 부여됩니다. 게다가 원작에서는 무차별적인 살인이 리메이크에서는 어느 정도 개연성을 찾게 되었습니다. 바로 '가족'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개연성이 반대로 영화의 공포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원작의 무차별적 살인은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키지만, 리메이크에서는 그 공포가 한 발 비껴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안전장치 때문이지요. 하지만, 롭 좀비의 리메이크는 원작과 버금가는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플래티넘 듄스가 어설프게 리메이크한 일련의 작품들보다 스튜디오에서 기획한 고전들의 리메이크보다, 훨씬 창의성 있는 리메이크입니다.  

흥미롭게도 롭 좀비 감독이 그리는 세계는 (<그라인드 하우스>에서 감독한 가짜 예고편 <나치 친위대의 늑대여자(Werewolf Women of the SS)>를 제외한다면) 모두 1970년대입니다. 그는 1970년대와 가족이라는 구성체에 대해 (스필버그와는 정반대의 접근으로) 끈질기게 질문합니다. 전작 <할로윈>에서는 어린 마이클 마이어스의 내면의 텅 빔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 속편 에서는 바로 마이클 마이어스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사 이 영화는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는데, 마이클 마이어스의 이야기를 변질시켰다는 분노도 있는 반면, 새로운 접근이라는 찬사도 있습니다. 물론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선택할지는 관객의 자유입니다. 

  

*덧붙임: 

롭 좀비 감독의 가짜 예고편 <나치 친위대의 늑대여자>를 보시면 이 감독의 취향이 어떤지 조금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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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6-09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이트 좀비라는 그룹에서 음악하는 아저씨가 영화도 아주 자기가 하는 음악 분위기와 딱 맞춰서 만들더군요..^^

Tomek 2010-06-10 08:26   좋아요 0 | URL
보기에 꽤 힘들더군요. <살로 혹은 소돔의 120일>만큼의 정서적 고문이랄까. 파졸리니는 파시스트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놓았지만, 롭 좀비는... 아직까지 뭐라 평가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저 그런 시시한 영화들과는 달리 제 맘 속에 남더군요. 일라이 로스의 <호스텔>은 애교 수준인 것 같더군요. ㅠㅠ

Mephistopheles 2010-06-10 10:09   좋아요 0 | URL
음악이나 영화나 극단으로 열심히 달려나가는 아저씨니까..앞으로 어떤 사고(?)를 칠지...궁금합니다. 그리고 전 H20에서 마이클 마이어스의 집착의 대상인 누나(제이미 리 커티스)에거 도끼로 목이 댕강 날라가는 걸 보고 아 이제 프래디와 제이슨만 남는구나 했는데....부활하더군요...ㅋㅋ

Tomek 2010-06-10 15:54   좋아요 0 | URL
식칼 하나로 호러계를 평정한 전설인데 그만한 예우는 갖춰야죠~ :)
고맙습니다.

카스피 2010-06-10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정말 대단한 영화 분석이네요^^ 그나저나 공포 영화라 여름에 보면 더위가 싹 달아나겠죠^^

Tomek 2010-06-10 15:56   좋아요 0 | URL
문제는 식상한 공포영화들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겠죠. 아마 90% 이상은 쓰레기가 확실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감식안이 철저하게 필요한 장르인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