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멘>과 <하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이상하게 공포 영화가 끌려서 가리지 않고 보던 중에 리처드 도너 감독의 <오멘>을 다시 봤습니다. 짧게 느낀 점이라면, 예전 (공포) 영화는 꼭 필요한 부분만 드러내고, 불필요한 부분은 생략하는 반면, 요즘 만들어지는 (공포) 영화에서는 불필요한 부분을 너무 많이 설명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의 상상력을 더 이상 믿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하려는 얘기가 이게 아닌데... <오멘>을 보면서 이상하게 임상수 감독의 <하녀>가 생각났습니다. 다른 맥락이지만, 유모가 데미안 앞에서 목을 메어 자살하는 장면은 <하녀>의 마지막 장면이 그대로 오버랩 되더군요.   









 

 

그리고 임신한 어머니 캐서린이 청소하다가 떨어져서 유산하는 장면 또한 <하녀>와 오버랩 되었고요. 

 

데미안의 생일 파티 장면도 빼놓을 순 없죠. 모든 것을 다 가진 아이, 하지만 내면은 텅 비어있는 아이. <오멘>의 마지막 장면의 데미안과 <하녀>의 딸의 표정 역시 대비되고요.  







 

새로온 유모 베일록 부인의 관점으로 이 영화를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그녀는 이 대저택에 고작 '유모'로 들어와 이 집을 자신의 지배하에 놓습니다. 그리고 영화 역시 절반 이상이 이 거대한 저택에서 벌어집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불온한 생각이 들더군요. 임상수 감독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리메이크 하는 대신 <오멘>을 리메이크 한 게 아닐까.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적그리스도의 소굴에 들어간 착한 유모이야기를 그린 게 아닐까... 그러니까... 임상수 감독은 <하녀>를 통해, 자본만 이야기한 게 아니라 종교까지 같이 아우른 게 아닐런지. 나쁜 자본을 독점한 재벌은 적그리스도라는 이야기?  

그냥 생각나는 대로 간단히 적어봤습니다. 그저 확실한 것은 임상수 감독이 한국 사회를 확실히 ‘엿 먹이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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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0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10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바이 2010-06-10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멘>을 보면서 임신한 캐서린이 떨어지는 장면이, 떨어질 것 같은 암시가 있는 장면이 너무 소름끼쳤습니다. 물론, 어떤 장면들은 이불로 가려서 잘 기억나지도 않지만, 처음 <오멘>을 보면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르겠습니다.ㅋㅋㅋ
<하녀>는 괜한 마음에 피했었는데, Tomek님 시선을 좀 빌려서, <오멘>과 비교하면서 봐야겠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영화 관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Tomek 2010-06-10 23:09   좋아요 0 | URL
<하녀> 아직 안 보셨는데, 이 글 읽으시면 어떡해요.. ㅠㅠ 저는 영화는 가능한 많은 정보 없이 보는 주의라... 혹시 영화 보시고 실망하시면 어쩌죠?
<오멘>은 지금봐도 아주 잘 만들어진 소름끼치는 영화라 생각합니다. 그에 반해 2, 3, 4편은.. ㅠㅠ 할리우드는 뛰어난 아이디어를 진이 빠질 때까지 뽑아내는 것 같아요...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6월 1주

6월 2일에 개봉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유령 작가>는 (귀신이 나오는 공포 영화가 아니라) 작가가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유령 작가'는 '대필 작가'를 말하며 이 영화의 유령작가(이완 맥그리거)는 영국의 전 수상인 아담 랭(피어스 브로스넌)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작가입니다.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이미 초고가 나온 원고를 손만 보는 조건으로 거액의 계약금을 제시한 조건은 그에게도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습니다. 단, 전임자가 사고로 죽은 사실과, 계약을 채결한 이후로 그를 따라다니는 이상한 상황들이 좀 꺼림칙했지만 그는 만족합니다. 영국을 떠나 미국령 섬에서 거주하는 전 수상을 인터뷰하고, 전임자의 초고를 검토하면서 그는 조금씩 이상한 점을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수상의 정치 이력은 수상쩍었으며, 이라크 전쟁에서 포로들의 고문을 용인해 죽음에 이르게 한 이유로 국제 전범 재판에 회부된 것과 미국의 비호는 그를 더욱 더 의심스러운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마침내 대필 작가는 자신의 본분을 버리고 저널리스트가 되어 이면에 파헤친 진실을 추적합니다.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숨은 작가에서 그는 세상에 전면으로 뛰쳐나옵니다.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유령이 세상에 나옴으로써 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던 유령들은 적잖이 놀라게 됩니다. 요즘 나오는 스릴러와는 달리 고전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유령 작가>는 조금은 허무한 반전을 제외한다면, 서스펜스와 미스터리를 차분히 쌓아가는 영화입니다. 로만 폴란스키는 <유령 작가>에서 진실을 묵인하지 않고 찾아내는 작가를 그렸습니다.  

 

작가를 다룬 영화는 많이 있지만, 한국 영화중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그린 작품은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첩첩산중>이 있습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효섭(김의성)은 실력 없는 삼류 소설가에 성격까지 더럽고 자의식은 강한 작가입니다. 게다가 그는 그의 작가적 순수성을 과시하듯 유부녀 보경(이응경)과 불륜에 빠져 있습니다. 반면 그를 따르는 생활력 강한 건강한 여인 민재(조은숙)를 이용하는 치졸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더럽고 비루하고 치사하고 위악적이지만, 그가 쓰는 소설은 민재의 말에 따르면, 아름답습니다. 전혀 교집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지점의 효섭의 삶과 소설은 말 그대로 위선을 보여줍니다.   

 

이런 점은 <첩첩산중>에서도 볼 수 있는데,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소설가이거나 소설가 지망생입니다. 등단을 목표로 하는 소설가 지망생 미숙(정유미)은 전주에 내려가 친구 진영(김진경)을 만납니다. 그 김에 미숙은 스승이자 옛 애인인 상옥(문성근)을 만나고, 상옥과 진영이 서로 사귄다는 것을 알고 분개한 미숙은 옛 애인이자 이번에 낸 소설로 상을 받은 명우(이선균)을 전주로 부릅니다. 얽히고설킨 짝짓기는 점점 점입가경이 됩니다. 미숙은 전부터 존경하는, 은희경 작가를 만나지만, 은희경 작가는 미숙이 상옥과 모텔에서 나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상옥은 명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자식은 순전히 날 따라 하기만 한 개자식"이라며 욕을 하고, 명우 역시 상옥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장면은 정말이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상황입니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자기 과시는 참으로 민망합니다. 홍상수 감독이 그린 <첩첩산중>의 작가 역시 데뷔작에서 그린 작가들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직업과 삶의 관계, 창작가와 자연 인간의 관계를 가감 없이 바라봅니다. 냉혹한 시선은 거두었으나, 그의 눈매가 부드러워 진 것은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인간들을 차갑게 관찰합니다.  

 

작가를 다룬 영화 중 <화양연화>와 <2046>을 뺄 수는 없습니다. <화양연화>의 차우(양조위)는 아내의 불륜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의 아내는 앞집 남자와 바람이 났고, 앞집 남자의 부인인 수리첸(장만옥)은 초우와 이 사태에 대해 의논합니다. 이들은 복수를 다짐해보기도 하지만, 행동에 나서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차우는 호텔에 틀어박혀 예전부터 쓰고 싶었던 무협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수리첸은 가끔 호텔에 들러 차우의 글을 교정을 봐주기도 하고 때로는 대신 쓰기도 합니다. <화양연화>에서 초우가 쓰는 소설은 이 둘의 사랑을 엮어주는 도구입니다. 물론 더 큰 원인은 배우자의 불륜 때문이었지만, 그들은 그것과는 상관없이 서로 가까워집니다. 이별 연습을 하고 나서야, 이들은 서로 얼마나 사랑하고 의지해왔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들이 헤어진 후, 차우는 자신이 겪은 사랑을 글로 쓰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천년의 기억이 보관되어 있는 앙코르와트의 나무 구멍에 그의 사랑을 봉인합니다. 과시하거나 드러내지 않고 간직하는 것. 차우의 사랑은 그렇게 애틋합니다.  

 

반면 <2046>에서 차우(양조위)는 그의 사랑을 그가 집필하는 SF소설 『2046』에 모두 풀어놓습니다. 차우가 풀어 놓는 이야기는 <아비정전>부터 <화양연화>를 거쳐, <2046>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랑이야기를 아우릅니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2046으로 향하는 일본인 청년 탁(기무라 타쿠야)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차우의 모습과 대비됩니다. 탁이 새로운 사랑을 찾으면서 잃어버린 기억의 자리에 새로 시작되는 기억을 놓지만, 차우는 그러지 못합니다. 그에게는 또 다른 사랑의 기억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죠. <2046>에서 차우가 집필하는 소설은 그가 그려내는 애절한 사랑이야기입니다. 그가 살아가는 현실과 그가 그려내는 소설은 멋지고 애절한 신세계를 만들어냅니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러브 액츄얼리>에도 작가(콜린 퍼스)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가 무슨 소설을 쓰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는 포루투칼어로 사랑을 갈구하는 시를 썼을지도 모르겠어요. ^.^;  

 

 

 

* 덧붙임: 

스티븐 킹 원작의 <미저리>와 <샤이닝>이 빠진 것이 좀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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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6-05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저리와 러브 액추얼리만 봤네요~ 유령작가는 월욜에 볼 예정이고요.
훌륭한 페이퍼에 추천은 필수예요.^^

Tomek 2010-06-06 08:42   좋아요 0 | URL
<유령 작가> 꼭 보셔요! 진짜 강추합니다. ^.^;
고맙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6-06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령 작가 평가가 좋더군요. 한 번 봐야겠어요.^^ 작가를 다룬 영화라고 하니.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샐린저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파인딩 포레스터>도 생각이 나네요.

Tomek 2010-06-06 08:43   좋아요 0 | URL
구스 반 산트 감독 영화 중 <굿 윌 헌팅>과 <파인딩 포레스터>는 아직까지 보지 못한 작품입니다. 그 지루했던 <싸이코>도 봤는데... 꼭 챙겨봐야겠어요.
<유령 작가> 추천합니다! ^.^;

Mephistopheles 2010-06-06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트레인져 댄 픽션...이라는 영화 추천합니다..^^

Tomek 2010-06-06 08:44   좋아요 0 | URL
아직 보지 못했어요. 꼭 챙겨보겠습니다. ^.^;

라로 2010-06-06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짓 존스의 일기]도 꽤 재미있었고, [어댑테이션]도 꽤 잘쓰여진 각본의 시나리오 작가 이야기고, 잭 니콜슨 주연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도 재밌게 봤고, 꽤 인상 깊었던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미스 포터], 메피님이 언급하신 [스트레인져 댄 픽션],,등등등 언급하신대로 작가를 다룬 영화가 많네요!!

Tomek 2010-06-06 08:46   좋아요 0 | URL
작가를 다룬 영화가 은근히 많네요! 맞아요. <어댑테이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다들 독특한 캐릭터였죠.
<미스 포터>도 챙겨봐야겠어요. ^.^;

2010-06-12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Tomek 2010-06-12 09:2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생각해보니 은근히 많은 것 같아요.
<유령 작가> 재미있으니 꼭 보시기 바랍니다. :)
고맙습니다. ^.^;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5월 4주

예전에 개봉했던 영화들을 다시 개봉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돈이 되기 때문이지요. 제 기억으로 가장 유명(혹은 요란)했던 재개봉은 <양들의 침묵>이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녀 배우 주연상 등 알짜배기를 독식해 화제를 불러일으키자, 수입사에서 다시 재개봉한 경우입니다. 두 번째로는 고별 로드쇼가 있습니다. 대한극장이 단관에서 멀티플렉스로 바뀔 때, 그리고 최근에는 중앙 씨네마가 고별 로드쇼를 진행했습니다. 올해 2010년 5월과 6월엔 유난히 묵은 영화들이 재개봉했거나 상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오래된 프린트로 다시 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최신)의 기술력으로 영화를 복원한 경우입니다. 이벤트성으로 즐길 수도 있지만, 영화 자체가 워낙에 뛰어난 작품들이라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이번 주에는 새로 복원된 옛 영화들을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는 거의 40여년 만에 재개봉하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이미 1997년에 새로이 복원을 한 적이 있지만,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아쉬운 수준이었습니다. 이번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제안으로 디지털 복원을 한 <대부>는 정말 새로운 영화입니다. 빛과 어둠을 나타낸 암부 표현은 뛰어나며, 원래의 색감을 복원한 화면은 정말이지 탄성이 흘러나옵니다. 새로이 복원된 화면 안에서 우리는 돈 비토 콜레오네의 냉정하고도 인자한 모습, 가업을 물려받아 점점 냉혈한이 되어가는 마이클의 모습을 보며 전율을 느낍니다. TV와 DVD는 이 새로 복원된 영화의 매력을 느낄 수 없습니다. 가능하면 극장, 그것도 디지털 영사를 하는 곳에서 이 영화를 감상하기를 바랍니다.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 <하녀>가 재개봉한 것은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제작한 미로비전의 의지 때문입니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어떤 의미에서건) 이미 화제의 중심에 올랐고, 흥행도 뒤따랐습니다. 미로비전은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김기영 감독의 원작을 재개봉하는 모험을 시도했습니다. 의도는 심히 불순하지만, 큰 스크린에서 폐쇄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2층 가옥에서 벌어지는 치정극은 가히 숨을 막히게 합니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가 단조롭다고 느끼셨다면, 이 영화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입니다. 50년 전 영화라고 무시하시지 마시길. 영화를 보다 소리를 지를지 모릅니다.  

 

     

한 때 주성치는 골방의 제왕으로 불렸습니다. 비디오 (대여) 산업이 최전성기를 찍고 있을 때, 유치하고 더러운 짓만 골라서 하고 완성도 떨어지는 코미디만 찍어대는 주성치는 불경스러운 이름이었습니다. 그의 영화에서 완성도란 이름을 붙이기에는 참으로 민망했지요. 게다가 거의 카피에 가까운 인용은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지요. 그런 리즈 시절의 주성치가 한 단계 점핑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이번에 개봉하는 두 편의 서유기 시리즈,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입니다. 이 영화에는 주성치 사단으로 불리는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총 출동합니다. 영화의 설정과 캐릭터는 『서유기』에서 차용했으나, 그 내용은 주성치의 영화답게 산으로 갑니다. 이 영화에서 주성치는 웃음과 울음, 재미와 감동, 액션과 멜로의 영역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합니다. “뽀로뽀로미(般若波羅蜜)”에 배꼽을 잡고 웃다가 손오공의 애절한 선택에 기어이 눈물을 떨어뜨리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과 <중경삼림>의 설정과 대사가 난무하면서 패러디 영화에 머무는 것 같지만, 결국엔 패러디를 뛰어 넘어 그 자체의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한, 주성치라는 브랜드를 확립시킨 의미심장한 영화입니다. 만들어진지 15년이 지났지만, 웃음과 눈물은 아직까지 유효합니다.  

 

영 그렇다할 신작이 없는 요즈음, 이번 주에는 옛 영화들로 달래보는 게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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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5-3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싯적 주성치의 저 영화를 눈물을 머금고 보았습니다^^; 가끔 케이블 티비에서도 하던데 말이죠.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Tomek 2010-06-01 07:49   좋아요 0 | URL
정말이지 골방의 제왕이었죠. 병맛의 일인자이기도 하고. 가장 최근의 병맛으로는 <드래곤볼 에볼루션>이 아니었을까... ^.^;

Forgettable. 2010-05-31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주성치 영화 재개봉!! ㅠㅠ 보러가고 싶네요! 어이쿠-
왜 이제서야 ㅠ

Tomek 2010-06-01 07:50   좋아요 0 | URL
잠시 들러 보시는 것도..^.^;
잘 지내시죠?

카스피 2010-05-3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광보합과 선려기연은 알겠는데 서유쌍기는 무엇인가요? 시리즈 3편인가요?

Tomek 2010-06-01 07:53   좋아요 0 | URL
<서유쌍기>라는 이름으로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을 동시 개봉하는 성치폐인 영화제(?)입니다. 오늘부터 한 달간 씨너스 이수에서 <월광보합>, <선리기연>을 하루 1회씩, 총 2회 상영합니다. ^.^;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5월 3주

<13일의 금요일>시리즈와 함께 1980년대 공포영화를 양분해온 <나이트메어> 시리즈는 B무비인 동시에 평론가들의 사랑을 받아온 영화입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꿈’이라는 소재를 다루었기 때문이었죠. 현대 과학으로도 철인들의 사상으로도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꿈은 당연히 예술가들의 단골 소재가 되었습니다. 특히 영화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데이빗 린치같이 무의식의 불안한 세계로 침잠한 경우도 있었고, 홍상수같이 이야기의 구조와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리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나이트메어> 시리즈는 예술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들이 프랜차이즈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의 매력적인 살인마 프레디 크루거 때문입니다.  

이번에 리메이크해서 개봉한 <나이트메어>는 원작과는 다른 노선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원작의 스토리는 그대로 가져와 이벤트 무비와 리메이크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경우입니다. 원작의 팬으로서도 아쉽고, 장르영화의 팬으로서도 아쉬운 결과물입니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지금까지 나온 나이트메어 시리즈를 한 번 훑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나이트메어>는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오리지널의 아우라가 있습니다. 소재주의로 끝날 수 있었던 이 영화가 9편씩이나 만들어진 것을 보면 사람들의 무의식적이고 원초적인 감성을 건드리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해더 랑겐켐프의 신선함, 조니 뎁의 풋풋함, 그리고 존 색슨의 인상적인 모습, 그리고 잊지 못할 로버트 잉글런드. 악몽은 이제 고전과 추억이 된 듯합니다.   

 

잭 숄더 감독의 <나이트메어 2: 프레디의 복수>는 원작의 설정에서 비껴간 작품입니다. 원작에서 프레디는 꿈에서 살인을 자행하는 인물이었지만, 2편에서 그는 세상으로 나오려합니다. 게다가 전편 주인공 낸시가 살던 집 엘름 가 1428번지는 프레디라는 귀신들린 집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미티빌> 시리즈를 관통하고 퀴어 정서와 프레디 크루거까지 아우르려는 감독의 야심은 존경할 만합니다. 물론 안타까움과 애틋함이 섞인 존경이었지만요...^^ 이 영화의 희생자들은 모두 남자들이며, 특히 체육 교사인 슈나이더의 죽음은 정말 충격적입니다(프레디의 분노의 볼기짝! 물에 적신 수건으로 맞아보신 분들은 그 고통을 이해하실 듯...). 특히 영화의 엔드 크레디트에 흘러나오는 빙 크로스비의 「Did You Ever See A Dream Walking?」을 듣고 있으면, 이 영화가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에 도달했던 경지에 오르길 원했던 영화임을 깨닫게 되어 숙연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 영화에서 매혹적이었던 장면은, 프레디가 불에 타 죽었던 공장이 등장한다는 점과 파티중인 10대 아이들 앞에서 서 있는 장면입니다. 프레디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서 있던 장면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나이트메어 3>은 잠시 옆길로 빠진 시리즈를 다시 원래 자리로 데려온 영화입니다. 장르적인 쾌감은 많이 줄었지만, 후속편이면서 시리즈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은 놀랍습니다. 프레디는 다시 꿈의 세계로 돌아갔고, 그의 목표는 엘름 가의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엘름 가의 마지막 아이들과 프레디의 싸움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눈에 익은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패트리샤 아퀘트와 로렌스 피시번이 그들입니다. 그리고 헤더 랑켄캠프와 존 색슨이 다시 등장해 1편과의 연관성을 강조했습니다. 음악은 안젤로 바달라멘티가 맡았으나, 그렇게 인상적인 스코어는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부터 프레디는 꿈으로 아이들을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꿈을 꾸지 않는 약, 힙노실의 등장과 프레디의 출생의 비밀도 등장합니다. 게다가 크리스틴은 자신의 꿈속으로 다른 이들을 불러들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모로 흥미진진한 작품입니다.  

 

레니 할린이 감독한 <나이트메어 4>는 공포보다는 액션에 치중한 영화입니다. 프레디의 등장은 거의 액션 영화의 악당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서움보다는, 드디어 싸움이 벌어진다는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영화입니다. 3편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부활한 프레디에게 죽고, 크리스틴은 자신의 능력을 새 친구 앨리스에게 전해주고(!) 죽습니다. 앨리스는 독특한 능력이 있었는데, 그녀는 꿈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가까운 친구들이 죽으면서 그녀는 친구들의 능력을 하나씩 흡수합니다. 드디어 무림의 고수가 된 앨리스는 프레디 크루거의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 결투를 벌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빨려 들어가는 앨리스의 모습입니다. 영화보다 잠들지 말라는 감독의 메시지일까요? ^.^; 참고로 이 영화에 대해 가장 잊히지 않는 평이 있는데 바로 이렇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레니 할린의 네 번째 악몽은 시리즈 중의 최고이며, 공포영화에 관한 정신분석학과 이데올로기 비평의 격전지이다. 그래서 이 네 번째 이야기를 보면서 왼손에 알뛰세를 오른손에는 라깡을, 그리고 보들리야르를 머리에 베고 누워 구경하는 것은 흥미진진할 것이다.『키노(No. 17)』" 이것 참...  

 

스티븐 홉킨스 감독의 <나이트메어 5>는 싱글맘의 공포를 다루는 수작입니다. 전편의 앨리스는 마찬가지로 전편에서 살아남은 댄과 사랑에 빠져 댄의 아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한 프레디가 태아의 꿈을 이용해 댄을 죽이고 다른 친구들도 죽이기 시작합니다. 죽은 아들의 핏줄이라는 이유로 댄의 부모는 앨리스에게 아이를 빼앗으려고 하고, 프레디 역시 살인 욕구를 위해 앨리스의 아이를 필요로 합니다. 태아에 대한 '욕망'을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다룬 장르 영화가 있을까요? 아이들만 살해한 프레디가 태아에게 접근하는 설정도 으스스하지만 무엇보다 프레디의 살해 장면이 기발합니다. 댄은 마블 코믹스의 고스트 라이더로 분하게 해서 죽이더니, 코믹스에 빠져 있는 친구에게는 DC코믹스의 ‘슈퍼맨’으로 분해 살해합니다. 프레디의 인용은 갈수록 풍부해지고 유머까지 늘어납니다.  

 

레이첼 탈라레이 감독의 <나이트메어 6>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프레디의 성장담이라니요. 무슨 <프레디 라이징>도 아니고... 게다가 그는 가정도 있는 착실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딸은 왜 그리 패륜적인지... 이 영화는 정말로 시리즈 마지막 편으로 기획됐을 것입니다. 스프링우드의 아이들이 다 죽은 프레디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 아이들을 살해할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절반은 성공하지만, 절반은 실패하지요. 프레디는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그는 이제 예술가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살해방식은 고딕 미술을 넘어 팝 아트와 아방가르드까지 가까이 왔습니다. 살인을 예술로 승화시키다니!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시리즈를 상쇄할 수는 없습니다. 매력적인 3-D 씨퀀스도 존재하지만, 이미 시리즈는 힘이 다 빠진 상태입니다. 마지막 엔드 크레디트에 올라오는 프레디의 활약상을 보고 있노라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뉴 나이트메어>는 시리즈를 탄생시킨 웨스 크레이븐의 진정한 속편이자 마지막 편입니다. 그는 시리즈가 다 막을 내리고 나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물론 그는 <영혼의 목걸이>로 (조금 더 현실적인) 프레디 크루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이번에 그는 자신이 창조해낸 프레디 크루거를 확실히 끝장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명으로 등장하고 영화와 현실을 뒤섞는 방식으로 말이죠. 때문에 이 영화는 시리즈 중 가장 지루한 영화가 됐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영화는 별다른 사건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대신 영화라는 예술이 어떻게 현실을 잠식하는지 천천히 보여줍니다. 말 그대로 공포라는 장르영화가 예술이 된 순간입니다. 이 영화는 웨스 크레이븐의 명성을 높여주기는 했지만, 장르 영화의 팬들에게서는 정말 악몽 같은 영화로 남아있습니다.  

 

우인태 감독의 <프레디 vs. 제이슨>은 <나이트메어>시리즈를 사랑하는 저로서도 솔직히 당황스런 영화입니다. 그저 제이슨과 프레디가 한 영화에서 만났다는 것에 대해 위안을 삼아야 할까요? 그래도 이번 리메이크에 비하면 이 영화가 훨씬 원작의 세계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편에 등장했던 양이라던가, 웨스틴 힐 정신병원이라던가. 원작의 팬들이라면 반가워할 장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13일의 금요일>을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제이슨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조금 지루함을 느꼈습니다. 물론 <나이트메어>를 싫어하는 분들은 저와 반대의 이유로 지루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설정은 "우리는 깨어 있을 수도 잠들어 있을 수도 없어"라는 대사와 프레디가 제이슨의 악몽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나이트메어>와 <13일의 금요일> 테마를 반씩 섞은 테마곡 또한 말 그대로 죽여줬지요! 

 

사무엘 바이어(Samuel Bayer)가 감독(했다고 하지만, 제작자 마이클 베이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한 게 분명)한 2010년의 <나이트메어(A Nightmare on Elm Street)>는 이벤트 무비와 리메이크 무비의 사이에 있는 작품입니다. <나이트메어>시리즈를 알고 있는 팬들에게는 향수를, 몰랐던 관객들에게는 고전의 투박함을 현재 기술력의 세련함으로 포장해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 영화입니다. 팬심을 제거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야기해도, 제게 <나이트메어>는 60% 정도 아쉬운 영화입니다. 영화의 스타 프레디 크루거는 원래 설정대로 아동 학대 성추행 범에 유머가 없는 싸이코패스가 됐습니다. 음향 효과는 멋지지만 스토리는 한숨이 나오고 특수효과는 지루합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영화의 이야기가 별 개연성 없이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원작에서 아이들이 죽는 이유는 그들 부모의 잘못 때문이었죠(이 무서운 연좌제의 공포라니). 그런데 리메이크는 오직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그 수많은 아이들을 살해합니다. 리메이크의 프레디 크루거는 원작의 프레디 크루거와는 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씬 시티(Sin City)>의 노란 녀석(that yellow bastard)과 흡사합니다. 

이래저래 원작의 팬인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지만, 즐길만한 영화였습니다. 어차피 공포 영화는 항상 쓰레기 취급을 받기 마련이니까요.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이 말해줄 것입니다. 그때까지 악몽은 계속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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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4월 2주

   천안함이 침몰한지도 보름이 지났지만, 정부와 군은 실종자는 고사하고 침몰 원인조차 찾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큰 일이 발생했음에도 신속한 대응보다는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은 모습을 '일관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죠. 정말로 "진실이 저 너머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정부와 군에 '믿음'이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만 했건만, 그들의 태도는 의심만 불러일으키는 행동이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런 기막힌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 편입니다. 권력을 지닌 자들의 횡포와 그에 맞선 소수의 선인들의 이야기는 태고의 영웅담과 맞물려 현대영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키득거리면서 볼 수 있었던 반면, 지금에서는 그저 웃기만 할 수는 없는 현실이지만요. 

 

   최근에 개봉한 영화 중 음모론의 진수(?)를 보여준 영화는 단연 브렉 에이즈너 감독의 <크레이지(The Crazies)>입니다. 미국의 소읍인 오그덴 마시에 미군이 비밀리에 진행한 생화학 무기 '트릭시'가 유출되어 마을 사람들이 감염되기 시작합니다. 이 물질에 감염이 되면 인간으로의 자각이 조금씩 사라지고, 무조건적인 살인을 자행하게 되지요. 알 수 없는 이상한 현상들이 마을을 잠식하고, 이유없는 살인이 계속 벌어지면서, 마을은 점점 공황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바로 이 때 군부대가 들어와 마을사람들을 한 곳에 몰아 넣은 후 격리를 시키기 시작합니다. 이 때 영화의 주인공인 보안관 데이빗 더튼(티모시 올리펀트), 의사 쥬디 더튼(라다 미첼) 부부가 헤어지게 됩니다. 쥬디는 트릭시에 감염된 환자들 사이에 격리되고, 데이빗은 정상인들 사이에 격리되어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할 준비를 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있게 됩니다. 아내 혹은 남편 혹은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이야기합니다. "정말 괜찮을까요?" 그러자 그들 중 한명이 대답을 합니다. "정부를 믿어야지 우리가 무슨 수가 있겠어?" 데이빗은 사람들의 그런 낙관을 믿지 않고, 아내를 구하러 갑니다.

   영화에서 군인들은 계속 무엇인가를 숨기려고만 합니다. 설명이 배제된체 정부를 믿고 군의 통제를 따르라는 '명령'은 웃고 넘기기에 우리는 너무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인 제공자들은 사건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남아있는 사람들끼리 싸움을 붙여 자신들의 존재를 망각시키게 하려는 것입니다. <크레이지>에서 군부대에 명령을 지시한 '몸통'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오그덴 마시에 남아있는 원주민들과 타자들은 서로 '죽이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 상황은 정말 기막히게 말 그대로 '돌고 돌게' 됩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또한 음모론에 일조합니다. 연방수사관 테드 그린(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정신병 판정을 받은 일급 살인자들만 모인 셔터 아일랜드에 도착합니다. 도저히 탈출할 수 없는 천혜의 섬에서 한 여죄수가 도망쳤기 때문이지요. 밀실과도 같은 곳에서 한 여죄수가 (글자 그대로) 증발을 했는데, 그곳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은 새로 온 수사관에게 적대적이고, 한결같이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습니다. 테드 그린은 이 섬에서 살인자들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벌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곳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셔터 아일랜드가 묘사하고 있는 시대는 1950년대입니다. 1950년대의 미국은,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를 목격하고 원자폭탄의 공포를 체험한 미국인들의 트라우마와, 한국전쟁과 수소폭탄의 공포 그리고 이웃을 의심하는 빨갱이 사냥(매카시즘)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신경증적인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기에 음모론이 발생하는 것은 특별한 사항이 아닙니다. 어쩌면 음모론은 이런 거대한 고통을 견디지 못한 개인이 국가로 '떠넘길 수 있는' 도피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닐 마샬 감독의 <둠스데이: 지구 최후의 날(Doomsday)> 역시 음모론을 보여줍니다. 위에 언급한 두 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음모론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 있다는 점이지요. 시기는 현재. 스코틀랜드에서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발병했습니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인간은 피를 쏟고 죽어버립니다. 잉글랜드는 거대한 벽으로 스코틀랜드 주위를 둘러 쌓고, 그 벽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사람이던, 동물이던 닥치는 대로 죽입니다. 25년 후, 없어진 줄 알았던 리퍼 바이러스가 런던에서 발생하기 시작하고, 정부는 이 사실을 조용히 해결하기 위해 특공대를 조직합니다. 리퍼 바이러스로 몰살당했을 스코틀랜드에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들이 백신을 개발했음을 깨닫습니다. 특공대는 48시간 안에 스코틀랜드에 가서 백신을 구해와야 합니다. 

   알 수 없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쓰러지는 시민들을 향해 정부와 군인이 한 일은 도시를 겪리시키는 일입니다. 그 안에서는 자신들이 왜 격리당하는지, 왜 사람들이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정보는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으며, 음모는 은밀히 자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닐 마샬 감독은 다른 자의식 있는 감독들과는 달리 화끈한 결말을 보여줍니다. 국민을 바이러스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그 대가를 받아야지요. 문명이 있고 없고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 영화는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습니다. 

 

   천안함 실종자 장병들의 귀환과 사건의 전말이 말끔히 드러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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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4-1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인데 50년전에 프랑스 시골마을에 빵먹고 떼로 미친 사건 생각납니다..
무슨 바이러스다, 광신이다, 생체실험이다..여러가지 떠도는 소문중..
절대 아니라고 뻥치더만 결국 50년만에 밝혀진 CIA LSD생체실험--;
필로뽄도 첨엔 몰핀처럼 치료약이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LSD는 완죤 고문을 위해 조제된 합성화학무기인데 참 잘도 민간에 불법실험을 그것도 지네 나라도 아니고 프랑스에서~
이런일이 지금도 없을리는 만무하고ㅡㅡ;
차라리 아마존에서 미개?하게 사는게 인류에는 더 나은 진화인거 같습니다..

Tomek 2010-04-13 09:17   좋아요 0 | URL
헉.. 이게 실제로 있었던 일인가요?
그냥 거짓이라고 여기고 싶습니다. 무섭네요... 얼른 석유가 고갈돼야.. (응?)
^.^;

카스피 2010-04-13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진정한 음모론을 알고 싶으시다면 해냄에서 나온 그림자 정부 시리즈를 읽어보세요.현실 음모론의 결정판적인 책입니다^^

Tomek 2010-04-13 09:15   좋아요 0 | URL
와. 목차만 훓어봤는데 정말 엄청나네요. 정치와 경제편은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