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6월 2주

 

이번에 개봉하는 <H2: 어느 살인마의 가족 이야기>는 롭 좀비 감독의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의 속편입니다. 국내 포스터 제작사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단 우측부에 표시된 <2009 충무로 국제 영화제 공식 상영작>이란 문구를 보고 거의 쓰러졌습니다. 이런 센스쟁이들 같으니라고. 이건 누가 보더라도 '칸 영화제'같아 보이는데!  

<할로윈>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존 카펜터 감독의 원작을 이야기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감독 롭 좀비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역겹고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4편의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 롭 좀비(Rob Zombie)는 1990년대 음악계의 한 구석을 차지한 화이트 좀비(White Zombie)의 리더입니다. 마를린 맨슨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음악은 온갖 금기시 되는 내용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아마도 번역된 가사를 읽으신다면 청심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만큼 이들의 음악은 듣는 이를 불안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이 세계를 회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롭 좀비가 감독 선언을 하고 만든 작품이 있으니 바로 <살인마 가족(House of 1000 Corpses)>입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토브 후퍼 감독의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의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젊은 남녀들이 어떤 외딴 집에 들르게 되는데, 그 집은 가족 전체가 살인마라는 이야기! 영화의 원제처럼 그들이 머무는 집에는 1000구가 넘는 시체들로 쌓여있고, 영화는 시간, 악마주의, 생체실험, 인육식사 등 온갖 금기시되는 것들이 흘러듭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단순히 유희에 끌려있다는 점입니다. 어떠한 쾌락도 없고 반성도 없이 영화는 그저 변태적 고문 쇼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정말 "내가 왜 이런 영화를 보고 있나"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라는 매체와 공포라는 장르에 대해 회의를 불러일으킵니다. 매체와 장르에 대한 자기반성? 그렇다고 보기에 이 영화는 너무 치기어리고, 야심이 가득하며, 게다가 자신의 취향까지 꾹꾹 눌러 담은 신인감독의 영화입니다. 살인마 가족이라는 구성과 각 캐릭터는 놀랍고 친근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아찔하지만, 영화는 그 이상을 나가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는 2001년에 유니버셜에서 제작했으나, 너무 지루하다는 이유로(롭 좀비의 말에 따르면 너무 끔찍하다는 이유로) 공개를 하지 않다가 감독 자신이 판권을 사서 캐나다 영화사 라이온스 게이트에 팔아 2003년에 개봉했습니다. 뮤지션 출신의 영화감독은 한 편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 그가 2005년에 <살인마 가족2(The Devil's Rejects)>를 내놓았습니다. 이 영화는 정말로... 끝까지 간 영화입니다. 영화는 전편의 이야기에서 바로 시작합니다. 경찰들이 이 가족의 존재를 알아채고 들이닥칩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경찰들이 죽고, 살인마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합니다. 베이비, 오티스, 스폴딩(딸, 아들, 아빠의 관계)만 도망치고 이들은 추격을 받게 됩니다. 이 도주 상황에서도 이들 가족은 끔찍한 유희를 벌이는데, 잔인한 장면은 없지만, 정서적으로 정말 견디기 힘든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정말로 '악마도 거부'할 것 같은 무시무시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쫓는 보안관 윌리엄 또한 이들과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는 공권력의 힘을 한껏 이용하여 전편에서 죽은 그의 형에 대한 복수를 합니다. 살인마 가족들은 결국 그에게 잡히고, 그는 가족들에게 그들이 행한 고문을 똑같이 합니다. 여기서부터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데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살인범을 처단한다는 통쾌함의 쾌감보다는 피해자 입장의 안타까움을 느끼는 기이한 경험을 합니다. 물론 이런 주제는 크쥐시도프 키에슬롭스키 감독이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 이미 다룬 주제이지만, 롭 좀비는 극단까지 밀어붙입니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단순한 유희로 1000여명을 학살한 괴물들을 그와 똑같이 고문한다면, 우리는 그 자격이 있는 것인가? 아니, 우리는 견딜 수 있을까? 우리도 똑같이 괴물이 되는 것 아닐까? 롭 좀비 감독은 아주 지독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현란한 액션과 고문 사이에서.   

 

그래서일까요?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을 리메이크한다고 했을 때, 여러 감독이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낙점된 것은 롭 좀비였습니다. 이 두 작품을 본 관객들은 도대체 롭 좀비가 어떻게 <할로윈>을 그려낼지 궁금했습니다.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은 사실 급조된 프로젝트입니다. 제작사측에서 할로윈에 개봉할 기획영화를 준비하고 있던 차에 존 카펜터가 바로 수락하고 한 달이 안 되는 기간에 영화를 만들었지요. <할로윈>은 '부기맨' 이야기와 보모 이야기를 결합한 싸이코패스 스릴러입니다. 살인마의 시점으로 그려낸 영화의 오프닝은 오손 웰즈의 <악의 손길>에 맞장 뜰만 하고, 시네마스코프 사이즈를 최대한 활용한 마이클 마이어스의 등장과 제이미 리 커티스의 비명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업적은, 가면 쓴 살인마의 원형을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이후 80년대 이후 슬래셔 영화에서 <할로윈>의 영향을 벗어난 영화가 얼마나 있는지 한 번 확인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은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상황을 보여주고, 진행을 한 후 조금씩 그 빈자리를 정보로 채워주지만, 그 정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짐작만 있고 설명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무력하게,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할로윈>뿐 아니라, 70년대에 등장한 많은 영화들, 윌리엄 프레드킨의 <엑소시스트>,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 리처드 도너의 <오멘>, 토브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데이빗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 등의 영화들이 다 그렇습니다. 설명은 없고 불긴한 기운이 감돌며 엔딩은 거의가 배드엔딩이지요. 이런 분위기는 당시 베트남 전쟁의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사력을 다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은 지옥을 보여주었고, 그 지옥은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분위기는 "아마도 지금이 종말에 가까운 순간"이라 느꼈으며, 그 당시를 반영한 이런 공포영화들은 선은 악을 이기지 못하고 혹은 이기더라도 그 악은 사라진 게 아니며, 진정한 구원은 자신만의 세계로 침전하는 것뿐이라는 탄식에 가까운 절망을 보여주었습니다.   

 

롭 좀비 감독이 리메이크한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은 원작에서 10여분에 그린 이야기를 한 시간에 걸쳐 이야기합니다. 이 부분이 <할로윈> 리메이크의 강점이자 단점입니다. 강점이라 생각되는 이유는 원작에서 설명을 하지 않았던 부분을 주의 깊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마이클 마이어스가 내면이 텅 빈 인물임을 알고 있지만, 그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알지 못합니다. 롭 좀비는 그 깊이를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작에서는 유령같이 보였던 마이클이 리메이크에서는 실체가 부여됩니다. 게다가 원작에서는 무차별적인 살인이 리메이크에서는 어느 정도 개연성을 찾게 되었습니다. 바로 '가족'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개연성이 반대로 영화의 공포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원작의 무차별적 살인은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키지만, 리메이크에서는 그 공포가 한 발 비껴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안전장치 때문이지요. 하지만, 롭 좀비의 리메이크는 원작과 버금가는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플래티넘 듄스가 어설프게 리메이크한 일련의 작품들보다 스튜디오에서 기획한 고전들의 리메이크보다, 훨씬 창의성 있는 리메이크입니다.  

흥미롭게도 롭 좀비 감독이 그리는 세계는 (<그라인드 하우스>에서 감독한 가짜 예고편 <나치 친위대의 늑대여자(Werewolf Women of the SS)>를 제외한다면) 모두 1970년대입니다. 그는 1970년대와 가족이라는 구성체에 대해 (스필버그와는 정반대의 접근으로) 끈질기게 질문합니다. 전작 <할로윈>에서는 어린 마이클 마이어스의 내면의 텅 빔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 속편 에서는 바로 마이클 마이어스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사 이 영화는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는데, 마이클 마이어스의 이야기를 변질시켰다는 분노도 있는 반면, 새로운 접근이라는 찬사도 있습니다. 물론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선택할지는 관객의 자유입니다. 

  

*덧붙임: 

롭 좀비 감독의 가짜 예고편 <나치 친위대의 늑대여자>를 보시면 이 감독의 취향이 어떤지 조금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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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6-09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이트 좀비라는 그룹에서 음악하는 아저씨가 영화도 아주 자기가 하는 음악 분위기와 딱 맞춰서 만들더군요..^^

Tomek 2010-06-10 08:26   좋아요 0 | URL
보기에 꽤 힘들더군요. <살로 혹은 소돔의 120일>만큼의 정서적 고문이랄까. 파졸리니는 파시스트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놓았지만, 롭 좀비는... 아직까지 뭐라 평가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저 그런 시시한 영화들과는 달리 제 맘 속에 남더군요. 일라이 로스의 <호스텔>은 애교 수준인 것 같더군요. ㅠㅠ

Mephistopheles 2010-06-10 10:09   좋아요 0 | URL
음악이나 영화나 극단으로 열심히 달려나가는 아저씨니까..앞으로 어떤 사고(?)를 칠지...궁금합니다. 그리고 전 H20에서 마이클 마이어스의 집착의 대상인 누나(제이미 리 커티스)에거 도끼로 목이 댕강 날라가는 걸 보고 아 이제 프래디와 제이슨만 남는구나 했는데....부활하더군요...ㅋㅋ

Tomek 2010-06-10 15:54   좋아요 0 | URL
식칼 하나로 호러계를 평정한 전설인데 그만한 예우는 갖춰야죠~ :)
고맙습니다.

카스피 2010-06-10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정말 대단한 영화 분석이네요^^ 그나저나 공포 영화라 여름에 보면 더위가 싹 달아나겠죠^^

Tomek 2010-06-10 15:56   좋아요 0 | URL
문제는 식상한 공포영화들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겠죠. 아마 90% 이상은 쓰레기가 확실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감식안이 철저하게 필요한 장르인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