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7월 2주

 

며칠 전에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하얀 리본>을 봤습니다. 이 영화는 인디포럼 월례비행에서 본 정재훈 감독의 <호수길>처럼 보는 순간 극도의 인내를 요하는 힘든 영화지만, 보고 난 후에야 정말 엄청난 영화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즉각적인 반응에 휘둘리는 것이 아닌, 온전히 경험하고 나서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1913년 오스트리아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을의 의사가 외진을 다녀오는 길에 낙마하는 사고를 겪습니다. 누군가가 길에 줄을 묶어 놓아 일부러 사고를 일으킨 것이죠. 증거가 없어 사건은 흐지부지 되어가는 와중에 소작농 부인이 사고로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마을을 지배하는 남작의 관할지에서 벌어진 사건이지만, 사건은 부인의 잘못으로 처리됩니다. 그 후 남작의 아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되고, 마을은 공포에 떨게 됩니다.  

<하얀 리본>은 몇 줄로 이야기를 설명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제가 낑낑대며 쓴 줄거리는 영화를 1/10도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얀 리본>은 몇 명의 주인공에 집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마을을 둘러싼 불길한 기운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한적한 시골마을은 불길함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엄격한 목사는 잔인한 방법으로 자식들을 통제합니다. 인자한 의사는 자신의 딸과 근친상간의 관계이고, 마을의 산파와 밀회를 갖습니다. 아이들은 이상한 비밀을 지닌 듯 무리를 짓고 다니고, 그 중 한 명은 꿈속에서 다음 희생자를 봅니다. 이것은 언뜻 <트윈 픽스>의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마크 프로스트와 데이빗 린치가 창조해낸 가상의 마을 트윈 픽스 또한 같은 이야기를 다룹니다. 차이가 있다면, 데이빗 린치는 이 이야기들을 '불길하게 드러냅니다.' 사운드는 뒤틀려 있고, 화면은 어두우며 인물들은 하나같이 기괴합니다. 외부인인 데일 쿠퍼가 마을에 들어가 사건을 해결하지만, 결국엔 그도 그 마을의 일원이 됩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착한 데일은 '검은 오두막'에 잡혀 있고, 나쁜 데일이 트윈 픽스에 있게 되죠. 데이빗 린치는 트윈 픽스의 미스터리를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 '밥(BOB)'이라는 악의 형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트윈 픽스>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볼지, 아니면, 숲에 거주하는 악의 소행으로 볼지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미카엘 하네케의 방식은 다릅니다. 그는 이 기괴한 이야기에 감정이 개입할 수 없도록 흑백으로 찍었습니다. 음악도 영화 속에서 연주되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한 곡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흥미로운 이야기의 살을 다 발라내고 뼈만 남겼습니다. 그럼으로써 그가 다루는 것은 (저 너머에 있는 이상한 힘이 아닌) 반복되는 폭력의 순환입니다.  

<하얀 리본>의 작은 마을은 계급 사회입니다. 남작이 지배하고 부르주아 계급인 목사와 성직자가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작농으로 살고 있지요. 계급을 막론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폭력은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는 아이들을 다루는 방법입니다. 새장 안에 갇혀 길들여진 새는 자유를 모르기 때문에 새장을 벗어나 살 수 없습니다. 어른들은 폭력으로 아이들을 제어하고 협박하며 자신의 시스템 안에 길들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하기 마련입니다. 폭력으로 점철된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시스템을 만들고, 그 시스템에 복속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어른들의 방식으로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이 지나치도록 무서운 폭력의 순환! 속하지 못하면 내치는 전체주의의 발로! 작은 마을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새 국가와 시대에 대한 이야기로 바뀝니다. 일련의 죽음들 속에서, 사라예보에서 암살된 황태자의 죽음으로 끝나는 영화는 묘한 울림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유럽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테니까요. 

 

자신들만의 공고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빌리지>가 있습니다. 끔찍한 사회를 견디지 못해 문명 세계의 모든 기억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건국해 살아가는 어른들은 옆 마을(바깥세상)에 관한 아이들의 호기심을 말끔히 지워버립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공포를 조장하는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미신의 시대에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는 엄청난 법이니까요. 어른들의 편리로 아이들은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새장에 갇힌 새처럼 갇혀 지냅니다. 결국 모든 비밀이 밝혀지지만,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눈이 먼 소녀입니다. 그녀는 마을로 돌아가 그녀가 겪은 일을 자신의 상상력에 기대어 이야기 할 것이고, 그렇게 마을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공고히 다져질 것입니다.  

<하얀 리본>의 하얀 리본은 정직과 순수를 의미합니다. 목사는 저녁 식사 시간을 지키지 않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매질을 하며 하얀 리본을 매게 한 후, 이 하얀 리본을 보면서 정직과 순수를 떠올리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은 강제로 맨 하얀 리본을 통해 배웠습니다. 마을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폭력, 위선, 시기, 절망, 분노가 바로 아이들에게는 하얀 리본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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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7-09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캐이블에서 해줬던 스티븐 킹 원작의 살렘스 롯(뱀파이어 빌리지)도 분위기 하나 만큼은 끝내주더군요.

Tomek 2010-07-10 07:11   좋아요 0 | URL
전 살렘스 롯하고 옥수수밭의 아이들하고 자꾸 헷갈려요... ㅠㅠ 저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