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4월 1주

   초서와 엘리엇 말고도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매년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영화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입니다(정확히 표현하자면, 영화사와 관련된 사람들이나 극장주들이겠지요). 전통적으로 4월은 비수기거든요. 어두컴컴한 영화관보다는 겨울을 이겨낸 따듯한 봄기운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수익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보통 4월엔 블록버스터의 횡포로 개봉을 하지 못했던 내실있는 작은 영화들이 개봉을 하는 기간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요즘 개봉작의 싸이클을 보면 비수기는 없어진 것 같아 보입니다. 전통적으로 여름과 겨울에만 찾아오던 대작들이 늘상 찾아오는 셈이지요. 이건 마치 하우스 재배 과일을 먹는 것 같은 떨떠름함이지만,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번주 개봉작 중 가장 기대하는 작품은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의 <타이탄(The Clash of the Titans)>입니다. <터미네이터 4>와 <아바타>에 출현해 상종가를 치고 있는 샘 워싱턴이 위대한 영웅 페르세우스를 연기했지요. 이건 취향의 문제이기도 한데, 전 '그리스 신화'를 다룬 작품이라면, 따지지 않고 그냥 봅니다. 신화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어던 이야기의 '원형'이 담겨있으니까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접해왔던 내용이라 별 거부감없이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타이탄>은 페르세우스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신화에서 페르세우스는 제우스의 비호를 받으며 메두사의 목을 베고, 제물로 바친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하며, 자신의 아버지 이크리시오스를 (본의 아니게 예언대로) 죽여 아르고스 왕국을 차지하는 인물입니다. 보이지 않는 투구,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발, 방패와 칼, 메두사와 바다괴물과의 사투, 안드로메다 공주와의 멜로 등 페르세우스 이야기에는 매력적인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헐리우드 제작자들이 이런 소재를 놓칠리가 없지요. 페르세우스 이야기는 각색을 거쳐 새로운 이야기로 태어났습니다.  

   이 이야기는 원작이 있습니다. 1981년 데스몬드 데이비스 감독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레이 해리하우젠이 만든 <타이탄족의 멸망(The Clash of the Titans)>이 2010년 <타이탄>의 원작입니다. 이 영화 또한 (당연하게도) 페르세우스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원작은 제우스와 테티스의 아들 갈등을 기본으로 다뤘습니다. 테티스의 아들 캘러보스가 실수를 저질렀는데, 제우스가 벌을 내렸지요. 테티스는 마음이 상해 제우스의 아들인 페르세우스에게 고난을 내립니다. 페르세우스는 안드로메다 공주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녀의 어머니 카시오페아의 망언으로 올림포스 신들의 분노를 삽니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안드로메다를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크라켄'이 아이티오피아를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라 으름장을 놓습니다.  페르세우스는 인간이 크라켄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메두사의 머리라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얻으러 길을 떠납니다. 

   원작이 유명한 것은 레이 해리하우젠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때문입니다. 그의 불세출의 작품인 <아르고 황금 대탐험(Jason And The Argonauts)>만큼의 놀라움은 아니지만, 메두사, 전갈, 크라켄 등 크리처의 모습이나 액션은 정말로 놀라울 지경입니다. 이런 매력적인 요소때문에 리메이크를 진행했겠죠. 

   리메이크 <타이탄>은 제우스와 테티스의 갈등이 아닌, 제우스와 그의 형 하데스와의 갈등으로 극이 빚어집니다. 하데스의 농간에 넘어간 제우스는 하데스가 아이티오피아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을 묵인합니다. 저승의 신이 왜 그렇게 바다에서 등장하는지 잘 모르겠지만(좀 무리수이긴 했지요) 그런대로 원작의 이야기와 신화를 잘 비틀어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 원작의 유명한 크리처들은 모두 등장하고, 규모는 커지고, 속도는 빨라졌으며, 액션은 뛰어납니다. 물론 아날로그나 디지털 모두 진짜같지 않은 이질감은 보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겠지요. 하지만 공들인 액션씬은 모두 재미있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다룬 또 다른 작품은 볼프강 페터슨 감독의 <트로이(Troy)>입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각색한 것인데, 말이 각색이지 원작의 흥취를 다 드러낸 작품입니다. 이동진 기자는 이 영화를 평하면서 "호머가 봤다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을 것"이라고 악평을 했었는데, 그 심정 백분 공감합니다. 

   『일리아스』올림포스 신들의 대리 전쟁입니다. 그런데 볼프강 페터슨 감독은 이 영화에서 올림포스 신들의 이야기를 싹 뺐습니다. 남는 것은 인간과 인간이 벌이는 아비규환 전투뿐이지요. 두 영웅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라는 멋진 캐릭터가 남아있지만, 그들이 벌이는 액션은 흥분보다는 실망감이 앞섭니다. 엄청난 병사들이 벌이는 대규모의 전투는 <반지의 제왕>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즉각적으로 떠오를 정도로 독창성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헐리우드가 아니라면, 우리는 언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일기토를 벌이는 장면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을까요? 영화는 그런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볼프강 페터슨 감독도 무언가 아쉬웠는지(아니면 제작사의 우려먹기 전술인지) 2008년에 확장판 DVD를 출시했습니다. 내용이 변하진 않았고, 조금 더 잔인한 장면과 여인들의 누드 장면이 포함되었습니다. 

 

         

   『일리아스』를 언급했으니, 짝패 서사시 『오뒷세이아』를 빼놓을 순 없지요. 『오뒷세이아』를 다룬 영화는 꽤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고향에 돌아가는 오뒷세이아의 모험은 영화로 만들기에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죠. 오뒷세이아가 만나는 괴물들만 하더라도 엄청나니까요. 여러 영화들이 있지만, 제가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코헨 형제가 감독한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O Brother, Where Art Thou?)>입니다. 코헨 형제는 신화의 세계를 재현하기 보다는, 오뒷세이아 이야기를 과거 미국으로 옮겼습니다. 

   오뒷세이아가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정말로 웃깁니다. 맹인에게 예언을 듣는 장면이나 외눈박이 거인을 만나는 장면, 특히 마지막 대홍수는 정말로 쓰러지게 만들지요. 오뒷세이아 이야기를 이렇게나 유쾌하게 그릴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 외 여러 영화들이 있지만,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영화는 이정도일 것 같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다룬 최고의 영화는 아마도 <아르고 황금 대탐험>이 되겠지만, 이 영화를 보기엔 수고가 듭니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도해야겠어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10-04-0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스 신화를 제외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은 바로 호머가 저술했다는 일리어드와 오딧세이입니다.아직까지 두 작품을 호머가 저술했다고 아시는 분이 많은데 학계에선 실제 호머란 인물이 저술했는지는 차치하고 일단 두 작품의 성향이 전혀 달라서 한 인물이 저술한 것은 아니라고 하는것이 대세더군요.
현재는 대체로 일리어드는 남성이 오딧세우스는 여성이 저술했다는 설이 차츰 힘을 얻어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오딧세우스의 내용중에 여성의 모습은 현실적으로 잘 묘사되었으나 남성의 모습은 비 현실적(즉 남성이 하는 일을 잘 모르는 이가 저술함)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Tomek 2010-04-06 10:03   좋아요 0 | URL
제가 들은 설은 호메로스는 개인이 아니라, '창작집단'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성별이 다른 저자라는 사실은 놀랍네요. 어쩌면 호메로스는 나관중처럼 저자거리에 흘러다니는 이야기를 취합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 고맙습니다. ^.^;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4주

   아직 3월 31일은 안 됐지만, 3기 무비매니아 활동이 채 사흘도 남지 않은 지금에서야, 지난 3개월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지난 1월 1일부터 3월 28일까지 3개월간 극장에서 본 영화는 총 12편이었습니다. 그 중 시사회가 4편이었고, 재개봉작 1편과 나머지 7편은 유료관람이었습니다. DVD나 TV, IPTV의 영화는 헤아리지 않았으니까, 실제로는 이보단 많겠지만 뭐 대중 소급하면 이정도일 것 같습니다.  

   무비매니아 활동을 하면서 일신상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극장에 간 횟수가 평소보다 늘어낫다는 것이겠지요. 전 개봉관, 특히 멀티플렉스에서 영화관람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입니다. 그곳에서 영화를 보려면 굉장히 많은 것들에 신경을 써야 하거든요. 앞 뒤에서 풍기는 나초와 팝콘 냄새, 주위에서 쏘아대는 휴대전화 레이저빔, 여자친구(혹은 후배)에게 친절히 내용을 암송하는 아이들, 회사일과 집안일을 극장에서 전화로 처리하시는 어르신들, 뒷자리에서 발길질하는 아이들까지. 정말이지 집중을 하기가 힘이 들지요... 

   이렇게 극장을 싫어하면서도(정확히 표현하자면 멀티플렉스의 분위기이지만서도), 이 3개월동안, 극장에서 두 번 관람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 영화들은 위에서 열거한 이런 고통을 감내하면서, 마치 피리부는 사나이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저를 다시 극장으로 이끌었습니다. 왠만한 영화는 2차 판권(DVD)이 풀릴 때 다시 감상하지만, 이 영화들은 그 기간을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저를 다시 불러들인 경우입니다. '위대한 영화'라기 보다는, 저 개인적으로 가슴에 울린 영화들이겠지요. 3월 마지막 주, 무비매니아 마지막 영화 미션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맺을까 합니다. 

 

   처음에 봤을 땐, 사랑스런 하나 氏 때문에 봤습니다. 신연식 감독이나, 안성기 氏는 모두 제 고려대상에서 벗어났지요. '영화야 어찌됐건, 최소한 <식객>때보다는 괜찮게 나왔겠지'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이미 여러차례 이 블로그에서 얘기했지만, <페어러브>는 50여년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던, 그래서 이제는 자신을 가둔 그 벽마저 자기 자신의 일부가 된 형만(안성기)이 남은(이하나)을 만나 그 벽을 깨고 나와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한 50대의 나이에서 자신의 자아를 찾는 이야기는 어찌보면 진부한 소재일 수도 있지만, 신연식 감독은 그 진부한 소재를 어찌보면 다소 자극적인 소재로 버무려 다루었습니다. 친구의 딸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지요. 자칫 잘못하면 '지저분한' 이야기로 흐를수도 있지만, 신연식 감독은 이 이야기를 잘 다루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 <페어러브>는 단순한 사랑이야기로 읽혀졌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서로에게 공정한 사랑은 인생을 오래 산 형만이나, 형만의 절반정도만 산 남은이나 어느쪽이나 유리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고통은 사랑을 하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공평하게 찾아갑니다. 그렇기때문에 그들은 그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시작'할 여지가 생겼겠지요. 

   하지만, 다시 감상했을 때, 결국 이 영화는 '인생'을 생각하는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스스로 달리지 않고, 이제는 쳇바퀴의 관성에 편안히 몸을 맡기는 멈춰진 삶. 대부분의 인생은 다 그렇지 않을까요? 형만은 남은 덕분에, 자신의 공간,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직시하게 됩니다. 관성에 안주한 삶을 포기하고, 쳇바퀴에 내려, 스스로 다시 달릴 준비를 합니다. 이것은 굉장한 결단이지요.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입니다. 형만과 남은의 사랑이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장면, 남은이 형만의 병원 침대의 가려진 커튼 밖에서 얘기하는 모습은 실제인지, 형만의 꿈인지는 제게는 더이상 상관 없습니다. 어찌됐건, 형만은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할 것이니까요.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결과는 "오십 대 오십"입니다.  

   남은의 "우리, 다시 시작해요"란 말은 형만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다시 시작합니다.

 

   7년이나 지난, 이미 잊혀진 사건을 지금에서야 꺼내는 것은 감독의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금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거물 간첩' 송두율 교수에 대한 이야기에서 2010년을 사는 우리들에게 이 이야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했지요. 이 영화, 절대로 가벼운 영화가 아닙니다. 

   처음 봤을 때는, 갈팡질팡 진술을 번복하는 송 교수에 대한 실망감과, 그를 둘러싼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 '찢어죽이지 못해' 안달하지 못하는 보수 단체들과, 운동성에 흠집을 냈으니 전향하라고 윽박지르는 진보 단체들의 장단에 맞추어 정신 없이 봤습니다. 이것은 홍형숙 감독의 의도한 편집이라기 보다는, 실제로 이렇게 급박하게 사건이 진행된 면이 컸었지요. 언론이 나선 점도 있었지만, 이 모두를 미쳐버리게 만든 장을 마련한 주체는 '대한민국'과 '국가 보안법'이었습니다. 저 역시 영화를 보면서 제 안에 자리잡고 있는 '레드 컴플렉스'와 사투를 벌이며 '전투적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에 사는 대한국민은 그 크기는 다를지라도, 모두 저마다의 '레드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체험해준 영화입니다. 

   어느정도 머릿속을 진정하고 난 후, 두 번째 재감상했을때, 드디어, 이 영화의 주인공인 송두율 교수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학자이자 자연인으로써 경계인으로 살고자 했던 그의 신념과 37년간의 저항이 어떻게 한순간에 이리도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와 우리 사회를 둘러싼 '집단 광기'가 어디서 발현됐는지를 천천히 곱씹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두 번 봐야 그 의미가 제대로 다가오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셔터 아일랜드>가 있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 별 기대하지 않고 봤습니다. 예고편을 봤을 때, 대충 어떤 느낌의 영화일지 그려졌거든요. 영화를 봤을 때도 계속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스포일러를 언급하지 않고 영화를 이야기하기가 워낙 쉽지 않아, 영화를 본 제 반응을 알려드리자면, "음, 그렇군. 그렇군. 그렇게 되는군. 그렇게 되겠지. 그렇지. 그렇지. 응? 뭐라고? 헉! 헉!! 헉!!!" 뭐 이랬습니다. 저는 끝까지 음모론을 놓지 않았습니다. 분명 뭔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다가 결국 자승자박에 걸린 셈이였지요. 영화의 초중반에는 50년대 미국인들의 트라우마인 2차 세계대전, 핵폭탄과 매카시즘의 공포를 음모론과 다룬 수작이라 생각했으나, 영화의 말미에 가서, 지금까지의 생각을 다시 재구성해야 했지요. 그래서 다시 관람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봤을 땐, 이 영화가 잘 짜여진 스릴러라 생각했으나, 두 번째 봤을 땐, 참으로 슬픈 영화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내용을 알고 볼 때와 모르고 볼 때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보안관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둘러싼 수 많은 조연들의 연기가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이런 미묘한 균형을 세우는 영화를 만든 공은 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공이 큽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든, 이 영화는 그에 합당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왜 하필 1950년대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는 <택시 드라이버>나 <좋은 친구들>같이 동시대를 다루는 영화는 나올 수 없는 것인가하고 짧게 탄식을 했지만, 이내 지워버렸습니다. 스콜세지 감독은 <갱스 오브 뉴욕>에서 하층민을 통한 미국의 역사를, <애비에이터>에서 상류층을 통한 미국의 역사를 그렸습니다. (실망스러웠던 <디파티드>를 제외한다면) 그는 <셔터 아일랜드>로 미국 중산층을 통한 미국의 역사를 쓴 셈입니다. 스콜세지는 그만의 방식으로 미국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급한 세 편의 영화는 지금 극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페어러브>와 <경계도시2>는 극장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은 볼만한 영화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3기 활동을 마무리하게 되어 시원 섭섭합니다. 다음에는 더 즐거운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겠습니다. 좋은 기회 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3-29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9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3주

    

   3월 18일에 개봉하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신작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살인자들의 섬(Shutter Island)』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제임스 얼로이의 '소설 영화화'는 성공과 실패의 부침을 반복하는 반면, 데니스 루헤인의 경우는 '3연속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제임스 얼로이의 소설은 수많은 인간관계를 통해(그의 별명이 범죄소설계의 헤밍웨이로 불리우니 알만 하잖은가) 사건의 핵심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영화화가 쉽지 않은 반면, 데니스 루헤인은 사건이 벌어진 시대의 분위기를 담는다. 바로 그런 점이 영화 감독들의 구미를 당기지 않았을까?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아 그저 기대할 뿐이지만, 영화 역시 소설의 기본 설정을 그대로 따라간 것 같다. 대신 마틴 스콜세지라면 소설의 줄거리를 따라가기 보다는 아마도 주인공 테디 보안관의 심리 상태와 1950년대의 미국을 감싸고 있던 '서로 의심하는' 매카시즘의 공포를 적절히 배합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스토리는 오래전에 합격점을 받아놨으니 스콜세지 감독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데리고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놓았는지 지켜볼 일만 남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미스틱 리버(Mystic River)>를 칸 영화제에서 발표했을 때, 한 기자가 그의 전작인 <블러드 워크(Blood Work)>(이 작품은 『시인』으로 유명한 마이클 코넬리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와 <미스틱 리버>간에 영화적 완성도의 간극에 대해 묻자 이스트우드 옹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소설에 있는 대로 찍었을 뿐입니다." 이스트우드 감독은 고정된 팀으로 영화를 찍어왔는데, <블러드 워크>와 <미스틱 리버> 모두 브라이언 헬겔랜드가 시나리오를 작업했다. <블러드 워크>가 매끈한 스릴러였다면, <미스틱 리버>는 매끈한 스릴러에 셰익스피어적 비극이 깃들여 있다. 친구들간의 우정,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봉합되지 못한 편견이 한데 어울려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직조해나가기 시작한다. '매끈한 스릴러 상업영화'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영화에는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커다란 "울림"이 깃들여 있다.  

   숀 펜, 팀 로빈스, 케빈 베이컨, 로렌스 피시번 등 '연기 좀 하는' 배우들이 한데 모여 다그치고 울부짖고 서로 의심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모골을 송연하게 만든다. 이 영화로 숀 펜과 팀 로빈스가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과 조연상을 수상했는데, 상이 더 있었다면, 아마도 나머지 배우들도 수상했을 것이다.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적 점핑은 데니스 루헤인의 『미스틱 리버』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그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 <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등으로 계속 점핑을 해갔다.

 

         

   그런면에서 벤 에플렉의 감독 데뷔작 <곤 베이비 곤(Gone Baby Gone)>은 평가를 조금 유보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 물론 굉장하다. 벤 에플렉은 비록 배우로서 많이 소비되었지만, <굿 윌 헌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면, 작가/감독의 능력 또한 기대할만 하다. 하지만, 그는 너무 안전한 선택을 했다.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은 '헐리우드'라는 시스템에서 영화를 찍는 그 누구라도 '그럴듯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소재다. 거장들이 변주를 하거나 삶의 통찰을 끌어낼 수도 있는 영화를 그는 매끈한 영화로 만들었다. 걸작이라 하기에는 데니스 루헤인의 이름이 너무도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다. 아마도 벤 에플렉의 감독으로서의 평가는 올해 공개될 <The Town>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2주

 

 

   <경계도시 2>를 봤어. 어제 3월 11일. 평소에는 쥐뿔도 없더구만, 이날은 왠일인지 시사회가 두 개나 당첨이 됐어. 하나는 익무에서 진행한 <크레이지(The Crazies)>라는 영화고, 다른 하나는 딴지에서 진행한 <경계도시2>였어. 내 취향으로는 <크레이지>를 보는 게 맞지만, 눈물을 머금고 <경계도시2>를 선택했어. 딴지 당첨이 먼저 발표되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인 송두율 교수에 대해 관심이 있기도 했었거든. 

   난 철학과를 나왔어. 대학은 요즘 총학 부정선거로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 명지대학교야. 영화 얘기하는데, 왜 적을 이야기하냐고? 왜냐하면, 난 철학을 임석진 교수님한테서 배웠거든.  

 

 

   임석진 교수님의 헤겔에 관한 업적은 전 세계적으로도 놀랄만한 성과를 이루셨어(다들 그렇다고 하더라고. 난 워낙 공부를 안해서 잘 모르겠지만. 반성하는 부분이야). 그래서 어디가서 같잖은 철학논쟁 같은 것 하다가 말이 막힐때, "내가 임교수님께 배웠을 때, 그런 말씀 없으셨는데" 이렇게 한마디 해버리면 그냥 깨갱할 정도로 학문적으로 엄청난 권위가 있지. 하지만 대부분 '임석진'이란 이름을 들으면 "동백림 사건"이 떠오를거야. 

   2000년인가 『월간조선』에 기고하신 글을 읽어보니,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북한 영사관에 들락날락 거리고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시고 그 당시에 굉장히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아. 몇 번 북한에도 왔다갔다 하셨지만, 그것은 순수하게 학문적인 관심이었다고 쓰셨고. 유학생들이 북한과 교류하는 것도 학문적인 관심으로 봤기 때문에, 신고해도 면책받을 거라 생각하셨나봐. 세상물정 모르신 학자다운 순수함이지.  

   그런데 그 결과는 어땠지? 참혹했잖아. 교수님은 교수님대로, 간첩 혐의를 받은 사람들은 그들대로. 다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지. 그 엄청난 학문적 업적에도 임 교수님은 철학과 정교수로 채용되지 못하고 교양학부 교수로 지내셨어. 자신의 학과를 세운 게 1995년도 일이야. 정교수로 퇴임하시기 고작 3년 전 일이지. 그럼 간첩으로 몰려 고문당하고 추방당한 사람들은? 1999년엔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동백림 사건으로 추방당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있는데, "임석진이..." 하면서 말을 못잇는 장면이 있었어. 그러니 더이상 말해 뭣해? 

 

 

   내가 송두율 교수에게 관심이 생긴 것은 내가 적을 둔 학과의 이런 특성 때문이었어. 그럼 우리학과의 교수님들 분위기 또한 알만하겠지? 난 정말 궁금했었어. 정확히 임석진 교수님과 반대의 위치에 있는 송두율 교수에 대해 우리 교수님들은 어떤 코멘트를 할까? 교수님들은 거의 침묵을 지켰었는데, 딱 한 교수님이 송 교수에 대해 말을 하셨어. "그거 독일에서 교수로 쳐주지 않습니다. 교수 아닙니다."

   무슨 얘기냐면, 영화에 나오지 않아서 아쉬운 장면이기도 했는데, 2003년 송두율 교수가 37년만에 귀국을 하고 기자회견에서 소회를 밝힐 때, 조선일보 기자가 질문을 했어. "교수라고 하시는데 정교수 맞습니까?" 참 치졸한 질문이지. 아마 조선일보쪽에선 그때부터 도덕성 시비를 걸 생각이었던 것 같았어. 정교수가 아닌데 어디서 감히 교수라고 사칭하느냐 식의 뭐 그런 것들. 기가막혀서. 유치하지? 하지만 조선일보가 그런 의제를 만들어 내는 것만은 어떤면에서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해. 어차피 세상 유치하게 돌아가잖아. 

   이 문제는 『시사저널』(지금 시사저널 말고, 『시사IN』의 전신)에서 속시원하게 풀어줬었어. 독일의 교수 시스템은 내가 이해하기에 복잡했는데, 뭐 하여튼 정교수가 맞다고 확실히 증명한 기사였어. 난 그 기사를 포스팅해서 그 교수님 홈피에 올렸고. 

   남한 사회가 제일 처음 송두율 교수에게 들이민 잣대는 진실게임이었어. 교수 맞냐 아니냐로 시작해서, 북조선의 서열 23위 김철수가 맞냐 아니냐로 번져간 진실게임. 

   영화를 보면 "송 교수가 김철수가 맞냐 아니냐"에 대한 공방이 굉장히 많이 나와. 난 이걸 보고 『칼의 노래』에서 읽었던 '길삼봉' 이야기가 떠오르더라고. 조선시대 겁많은 선조가 임진왜란 때 길삼봉이란 의장의 세력이 두려워 다른 의장들을 여럿 죽이잖아. 실제로 길삼봉이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었지만, 길삼봉이란 허깨비가 실체가 된 순간, 길삼봉이 누구냐란 질문은 누가 길삼봉이냐란 질문으로 바뀌고 수많은 길삼봉들이 잡히고 목숨을 잃지. 다섯 살 짜리 아이들도 주리를 틀고 무릎이 깨지고 비명이 터지고. 그 때 취조를 한 관리를 작가 김훈은 이렇게 묘사했지. 농부가 벼를 베듯, "근면하게 살육했다". 이 부분에 이르니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가 떠오르네. 신경쓰지마. 생각이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생기는 병이야. 

   송 교수가 김철수가 맞냐 아니냐는 질문은 송 교수가 북에서 김철수로 불린다는 것을 알았냐 몰랐냐라는 질문으로 바뀌어. 이 부분에서 송교수는 자신의 말을 번복을 해. 귀국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고 했는데, 귀국하고 나서는 알고 있었다고 하지. 여기서부터 송 교수는 수세에 몰리기 시작해. 그리고 지리한 법정공방이 시작되지. 

   문제는 송 교수를 옹호하는 쪽에서도 오류에 빠지게 되는데, 피의자 신분인데도, 이미 죄를 진 것으로 간주하고 따뜻하게 감싸안자는 얘기를 해. 그를 옹호하는 진보나, 적대시하는 보수나 둘 다 국가보안법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서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지. 우리는 항상 남한만이 정당한 국가고 북한은 불법단체라는 '대전제'안에서 생각을 해왔고, 벗어나지 못했잖아. 이런 대전제를 깨뜨린 사람은 리영희 선생님 뿐이지.  

   이 국가보안법 때문에 남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북을 적으로 규정하고 살 수 밖에 없어. 남한에 태어난 이상, 사상을 선택할 자유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돼. 이런 상황 아래서 어떻게 균형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겠어? 냉전이 끝났다지만, 대한민국에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야.

   송 교수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37년을 대한민국이 아닌 곳에서 살았어. '전향'을 하면 남한에서 살 수 있게 해준다고 해도, 그는 그 오랜시간을 '경계인'으로 살았어. 북의 체제에 들어가지도, 남의 체제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 주위를 계속 맴돈 경계인.  

   남한은 그에게 백기를 들고 투항하라고 요구했어. 결국 송 교수는 독일 국적도 포기하고, 노동당 탈당하고, 남한의 모든 법(국가보안법을 포함한 모든 법)을 준수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하지. 무엇이 그의 학문적 자존심을 다 버리면서까지 이런 전향서를 낭독하게 했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조국이 그에게 돌려준 것은 '거물 간첩'이란 거창한 타이틀이였어. 

   당시 재판에서 15년의 징역을 선고받았을 때, 난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다시 읽었어. 그게 한 4번째 읽은 걸거야. 내 꿈이 있다면,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시대순으로 쭉 읽는 게 그 중 한 가지인데, 2003년 졸업을 앞두고 시도해보려다 실패했어. 『태백산맥』을 다시 집었으니까. 읽은 이유는 한 가지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이념, 빨갱이 이런 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물론 돌베게에서 나온 『다현사』시리즈를 읽으면 해결될 일이었겠지만, 난 정보를 원한 게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의 정서를 느끼고 싶었거든. 문학으로 역사를 배울 수는 없겠지만, 정서는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래서 내가 그 때 『태백산맥』을 읽은 것이고. 그리고 1년 후에는 『아리랑』을 다시 읽었어. 왜 읽었냐고?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때문이었지. 그러고보니 21세기는 나에게 독서를 강요한 것 같아.

   각설하고, 난 송교수가 마지막으로 한 기자회견에서, 김연수 작가의『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나오는 이길용/강시우처럼, 남한의 애국가와 북한의 애국가를 같이 불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어. 그만큼 당시의 송 교수는 너무나 힘들고 지쳐 보였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기 보다는 그저 변명하기에 급급했던 모습. 그의 그런 모습은 우리 사회가 강요한 것이야.  

 

   영화에 대해 별로 얘기를 안했는데, 이런말 하기 뭣하지만, 영화 진짜 재밌어. 이거 페이크 다큐 아닌가 싶을정도로 기막힌 장면들이 너무 많이 나와. 장르를 따지자면 코미디가 될거야. 하지만, 긍정의 카타르시스가 배출되지 않으니 블랙 코미디로 해야겠지. 아마 홍상수 감독이 정치 영화를 찍으면 이런 느낌의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얼마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봤는데, 왜 트위들 디 & 덤 형제들 있잖아. 이 영화에도 그와 비슷한 캐릭터가 나오더라고. 송 교수 1차 공판할 때 인터뷰한 사람들인데, 진짜 코미디였어. 극영화였으면 좋았을뻔 했어. 그럼 웃고 잊어버렸을텐데. 사실이라는 점이 서글펐어. 

   다들 알다시피, 2004년 송 교수는 9개월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나. 그가 제일 처음 간 곳은 고향 제주도의 바닷가였어. 어쩌면 그는 이 한 순간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것을 포기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가 바닷가를 거니는 모습은 참 쓸쓸해 보였어. 그리고 그는 출국했고 그로부터 6년이 지났어. 영화의 카피대로 "2003년 그는 스파이였고, 2010년 지금 그는 스파이가 아니다". 아니, 관심 자체가 없어진 거겠지. 이런 지난 사건 말고도 대한민국은 항상 뜨끈한 사건들로 넘치고 있잖아? 요미우리 신문과 관련된 일이랄지 뭐 그런 것들.  

 

 

   하지만 2003년 그가 한국사회에 던진 파장은 아직도 유효해. 1998년 이후, 이 땅을 지배하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자본이라 생각했지만, 아직도 이념의 벽은 공고해.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국가보안법이란 괴물이 없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송 교수같은 경계인을 절대로 표용하지 못할거야. 송 교수가 남한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임석진 교수님처럼,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하는 것 뿐이야. 그런데 그런 게 있을리 없잖아?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이 잔인한 '길삼봉 놀이'는 시지프스의 돌처럼 계속 반복될거야.  

 

   이 영화 전국 7개 관(서울이 아니야!)에서 3월 18일에 개봉한다고 해. 고작 1시간 40분짜리 영화인데도, 나같은 놈이 이렇게 많은 말을 뱉을 정도로 나를 뒤돌아볼 수 있는 영화였어.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 그리고 한 번 뒤돌아봤으면 좋겠어. 우리를, 이 사회를, 송 교수를. 그래도 우린 인간이잖아?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고. 아니, 어쩌면 이미 괴물일런지도...

 

   
 

인간의 범주가 얼마나 넓은 것일가를, 머리채를 잡히고 폭행을 당하던 바로 그 순간 똑똑히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은 주민등록증을 가진 괴물, 학생증이며 졸업증명서며 명함을 가진 괴물들이 가득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서로를 괴물이라 부르긴 좀 그렇잖아? 그래서 만들어낸 단어가 인간이 아닐까, 그녀는 생각했었다.  

- 박민규 「아침의 문」중에서 -         

   

  

 

*덧붙임 

1. 딴지일보 게시판에 올린 글이라 '딴지체'로 썼습니다. ^.^; 

2. <경계도시 2> 게봉관입니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optrash 2010-03-12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고 싶어져요

Tomek 2010-03-12 16:14   좋아요 0 | URL
영화 재밌어요. 꼭 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0-03-12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백림이 동백나무 숲인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동백림 사건 논픽션 같은 데에 임석진 이야기는 반드시 나오는데 약간 애매하게 흐리는 부분이 있더군요.그가 쓴 수기가 있다니 도서관 정간실에 가서 뒤져 봐야겠습니다.혹시 임석진에 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글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Tomek 2010-03-12 18:26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2000년 아니면 2001년 월간조선에 실렸었어요. 꽤 길게 실려서 읽어봤었는데, 아마도 그쪽 입맛에 맞게 각색됐을 게 농후합니다. 그거 실리고 몇 달 후에 임 교수님 홍보성 기사가 조선일보에 굉장히 크게 낫었거든요. 어찌보면 임 교수님과 조선일보의 윈윈 커넥션이었을 수도 있죠.
그 외에는 1999년에 MBC에서 방송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회에서 동백림사건을 다뤘고, 임 교수님 인터뷰도 땄었어요. 말은 많이 하시지 않으셨지만. 하지만 지금은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죄송해요. 별 도움이 못됐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3-12 18:30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제가 직접 찾아 읽어야지요.고맙습니다.

Tomek 2010-03-13 08:36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

머큐리 2010-03-12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될 수 있음 주변 사람들도 많이 델꼬가서 보려구요...너무 잘 읽었습니다

Tomek 2010-03-13 08:36   좋아요 0 | URL
<경계도시>도 같이 개봉했으면 좋았을텐데.. DVD는 세트로 나올지 모르겠어요.
고맙습니다. ^.^;

시네마달 2010-03-13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경계도시2> 배급사, 시네마 달입니다.

[딴지일보] 게시판서 먼저 읽고,
저희 블로그(blog.naver.com/bordercity2)로 그냥 스윽 퍼다놓았는데요 ^^:;
<경계도시> 전편에 대한 언급을 보고는,
아무래도 말씀드리고 가야겠군. 싶어 인사남깁니다 ^^

<경계도시>는 2편 개봉 후에 상황에 따라, 극장 혹은 온라인 개봉 등의 형식으로 보여드릴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지금으로서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없어 조금 죄송하지만,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 개봉 이후 어떤 식으로든 꼭 상영할 기회를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DVD는 또 그 다음 문제 ^^) '그렇게' 될 수 있게, 계속 응원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세요 ㅎㅎ

아, 글 너무 잘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정말 :)

Tomek 2010-03-14 16:30   좋아요 0 | URL
전편도 꼭 극장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게 꼭 응원할게요.
고맙습니다. ^.^;

미루 2010-03-14 0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석훈님 블로그 갔다가 경계도시2 얘기 있길래 검색해보다 여기까지 왔는데
리뷰 읽고 나니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솟는군요.

극장 가기 싫어해서 온라인 개봉되면 정말 좋겠는데
안되도 꼭 볼래요.

글 잘 읽었어요.

Tomek 2010-03-14 16:32   좋아요 0 | URL
극장에서 보시는 것도 좋으실거예요. 여러 사람들의 분위기를 알 수 있으니까요. 꼭 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친절한유씨씨 2010-03-16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국회에서 진행한 시사회에서 봤는데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씁쓸쌉싸름한 느낌... 이게 우리의 현실이라니... 저도 레드컴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라는걸 다시금 느꼈었죠. 적극 추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Tomek 2010-03-16 11:29   좋아요 0 | URL
저 역시 그랬습니다. 레드 컴플렉스는 언제쯤 벗겨질런지...
고맙습니다. ^.^;

az 2012-03-04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경계도시2" 보면서 제일 공감한 한마디가 이겁니다. "씨발 노동당원이 무슨 경계인이야." 그리고 변호사는 이런 반론도 있을 수 있다고 하죠. 노동당원이 되면서까지 북한에 들어갈거였으면 남한에도 충분히 준법서약 하고 들어올 수 있었다고.

Tomek 2012-03-06 13:10   좋아요 0 | URL
다시 한번 봐야겠습니다. 저도 그새 잊고있었네요.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1주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자라지 않아)
               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같지 않구나)

- 王昭君(왕소군) -              

 

   경칩을 하루 앞둔 오늘, 밀려가는 겨울은 꽃샘 추위로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키워보지만, 다가오는 봄의 따스한 숨결로 그 독한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추위를 견뎌낸 나무들과 대지는 한껏 녹색을 드러낼 준비에 바삐 보내고 있고, 조금씩 길어지는 아침해와 저녘해는 벌써부터 여름을 준비하는 것 같다. 계절은 완연한 봄기운을 흘리고, 난 그 향기에 취해있지만, 주위를 둘러싼 현실은 여전히 겨울인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든다. 

   저번주, 이번주, 다음주 개봉하는 영화들을 훓어보니까 흥미로운 영화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 관련된 주제로 걸러보니 두 편이 나왔는데, 옛날 영화를 한 편 더 보태 '정치-인'에 대한 주제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백하건데, 난 정치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화염병을 들고 쇠파이프를 들었을 땐, 대학생이라면 의당 그래야하는줄 알았었다. 하지만 의식화가 되지 않고 의무감으로 하는 '운동'이 얼마나 지속적일 수 있을까? 약 1년 반동안 하는둥 마는둥 시위를 하고 군대에 갔다. 제대를 하고, '데모'라고는 이제 학내 등록금 투쟁정도 밖에 없던 시절, 교양으로 듣던 정치외교 수업에서 처음으로 '정치'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때 그 교수님이 정치에 대해 이야기했던 게 생각난다. 

 

   
  신문을 보더라도 정치면은 안보고 스포츠, 연예면만 보는 너희들! 너희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얘기는 왜 그리 읽어대냐? 그게 너희들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데? 박세리가 LPGA에서 우승하는 게 너희에게 무슨 이득이 있냐? 김미현이 우승한다면 모르겠다. 아버지가 고깃집을 하니까, 혹시 알어? 우승하면 그날 고기는 공짜! 뭐 그런 게 걸릴 수도 있잖아. 그렇다면 그 소식은 나에게 이득이 될 수 있지. 하지만, 옌예인 가쉽이나 박찬호 승수가 너희 인생에 이득을 주진 않잖아? 좀 실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하지만 정치는, 너희들 인생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친다. 정치란 부패한 시스템이다. 그 안에 들어가면, 그 어떤 청렴한 사람이라도 부패하기 마련이야.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뽑은 우리는 두 눈 똑바로 뜨고 그들을 감시해야할 의무가 있는거야. 뽑아놓으면 끝이 아니라고.  
   

 

   거의 10년전에 들었던 강의라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난 정치에 조금씩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당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열성적이진 않으나, 그저 매일 뉴스를 체크하고, 선거때면 투표하는, 일상적인 관심은 지니고 있다. 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정치란 부패한 시스템"이란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정치와 정치인을 다룬 영화는 많지만, 대개는 부패하고 악덕한 인물들의 전형으로 묘사되는 것을 보면, 그 말이 틀린 것 같지 않다. 뭐 멀리 볼 것 없이, 지금 정치인들을 보면 대충 견적이 나오지 않는가. 이런 때에 정치인들에게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정치인을 다룬 영화가 나온 것이 반갑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라기 보다는 숀 펜의 영화라는 게 더 어울리는 영화 <밀크>는 하비 밀크라는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을 다룬 영화다. 그에 대해 알려진 바를 간단히 서술한다면, 그는 동성애자다. 그는 뉴욕에서 증권사에 근무하다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작은 카메라 가게를 차리고 그의 친구들이 부당한 편견과 폭력에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게이 인권운동을 펼친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에 당선된다.

   하비가 꿈꾸는 세상은 인종, 나이, 성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주는 '당연한' 세상이었다. 그는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고, 그 자신이 세상의 편견과 부딪혀 싸워왔다. (자신도 게이인) 구스 반 산트는 하비라는 인물을 드러내기 위해 가능한 개입하지 않는, 다큐멘터리적인 시선으로 하비를 보여준다. 그리고 숀 펜은 그 스스로 하비가 되어 하비의 정치를, 하비라는 정치인을 보여준다. 우리 정치인들도 (집에서 말고) 극장에서 꼭 좀 보셨으면 한다.

 

   넬슨 만델라. 27년간 옥중생활을 한 대통령. 세상에서 가장 극심한 인종차별이 벌어지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 그는 복수의 정치를 펼친 게 아니라 화합의 정치를 펼쳤다. 그 모든 사감을 털어내고 공적인 자리에서 정치를 펼친 위대한 인물. 클린트 이스티우드 감독은 이 위대한 정치인의 이야기를 럭비 월드컵으로 풀어낸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스포츠 지상주의를 혐오하지만, 그래도 스포츠에는 구성원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힘이 있다. 이 영화에서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럭비라는 스포츠를 통해 인종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국가의 구성원으로 하나가 되는 기적을 그렸다. 이만큼 간단하고 명료하게 넬슨 만델라의 업적을 그릴 수 있을까? '인간'으로써 하나되는 평등한 세상. 만델라 대통령은 그런 세상을 꿈꾸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또한, 경제나 강이 아닌, 이미 벌어질대로 벌어진 계층간의 경계를 허무는 게 아닐까?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항상 극단적인 평가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날 1979년 10월 26일에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정치인들이 벌인 행동은 그야말로 웃음만 나게 만든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언제나 문제작만 만들어내는 임상수 감독은 이 영화를 가감없이 "보고서에 쓰여있는 그대로" 찍었다고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들은 얼마나 한심한 사람들이며, 이런 한심한 사람들을 믿고 살아왔던 우리들은 얼마나 더 한심한 사람들이었나. '박정희'라는 우상이 깨어진날, 이 영화에서 우리는 일반 시민들이 그의 영정앞에서 울고 있는 모습이 담긴 기록필름을 볼 수 없다. 영화가 다룬 '그 때 그사람들'의 행동도 코미디였지만, 이 영화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신경질적인 반응 또한 코미디였다.  

 

   왜 우리에겐 존경할만한 정치인을 다룬 영화가 없을까? 그건 아마도 지금까지의 정치 자체가 코미디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치인은 코미디를 하고 코미디언은 정치를 하는 세상. 동혁이 형을 국회로 보내고 싶은 마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ovio 2010-03-10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 그것은 탐욕을 위한 성찬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같네요. 존경할만한 정치인이 없다, 참 가슴이 아픕니다. 그 원인을 찾아가보면 기막힌 사연들이나 이유가 나오겠지만 인간 자체가 문제란 생각도 듭니다. 올바른 정치인을 뽑지 못하는 풍토, 언제나 그게 현실적 벽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개인적으로 정치 일선에 있어본 적도 있었고 친구들 역시 보좌관이니 비서관으로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막힙니다. 이야기를 들으면 국민이 잘못하고 있기도 하고 그것에 목매단 정치인 역시 엉망이긴 마찬가지고. 이렇게 보면 나라발전이란 것이 과연 가능한지조차 모르겠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Tomek 2010-03-10 13:34   좋아요 0 | URL
'之'자로 걷더라도 어떻게든 앞으로는 가겠지요. 대안을 발견 못함을 절망으로 여겨야할지 희망으로 여겨야할지 모르겠지만, 희망으로 여길 수 있게 만들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흠... 역시나 이상적인 말이네요.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