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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4주

   <Bobby>를 봤다. 1968년 6월 4일.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 경선 중인 로버트 F. 케네디가 머물렀던 앰버서더 호텔. 그곳에서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벌이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는 눈물겹도록 지루했다. 물론 안소니 홉킨스, 샤론 스톤, 데미 무어, 마틴 쉰, 샤이아 라보프, 린제이 로한, 일라이저 우드, 애쉬튼 커쳐, 헬렌 헌트, 크리스찬 슬레이터, 로렌스 피시번, 그리고 배우이자 감독까지 맡은 에밀리오 에스터베즈의 출연은 놀라울 따름이지만, 영화는 이들의 스타성을 그저 소비하고만 있다. 에밀리오 에스터베즈와 데미 무어가 부부역을 한다는 사실이나, 데미 무어와 샤론 스톤이 한 씬에서 만난다는 사실은 영화 외적으로 흥미롭지만, 그 이상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정말 많은 스타들이 나오는데, 영화는 그들을 그냥 한 번 비치고 말 뿐이지 그 안을 들어서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바비(로버트 F. 케네디의 애칭)다. 바비는 약 두 컷 정도만 대역으로 나오고(그나마도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나머지는 생전의 인터뷰/기록 필름의 모습으로만 나온다. 그런데 그 기록필름의 위력이 대단하다. 1968년의 미국은 마치 지금의 대한민국과도 같다. '시위를 금지한다'는 맥카시 의원의 발언에 한 의원이 질문한다. "시위를 금지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러자 매카시 의원의 대답. "그들은 불법 시위를 벌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그럴 가능성이 있으니 아예 차단한다는 말은 근 2년간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많이 들었던 말인가.  67년에 쓴 필립 K. 딕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SF가 아니었나 보다. 

   영화는 종종 바비의 기록필름을 보여준다. 그가 얼마나 이상적인 정치가였으며, 대중에게 사랑받는 정치가였는지. '제국'이 되어가는 미국을 다시 '공화정'으로 되돌릴 수 있는 정치가로 국민들은 바비를 지지했다. 그러나 그는 1968년 6월 4일 암살당했고, 역사는 그렇게 흘러갔다. 

   대한민국의 정치상황과는 별 관계없는 미국의 한 정치인의 이야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울림이 큰 이유는, 그때 미국이 처한 상황과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일것이다. 이상은 사라지고, 물질만 남아있는, 말그대로 천민 자본주의의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상황. 2006년에 만들어진 영화가 2010년에야 개봉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바비의 형이자, 역시 암살당한, 대통령 JFK에 관한 영화인 <JFK> 역시 수많은 기록필름과 재현이 섞인 영화다. 이 영화가 개봉하고나서, 감독인 올리버 스톤은 JFK의 암살 사건을 수사/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맹비난을 받았다. 이 영화는 오류투성이고, 신빙성없는 음모론을 모아놓은 엉망인 영화라고 말이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정말 미국인들은 JFK를 리 하비 오스왈드 혼자 죽였다고 생각할까? 단 몇 초만에 150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8발 중 6발을 명중시킨것을, 그것도 움직이는 표적을! 그 사건을 겪지 못한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나조차 『워렌 보고서』를 믿지 못하는데, 하물며 당사자들은 어떠할까. 그리고 케네디가 죽고나서, 마틴 루터 킹, 바비가 연속적으로 암살당했다. 눈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TV로 지켜봤던 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영화에도 나온다. 주인공 짐 개리슨의 부인이 TV로 바비가 암살당한 장면을 보는 게)  

   이 영화는 바로 그들의 불안, 초조, 울분이 반영된 영화다. 영화는 정신없는 편집과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JFK의 암살사건을 다룬다. 영화를 보고 나면 'JFK의 죽음엔 무언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를 죽여서 이익을 얻게 된 자들은 누구일지. 무엇이 60년대를 그토록 야만적으로 만들었는지. 

 

 

   JFK와 바비 사이, 그리고 바비 이후에 닉슨이 있다. <JFK>를 찍은 올리버 스톤은 이번에도 예의 장기를 발휘해 편집증적인 화면을 장식하지만, 이 영화는 셰익스피어적인 비극에 가깝다. 세상에, 닉슨을 동정하다니.  

   미국 시민이 아니어서, 저 시대를 겪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지금껏 영화에서 닉슨은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묘사되기 일수였다. <닉슨>은 닉슨을 우상화하거나 깔보지 않는다. 그저 이미 운명이 결정된, 그래서 그 결말이 비극임을 알지만, 멈출 수 없는 한 인간의 고뇌를 보여준다. 결국, 그도 저 시대가 만들어낸 인간이었구나... 앞선 두 사람은 총에 맞아 죽었지만, 저 사람은 신의에 죽었구나. 이 영화를 보면, 정치적/도의적으로는 닉슨을 지지하지 않겠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연민하게 만든다. 

 

   후에, 몇 년이 걸릴지, 몇 십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도 두 명의 대통령을 다룬 짝패 영화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한 편은 모르겠지만, 다른 한 편은 (블랙) 코미디가 될 것이 분명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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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1-29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의 60년대가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요렇게 말하는 전 아는 것 하나 없었지만 얼마전에 매드맨이라는 미드를 봤거든요. 근데 완전 새로운 세계더라구요. ㅎㅎ 닉슨이랑 케네디 경합하는 얘기도 나오고, 아무튼 무척 흥미로웠어요!

[Bobby]는 궁금하기도 한데, 지루하다니 언젠간 보게 되겠죠; (..)

무비매니아셨군요. Tomek님 급은 되어야 무비매니아가 될 수 있구나. 흐흐~

사직서 내시는 건은 어떻게 되고 있으세요? 저랑 비슷한 시기에 인생을 새로 설계하시게 된 것 같아 동지애가 마구 샘솟아나네요 :) 힘내요, 우리!

Tomek 2010-01-29 16:49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을요.. 저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걸요. 무비매니아는 우울한 일상을 달래보려고 지원했었는데, 고맙게도 뽑아주신 경우에요. 일주일에 한 두편씩 강압적으로 글을 써야하는 스트레스는 즐거운 스트레스 같습니다. ^.^;

사직서는 오늘 제출했는데, 어떻게 처리될지 모르겠어요. 일단 인수인계도 생각해야해서 퇴사날짜는 2월 말일로 적긴 했는데. 제 의견을 존중해주신다고는 했는데, 아무래도 2월 첫주는 되어봐야 확실한 윤곽이 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작, 설레네요.

고맙습니다. ^.^;

novio 2010-02-03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세 편의 연결이 너무 절묘하네요. 케네디 두 형제의 죽음과 닉슨.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시끄러운 사람들이네요. 거기에 매카시까지 고려한다면 당시의 미국은 정말 격동의 시기였군요. 그나저나 매카시의 저 답변, 정말 위험한 발언입니다. 그리고 저런 발언이 오늘날 한국에서도 재생된다는 것이 정말 한스러울 뿐입니다

Tomek 2010-02-03 11:50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기가 찬 장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부쉬 대통령 시절, 이상을 꿈꾸는 대통령을 바란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다큐멘터리였다면 더 몰입이 잘 됐을텐데... 영화는 너무 아쉬워요. 인물들을 좀 덜어내던가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고맙습니다. ^.^;
 
"우리 다시 시작해요."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3주

   <페어러브>는 (이미 알려진대로) 형만(안성기)과 남은(이하나)의 사랑이야기다. 단, 이들의 관계는 (조금 혹은 매우) 특별한데, 남은은 형만의 친구 딸이다. 굳이 유교권 국가의 특성이 아니더라도,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런 사랑은 본인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둘러싼 주변에서도 납득하기가 힘들다. 이들의 사랑은 수 많은 난관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1. Fair Love (공평한 사랑) 

   형만은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지만 끊임없이 반문하고 회의한다. 그의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과는 조금 특별하게 흘러간다. 상대가 친구의 '딸'이기 때문이다. 형만은 이것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끊임없이 반문한다. "내가 이래도 되나?" 형만이 사랑에 빠지기 위해선 일단 자기 자신부터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그 후엔 그의 주변사람들의 분노와 비야냥을 설득해야 한다. "사실이냐? / 야! 이건 아니지. / 늙으막에 딸같은 여자애랑 연애하려니 고생이 많네." 그리고 마지막엔 남은마저 설득해야 한다. "이젠 아저씨 말고 오빠라고 부르는 게 어때?

   기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보여지는 그들의 사랑은 우리가 해왔고 봐왔던 사랑과 다르지 않다. 그저 그들이 처한 상황이 특별하기 때문에 그들(이라기 보단 형만)은 사랑 말고 윤리적인 판단까지 고려해야만 했다. 숱하게 고민하다 내뱉는 형만의 한마디, "에잇! 내가 뭐 죄짓는 것도 아니고. 그저 처녀총각이 만나 연애한다는 건데, 내가 왜 이래야해?" 맞는 말이다. 그들의 사랑은 사랑이다. 특별한 것 없는 일반적인 사랑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사랑이다. 페어 러브. 

 

 

1-1.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상처를 주는 사랑 

   <정사>의 사랑은 윤리적인 틀 안에선 불륜의 범주에 해당한다. 잘나가는 건축가와 결혼해 10살난 아들을 둔 서현(이미숙)이 그녀의 동생과 곧 결혼할 우인(이정재)를 만나서 한순간에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는 애틋하다기 보다는 안타깝다. 이들의 사랑은 설득의 대상이 너무나 많다. 서현의 남편, 아들, 그녀의 동생,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포기할 수 없는 안락한 생활 등.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이루어 놓은 세상을 포기하지 않은 채, 밀회를 즐기는 것 뿐이다. 하지만, 비밀은 영원할 수 없고 사랑엔 댓가가 따른다. 

   서현의 남편(송영창)은 이 일을 무마하려고 한다. 허상으로 채워진 안락한 부르주아의 세계를 깨뜨리기엔 그의 자존심은 허약하다. 하지만 서현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한다. 아들의 체육대회. 아들을 응원하러 간 서현이 우인을 보고 학교 과학실에서 정사를 벌인다. 그때 갑작스럽게 보여지는,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모습. 책임과 윤리 사이에 부유하는 서현의 사랑은 정말이지 안타깝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상처는 공평하지 않다.  

 

2. Fair Love (공정한 사랑) 

   영화 초반부. 형만이 남은의 집에 찾아갔을 때 남은이 이야기한다. "참 이상해요. 아빠가 돌아가실 때는 별로 울지 않았는데, 기르던 고양이가 죽었을 때는 시도때도 없이 계속 울었어요. 전 나쁜앤가 봐요." 그러자 형만의 말, "원래 내가 받은 사랑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내가 준 사랑은 기억에 많이 남는 법이거든. 그래서 부모가 죽었을 때 보다, 자식이 죽었을 때, 부모가 더 슬피 우는 것이지.

   덜 사랑하는 자가 '연애'라는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글을 어디에선가 읽은 것 같다. 맞는 말이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사랑은 늘 50:50으로 공정한 법은 아니다. 처음에는 50:50으로 사랑했다 하더라도 시간과 감정의 마모로 인해 그 양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양이 달라지면 종내는 파국을 맞기도 한다. 

   형만과 남은 역시 50:50의 사랑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을 둘러싼 수 많은 상황들과 그들 자신의 세계관의 충돌로 다른 사랑들과 똑같은 위기를 맞게 된다. 기계를 다루는 일이라면 모르겠으나, 사람을 다루는 일은 처음인 형만에게, 이런 위기는 힘이 든다. 하지만, 그런 위기는 사랑을 겪게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으레 겪는 것이기 마련이다. 다만 극복하느냐, 포기하느냐의 갈림길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어느 누가 더 주거나 덜 받은 것이 아닌, 서로 (공평하게) 사랑했다. "우리 이제 다시 시작해요."라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서로의 삶에 깊숙히 개입하고 영향을 주었다. 휘풀어진 그들의 삶은 '다시 시작'해서 하나의 완전한 사랑이 될 것이다. 사랑은 서로에게 공정한 것이다. 페어 러브. 

 

2-1.  기억에 머무는 사랑, 가슴에 머무는 사랑 

   하지만 아무리 다시 시작한다 하더라도, 그간의 상처를 봉합할 수 있을까? 그럴바엔 아예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은 그런 상상을 실제로 스크린에 그려냈다. 

   조엘(짐 캐리)과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은 사랑에 빠졌지만, 날이 지날수록 권태기에 빠지고 그들의 사랑에 위기가 찾아온다. 그래서 그들은 이별을 하고 서로의 기억을 지우기로 합의한다. 클레멘타인과 사랑했던 기억을 하나씩 지우면서,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결국 기억은 지워지고 그는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을 지웠다고 해서, 그 사람을 완전히 잊을 수 있을까? 머리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몸은 기억할 것이다.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다면, 그들은 알 수 없는 호감에 멈출 것이고, 또다시 사랑에 빠질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효기간이 있는 사랑에 대한 공포감을 클레멘타인은 이렇게 얘기했다. "당신은 언젠가 내게 실망을 할 것이고, 우린 서로에게 싫증을 느낄 것이고, 둘이 만나도 전혀 새롭지 않으며 어색한 침묵만이 계속해서 흐를거에요." 그러자 조엘의 대사. "(그런 생각따윈 잊어버리고 지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순간을) 즐겨요.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면, 설사 서로에 대한 기억이 지워진다 하더라도 우리의 가슴은 상대방을 알아볼 것이다. 단, 어느 누구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닌, 공평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할 것이다. 

 

3. 다시 <페어 러브> 

   이번주에도 시놉시스만으로도 사랑스럽고, 벌써 입소문이 심심치않게 돌고 있는 개봉영화들이 즐비하지만, 저번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같은 영화를 소개했다. 간만에 이렇게 사랑스런 영화는 오랜만인 것 같기도하고, 완성도나 재미면에 있어서도 빠지지 않는데도, 상영관 수 축소와 교차상영의 비애로 아마도 이번주가 지나면 거의 상영관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한 <페어 러브>가 너무 안타깝다. 그저 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을 누군가 읽고, 이 글을 퍼가서 다른 블로그나 게시판에 올려 입소문이 나, 이 영화가 조금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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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1-21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감상을 하셨군요.
꼭 보고 싶어지는 영화입니다.

Tomek 2010-01-21 10:26   좋아요 0 | URL
토요일에 한 번 더 볼 예정입니다. 거의 모든 상영관에서 내렸고 남은 상영관마저 교차상영이네요.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고맙습니다. ^.^;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2주
"우리 다시 시작해요."

   이번주 개봉영화 중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고 있는 작품이라면 단연, <페어 러브>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두 배우, 안성기 씨와 이하나 씨가 주연이라는 말에 진즉부터 기대하고 있었던 영화였다. 그런데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내용은 다소 파격적이다. 친구의 딸, 아빠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굳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롤리타(Lolita)>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復讐するは我にあり)>, 루이 말 감독의 <데미지(Damage)>,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로리타(Lolita)>, 샘 맨더스 감독의 <아메리칸 뷰티(American Beauty)>등 온갖 '엽기 패륜'을 다룬 영화가 즉각적으로 떠오른 것은 아무래도 내 영화 취향에 큰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를 검색해본 결과 내가 생각한 그런 (지저분한) 영화는 아닌 것 같았다(당연하지!!).  

 

       

   <페어 러브>에 관심이 간 또다른 이유는 이 영화의 소설 때문이다.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이 없다. 신연식 감독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를 만들어 부산영화제에 개봉했다. 그런데 며칠전에 올라온 기사를 보니 감독 자신이 영화에서 시간과 화면의 제약때문에 담지 못했던 소소한 부분을 살려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기사보기 클릭

   보통 영화가 원작이 되는 소설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보게 되는데, 영화의 시나리오를 대충 각색해 영화가 개봉하기 몇 주 전에 서점 가판에 깔리기 마련이다. 이 소설들은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홍보'만을 위해 급조된 소설들이다. 사람들은 가판에 깔린, 영화 포스터가 표지에 실린 책을 보면서 영화를 인식하게 될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책'이 아니라, 수많은 마켓팅 수단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처음에 『페어 러브』가 소설로 나왔다고 했을 때, 이 역시 홍보의 수단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홍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각본가이자, 그 내용이 실제 자신의 경험담이라는 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모든 매체를 통해서 '완전히 토해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게 상술인지 진심인지는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뻔한 상술이 아닌 영화와 책의 공존을 꿈꾸는 경우는 『박쥐』가 있다. 박찬욱은 이전부터 영상의 소설화에 관심이 많았다. 『친절한 금자씨』로 슬쩍 간을 보더니 『박쥐』에서 본격적으로 그 작업을 시작했다. 영화 <박쥐>는 설명이 거의 없는 불친절한 영화다. 상현이 왜 그렇게 죽고 싶어했는지, 그 단체는 어느 곳인지, 태주, 강우, 라여사, 그리고 매주 모이는 마작 모임 등, 보여지는 것은 많았지만, 그 인물의 내면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감독은 그 부재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채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났고 그 부재를 채울 수 있었지만, 한정된 시간과 빠른 컷의 전환으로 단번에 알아차리기는 힘들었었다. 박찬욱 감독은 그 부재를 책으로 설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확실히 책은 단순히 영화를 복기하는 것이 아니라(시작지점부터 다르다) 인물들의 내면으로 침잠해 있다(게다가 『테레즈 라캥』이란 든든한 서사도 있으니...). 소설 『박쥐』는 영화 <박쥐>를 뛰어넘는 독자적인 작품은 아니지만, 두 작품은 서로를 보완한다.  

 

    

   문단에서 활동중인 작가가 쓴 경우도 있다. 김형경 작가가 쓴 『외출』은 허진호 감독의 「외출」시나리오를 토대로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이 발표되었을 때 문단에서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기사클릭) 기성작가가 영화를 바탕으로 소설을 쓴 일은 (적어도 한국에선) 전무했으니까. 소설과 영화 각 장단점이 있지만, '감정이입'이란 면에선 소설의 승리였다. 배용준의 복근을 보고 아픔보다는 질투심이 일어났으니까... 그건 평범한 30대의 몸이 아니다. 특별한 30대의 몸이지...  

 

    

   이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곁가지로 다루어본다. 외국의 경우엔 더 다양한 편인데,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아서 C. 클라크 경의『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2001: A Space Odyssey)>가 있다. 클라크 경의 단편 「센티넬」을 바탕으로 큐브릭 감독과 클라크 경이 이야기를 만든 후, 소설과 영화로 각각 제작 되었다. 놀라운 점은 소설과 영화 둘 다 각 영역에 무시못할 족적을 남겼다는 것이고, 각 작품이 각각 독립성을 지니면서도 서로 보완해주는 관계라는 점이다. 큐브릭 감독과 클라크 경은 영화계와 문단이 꿈꾸는 행복한 관계를 50여년 전에 이미 만든 셈이다.  

 

   신연식 감독/작가의 『페어 러브』는 이 목록에 추가될 수 있을까? 그 결과는 이번주가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 덧붙임 

요즘 <아바타(Avatar)>로 상한가를 치고 있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어비스(Abyss)>역시 소설로도 나왔습니다. 작가는 『엔더의 게임』, 『사자의 대변인』을 쓴 바로 그 유명한 올슨 스콧 카드입니다. 소설과 영화의 결말이 다르다고 하는데, 책이 절판된지 오래라 확인할 길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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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1-15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어러브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27살인가 차이가 나는 남자와의 사랑. 남자의 순수함이 많이 부각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Tomek 2010-01-15 16:24   좋아요 0 | URL
17일에 보려고 합니다. 벌써부터 기대되요. 책은 이벤트 결과 보고(아마도 당첨 안되겠지만서도.. ㅠㅠ) 24일에 주문하려 합니다. 헤헷.
고맙습니다. ^.^;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2010년 1월 1주 !

   겨울에 내리는 눈은 낭만적이고 서정적이다. 겨울의 눈은 아련한 첫사랑을 떠올리게도 하고, 유년시절을 떠올리게도 한다. 하얀 눈은 순결을 상징하기도 하고 속죄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길 그렇게 바라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것도 어느정도 '귀엽게' 내렸을 때 얘기다. 지난 1월 4일 월요일에 내린 눈은 귀엽기는 커녕 난생 처음으로 '고립'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정도로 쏟아내렸다. 서울에 살면서 눈때문에 고립감을 느낀 것은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낭만과 서정도 지나치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지 쏟아진 눈 때문에 이웃끼리 주먹다짐을 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아마도 자연앞에서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함을 같은 무력한 인간에게 화풀이를 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낭만이 아닌 광기로 가득한 눈, 아니 폭설을 다룬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아무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The Shining)』이다. 동절기면 문을 닫는 오버룩 호텔의 관리인으로 취직한 잭이 폭설과 호텔과 관련한 초자연현상으로 서서히 미쳐 가족들을 죽이려하는 내용이다. 스티븐 킹의 동명소설이 원작이지만, 잭 니콜슨의 광기와도 같은 연기와 등장인물의 등 뒤에 딱 달라붙어 따라다니는 듯한 카메라, 새하얀 설경의 이미지로 원작소설을 잡아먹은 괴물같은 영화다.(사족이지만, 'REDRUM'과 '해살'의 어감의 차이는 얼마나 큰가!! 황금가지의 '해살'번역은 번역과 언어의 한계를 느끼게 한 절망스런 '사건'이었다) 궁전과도 같이 큰 호텔안에서 느껴지는 폐쇄공포증은 무시무시하며, 마지막 아들 대니와 아버지 잭이 벌이는 눈밭 미로에서의 추격전은 소름을 돋게 만든다. 창백한 달빛 아래 하얗게 빛나는 눈은 마치 살인자의 칼날처럼 섬뜩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샤이닝』에서 눈은 광기의 눈이다.   

 

         

   눈하면 또 북반구를 빼놓을 수 없다. 흠뻑 쌓인 눈에 겨울이면 2개월씩 밤이 지속되는 곳을 영화가 가만 놔두었을리 없다. 알래스카에서 벌어지는 『써티데이즈 오브 나이트(30 Days of Night)』, 스웨덴에서 벌어지는 『프로스트바이텐(Frostbitten)』과 『렛미인(Låt den rätte komma in)』이 있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프로스트바이텐』을 꼽겠다. 다른 두 영화는 지나치게 심각한 반면, 『프로스트바이텐』은 공포와 코미디가 오가는 정말 '골때리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1944년 동부전선, 독일군에 쫓기던 한 무리가 숲속의 어느 집에 숨게 되는데 그곳에서 뱀파이어에게 당하고 만다. 그리고 현재, 그 중 뱀파이어가 되어버린 한명이 병원에서 실험을 하게 되고 그 실험의 산물인 알약이 아이들에게 유통되면서 조용한 마을은 뱀파이어의 습격을 받게 된다.  

   솔직히 영화는 좀 어설픈 면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불안한 10대가 뱀파이어가 된다는 것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불안한 10대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오직 본성만으로 질주하는 모습은 얼마나 끔찍한가!!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파악하지 못해 허둥대는 10대 뱀파이어들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귀엽다. 피보다 술과 마약을 더 탐닉하는 뱀파이어도, 절대절명의 순간에 농담을 건네는 뱀파이어들의 모습도 신선하다. 이 영화의 10대 뱀파이어들은 욕망을 따르면서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10대건 어른이건 뱀파이어는 뱀파이어. 이들은 작은 마을을 완전히 지옥으로 만들어버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눈덮인 하얀 설원에 불타는 마을. 그리고 그 위에 휘영청 떠있는 달. 술과 마약에 취한 뱀파이어가 말한다. "밤은 길어. 이제부터 두달간 밤이라고!" 낭만적인 북구의 설원과 밤은 악귀들이 날뛰는 지옥으로 변한다.   

 

    

   하지만 진짜 눈이라면 남극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남극에서 벌어지는 자멸극에 대한 이야기는 존 카펜터의 『괴물(The Thing)』과 임필성의 『남극일기』가 있다. 완성도로 따지자면 『괴물』이 더 낫지만, 이야기로는 『남극일기』가 더 끌린다. 『괴물』이 눈에 보이는 '괴물'을 상대한다면, 『남극일기』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과의 망령과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하 80도의 혹한, 낮과 밤이 6개월씩 지속되는 남극. 탐험대장 최도형(송강호)을 비롯한 6명의 탐험대원은 '도달불능점' 정복에 나선다. 그 와중에 막내 민재(유지태)가  80년전 영국탐험대의 「남극일기」를 발견하고 대원들은 점점 이상한 상황에 맞닥드리게 되고 하나 둘씩 남극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거리감을 느낄 수 없는 새하얀 설원과 크레바스, 블리자드 등 자연재해가 발생되는 상황에서 이들은 본래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서서히 미쳐버린다. 걸어서 도착할 수 없다는 '도달불능점' 정복이라는 목표는, 도형에게는 자신의 잘못을 속죄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으나, 결국엔 피로 물든 '고해성사'가 된다. 영화의 마지막, 도달불능점을 통과하고 어딘가로 계속 행군하는 도형의 모습은 마치 지옥을 걷는 것 같다. 순백의 설원은 너무나 투명해서 그곳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죄가 비칠 정도이다. 눈을 바라보는 것과 직접 걷는 것은 그렇게 큰 차이가 있다. 

 

   가능하면 개봉 영화를 찾아보려 했으나, 신년 주초에 있었던 '눈사태'와 관련한 영화를 찾다보니 모두 구작이 되었다. 그저 다음주에도 '눈사태'와 관련한 영화를 뒤적거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임  

1. 『닥터 지바고』를 뺀 것은 정말 아쉬웠지만, 이 테마엔 도저히 넣을 수 없겠죠... 

2. 눈을 보고 광기만 생각하니 너무 살벌한 것 같군요. 노컷뉴스에서는 '폭설 연가' - 시인 10명의 폭설/눈 예찬기사를 실었습니다. 아직 읽지 못하셨으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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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1-06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샤이닝] 저도 보고 싶었는데, 봐야할지 아직도 망설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겁이 많잖아요^^ 근데 왜 자꾸 공포물 연관 글에만 댓글을 다는지 모르겠군요;;;
2. [프로스트바이텐] 이거 재밌겠네요. 그냥 무서운 것 보다는 코믹, B급 호러들이 더 취향에 맞더라구요. ㅎㅎ 찍어두겠습니다!
3. [남극일기]는 저 진짜 무섭게 봤거든요. 진짜 무서워서 죽는줄 알았는데, 심리 공포물 중 제가 본것 중에는 가장 무서웠지 않나 싶어요. 하지만 평이 별로 안좋아서 씁쓸했는데 Tomek님이 추천해주시니 마음이 좀 나아지네요. ㅎㅎ 얼마 전에 심리공포물이라는 [파라노말 액티비티]를 봤는데 너무 별로였어요. 눈이 자극에만 익숙해진건지(2번 댓글과 연관이 되네요) 아니면 외국의 공포물이랑은 맞지 않는건지 모르겠어요 ㅎㅎ

Tomek 2010-01-06 16:14   좋아요 0 | URL
1. 『샤이닝』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미저리』가 작가의 악몽이라면 『샤이닝』은 작가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에게 악몽이겠죠. 전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라는 문장으로만 이루어진 원고를 봤을 때 정말 무서웠습니다. 저 당시엔 워드프로세스가 없었을테니, 누군가가 전부 직접 타자기로 쳤을텐데... 아마 저 원고 만드느라 여럿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군데군데 보이는 오타가 소름끼치게 했지요.
2. 『프로스트바이텐』은 부천영화제에서 봤었는데 아쉽게도 아직까지 수입이 안되고 있습니다. 그때 같이 봤던 『세브란스』는 개봉을 했건만.. ㅠㅠ 아무 정보없이 봤었는데 많은 관객들하고 낄낄거리며 봤었어요. 아마 어둠의 경로로는 보실 수 있으실 듯...
3. 『남극일기』는 저도 상당히 으스스하게 봤습니다. 그런데 다들 '저놈 죽여라'식의 평밖에 없어서... Forgettable님도 이 영화를 좋아하시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
4. 『파라노말 액티비티』정말 별로인가요? 전 시놉시스와 약간의 스샷만 보고 저혼자 상상해버려 악몽도 꾸고 그랬는데... ㅠㅠ 저혼자 영화를 꿈꾸었군요. 긴 댓글 고맙습니다. ^.^;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가 드디어 제작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했다.(기사 읽기 클릭) 그의 100번째 영화인 <천년학>도 제작이 엎어질 뻔한 일이 있었는데, 신작을 만들 수 있다니 정말 다행한 일이다.  

         

   캐스팅은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가장 놀랐던 것은 필름이 아니라 디지털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다. 이미 100편의 영화작업을 한 장인이, 그것도 필름으로만 영화를 찍어왔던 감독이, 영화 인생의 황혼기에 새로운 도구로 영화를 찍는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감독 스스로의 확고한 미학적 선택인지, 아니면 제작비 감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타협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이번 영화는 현역 최고령 감독의 가장 새로운 영화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에 충분히 안주할 수 있으나, 항상 벗어나려 노력하고 늘 새로워지기를 원하는 임권택 감독의 행보는 나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21세기 들어 영화는 '디지털'이 화두가 되었다. 아마도 이것은 영화 제작자들에게 있어서는 혁명과도 같은 일이다. 필름은 한 번 찍으면 다시 쓸 수 없지만, 디지털은 이게 가능하다. 영화에서 필름은 24장의 사진을 이어붙여 1초를 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필름이 소모된다. 게다가 촬영이 한번에 끝나지는 않는다. 항상 무언가 일이 발생하며 수 많은 테이크가 일어나고 수많은 필름도 소모된다. 하지만 디지털은 필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1번의 테이크로 영화를 완성할 수도 있고, NG에 대한 부담감도 적어지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로운 작업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즉, 영화를 필름으로 찍을 것인가, 디지털로 찍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감독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필름은 필름을 아끼기 위해서(혹은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서. 이것은 같은 말이다) 모든 스태프, 연기자들의 높은 집중을 요한다. 조명, 미술, 야외라면 기후조건 등 수 많은 제약을 필름에 담기 위해서 노력한다. 현실적인 의미에서 이것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은 리허설 장면이 촬영본이 될 수 있다. 필름의 제약이 없고, 조명의 제약 또한 약하기 때문에 여러 방향에서 영화를 구성할 수 있다. 디지털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보다는 감독이 선택할 수 있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옮긴 감독은 여럿 있지만, 내가 관심있는(혹은 아는) 감독은 딱 2명이다. 데이빗 린치와 홍상수다.   

 

     

   데이빗 린치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이후 디지털에 심취해있다. 처음에 그는 디지털에 반대했으나, 몇 번의 디지털 작업을 한 후로 "다시는 필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작고 가벼운 디지털 장비를 이용해 촬영을 해보면 필름 촬영이 번거롭게 느껴진다. 내게 35밀리미터 필름카메라는 마치 공룡처럼 보인다. 그것은 크고 무게도 엄청나게 나간다. 그런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여야 한다. 여러 가지 작업을 해야 하는데 도대체 빨리할 수가 없다. 이런 이유로 필름카메라 작업에는 제약이 매우 많다. 반면 DV Digital Video촬영 시에는 모든 장비가 가벼워 이동성이 훨씬 좋고 매끄럽게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생각한 바를 곧바로 영상으로 잡아낼 수 있다.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그는 화가 출신이다. 화가는 혼자서 캔버스를 메운다. 그의 바람은 그림을 그리듯 혼자서 영화를 만들고 싶은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공동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작업을 하고 싶은 것 같다.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는 화질이다. 그는 HD 디지털 카메라를 선택하는 대신 화질이 떨어지는 'SONY PD150'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한다. 크기가 작아 운용하기가 쉽고 그가 좋아하는 1930년대의 필름과 비슷한 화질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란다. 미학적인 면에서 필름을 쫒아가는 것을 보면 그가 디지털을 선택한 것은 제작방식 때문인것 같다.   

 

       

   홍상수는 <해변의 여인>이후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첩첩산중>, <하.하.하>를 모두 디지털로 찍었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옮긴 이유가 궁금해서 <어떤 방문> 감독과의 대화에서 질문했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필름은 제가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그걸로 찍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생각해보진 않았습니다. 그러다 제작비 문제때문에 디지털을 택하게 됐는데, 필름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찍은 결과물을 보면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는 제게 없습니다. 좀 있다면 디지털은 줄무늬 있는 옷이 떨린다는 것 정도? 그리고 저는 영화를 찍을 때 테이크를 많이 찍는데, 필름은 아무래도 부담이 가죠. 하지만 디지털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을 택했습니다.  

(<첩첩산중> 감독과의 대화 中)

 
   

   홍상수에게는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제작상의 이유로 디지털을 택한 경우다. 

   임권택 감독의 경우는 어떨까? 디지털은 필름과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다. 디지털이 많이 따라잡았다 하더라도, 아직 필름의 그 질감을 따라잡지는 못한다. 임권택 감독이 어떤 결과물을 내밀지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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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트 2009-11-2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습니다. 임권택 감독 신작이 정말 궁금해지는군요.

Tomek 2009-11-23 09:38   좋아요 0 | URL
어떤 영화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가르강튀아 2009-11-21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Tomek 2009-11-23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행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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