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서예를 배운지 6개월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갈 때 반, 못갈 때 반이었다. 현재 '타, 터, 토, 투, 튜'를 배웠는데 꾸준히 수강했다면 지금쯤 어떤 문장을 익히고 있을 터였다. 우리 모임에서 평생학습축제에 작품 한 개씩을 내게되어 있었다. 아직 내 수준이라면 단어나 써서 내야겠다 싶었는데 선생님께서 서른 자 가량 되시는 구절을 주셨다.길이도 길이었지만 문장이 낯간지러웠다. 기왕 붓글씨 작품을 쓸 거라면 시를 쓰고 싶었다.

 

 

 

 

 

지금 내게 선택하라면 황진이의 시를 한 수 옮겨적는다 했을 텐데 당시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읽던 시가 김성대의 <사막 식당>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우울한 내용은 지양하라셨고, 시인의 시중 가장 서정적이라고 여긴 '월롱역'을 옮겨적기로 했다.

 

이번 주도 결석했다. 이러다 선생님 얼굴에 그야말로 먹칠하겠다 싶어 집에서 간간히 연습 중인데 거짓말 아니고 참 재밌다. 다만, 허리가 아플 뿐이다. 첫 날엔 글씨를 너무 크게 삐뚤빼뚤 써서 내 이름 석자 넣을 자리도 모자랐는데 둘째 날인 오늘은 이름을 넣는데 성공했다. 오늘 두번째 장을 쓰는데 왠걸 자리가 많이 남는다. 뚫어지게 쳐다보니 한 글자를 빼먹고 썼다. 아, 김샌다. 허리도 아프고 김도 새서 좀 긴 휴식을 갖는다. 바람이 불고 좋다. 다음엔 어떤 시를 써보면 좋을까, 이런 바람을 닮은 바람도 가져보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시집을 뒤적거려 쓰고 싶은 구절을 찾아볼까 싶어 책장에 갔는데 막막하다. 그러다 며칠 전 다녀온 낭독회가 생각났다.

 

 

그분들의 시집 중 집에 있는 것은 총 4명의 시인의 시집 6권이었는데, <사막 식당>에서 '월롱역' 찾아내기 어려웠던 만큼 붓글씨 쓰기에 괜찮은 시구 찾기가 쉽진 않다. 좋아하는 시라고 해도 붓글씨는 걸어두고 보는 작품이라 너무 우울하거나 어두운 구절은 피하게 된다. 더욱이 현대시의 경우 언어 유희가 많고 난해하기도 하여 더욱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낼 때의 희열, 그게 재미다, 고 말하기엔 너무 찾기가 어려웠다. 다들 왜 이리 우울한 시들만 쓰셨는지,,,나는 왜 이리 그들의 우울한 시들을 사랑하는지 처음으로 의문을 가져봤다.

 

 

 

 

 

 

 

 

 

1. 오은 '아이디어' 중

한 줄기 빛은

한 줄기 빛

발아가 이루어지면

한 포기 난초와

한 떨기 장미로 피어난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엄습하는 것들을 사랑해

 

 

2. 심보선 '휴일의 평화'

아름다운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사랑하는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문득 창밖의 풍경이 궁금합니다

 

3. 허연 '나비의 항로'

사막,

쓰고 말한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는 곳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는 기적이

하루 종일 일어난다는

 

앞으로는 시를 읽으면서 한 가지를 더 고려하게 될 것 같다. 시를 즐기는 나만의 방법이 또 하나 늘어난 것이 좋다 나쁘다는 잘 모르겠다만,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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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에 숨어사는 사람의 이야기. 김기덕 감독의 <빈집>이 떠올랐다. 개인적으로는 김기덕 감독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영화이다. 김기덕 감독의 <빈집>은 여백과 낭만이 좀 있었다면, 이번에 손현주 첫 단독 주연 영화작으로 더 알려진 <숨바꼭질>은 추리와 스릴러의 장르이다. 긴박하여 보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보려고 하는 자 검색하지 말지어다! 스포일러가 말도 못하게 심한 모양이다. 난 다행히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봐서 심하게 몰입하며 봤더니 지금도 밤이 서늘하다...

 

       

               

영화의 리뷰를 책리뷰보다 더 빠져서 썼던 때가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건대 내용, 의미, 음악, 편집 등등 다방면으로 신경을 썼어야 했던 것 같다. 책리뷰를 더 많이 쓰기 시작하던 어느 순간부터 영화 리뷰를 전혀 쓰지 않다가 요즘에 와서 간혹 쓴다. 그런데 예전만큼 다방면으로 신경을 쓰지 못한다. 더 게을러지고 덜 여유있어진 탓일 것이다. 더불어 영화 리뷰를 쓸 때에는 적극적으로 타인을 권유하는 입장으로 썼던 것 같다. 꼭 보던지 아니면 절대 보지 말라는 뜻으로. 하지만 책리뷰는 그런 자세가 아니라 지금은 너무 고쳐지지 않아 고민이지만 어쨌거나 나 자신의 머릿속을 정리하는 목적으로 시작해서 그 목적이 주를 이루어 좀더 개인적인 작업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 책리뷰를 많이 쓰면서부터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무엇을 권하고 말리고 하지 못하게 된 듯 하다. 결국은 더 게을러지고 덜 여유있어진 탓이 맞다.

 

어쨌거나 오늘 <숨바꼭질>을 봤고, 배우들의 연기가 거슬리는 것 없이 좋았고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 여운이 남는다. 그사람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누가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나는 아무런 책임은 없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다만, 왜 경찰을 재깍재깍 안부르고 도망은 안가고 할 일 다 하고 당하는지, 영화 일반에 대한 회의가 좀 들었지만 그건 내 담이 작기 때문인 탓도 있으므로 지나치기로 한다. 남의 집에 숨어 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식상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신선한 소재는 아닌데 연출을 잘 했다.

 

남의 집에 숨는 이야기를 영화가 아닌 책으로 읽은 적이 있던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 기술할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아마 가능하더라도 실화를 토대로 하는 방식이 가장 쉽지 않을까 싶어 찾아봤는데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있었다.

 

자기 집에 숨어 사는 여자에게 연민을 느끼는 집주인이라는데 어떤 사연이 있을까 궁금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고 상도 받은 소설이라고 한다.  이 소설을 살펴보다 보니 아주 유명한 책이 한 권 생각났다. 바로 <오페라의 유령>이다. 숨어 산 사람 중 팬텀은 말 그대로 갑!이다. 숨어사는 사람들, 그들은 분명 두려운 존재들이지만 일말의 연민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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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과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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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사과, 너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 황금 사과, 김경욱, 문학동네, 2002

 

 

 

 

사과의 계절이다. 서양의 기독교에서는 인류 최초의 음식이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신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고귀한 물질이었다. 가을빛을 가득 담고서야 열매를 획득할 수 있었던 시대를 지나 지금은 사시사철 돈만 있다면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되었다. 탐할 수 없었던 것조차도 모두 득할 수 있는 시대에 이제 와서 ‘황금 사과’를 들먹인 이유는 무엇일까? 독자를 파리스 삼아 베르송은 속권인가, 교권인가, 이단인가를 심판해 보라는 에리스의 주문 같은 것일까? 1998년 7월 12일 파리의 소르본 대학 도서관 고문헌실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더 멀고 낯선 1298년 프랑스 베르송의 주교 피에르의 죽음으로 나를 데려가 ‘황금 사과’를 손에 쥐어 준다. ‘나’의 손을 따라 ‘-말하자면, 이것은 내 젊은 날 우연히 만났던 어느 요리사에 대한 이야기이다.(22쪽)’라는 문장을 읽으면서부터 오로지 심판은 독자의 몫이다. 작가는 이 책을 텍스트라고 규정함으로서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겹쳐 읽으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사건 하나 질문 하나는 <황금 사과>이기 이전에 <장미의 이름>에도 해당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오로지 <황금 사과>만 읽었기에 내가 가진 이 의문들은 <장미의 이름>이 아닌 <황금 사과> 그 안에서만 유효하다. 그러하므로 내게 이 책은 당연히, 텍스트가 아니라 작품이다. 지금 내 손엔 작가가 쥐어준 ‘황금 사과’가 쥐어 있다. 이 사과를 누구에게 건넬 것인가? 나는 파리스처럼 감언이설에 넘어가 사과를 특정한 누군가에게 건넬 생각이 없다. 다만 이것을 텍스트가 끝날 때까지 꼭 쥐고 있음으로써 그들을 압박할 생각이다. 그리고 때때로 그들을 심판하고 ‘재앙’을 선물하여 조롱할 생각이다.

 

 

 

프랑스 베르송은 교황청과 프랑스 국왕 모두가 자신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특수한 지역이다. 주교가 죽었으니 다음 주교를 뽑아야할 터, 교황청은 교황청의 사람으로 국왕은 국왕의 사람으로 거기에 레이몽 부주교는 자신을 차기 주교로 삼고 싶다. 꼴사나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각 지역의 수장이라는 사람들이 한 사람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잇속에 열을 올리는 모습은 윌리엄이나 제롬, 토마스 못지않게 내가 봐도 참 꼴사납다. 윌리엄의 말처럼 ‘모두들 의로움보다는 이로움을 좇는’ 모습이었다. 이 꼴사나움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나는 그들에게 페스트를 선물하기로 했다. 윌리엄이 글로 쓰기도 민망할 정도의 막말이 오가는 참사회의 소란을 막은 것은 토마스 사제의 등장이었다.

“그러니까, 사인이 바로……페스트가 틀림없다고……판정을 내렸습니다.”

이 말에 이어 교권과 속권은 마치 육탄전을 벌이며 국회 의사당을 폭언과 폭력으로 물들였다가도 금세 허허실실 웃으며 국회를 나오는 국회의원들의 모습만큼이나 익숙하게 서로 사죄하며 악수를 나눈다.

 

질베르 영주의 돈 자랑 만찬 역시 참사회 못지않게 비웃음 거리었다. 자신의 권력을 교황청에게 과시하며 차기 주교를 자신들의 측근으로 선출하려는 그 속셈을 모르는 이는 없었지만 눈앞의 음식에 넋을 잃은 교회 사람들의 모습은 보는 내가 비참해졌다. 그래서 이번엔 그들에게 인육 파이를 선물하기로 했다. 자신의 만찬에 오른 음식이 인육 파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질베르 영주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자신이 주억주억 먹은 그 파이가 인육 파이임을 알고 난 교회 사람들의 속은 어떠했을까? 고소하다. 그러나 재앙을 해결하는 그들의 모습은 놀라웠다. 장과 로제 그리고 마리를 살인자가 아닌 이단으로 몰고 가는 데에 힘을 합쳤던 교권과 속권의 모습은 서로 으르렁 거리다가 막강한 적수가 나타났을 때 언제 그랬냐는 듯 연합하여 흠집 내기를 하는 정치권의 모습을 닮았다. 황금 사과는 여전히 내 손에 있다, 그들에겐 결코 쥐어줄 수 없다.

 

교권과 속권 외에 이단이라 불리는 한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나는 황금 사과를 이 무리에게 줄 것인가? 피에르 주교와 제롬 사제, 윌리엄의 아버지는 이단이라 불리는 무리였던 것인가? 윌리엄이 혼란을 느꼈던 것만큼 나 역시도 혼란을 느꼈다. 그러다 결국 ‘황금 사과’는 처음에 마음먹었던 것처럼 아무에게도 주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이단으로 처형된 푸줏간 사람들과 이단으로 몰린 사람들을 조롱하지는 않기로 했다. 피에르와 로제, 제롬의 마지막 모습은 비열하지 않았으므로. 조롱은 탐하지 말아야 할 것을 탐한 자들을 위한 것이므로.

 

 

 

파리스는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바치고 헬레네를 얻었다. 이로 인해 트로이는 짓밟히고 말았다. 탐할 수 없었던 것을 탐했던 탓에 일어난 일이다. 탐할 수 없었던 것을 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에게 무시로 주어지는 황금 사과들이 맛을 보아도 되는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 본다. 사과의 계절이다. 계절이 사라지는 지금, 이 계절을 사과의 계절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에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아직은, 이 계절을 사과의 계절이라고 부를 수 있어 다행이다. 아직은, 우리의 삶을 삶이라 부를 수 있어 다행이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던 ‘황금 사과’를 마지막 장을 읽으며 다시 1998년 7월 12일 파리의 소르본 대학 도서관 고문헌실로 돌려놓았고 그 뒤는 ‘나’에게 맡겼다. ‘나’가 읽었다던 프란체스코 회의 어느 수도사가 지었다는 시편을 따라 나도 한 번 물어본다.

 

 

 

황금 사과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어디에서 누구의 마음을 욕망으로 물들이고 있는 걸까?

어떤 이의 용맹함과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고귀함과 빼어남과 지성을 앗아가고 있는가?

 

 

 

*모두들 아시겠지만 제목은 김경주 시인의 시집을 차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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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달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좀 참으려고 했는데 요즘 창비 소설들이 좋은 책이 많이 나와서 일단 구입했다. 물론, 언제 읽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창비책의 경우는 창비 사이트에서 주로 구입하는 편인데 정기구독자에 대한 할인 서비스가 좋아서 몰아서 사곤 했다. 하지만 사실 한 출판사의 책을 몰아서 살 일이 크게 없어서 아주 자주는 이용하지 않는데 요즘 창비 책, 느낌 좋다!

 

김려령과 편혜영의 소설책

 

직접 뵈었었던 탓인지 김려령 작가에 대한 애정이 크다. 주로 청소년 소설을 많이 쓰셨고 얼마전 <파란 아이>라는 단편집에도 표제작을 실어 다음 작품은 좀 기다려야하는 모양이구나 했는데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몰랐다. 

리뷰들을 읽어보아도 이 소설에 대한 반응이 좋다는 것이 느껴져 구입했다. 가까이에서 이야기 나눈 작가님은 참 섬세한 결을 가지신 분이었다. 소녀같았고 여성스러웠다. <완득이>를 읽으면 영 매치가 안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 작가님이 잘 떠오를 것 같다. 제목도 좋다. <너를 봤어>

- 알라딘가 10,800원

 

 

 

편혜영 작가는 평단과 독자의 사랑을 모두 받는 여성 소설가로 알고 있다. 하지만 작가의 책을 아직 한 권도 갖지 못했고 작가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김애란 작가에 대한 글을 실은 것만 기억이 날 정도이니 편혜영 작가의 작품은 백지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읽어보고 싶었다. 평가의 정점을 찍고 있는 지금 작가의 소설은 어떤 색일까? 궁금하다. <밤이 지나간다.>

 

- 알라딘가 10,800원

 

 

 

 

 

 

 드디어 다니자키 준이치로(창비는 된발음을 좋아해서 타니자끼 준이찌로오)의 작품을 한 권 더 샀다. <열쇠>는 <미친 사랑>과 더불어 최근에 출간된 작가의 작품이다. 김영하 작가는 <세설>을 추천했으니 조만간 나머지 작품들도 야금야금 모으고 싶다. 탐미주의 홍 좋다 좋아~~~!

이 작품은 부부의 일기라는 형식으로 쓰여진 작품인데 청소년 시절 열쇠달린 다이어리를 떠올리게 한다. 다 열 수 있는데 괜히 잠근 그 열쇠 다이어리 말이다. 보라고 쓴 이 부부의 일기, 슬쩍!

 

- 알라딘가 10,800원

 

 

 

 

 

 그토록 연애하고 싶던 <사막 식당>이랑 드디어 결혼한다. 샀다 ㅎㅎㅎㅎ 사랑하는 시집이 될 것이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작가인데 이지원 번역가와는 찰떡 궁합인 듯 하다. 2013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라가치 대상(픽션 부문)을 수상한 작품으로, 작가 특유의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실 비싸서 망설였는데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니까! 느낌 아니까! (요즘 이 말 남발한다^^;)

 

 

- 알라딘가 각 7,200원, 14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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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황금 사과>를 읽고 있다. 인물들의 이름은 윌리엄, 토마스, 제롬 등이다. 한국 작가가 내 삶과 어느 한 가지만 중복되는 이야기를 쓰더라도 별 어려움 없이 소설 속 인물 중 하나에 나를 이입시키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서 다른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얽힌 이야기를 읽으면 이입이 쉽지는 않지만 이입이 된다면 단순히 시대나 나라나 이름 때문에 이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 자체에 이입이 되기 때문에 도리어 더 깊은 이입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이입의 문제를 떠나 나는 그런 소설 자체에 많이 놀란다.

 

우리 나라 작가가 깊은 다년간의 연구로 우리 나라의 역사 소설을 완성해도 대단해보이고 놀라워보이는데 심지어 다른 나라의 역사 소설을 완성할 때에는 그 과정에서 얼마나 연구를 많이 했을까 싶어 사실 읽는 동안 많이 감탄하면서 읽게 된다. 물론 탄탄한 개연성을 가진 작품들에 한해서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 살다보면 자연 우리 역사에 대해서는 알게 모르게 관심도 갖게 되고 지식도 쌓이게 되지만 중세 유럽의 삶에 대해서는 아마 처음부터 새롭게 알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싶은 마음이 들어 그 놀라움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우리가 펄벅의 <서태후>를 중국인들이 쓴 서태후에 관한 이야기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은 이국인의 눈으로 보았다는 관점의 문제 외에도 이런 감탄의 성격이 있을 것이다. 아마 내가 우리 작가가 쓴 중세 유럽 혹은 고대 아프리카 등등 낯선 세계의 이야기에 놀라움을 느끼는 것도 그와 같다.

 

최근 읽은 <랩소디 인 베를린>의 경우가 그러했고, 지금 읽고 있는 김경욱의 <황금 사과>가 그러하고, 꽤 오래 전에 읽은 조완선의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1,2>가 그러하다. <랩소디 인 베를린>의 경우 조선인의 후손이라고 추측되는 인물 요한 힌터마이어에서 시작된  18세기 말 독일의 이야기가 21세기 독일과 일본, 한국으로 폭넓게  확장되면서 진행되는 점은 작가 구효서의 소설가적 능력이 백분 발휘된 것이며 그 외 고전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이야기를 버무리는 능력 또한 작가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만든 수작이라할 수 있다.  조완선의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은 제목만 보고는 김탁환 류의 소설이겠거니 했는데 비록 시작은 조선이지만 그 이야기를 좇아가다보면 아프리카, 프랑스를 넘나들고 긴박한 진행과 낯선 세계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정과 묘사로 푹 빠져들게 한다. 지금 읽고 있는 <황금 사과>는 지금 읽는 중이라 아직 정확한 결말을 모르지만  실연 당한 한 한국 남자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수기에서 시작되어 수기 속 내용인 13세기 유럽의 기독교 세계에서 벌어지는 암투가 흥미롭다.

 

 

 

 

 

 

 

 

 

 

 

 

가장 긴박하게 흥미롭게 읽혔던 책은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로 추리의 형식을 띠어서 일 수도 있고 아무래도 금속활자에 관한 한 독자 대다수가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토트'라는 낯선 지식을 받아들이기가 쉬웠던 까닭도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은 감탄을 하며 읽은 작품은 단연 <랩소디 인 베를린>으로 고전 음악도 모르고, 18세기 독일은 더더욱 모름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흡입하게 만든 구효서라는 작가의 힘 때문인 것 같다. <황금 사과>의 경우는 작가의 이후 역사 소설인 <천년의 왕국>에서 느낀 탄탄한 문장력이나 여타의 다른 단편 소설에서 느꼈던 표현의 신선함은 사실 좀 아쉬움이 있지만 초반 서문을 제외하고는 한국과 관련된 부분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낯선 세계를 가장 순수하게 만나게 해주는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송이라는 낯선 지역과 교회라는 낯선 공간 어딘가에 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게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일단 다 읽어야 확신하겠지마나 김경욱에 대한 믿음은 있으니까. 느낌 아니까!

 

세 작품 모두 낯선 세계로 독자를 데려가기 위한 수단으로 혹은 문서가 등장한다. 마치 해리포터에서 1과 1/2역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 공통점은 사실 이런 류의 소설의 한계가 느껴지는 것 같아 좀 아쉽다.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백투더퓨처가 모두 아기공룡둘리처럼 바이올린을 켜야만 판타지의 세계로 떠난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식상한지. 이 작품들이 나온지 오랜 시간이 지났으므로 부디 앞으로 나올 소설들은 다양한 루트로 독자를 낯선 세계로 데려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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