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올인원 pc를 구매했다. 컴퓨터의 사양에 그다지 눈이 밝지는 않은지라 다른 좋은 점, 나쁜 점은 모르겠고 일단 선이 깔끔해서 좋았고 벽에 기대어서도 눈만 밝으면 저 멀리의 컴퓨터를 마우스로 클릭클릭 가능하다는 점이 좋았다. 그리고 TV가 나오는데 TV가 나온다는 사실보다 스피커가 내장되어 있다는 점이 훨씬 좋았다. 혼자 신이 나서 아들에게 영화를 같이 보자며 청했다. 즉흥적으로 고른 것이 1951년 디즈니 애니메이션<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틀어주고 나서 나는 옆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아이는 무척 흥미롭게 본 모양이다. 요며칠 틈만 나면 틀어달라고 조른다. 사실, TV를 거의 안보고 살아서 좀처럼 뭐 보여달라고는 잘 안하는데 뭐 하나에 꽂히면 정신이 없다.
어젯밤에도 잠들기 전에 버지니아 리 버튼의 그림책 두 권을 읽어주려고 마음 먹고 있는데 갑자기
- 엄마 앨리스 읽어줘.
- 앨리스?
그러고는 집에서 앨리스 책을 찾아 뒤적거렸다. 삽화가 예뻐서 사두었던 비교적 신간책 한 권과 지난 번 어린 왕자 색칠공부책을 사며 같이 사두었던 앨리스 색칠공부책이 있었다.
어떤 책으로 읽어줄까 했더니
이 책을 골랐다. 이유인즉슨 길어서 오래 오래 읽어줄 수 있어라나?
소설가 한유주의 번역이라 매끄러운 문장을 기대했는데 책 초반에 나오는 그 유명하나 대사인 "시간이 없어! 시간이 없어!"가 "이런, 안 돼. 늦을지도 몰라!"라고 나와 있어서 사실 좀 아쉬웠다. 너무 직역하셨나?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야기초반의 번역은 의구심 때문인지 직역의 느낌이 들어서 소설가 번역에 갖었던 기대가 살짝 무너졌다. 다행히 뒤로 갈수록 좀 부드러워졌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직은 두 챕터밖에 못 읽어서 번역은 차차 느껴봐야겠다. 하지만 나에게 다음에 또 어떤 출판사의 앨리스를 사겠느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허밍버드 클래식으로 사겠노라고 말하겠다. 판형과 양장이 딱 내스타일이다! 삽화도 맘에 들고 말이다.
어쨌든 아들은 두 챕터를 채 다 읽기도 전에 잠이 들었고 앞으로 일 주일 넘게는 이 책으로 잠을 재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낮 시간에 몇 번이 될지 모르게(벌써 오늘은 아침부터 애니메이션을 봤다 ㅠㅠ) 할머니와 동갑인 앨리스 애니메이션을 볼 것이고 때때로 색칠공부를 한다고 하겠지. 앨리스, 나 어릴 적에도 그렇게 몰두하면서 본 것 같지는 않은데 네 덕분에 나도 앨리스의 매력에 퐁당 빠져보겠구나!!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팝업북도 사고 싶어지고 앤서니 브라운이 그린 앨리스도 사고 싶어진다.
아, 책 욕심은 당분간 버려야한다. 잘못 들어온 수당 386만원을 홀랑 써버려서 일시불로 갚아야하기 때문이다ㅠㅠ. 참을, 수, 있, 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