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 할머니가 손자에게
김초혜 지음 / 시공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의 팻말은 이 책의 저자인 시인 김초혜의 손자인 재면이가 초등학교 1학년 어버이날에 할머니에서 선물한 공작물이라고 한다. 아마 이 집안의 가장 큰 틀을 이루는 생각이 아닐까 싶었다.

 

  

 

 

 

며칠 전 아이의 유치원에서 급히 가훈을 적어오라길래 급히 만든 가훈이 '서로를 지켜줘요.'였는데 만들고 보니 딱 좋은 말 같아 진짜 가훈으로 쓰고 있다. 액자에 넣어 거실에 걸어두니 진짜 서로를 지켜주고픈 마음이 더 생기는 게 참 신기했다. 아마 <행복이>라는 팻말을 받은 그 순간부터 할머니 김초혜 시인은 아이로부터 느낀 행복감이 충만해져 이 책을 쓰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에 넘어가는 해2008년 1월1일부터 그 해 12월 31일까지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쪽 분량의 글을 써내려갔다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할머니 김초혜의 마음은 그 내용에 못지 않다. 매일 1쪽의 글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읽는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매일 쓴다는 것은 보통의 마음가짐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사랑하는 손자에게 주는 글이니 그 내용 또한 얼마나 사랑과 정이 듬뿍 할 것인가.

 

재면이가 어린 나이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하셨지만 이 책을 재면이에게 준 것은 중학교 입할 때였다고 한다. 아마 글을 쓰면서도 중학생이 될 손자를 떠올리며 썼다고 느껴지는 것이 내용이 아홉 살 아이에게는 어렵기도 하거니와, 성장의 의미를 깨우치게 할 목적의 글들이 많아 사춘기 손자에게 더 적합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면 너무 교과서적이고 지루할 수 있지만 이것이 재면이의 삶과 멀리 떨어진 한 어른의 글이 아니라 재면이와 가깝고 재면이를 많이 사랑하는 할머니의 글이기에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런 할머니를 둔 재면이가 어떻게 자랄지 흐뭇하게 기대하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친정엄마는 이 책을 읽으시곤 나도 써볼까?라고 하셨지만 며칠을 못 가셨다 ㅠㅠ 대신 좋은 글을 옮겨 적으시기로 하셨단다. 그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대신 내가 할머니가 된다면 기필코 이런 작업(?)을 해 보고 싶다. 대신 좀더 가볍게 쓰는 게 내겐 더 맞지 싶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책은 김초혜 시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한꺼번에 읽는 것 보다는 일년을 두고 매일이면 좋겠지만 그런 부담 없이 생각날 때 한두쪽씩 읽어보면 참 좋을 것 같다. 비록 우리가 재면이는 아니지만 말이다.

 

오늘 날짜 5월 16일의 글을 옮겨 보는 것으로 마친다.

 

  사랑하는 재면아!

  아무리 컴퓨터가 기승을 부리는 시대라고 하지만, 편지를 쓸 때는 꼭 펜으로 써서 보내는 것이 좋다. 할머니도 이메일을 주고받기는 한다만 길게 쓴 이메일보다는 짧게 쓴 자필 편지가 훨씬 정답고 감동을 주더라. 정성들여 잘 쓴 글씨로 상대방에게 편지를 보내면, 너의 의도가 제대로, 명확하게 잘 전달될 것이다. 편지는 마음의 교환이다. 글시를 잘못 쓰는 사람은 남 앞에서 사인을 하기도 거북해 하더라. 글씨를 쓸 일이 많이 있는데, 그런 수치심을 지니고 산다면 참으로 힘들 텐데도 왜 고칠 생각을 안하고 부끄러워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재면이는 글씨를 잘 쓸 수 있게 평소부터 주의를 기울이기 바란다. 할머니 세대는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이 일상화되었던 시대였다. 그런데 한자를 잘못 썼다거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렸다 하면 그 사람의 지적 수준이나 인격까지 의심되더라. 어른이 된 후에도 그 사람을 만나면 그 틀린 한자가 자꾸 생각나 그를 무시하게 되더구나. 잠깐의 부주의가 그런 실수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평소부터 조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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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꼭 로쟈님 글 제목 같기도 하다만 아니라서 낚인 분들께 죄송. 또한 이 세 사람이 관련이 있나 싶어서 오신 분들께도 미리 죄송. 그저 어쩌다 보니 최근 세 권이 이 세 사람에 대한 책이었을 뿐이었나이다.

 

[중국행 슬로보트]를 읽고선 무라카미 하루키가 궁금해져  [하루키 스타일]을 읽다보니 하루키에 대한 작가의 느낌이 달달하여 에세이를 읽는 듯 했고 간간히 전해지는 필력이 좋아 그 전작인 [손석희 스타일]을 찾아 읽었다.

 

 

 

 

 

 

 

 

 

 

 

 

우선 [하루키 스타일]의 경우는 이 세상에 나온 하루키의 글과 거기에 담긴 생각을 한데 정리한 '하루키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루키에 대한 그 어떤 책들보다 하루키를 많이 알게 해 주었다. 세련된 책 표지와 편집과 더불어 주로 내 스타일의 글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많은 책을 써낸 작가인 만큼 필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와 같이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멋진 말들도 많이 실려있지만 그것들에 연결 고리를 만들면서 쓴

단순히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 '재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삶의 태도이자 철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향 감각이 있어야 한다.

과 같은 작가의 소리도 매력적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더구나 이런 책의 경우 중언부언인 때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그런 면에서도 담백했다.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굳이 [손석희 스타일]을 도서관 서가에서 찾아 읽었다.

 

[하루키 스타일]이 작년 초에 나오고, [손석희 스타일]이 2009년에 나온 만큼 제목은 비슷해도 모든 면에서 많이 차이가 났다. 물론 최근의 [하루키 스타일]이 훨씬 좋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에세이나 오마주의 느낌이 드는데 반해 [손석희 스타일]은 자기계발서의 냄새가 많이 난다. [하루키 스타일]을 읽으면서는 하루키가 내게 아주 가까워진 느낌인데 반해 [손석희 스타일]을 읽고 나서도 물론 손석희란 인물에 대한 호감은 있지만 가깝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후자의 경우 '성공'이라는 키워드에 주제를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모양이다. 아마 그때엔 그런 책들이 유행이 아니었겠나 짐작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필력은 다소간 느낄 수 있었다

 

철학이 있는 준비가 철학이 있는 시작을 만들고, 철학이 있는 시작이 철학이 있는 변화를 만들고, 철학이 있는 변화가 철학이 있는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

라는 글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좋은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손석희는 말을 하는 사람인 만큼 손석희에게도 좋은 말들이 많이 흘러나왔다. 그것을 역시 저자는 놓치지 않는 것을 보면 진희정 작가의 정리 능력은 인정할 만 하다.

"전 지도층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민주사회에서 지도층은 없으니까요."

2005년 <시선집중>에서 한 말이라는데 지금 그의 행동을 보자면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생각은 한결같음을 알 수 있다. 저자가 한 말처럼 손석희의 방송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한결같고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의 방송은 늘 의미 있는 변화와 흐름의 중심에 놓여 있다.

 

하루키건 손석희건 누군가는 좋아할 수도 누군가는 시큰둥할 수도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이 책들이 더 확고해지는 역할을 해 줄 것 같다. [손석희 스타일]에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심리학자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좋은 경험을 나눈 사람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루키는 책으로 우리와 좋은 경험을 나누었지만 안타깝게도 선인세 문제로 인해 나쁜 경험도 함께 갖고 있다. 그래서 그에 대한 호불호가 더더욱 갈리게 되기도 하였다. 손석희의 경우 JTBC 사자으로 취임하면서 사람들에게 실망과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받았지만 이번 세월호 보도로 인해 그는 우리와 경험을 바른 방식으로 공유했다. 그래서 우리는 손석희에 열광했다. 우리와 최악의 경험을 공유하는 스스로가 지도층이라고 여기는 그 사람들을 떠올릴 때 누가 당신들의 이름을 걸고 [000 스타일]이라고 불러주기나 하려나 묻고 싶다.

 

문득 시오노나나미가 [남자들에게]라는 에세이에서 쓴 '스타일'의 정의가 생각난다.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그런 줄 아는 것이 스타일이다.

 

이 두 책의 사이에서 읽은 책도 우연히 사람에 대한 책이다. 지금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가 아닌 16세기에 살았던 기생 매창에 관한 학술서 [이매창 평전]이다.

 

  [매창 시집]은 들어봤지만 그녀에 대한 평전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것도 교육대학의 국어교육과 교수가 쓴 기생의 평전이라니 조금 의외이긴 했다. 하지만 김준형 교수는 이매창에 대하여 모든 것을 이 책에 실은 듯 했다. 매창이 기생인지라 그녀와 에피소드가 있는 남성의 입장에서 그녀가 조연 혹은 여주인공처럼 등장한 경우는 왕왕 봤지만 이렇게 그녀가 원톱으로 나머지 모든 남성들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신선했다. 더욱이 학술서의 성격을 띠고 있는지라 자뭇 진지한 책의 성격이 매창을 좀더 고귀한 인물로 느끼게 해 주었다. 더더욱 김준형 교수는 글을 쉽게 잘 풀어쓰는 능력이 있으신 듯 인물에 대한 정보와 흥미를 모두 만족시켜주었다. 특히 그 자신은 후대의 사람들이 매창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고 남말 하듯 하였지마는 그 역시 그러한 오류에 대해서는 한발짝 물러나 있었지만 매창에 대한 애정만큼은 숨기지 못하였다. 애정으로 가득 찬 평전의 느낌은 좋다. 위의 두 책처럼 가볍지 않지만 읽으면서 좋았더랬다.

 

매창과 당시 문인들의 좋은 시도 읽을 수 있고,

-매창 <스스로 한스러워1>

 

기생의 삶에 대한 각종 사료들도 접할 수 있었고 당시 조선 시대의 흐름도 살짝 짚어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트위터로 허균의 천재적인 시 비평을 올렸더니 한 출판사에서 허균에 대한 책도 곧 나온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기대해 본다.

"권필의 시는 화장을 하지 않은 절대가인이 알운성으로 등불 아래에서 우조와 계면조를 번갈아 부르다가 곡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문득 일어나서 가버리는것과 같다"니!

 

이젠 이야기를 읽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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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6-08-13 0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준형 교수님 수업을 이번 여름에 들었는데 어찌나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시던지요. 이게 전형적인 스토리텔링 수업입니다~~~ 하시더라고요! 이매창 책 검색하다가 살까말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마음의 결정을 내리게 해 주셨어요. ^^
 
일러스트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호세 무뇨스 그림 / 책세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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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움 출판사의 [이방인]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나도 한 번 사 보았고 이번에 책세상 판을 읽으며 그 책의 역자 노트도 읽고 야외에서 읽을 때에는 그 책으로도 읽었다. 책세상 판은 새움 출판사의 역자인 이정서가 주 비판 대상으로 삼고 있는 김화영 교수의 번역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반 차이를 못 느끼겠다. 나는 불어를 전혀 모르고, 작품을 문장 하나하나까지 애정을 가지며 읽은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두 번역본이 둘 다 흥미롭게 잘 읽혔다.

 

 

이정서가 비판한 김화영 번역의 책은 민음사 판이고 그 이후에 책세상에서 일러스트 판으로 출간된 것이라 이미 김화영 번역은 또 한 차례 수정이 된 터인 모양이다. 물론 시기상 이정서의 번역본과는 무관하게 출간되었으리라. 그렇다면 한 개인의 번역은 한 작품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부던히 수정에 수정을 하는 일을 하게 되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서의 행위가 불필요했다거나 무의미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역자 노트를 보면 굳이 중요해 보이지 않는 점을 꼬투리 잡는 듯 보이는 부분도 있고 일리가 있어 비교하며 읽어보아 이정서의 번역이 더 좋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도 몇 번이고 수정을 하게 될 터 이렇게 일이 커진 망극함을 어찌할 지 지켜보는 내가 다 염려스러울 뿐이다.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나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뻗어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77쪽)

 

가장 큰 논란이 된 부분은 위의 내용이다. 뫼르소가 속눈썹을 쑤시는 듯함이 결국 첫번째 총을 쏜 계기가 되니 뭐 해석의 개별화라치고 심리적(법적으로는 안되겠지만) 정당방위로 보는 것도 가능할 듯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게 정당방위인가 아닌가 왜 네 발을 더 쐈나하는 문제보다는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뫼르소의 태도에 집중하게 된다. 아마 이정서 논란이 아니었다면 굳이 거기까지 신경 안쓰고 읽었을 것 같은데 책을 나의 흐름대로 읽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한 원망감이 불쑥 생긴다.

 

책세상 판을 읽으며 새움판의 역자노트를 보다보면 그가 민음사판을 주된 비판의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가 같은 역자임에도 해당이 안되는 곳이 있어 대충 읽어도 역자노트가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많이 되는 편은 아니었다. 더구나 책세상의 [이방인]은 일러스트가 정말 흥미를 배가 시킨다. 그림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하여 남들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여 사형 선고를 받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그것이 정당해 보이는데도) 어떤 제스처를 취하지 않은 뫼르소를 보며 어쩌면 그는 죽음을 살기 위해 생을 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 순간 그 어떤 제스처라도 취하게 되기에 그의 태도는 의문인 동시에 경외감이 들고, 일면 놀랍다가도 질투마저 난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를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도대체 산다는 건 뭐지? 이런 원론적인 질문마저. 답은 물론 없다. 머리만 복잡해졌지만 살면서 우리는 불편한 질문을 던지며 살아야 하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번역의 논란과 무관하게 나는 어쩌면 그가 실은 '태양 때문에' 살인을 하고 사형 선고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태양은 구체적인 대상으로서의 태양이 아니다. 그가 살인을 하고 사형 선고를 받은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쩌면 사람이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그러니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며, 타인의 생각과 행동이 도대체 무슨 의미라는 말인가. 그저 내가 있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행동할 뿐이다. 그리하여 내가 살고 내가 죽는 것이 아닐까?

 

[이방인]의 문장 하나 하나가 하나의 섬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따라가지 못했고 단 한 번의 독서로 이 책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것은 그것대로의 가치가 있지 싶다. 다만 나의 상태를 누군가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살짝 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인]이라는 제목은 내키지 않는다는 정도로만. 행여 누군가 [일러스트 이방인]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투썸! 

 

 

* 덧붙임 : 새삼 글을 쓴다는 게 무척 어려운 일임을 느낀다. 그림을 가지곤 아무도 딴지를 안 거니 말이다!!! 누군가 [이방인]을 글 없이 일러스트로만 번역을 해야할라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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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
하세가와 히로시 지음, 조영렬 옮김 / 교유서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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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은 책 중에 셰익스피어에 관한 일본 저자의 책이 있었다. 평소엔 일본 저자의 책이라고는 시오노나나미의 역사물과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추리소설만 읽은 나로서는 일본 인문학 책이 낯설었지만 굉장히 인상깊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책의 주제에 굉장히 집중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또한 얼마 전 매우 인상적으로 읽은 [잘라리 이 기도하는 손을]의 저자 이타루 사사키에 대한 신뢰감도 높아 있는 터였다. 그러하기에 이번에 읽은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의 저자 하세가와 히로시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증은 그를 전혀 알지 못함에도 읽기 전부터 많이 높아져 있었다. 과연 이번에도? 그럴 거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에도 끄덕끄덕! 덕분에 일본 인문학서에 대한 전반적인 믿음과 기대가 높아졌다.

 

 하세가와 히로시는 학계와 절연하고 집에서 책 읽고 시민들과 함께 공부하는 헤겔 전문가라고 한다. '절연'이라는 말에서 그의 곤조가 느껴지지 않는가? 고약한 성질일 것 같다만 독자로서 보자면 이런 성질의 작가들의 글이 매력적인 경우가 많고 역시나 이 책에서도 저자의 매력은 글에 고스란히 느껴진다. 흔히 책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칭찬과 감탄 일색인 경우가 많다. 이 책처럼 추천하고픈 책을 저자가 골라놓고 그 책에 대해 쓰는 기획 형식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 같다. 하지만 하세가와 히로시는 달랐다. 자신이 직접 고른 책에 대하여 좋은 점은 과감히 감탄하고 그렇지 못한 점은 사정없이 내친다.

 

[팡세]는 파스칼이 자기가 살던 시대와 제 자신의 삶의 방식이 빚어내는 부조화를 다양한 각도에서 날카롭고 깊이 있게 분석한 지성의 책이다. 파스칼의 신앙심을 공유하지 않는 자에게도 그 씩씩하고 굳센 지성의 말은 강한 호소력이 있다. 언제 읽든, 어디를 읽든,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팡세]이다. (160-161쪽)

 

내게 [논어]는 경의를 강요하는 성가신 책이다. 설교하기를 좋아하는 주제넘은 책이라 생각한다. 모처럼 명구나 금언을 만나도 설교투가 흠집을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78쪽)

 

하세가와 히로시의 책 소개를 읽다보면 그가 굉장히 냉철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좋게 읽은 책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도 그는 감정적으로나 낭만적으로 그 책을 추켜세우지 않는다. 아주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이유를 내세운다. 예를 들어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소개하는 글을 읽다보면 저자가 이 책을 매우 인상적으로 읽었구나 하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매우 구체적으로 이 책이 왜 좋은지 정리를 해 준다. 확인사살 같은 것이다. 그 확인사살을 통해 독자는 그야 말로 '지금 당장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2부 첫머리의 세 장을 일컫는다.) 세 장이 없었다면 [죽음의 집의 기록]은 다소 깊이가 떨어지는 작품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작품의 밑바닥에 흐르는 휴머니즘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어뜨리는 세 장이 있기 때문에 [죽음의 집의 기록]은 정녕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인 것이다. (144쪽)

 

 

이 말을 읽기 전까지 유보되었던 내 입장은 이 몇 줄의 글을 읽고 '읽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바뀐다. 공교롭게도 다섯 개의 주제에 각 세 권의 책이 소개된 중에 읽고 싶다고 별을 표시한 책이 각 주제별로 한 권의 책씩이었다. 총 다섯 권이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다섯 권의 책만 읽게 되어도 얼마나 유의미한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굳이 한 권씩 정하고 별을 표시한 것은 아닌데 아무래도 하세가와 히로시의 보이지 않는 권함이 내게 침투한 모양이다. 당연히 그 목록 안에 [논어]가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전까지 [논어]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그가 [논어]의 설교투를 마뜩찮아 했듯이 책을 읽다보면 군데군데 다른 책에도 비판의 내용이 있고 때로는 그 비판이 해당 책을 읽고 싶지 않게도하고, 때로는 그 비판 때문에 해당 책을 읽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처음 만나는 작가에게 이렇게 휘둘려도 되나 싶을만큼 그의 글이 단호하다. 어쩌면 이것이 권위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으론 루소의 [사회 계약론]을 제외하곤 그리 책을 권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데 다섯 권의 책을 찾아보게 된다.

 

[리어 왕], [향연], [죽음의 집의 기록], [팡세], [색채에 관하여]를 당장 온라인 서점과 도서관을 이용하여 찾아보았고 우연히 들른 북카페에서 [향연]과 [리어 왕]을 마주했을 때(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라는 말도 그제야 귀에 걸렸을 때) 읽고 싶어지는 욕구가 더 강해졌다. 책은 누군가의 매력적인 글만으로도 불쑥 내게 다가오고, 그 다가옴과 동시에 다발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우연이 그책을 읽게 만든다.  뒤 책날개를 보니 다음 출간 예정작도 일본 저자의 책이고 제목보다도 부제가 나를 더 유혹한다. [서양 정치사상사 산책 -소크라테스에서 샌델까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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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신간 페이퍼는 관심이 가거나 살 예정이거나 갖고 싶다거나 그런, 엄밀히 말하면 뜬 구름 잡는 소리 같았다면(그 페이퍼는 대체로 나를 위한, 아이쇼핑과 같은 그런 종류의 페이퍼였다면) 이번에 소개할 신간들은 최근에 읽었거나 지금 읽고 있는 신간이라할 수 있겠다.

 

1.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 하세가와 히로시

 

 

 문학동네 임프린트 교유서가의 야심만만 첫 책이다. 사실 하세가와 히로시가 누구인지는 잘 몰랐고 허세가 있는 나는 '철학'이니 '명저'니 하는 말에 약하다. 그런 나의 성향을 제대로 간파한 책이고, 그 책은 좋아하는 언니 S에게 선물받았다. 지금 스무 쪽 가량 남겨둔 상태인데, 우선 허세에 비해 독해력이 떨어지는 나이건만 구성이 일목요연하고 작가의 문체가 배배 꼬인 곳도 없이 시원시원하여 잘 읽혔다. 추후에 관련 페이퍼나 리뷰를 쓸 예정이다만 나의 허세와 지적 결핍을 동시에 채워주는 그리고 더불어 나의 장바구니도 함께 채워주는 책이다.  

 

 

2. [행복이], 김초혜

   나는 김초혜 시인을 한 책에서 남편이신 조정래 소설가의 연애 편지로 처음 알았다. 그후 강화도 육필문학관에서 육필을 접했고 이렇게 책으로 만나기는 처음이다. 이 책은 할머니 김초혜가 손주를 기르는 이야기를 쓴 책으로 아직 나는 읽기 전이고 친정 엄마를 먼저 읽게 하였다. 아무래도 손주를 다섯 살까지 키우시다 내가 육아를 전담하게 된 요즘 일이년 박탈감과 배신감으로 정체성 조차 잃어버린 친정엄마에게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엄밀히 말하자면, 책보다는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야 하건만 그게 잘 안된다. 딸들은 다 나쁘다ㅠㅠ

 

 이 책은 실물이 정말 예쁘다.

 

 

3. [하루키 스타일], 진희정

 

 

 신간의 범위가 갑자기 확 늘어진다. 2013년 9월에 출간된 책인데 도서관에 갓 들어온 따끈따끈한 도서관 신간이다. 사실 저자의 전작들의 제목만 보아도 내 스타일이 아님이 분명한데 요즘 하루키 씨에게 무척 호기심이 많은 나로선 이 책을 이끌리듯 집어들었고 순식간에 읽었다. '하루키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듯 싶다. 표지 디자인도 그렇게 문체도 그렇고 하루키에 대한 책으로는 손색이 없을 듯 싶다. 오죽하면 저자의 [손석희 스타일]이라는 책도 오늘 빌려볼 참일까?

 

 

 

그 외에 아직 읽지 못했지만 사거나 선물받는 등 득한 신간들을 소개하자면,

 

 

도정일 산문집. 말해 뭐하겠는가? 팟캐스트 문학이야기를 듣고나니 이 산문집이 더더욱 궁금하다. 잡은 물고기에게는 공을 들이지 않는다더니 내가 딱 그짝이다. 늘 곁에 있으니 도리에 늦게 읽게 된다. 빌린 책은 빨리도 읽두만.

 

 

 

 

 

난 니콜라가 참 좋다. 요즘 이벤트로 책갈피 3종 세트도 준다는데 참 탐난다. 얼마 전 구입한 [쌍뻬의 어린 시절]과 어쩜 이리도 우연히 잘 만났는지.... 표지들을 이렇게 보고 있자니 읽고 싶어진다. 하루키 씨는 그럼 지금 당장 읽으라고 하겠지?^^

 

 

 

 

 

5월엔 지난 달 많이 사 둔 책들을 읽을 계획이다. 6월엔 국제도서전과 파주어린이책잔치가 있으니 굳이 사지 않으려 노력할 수고를 하지 않을 계획이다. 물론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다는 걸 안다만 일단 말은 그렇게 해 둔다.

 

* 서울 국제 도서전 http://www.sibf.or.kr/

* 파주 어린이책잔치 http://www.pajubfc.org/

 

소박하게 개최되고 수익금의 일부가 좋은 일에 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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