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 이름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촉촉해지는 것 같다. 인상파 화가의 그림과 릴케의 그림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지는 몰랐다. 표지도 편집도 맘에 드는 시집이다. 시집을 더 소장하게 만들게 하는 만남이다.

 

릴케의 시 중 전기 작품에 속하는 작품들을 엮은 책으로 후에 후기 작품들을 모은 릴케 시집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첫 시집>에서 느껴지는 풋풋한 감성과 이후 <초기 시집>이라 붙여진 장에서 소개된 시들에게 느껴지는 성숙하고 사색 깊은 느낌이 무척 좋았다. 틈틈히 옮겨 적고 싶은 마음이 든다. 종교적 색채가 많이 나는 시들은 아무래도 공감이 덜 된다.

 

 

 

 

 

 

오랜만에 시오노 나나미의 에세이를 읽었다. 르네상스 저작집은 에세이가 아닌 게 맞지? 사실 그녀의 글은 대체로 인문서와 에세이 혹은 소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에세이가 분명하다. 최근작인 [십자군 이야기]를 내기 전까지 그녀가 이곳 저곳에서 쓴 글들을 편집자가 엮어 출판을 제안한 책이라고 한다. 물론 이후의 시시콜콜한 것은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그녀의 책에 아주 깊게 관여한다.

 

30년간의 글이 한데 모였는데 그녀의 글은 나이를 먹지 않는가 보다. 글간의 시차를 느끼지 못했다. 시오노 나나미를 좋아하는 이라면 애정을 갖고 읽을 만한 책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 번 알아보는 차원에서 읽어보아도 좋겠다.

 

글은 사람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먹는 것 역시 사람을 나타낸다. 「생각의 궤적」p122

서평은 평을 당하는 책의 평이 아니라, 평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의궤적」p405

 

뜨끔뜨금한 문장들이다.^^;;

 

 

 

 책도 책이지만 이 책의 저자인 '아작'에 대한 놀라움이 컸다. 반가움이라고 해야하나? 아줌마 작가 모임이라는데 그 호칭을 전면에 내세운 그들의 용기는 무모하지 않았다. 문장도 그렇고 끌어당기는 힘도 그렇고 좋은 글이었다.

 제목은 조지 6세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 책에는 조지 6세와 그의 언어 치료사인 라이오넬 로그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고흐와 테오, 마르크스와 엥겔스 등 많은 쌍의 인물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위인전을 읽을 나이에 같이 읽으면 좋겠다. 이 책은 '서양 역사 속의 인물 편'이고 '한국 역사 속의 인물 편'도 있다고 하니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선물용으로도 좋겠다.

 

 

 

  경주에 다녀올 때 [우리 아이 첫 경주 여행] 책을 들고 다니며 유용하게 썼던 경험이 있어 강화도 여행을 앞두고 이 책을 읽어보았다. 강화도를 네 개의 구역을 나누고 여행 계획을 짜주는 것이 좋았다. 책을 보니 내가 주로 1, 4구역 위주로만 다녔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엔 2,3 구역으로 다녀보아야겠다. 마침 그 구역에 공룡 전시관도 있다고 하니 한참 공룡에 빠진 아들에게 좋을 듯 싶다. 옥토끼는 너무 비쌌다ㅠㅠ

 

 

 

 

 

박람강기 프로젝트3인 레이먼드 챈들러의 [나는 왜 글을 쓰는가]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아서 이 시리즈는 믿을만 하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이 바로 시리즈의 첫 책인 [게으른 작가들의 유유자적 여행기]였다. 제목이 얼마나 기가 막히게 좋은지! 게다가 찰스 디킨스와 윌키 콜린스의 여행기라고 하지 않는가. 아차, 내가 그 둘의 작품을 뭘 읽었지??? 그래서 그런가 결론적으로는 내 취향은 아니었다. 박람강기 프로젝트를 구입할 때 작가가 내 취향과 맞는지 미리 생각해봐야겠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트친들이 이 책이 출간될 당시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작가의 이름과 '친구'라는 상투적인 제목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읽는데 좋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낯선 이야기에 이방인의 감정을 느꼈다면 아마 그 소설은 그리 좋은 소설은 아닐 것이다. 분명 내게 낯선 모든 것임에도 왠지 나는 키부츠 안에 살고 있는 그 어떤 여인일 것만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와 <에스페란토>가 무척 좋았다.  좀더 여유 있게 읽었으면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시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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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4-06-25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이야기> 시리즈 이후로는 안 읽어봤는데, 우와~ 이런 멋진 글이....

글은 사람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먹는 것 역시 사람을 나타낸다. 「생각의 궤적」p122

서평은 평을 당하는 책의 평이 아니라, 평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의궤적」p405

점심에 라면 끓여 먹으려고 하는데, 저는 어떤.... 사람일까요? ㅋㅎㅎㅎ

그렇게혜윰 2014-06-26 09:58   좋아요 0 | URL
저도 괜히 부끄러워지는 구절이었어요. 아마 식탐을 부린 직후에 저것을 읽지 않았나 싶어요 ㅋㅋ 시오노 나나미는 글에 자뻑이 과하긴 하지만 읽을만해요 ㅋㅋ

봄밤 2014-06-25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사이>, 아모스 오즈의 단편?이군요! 그의 단편은 어떨지, 얼른 만나야겠어요.

그렇게혜윰 2014-06-26 09:58   좋아요 0 | URL
딱 꼬집어 어떻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서늘한 깊이가 느껴진달까요? 그런게 좀 있는 것 같아요.
 
[다산 정약용 평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다산 정약용 평전 -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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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독서 모임에서 '다산 정약용에 관한 책읽기'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이 남양주이고, 그곳은 현재 다산문화제가 해마다 열리는 다산의 고장이다. 책 초반에 나오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현 마을이 바로 다산 유적지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이 능내, 마재, 마현, 능안, 소천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다산이 불렀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어쨌든 그때 회원들이 가져온 책에는 정민 교수의 [삶을 바꾼 만남]과 박석무가 옮긴 [유배지에서 온 편지]가 주를 이루었다. [다산 정약용 평전]은 바로 [유배지에서 온 편지]의 역자 박석무의 책으로, 그의 저서를 살펴보아도 그렇고 명실공히 다산 정약용 전문가임에 틀림없다.

 

당시 모임에서 [유배지에서 온 편지]가 읽기가 썩 쉽지 않았다는 말이 나왔다. 주고받은 편지글이 왜 그럴까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읽은 사람들이 그러하다는데 잘못된 말은 아닐 터 그래서 이번에 [다산 정약용 평전]이 출간되었을 때에도 읽기에 어려우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평전'이라는 것이 '평'과 '전'을 모두 담아야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딱딱하지 않고 쉬이 읽혔다. 생각해보니 최근에 읽은 [이매창 평전]도 읽기에 좋았던 것을 보면 '평전'이라는 이름에 겁먹을 필요가 없는 듯 하다.

 

명실공히 다산 전문가인 박석무의 다산 평전을 읽다보면 기본적으로 '평'이란 대상에게 애정을 갖고 있어야 함을 알게 된다. 하긴 애정도 없는 대상을 무슨 이유로 글의 주제로 삼는다는 말인가. 애정을 바탕으로 인물의 업적과 과오를 객관적으로 평가를 내려주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박석무가 다산에게 느끼는 애정이 정민 교수가 느끼는 것보다 더 큰가 보다. [삶을 바꾼 만남]을 읽었을 때에는 사실 다산이 많이 좀스럽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 책에서는 고집있고 세심하고 객관적인 그야말로 다시 태어날 수 없는 문장가이자 충신인 완벽남으로 그려져 왠지 잘생기기까지 했을 것만 같은 환상을 갖게 한다. 저자가 가지는 힘이 이렇게 다르다는 게 새삼스럽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스펙을 가지며 자란 정약용이 뛰어난 문장가가 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은 사실이나 그가 가진 성품으로 인해 그 이상의 모든 자질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임금이 원하는 것을 기대하는 그 이상으로 수행해내는 능력, 그것이 정약용이 정조 치하 왕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비결이었다.

 

 여러 기록을 참고해 보면, 1793년에 화성의 축조를 시작하면서 임금은 10년의 공기를 정하고 그 기간 내에 완성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다산의 공법을 바탕으로 거중기, 기중기, 녹로, 활차 등을 이용하는 바람에 2년 9개월 만에 성의 축조가 완공되기에 이르렀다. (155쪽)

 

이렇듯 다산은 문장가이고 나랏일을 하는 행정가일 뿐만이 아니라 건축가이기도 했고, 의원이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명탐정이기도 하였으니 도대체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알면 알수록 놀랍고 존경스럽다. 정약용에 대한 놀라운 업적과 행동들은 책에서 많은 부분 중복될 정도로 많이 언급하여 굳이 더 쓸 필요는 없겠다. 더구나 저자는 '정조와 다산, 18년의 만남'이라는 꼭지를 가지고 정조 치하 다산의 업적을 간략하게 정리해주는 수고로움까지 보여주었으니 이는 282쪽에서 290쪽까지의 글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으리라.

 

짚어볼 것은 역사적인 내용이 아니라 저자가 써내려간 책의 내용이다. 비교적 시간의 순서에 따른 구성을 하고 있는 이 책을 보고 있자면 다산이 어떤 성품이고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가 왜 1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유배 생활을 했는지를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그의 억울함에 속이 상하고 유배 중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한 그를 보면 존경심이 생긱기도 한다. 분명 저자는 다산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의 삶에 대한 오랜 천착으로 그야말로 '정약용의 모든 것'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았을 것이다. 따라서 만약 정약용에 대하여 한 권을 읽으라고 권한다면 이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그 내용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범주를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정약용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가 시중에 넘쳐나왔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작가가 담은 '평'이 우리의 예상을 많이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약용의 전 생애를 단 한 권의 책으로 비교적 쉬운 언어로 담고 있으며, 그의 아름다운 문장을 원없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정약용에 대한 단 한 권의 책으로 권할만 하다 하겠다. 또한 많지는 않지만 현재 우리의 삶과 비교하여 평하고자 했던 부분들이 있어 공감이 더 가기도 한다. 다산의 고장에서 밥 벌어 먹고 사는 이로서 그곳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권해보아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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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4-06-24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에서 이런 좋은 책을 ..... 선정했군요. (엉엉....)
다산에 대해서는 꼭 한 번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그 때 바로 이 책을 읽어야겠어요.

그렇게혜윰 2014-06-24 09:54   좋아요 0 | URL
제가 리뷰에 이 책의 좋은 점을 충분히 밝히지 못한 건 아닌가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제가 표현한 리뷰보다 좋은 책이에요. 조만간 다산유적지도 다시 한 번 가보려구요.
 
[힘내라 브론토 사우루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3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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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내 눈길을 끈 것은 표지에 그려진 아파토사우루스의 골격과 [힘내라 브론토 사우루스]라는 제목에서의 공룡 이름이었지 진화 과학자로 유명한 스티븐 제이 굴드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만큼 나는 과학이라는 영역에 무지했고 그저 공룡을 좋아하고, 우주를 좋아했던 어린 아들의 엄마로서 가질 수 있는 과학 지식만 겨우 갖고 있던 터였다.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는 내 예상과는 달리 공룡에 대한 책이 아니었고(하긴 이 정도의 공룡책을 다 읽어내면 근방에서는 공룡 권위자로 행세해도 될 정도겠다.), 진화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자연학 에세이 선집으로 출간되는 시리즈의 세번째 에세이집이다. '진화 = 다윈'의 스키마가 형성된 나로선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을 적엔 굴드의 생각을 얼마나 다윈의 주장과 비슷한가에 초점을 두고 읽게 되었다. 물론 이내 수정이 필요했다. 그는 다윈 이후 최고의 생물학자라고 평가받기는 해도 철저한 다윈주의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가 대중적 글쓰기를 한다고 하여 폄하하기도 한다고 하나 그 '대중'에 나는 포함이 안되는지 이조차도 버거운, 어쩌면 뇌를 자극 시키기에는 더없이 적절한 난도의(라고 말하지만 자신은 없다.) 글들이다. 그조차도 자신의 에세이들 중 최고의 35편을 꼽아 출간한 것이라고 하니 읽고 나서 느낀 뿌듯함은 그런 당당함의 결과인가 보다.

 

800쪽에 가깝고 35편에 달하며 생물학에서 천문학까지 광범위한 내용을 다룬 이 책에 대하여 어떤 식의 글로 응할 수 있을까? 밑줄 치고 끄적인 부분들을 정리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서른 다섯 편의 에세이들은 그 자체로 이미 그의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하였으므로 어떤 식으로든 정리를 한다는 것은 소모적인 일일 뿐이다.

 

그보다는 이 책을 읽고 진화 생물학에 대해 새롭게 인식했거나 스티브 제이 굴드에 대하여 생각한 점을 적어보는 편이 그나마 가능한 일 같다. 우선 이 책을 읽고 과학자의 자세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학 교과서의 관행이라던가, 돼지 어금니에 대한 진화 과학자들의 편의식 해석이라던가 하는 등의 문제를 다룬 굴드의 글을 읽으면서 과학적 결과물을 얻을 때 많은 과학자들이 그들의 가설과 이론에 현상을 끼워맞추려하는 오류를 저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도 그러할진대 다른 영역에서는 얼마나 합리화가 많이 이루어질 것인가를 생각하면 씁쓸함이 느껴진다. 그나마 과학계에선 굴드와 같은 이들이 그런 문제점을 짚어주고 한편으로는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가설이 틀릴 경우 우리의 예상과 달리 큰 동요를 보이지 않음을 알려줄 때 희망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직접 그의 '크기 가설'이 틀렸음을 증명함으로서 그 예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어떤 이론이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종종 독자들에게 슬프고 안타까운 일로 비치곤 한다. 그렇지만 과학은 자기 교정을 토대로 번창하기 때문에, 인간 활동 중에서 가장 도전적인 과학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과학자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가설이 거짓으로 밝혀지거나 제기했던 이론이 부적절하다고 판명될 경우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반증은 항상 실망을 넘어서는 긍정적인 교훈을 담고 있다. (718-719쪽)

 

얼마나 멋진 태도인가. 자신의 직업에 대한 프로페셔널한 정신은 자신의 일을 정당화하는 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을 글 전반에 걸쳐 느끼게 된다. 앞서 말했고 서문에서 작가가 직접 "'6년 동안 쓴 60편 중에서 최고, 또는 가장 일관된 35편을 추려낸 것이다.”  라고 말한만큼 이 책은 여타의 다른 에세이들과 달리 과학자의 태도와 방향성에 대해서만큼은 무척 일관성이 있다. 하지만  35편의 글이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고 특히 글의 시작부분에서 펼쳐지는 작가의 박학다식한 지식을 접하면 속으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 얘기를 하는 거지?'라며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하게 된다. 과학 무식자가 과학에세이에게 설렐 수 있다는 점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그만큼 굴드의 글은 흡인력이 있다. 이 책은 참말로 전방위 과학에세이이자 굴드의 잡학다식함을 엿볼 수 있는 멋진 책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 30편으로 줄였더라면 하는 정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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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4-06-24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평이 좋아 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예요.
일단 표지랑 제목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확 끄는 데가 있는데, "흡입력 있는 굴드의 글"이라니, 꼭 읽어봐야겠어요~~ 불끈!

그렇게혜윰 2014-06-24 09:52   좋아요 0 | URL
저 이런 책을 잘 못 읽는데(최재천 교수의 책만 읽어본 것 같아요.) 적당한 무게감과 적당한 유머를 갖춘 것 같아요. 추천해요!
 
봉황, 눈을 뜨다 재미마주 옛이야기 선집 5
박세당 글, 이경은 그림 / 재미마주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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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꼭꼭!

 이경은

대학에서 시각디자인과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하였다. 그림책에 관심이 많아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스타일을 찾던 중 디딤돌 '아임 리딩' 시리즈늬 'The Brass Band'에 그림을 그려 데뷔하게 되었고, 이어서 '봉황, 눈을 뜨다'로 본격적인 그림책 작가로서 한발 더 세상에 발을 내디뎠다. 앞으로 실험적이고 더 재미있는 그림책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

 

첫 작품이라니! 첫 작품을 보고 팬이 생길 만큼 좋은 그림이다.

 

 

박세당

치과의사, 미술 컬렉터, 발명가, 언어학습 전문가로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영화제작을 하는 부친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유연한 사고와 시나리오 작업 등 글쓰기에 눈을 뜨게 되었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전방위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중이다.  저서로는 『남자는 죽었다』(에세이, 1994년), 『10일의 기적 하이퍼 캡션영어』(영어학습법, 2008년),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2011년) 등이 있다.
수상경력은, 1998년 ‘현대벤처기술상’(현대그룹 정몽구 회장)을 수상하였고, 1999년 ‘밀레니엄 상품’(산업자원부장관)에 당선되었으며 2000년 ‘신지식특허인’(특허청장)에 선정된 바 있고, 2007년 코리아타임스가 수여하는 ‘대한민국 외국어 교육상’을 수상하였다. 
 

 라는 이력이 정말 '그림책'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초면(?)에 이런 말씀을 드려 송구하지만 다른 사람이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여러 차례 했다.

 

◐ 내용 꼭꼭!

 '봉황'이라는 새는 '용'이나 '유니콘' 못지 않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물이다. 더구나 그것이 우리의 역사와 만날 때의 신비로운 느낌은 그저 신비롭다는 말로는 아쉬운 경건하고 위엄있는 존재가 된다. 그런 봉황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다가갈 때 표지 속의 그림이라면 참 딱이다 싶을 정도로 표지에 드러난 봉황이 마음에 들었다. 닭을 닮아 친근하면서도 활짝 날개를 편 모습과 세 발은 궁금증을 일으킨다. 아래의 춤추는 옛 사람들의 모습을 위에서 따뜻하게 내려다보는 것이 마치 우리를 지켜주는 느낌마저 든다.

 

  마고 할미 설화에 대한 그림책을 이미 읽은 터이지만 그 책이 아직은 일곱 살 아들에게는 흥미를 크게 주지 못하는 이유로 좀더 단순한 이야기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던 터에 이 책을 만났다. 따라서 이 책에 거는 기대가 좀 남달랐다. 하늘과 땅이 붙어 있던 그때, 봉황이 지켜주던 마고성의 사람들에게 탐욕이 생겨 쫓겨났을 때 죄책감을 느낀 봉황이 늘 사람들을 지켜주고자 노력한다. 자신을 바닷속에 던져 땅을 만들어 사람들을 살게 한 것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봉황에게 고마움을 느껴야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만 보아도 기쁘기만 하다니 봉황은 마음도 곱다. 하긴 그러니 봉황이지 아니면 뭇새와 뭐가 다를까?

 

땅이 만들어지고 땅의 모습을 생각하는 대로 사람들의 성품도 변했다고 하는 부분이 그림으로 잘 드러나 재미있었다. 토끼의 땀방울, 호랑이의 위 아래에 도사리는 용과 뱀을 그리더니 결국은 그 모두를 다 아우르는 봉황의 모습이 된 우리의 한반도. 그림만 보아도 쏙쏙 들어온다.

 

 

하지만 문제는 그림만 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처음부터 제기한 글작가에 대한 불만이 있다. 마치 누가 써도 그 내용은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 창의성없는 글밥에 깜짝 놀라 내 얼굴이 저 토끼얼굴마냥 당황스러웠다. 그 점이 이 책의 내용에서 두고두고 안타까운 점이다. 그림은 참 맘에 드는데 말이다.

 

◐ 마음 꼭꼭!

 사람의 마음은 언제부터 나빴을까? 많은 철학자들은 그것을 가지고 수 천년 간 자신들의 생각을 펼쳐왔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정답은 없다. 분명한 것은 지금은 반대편 대륙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자 하면 모를 수가 없는 시대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공간적인 거리는 고생대의 대륙보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런지 몰라도 실제 소통의 거리는 훨씬 가까워졌다는 말이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마고성에서 마고할미와 봉황의 보호 아래 사이좋게 지내던 사람들이 서로 못잡아먹어 으르렁 거리던 때를 지나 더불어 하나로 살아가야 한다고 봉황은 온몸으로 부르짖은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본 최고의 귀요미 봉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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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빛나는 순간 - 르네상스를 만든 상인들
성제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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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 도서관에서 문화강좌로 '르네상스 미술'을 듣던 참이었다.  이탈리아를 벗어나 북유럽의 르네상스 미술까지를 듣고 있던 중에 도서관 서가에 꽂힌 이 책을 보았고 당연한 듯 뽑아들었ㄷ.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이라는 제목 곁에 부제인 '르네상스를 만든 상인들'가 보였고 망각 곡선이 아직 적용되기 전인 나의 기억은 어렵지 않게 메디치 가를 떠올렸다. 읽어보자, 고 마음 먹은 것은 거기에서 오는 자신감이었다.

 

내가 배운 르네상스의 미술은 철저히 화가와 미술작품 위주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원자의 존재는 그 시대의 미술에서 가벼이 다루어질 수 없었다.  그림은 화가가 그렸으되, 그 그림의 시작과 내용은 후원자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그 당시의 일반적인 예술 활동이었다. 물론 그 그림은 돈으로 지불되는 바 작품의 소유권자는 그 후원자들이었으니 지금은 우리가 지금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의 그림이라고 부르지만 숨은 주인들은 바로 그 후원자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후원자들은 당시 상업의 발달로 인해 막강한 부를 가지게 된 상인계층의 사람들이었고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메디치 가문이 포함되어 있다.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은 우리가 르네상스 시기라고 부르는 1300년대 중반부터 1500년대 중반까지 대략 200년 동안 피렌체를 지배한 가문들을 소개하며 당시 힘의 지형을 드러낸 책이다. 묘하게도 이 책은 '피렌체'라는 도시의 역사를 탐구한 역사서이기도 하고, 당시의 '빛나는' 예술 작품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예술서이기도 하며 그 '순간'에 대한 막연한 향수와 동경을 갖게 하는 산문집이기도 하다. 이 점이 이 책이 갖는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다.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기점에는 고리대금업자들의 등장이 있었다. 십자군원정으로 인해 피폐해진 수도원들을 재정비하기 위한 교황의 노력도 함께 있었다. 이 두 계층의 사람들이 만나 지금 우리가 감탄하며 볼 수 있는 르네상스의 수도원 미술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수도원을 교황의 의도에 맞게 화려하고품위있는 미술 작품으로 채우는 것은 기존의 귀족계층이 아닌 고리대금업으로 막강한 부를 갖게 된 신흥상인들이었고 그런 상인들에게 교황은 손을 내민다. 상인들은 돈을 지불하는 가문만의 특별한 기도실을 제공받게 되고 각 기도실에는 가문을 상징하는 그림들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러니 당시의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보는 편이 더 옳을 지도 모르겠다.

 

그 중심에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조반니 디 비치에서 코시모 데 메디치를 거쳐위대한 로렌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다시 교황 레오 10세와 클레멘스 7세에 다시 집권하기까지 르네상스의 절반의 시기를 지배한 가문이다. 메디치 가문 앞에 소개된 스트로치 가문이나 브란가치 가문 그리고 르네상스 후반에 등장한 마키아벨리를 모두 함친 것보다 더 큰 힘과 영향력을 가진 막강한 상인 계층. 이 책의 중심에도 바로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이 책보다 더 넓은 의미의 르네상스 미술사 강좌를 들으면서도 이 메디치 가문에 대한 부분이 2-3강을 걸쳐 나왔을 정도이니 메디치 가문이 르네상스에 미친 영향은 그것의 부정성을 떠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들이 플라톤 아카데미를 만들어 인문학적으로 피렌체를 발전시킨 것, 미켈란젤로와 보티첼리 등 역사적인 미술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 아름다운 작품들을 현재에까지 물려준 것은 그들이 지배한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준 긍정적인 결과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판의 여지도 상당히 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그들에게 권한 이유와 같이 그들이 애당초 표방했던 '시민 공동체'의 모습을 잃어가고 '독재 권력'으로 시민들에게 비춰진 점에 대해서는 분명 권력에 대한 야욕이 있었음을 드러낸다. 지배자의 자리란 원래 그러한 것일까? 견제할 대상이 없는 지배자의 모습은 충분히 그러할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오늘 읽은 정약용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그 시를 당시의 로렌초 메디치와 지금 우리의 정치인들에게 바친다.

 

 

 

述志2(술지2)
-丁若鏞(정약용)
내 품은 뜻은


嗟哉我邦人(차재아방인)  아, 우리나라 사람들 애닯아라
辟如處囊中(벽여처낭중)  주머니 속에 처한 듯하도다
三方繞圓海(삼방요원해)  삼면으로 바다에 에워싸여
北方縐高崧(북방추고숭)  북방애는 산맥이 누르고 있도다
四體常拳曲(사체상권곡)  사지를 항상 펴지 못하니
氣志何由充(기지하유충)  기상과 마음을 어찌 채울 수 있을까
聖賢在萬里(성현재만리)  성현은 만 리 먼 곳에 있으니
誰能豁此蒙(수능활차몽)  누가 능히 이 몽매함 밝혀 줄까
擧頭望人間(거두망인간)  고개 들고 온 세상 바라보아도
見鮮情瞳曨(견선정동롱)  보이는 것 드물고 마음만 답답하도다
汲汲爲慕傚(급급위모효)  남의 것 모방하기 급급하고
未暇揀精工(미가간정공)  결점은 미처 정밀히 따지지 못하네
衆愚捧一癡(중우봉일치)  여러 바보들 한 천치를 치켜세워
裾唅令共崇(거함령공숭)  왁자지껄 함께 받들게 된다네.
未若檀君世(미약단군세)  단군 시재보다 못하나니
質朴有古風(질박유고풍)  그 때는 질박하고 고풍이 있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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