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정신 -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
강창래 지음 / 알마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의 제목이 무척이나 유치하다. 마치 초등학생이 작가에게 보내는 이메일 제목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이런 질문을 많이 했다. 사실 온라인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에는 제목과 표지가 쏟아져나오는 메타북들 중에 단연 이 책을 선택할만큼 매력적이지가 않았다. 저자 역시 내가 아는 이가 아니라 굳이 읽으려 했던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이 책을 봤다. 도서관에 가면 책들이 죄다 겉껍질이 벗겨진 채 꽂혀 있는데 그 속살을 만나고나서야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저 빨간 표지가 살짝 공포심(?)을 일으켰나보다. 책을 빌려 집에서 읽으며 뭐라 꼭 짚어낼 수는 없었지만 가독성있게 편집이 잘된 것 같아 편집자의 이름(천경호, 성기승, 배은희)을 확인하기도 했다. 서문이 좋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도 했다. 책장을 덮고 쓰다듬기도 했다. 읽는 순간부터 마냥 맘에 들은 것이다 이 책이.

다시 유치한 리뷰의 제목으로 돌아가보자. 이 책은 우리가 (특정) 책에 관하여 가진 통념을 깨뜨리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부제로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을 보면 어느 정도 예상은 하였지만 첫 장부터 포르노 소설이 나올 줄은 몰랐다.  포르노 소설이 프랑스혁명을 일으킨 결정적인 사상서적이었다니! 이후 위대하지만 너무나 어려운 과학책을 편 과학자들에 대한 비판, 고전이라 불리기엔 너무나 헛점이 많고 매력이 없는 플라톤의 [변명]과 공자의 [논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다윈의 진화론을 갖다붙인 우생학의 자식들, 책을 학살한 역사를 통해 되돌아보는 현재 우리의 독서 운동까지 작심하고 쓴 이 글들의 가장 큰 장점은 그 내용의 흥미로움을 넘어선 작가의 '똑똑함'이었다. 똑똑하다는 말을 아들이 아닌 인문학 작가에게 할 줄은 나도 몰랐지만 강창래 작가는 그 많은 책들을 읽고 이토록 명확한 주제의식으로 어쩌면 이렇게 매력적으로 쓸 수 있담? 이 시점에서 자꾸만 묻게 되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작가님처럼 똑똑해질 수 있을까요?"

 

책은 크게 위에서 요약한 다섯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었지만 이 책에 인용되거나 거론된 책은 상상을 초월한다.(참고문헌 목록으로 10페이지가 할애되었다.) 그 많은 책들 외에도 아마 작가는 더 많은 책을 읽었으리라. 단순히 많이 읽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책의 주제가 그러하듯 작가는 비판적 책읽기를 습관처럼 하고 있으며 어느 한 생각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같은 주제의 책을 여러 권 동시에 읽는다고 한다. 이 지점에서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똑똑'한지 알게 된다.

 

지금도 잘 알지 못하지만(그것들에 대해 '잘 알려면' 거의 학문을 연구하듯 해야 한다.), 그 당시에는 아예 몰랐기 때문에 어떤 것을 사야 할 지 선택하는 일부터 어려웠다. 도대체 어떤 [변명]이, 어떤 [논어]가 '진짜'란 말인가. 어쩔 수 없이 그럴듯해 보이는 책들을 선택해서 소개하는 글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평소 습관대로 각각 네댓 권씩을 샀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은 여러 권을 비교하면서 읽어야 비판적인 독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165쪽)

 

불현듯 그동안 나는 '아예 모르면서'도 아무 책이나 느낌 가는대로 읽고 그 책을 믿어왔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졌다. 글 전반에 흐르는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기류는 이런 저자의 독서 습관 덕분이고, 그런 저자의 독서 습관이 매력적인 글쓰기의 밑천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 서문에서 밝힌 '독서의 기쁨'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작가가 마지막 장에 '책의 학살'이라는 타이틀로 쓴 내용이야말로 저자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앞의 책들은 그럼 일종의 양념이 되려나? '나 요러요러한 책들을 읽고 요러요러한 생각을 했는데 니들은 몰랐지? 책은 이렇게도 읽을 수 있는거야.' 정도의?^^) 여러 협회에서 지정하는 권장목록들로 인해 그 외의 책들은 소외당한 채 도서관이라는 감옥에서 세월의 처분만 기다려야 한다는 그 안타까움 말이다. 다양한 책을 다양한 방법으로 읽고 서로 공유하며 책과 삶에 생명을 불러일으키길 작가는 바라는 게 아닐까?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그 마음과 닿지 않을까?

 

책을 파괴하는 이유를 거꾸로 새겨보라. 이들은 지금 불태우는 책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에 대해 대단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347쪽)

현대의 도서관에서는 비슷하면서도 결과는 조금 다른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책일수록 빠르게 손상된다. 그런 책들과 달리 인기가 없는 책들은 도서관이라는 감옥에서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365쪽)

 

책을 적게 읽는 사람은 아니지만 깊게 읽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 느끼는 바가 많았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와서야 책을 혼자가 아닌 타인과 함께 읽는 것에 마음을 연지라 내 속의 어떤 갈등을 건드려준 것 같다. 때로는 나의 얕은 지식에 부끄러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때로는 좋은 선생님처럼 바른 독서의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특정 책을 읽는 노하우를 전수해주기도 한다. 책에서 어떤 답을 얻고자 할 것이 아니라 질문을 얻어야 한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생각을 드러내고 그것을 함께 하는 일의 중요성도 느낀다. 요즘 리뷰 쓰는 것에 대한 회의가 생길 무렵 이 책을 읽어 격려를 받았다. 즐겁게 책 일고 신 나게 쓰기! 저도 작가님처럼 똑똑해 질래요! (아, 초등학생이 작가에게 보내는 이메일의 마지막 인사말 같구나!)

 

 결국 좋은 책이란 명확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던짐으로써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239쪽)

 

앞으로 나는 어떻게 책을 읽고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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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4-07-11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좋은 책이란 명확한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던짐으로써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239쪽)

맞아요~~~ 그리고 이 리뷰는 제게도 새로운 질문을 던지네요.
"어떻게 책을 읽고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저도 이 책을 읽고 싶어요.

그렇게혜윰 2014-07-12 10:11   좋아요 0 | URL
남이야 뭐라든 어쨌든 이렇게 꾸준히 리뷰를 쓰는 것도 일종의 생산이니까 말이에요,,,,, 이 책 괜찮아요. 전 빌려서 봤는데 다음에 책 나오시면 사서 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