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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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재의 나와는 큰 관련이 없는 '실연'이라는 소재에 대하여 큰 흥미는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나는 속으로 외쳤다.  

 

아, 실연당하고 싶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작가
백영옥
출판
자음과모음
발매
2012.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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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실연'이 가능했던 무수한 날들에 나는 왜 이런 책을 만나지 못했을까? 온 몸이 부서지는 듯 통증이 느껴졌던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난 그 아픔을 좀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실연'이 아름답거나 기분 좋은 경험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일어날 수도 있는 일, 그야말로 인류에게 있어 남녀 관계의 역사에 있어 아주 오래된 일이다. 물론 일어나기 전에는 그것을 극구 부정한 나완 상관없는 혹은 상관이 있더라도 좀 뒤의 일일 것이라 믿고 싶은 일 그게 바로 '실연'이다. 사강이 눈물을 머금던 문장 "실연은 오래된 미래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그래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사강의 연애와 지훈의 연애를 내 경험과 오버랩되었고, 다시 시작할 사랑에 살짝 설레기도 했지만 사실 '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완벽하게 공감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저 동의했을 뿐.

 

   '실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책. 미니시리즈보다 더 풍성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은 장담한다. 아, 그리고 백영옥 작가가 낭독한 버전도 참 듣기에 좋다.

http://jamomall.com/shop/data/09jamo/silsajo/ttiji.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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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나랑 노랑 - 시인 오은, 그림을 가지고 놀다!
오은 지음 / 난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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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익숙한 모든 것에서부터 낯선 모든 것으로까지

- 오은 <너랑나랑노랑>

 

 

 

 

 

  빨강, 파랑, 하양, 노랑, 초록, 검정. 그 이름을 발음해 본다. 눈을 떠 바라보면 색이 없는 곳은 없는데, 하물며 눈을 감아도 색은 보이는데 색을 소리 내어 부르자니 괜히 낯설다. 색이 낯선 것은 아닐 거야. 다만 그들을 이름 붙여 부를 때 문득, 색이 낯설어진다. 그건 연두나 분홍을 발음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색을 특정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얼마나 주제넘은 일인지 색에 관한 책을 읽으며 과장되게 겸손해진다. 그 옛날 탈레스는 왜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로 ‘색’을 지목하지 않았을까. <너랑 나랑 노랑>을 읽으면서 세계를 둘러싼 모든 문제는 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색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인간의 영역은 아니었다. 하지만 색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것, 마음껏 상상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 오래 쳐다보고 깊이 받아들이는 것, 가볍게 웃고 맘껏 우는 것, 혹은 그렇게 하도록 하게 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색에 이름만 붙여놓은 채 색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을 소홀히 해 왔다. 그 이야기에 가만가만 귀를 대고 있자면 킥킥 웃음이 나기도 하고, 때로는 심드렁해지기도 하고, 어느 순간 색을 만져보고 싶다는 욕망까지 생기게 된다.

 

 

 

시인은 색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았다. 시인이 된 지 한 참 후인 스물일곱 살이었을 때를 적은 시, 작품을 완성한 후 하루 동안만 자만하겠다는 말, 자신의 놀이를 의심하는 데에 대한 메모를 이야기에 섞어놓았다. 그래서 때때로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시인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화가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작품 속 인물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물론, 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내겐 유독 초록이 그랬다. 호퍼를 처음 봤을 때 가슴 한켠 서늘해지고 묵직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느낌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초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었으리라. 시인으 이야기 속에서 나는 초록색 객차 안에 있는 조세핀이고 캐서린이었다. 온통 무료함 투성이인 조세핀의 모습에서도 나를 보았고, 문득 흔들리고 싶어 하는 욕망을 느끼는 캐서린도 나의 모습이었다. 몽롱함. 시인이 말한 것처럼 초록이 이토록이나 몽롱함을 자아낼 수 있다니! 초록에 대한 몽롱함을 느낀 그녀들(나)은 더 이상 예전의 그녀들이 아니다.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한 것이 초록이라니, 그것이 그런 힘이 있다는 말인가. 난 일정부분 초록에게 취했었나보다. 아주 달콤하니 몽롱하게 말이다.

 

 

 

책은 색을 규정하지 않는다. 색을 어떤 특정한 특징으로 규정짓는 것은 색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만큼이나 주제넘은 짓이다. 빨강은 탐스러운 동시에 불안할 수 있고, 파랑은 우울함과 동시에 희망적이다. 하양은 위안과 좌절을 모두 줄 수 있으며, 노랑은 환한 빛이기도 하지만 잔인한 포식자이기도 하다. 초록은 자연이기도 하고 속도이기도 하며, 검정은 어둠 속에서 무구하기도 하고 문란하기도 하다. 색은 익숙한 모든 것에서부터 낯선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처음과 끝은 결국 검정에서부터 검정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눈을 뜨기 직전부터 눈을 감은 동안까지 우리가 볼 수많은 색을 내포한 색.

 

 

 

시인은 색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시종일관 말장난을 쉬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말장난이 그의 시에서도 그러했듯 늘 마지막에 가면 먹먹하다. 어쩌면 그는 가장 외로운 색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랑 나랑 놀자는 그 제안에 선뜻 손을 내밀고 싶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그가 펼쳐놓은 수두룩한 색거리(source)에 마음 들여보며 어느 색 하나 입혀주지 않았던 내 삶에 사랑스런 색을 입혀본다. 너랑 나랑 사랑. 나는 가장 사랑하는 색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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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서 벗어나 이제 글밥이 많은 책을 여러 번에 걸쳐 읽어줘 봤다. 아이들은 의외로 집중을 잘 했고, 쉬는 시간에도 읽어달라고 어찌나 조르는지 내가 도리어 쉬는 시간엔 쉬어야한다며 말렸을 정도이다. 함께 긴 글을 듣고 독후 활동을 하는 과정은 멋진 것 같다. 

 

 아이들에게 읽어 주느라 이 책을 정독해 봤다. 그 전까진 독서퀴즈를 낸다거나 그저 한 장면 한 장면 필요에 따라 읽었었는데 이 참에 나도 꼼꼼히 읽어봤다. 아이들은 정말 흥미로워했다. 특히 "내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 엄마, 아빠"에 크게 공감했다. 독후 활동으로 책을 만들어가며 했는데 그 중 내용 파악하기도 있었는데 어찌나 잘 들었는지 정말 거의 다 맞다는 게 신기했다.

 

 

 

 이 책은 읽은 지 한참되는 책이지만 서점에서 발견하자마자 아이들에게 읽어주려고 사왔다. 아이들에게는 단편들 중 '학교에 간 개돌이'만 읽어줬는데 아이들은 빌려가며 읽었다.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한 덕분에 아이들 흥미를 끌었지만 상상의 요소가 '마법의 설탕 두 조각'보다는 덜했던 것 같았다. 더구나 도시의 요즘 아이들과는 좀 거리감이 있어보였다. 예전에 읽었을 때가 더 재밌었는데^^

 

 

 

 

형제의 이름부터가 흥미롭지 않은가? 용,감,한,꼬,마,생,쥐 일곱 형제의 이를테면 모험담! 아이들은 코끼리가 나오는 부분을 가장 좋아했다. 특히 코딱지가 쏟아질 때! 아무리 거대한 동물을 가져온들 쥐가 가져온 동물만 하겠는가? 그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라 속도감있게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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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만녜 - 백년 전 북간도 이야기 보림 창작 그림책
문영미 글, 김진화 그림 / 보림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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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것은 언제나 여성.

 

  고만녜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딸은 그만 낳으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것도 그렇고, 딸 많은 집의 넷째 딸이라는 것도 특별할 것이 전혀 없다. 그녀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은 글을 쓴 문영미 작가의 할머니라는 점인데, 그 말은 달리 말하자면 이 이야기가 고만녜라는 특정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할머니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북간도에서 일어난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 그것이 <고만녜>라는 그림책이다.

 

알고 싶지 않은 역사는 굳이 잘 알려들지 않고 알려주지 않은 탓에  구한말의 역사에 대해서는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조차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다 우연히 작년과 올해 그 시기의 책에 대해 읽다보면 참 그때만큼 가슴아프고 힘없었던 적이 없던 것 같다. 고만녜네 가족도 그랬다. 북간도로  이주하면서 나라 잃은 마음이 얼마나 서러웠을 것인가. 그렇게 서러운 마음으로 살아야했던 조선족들의 수가 적지 않았으니 그 시절, 어찌 다들 잘 견디어 주었는지 고마울 뿐이다.

 

그래도 고만녜네 가족은 잘 적응해서 살았던 모양이다. 농사도 짓고 서당도 열고 딸들 출가도 잘 시켰으니 말이다. 더욱이 고만녜는 시집을 가서도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처지가 되었으니 다행 중 다행인 경우라 하겠다.  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것은 언제나 남자들보단 여자들인 것 같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기회를 꼭 잡아야했던 절실함이 그런 결과를 가져오듯 고만녜 할머니도 찾아온 학업의 기회를 잡고 뜻을 키운 여인이었다. 여의치 않았던 환경 속에서도 남자들은 분명 대접받고 살았을 것이 분명하니 그런 절실함이 있었겠는가 말이다.

 

 고만녜 할머니는 북간도에서 김신묵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 후 우리 나라로 건너왔지만 여기에서도 그리 편안한 삶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1980년대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주름진 얼굴로 양심수 석방 운동에 참석한 모습을 보니 그녀의 삶에 대한 가치가 꿈틀거리는 것 같아 뭉클했다. 우리의 할머니들은 그 어려운 시기에서부터 지금까지 부던히 자신의 삶을 살아있게 하고자 노력했다는 모습이 새삼 아름다워보였다. 또한 그런 모습들을 보며 지금의 여자들은 오히려 더 소극적인 것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도 해 볼 수 있었다. 많은 권리가 있는 현재 우리는 그 권리들을 정당하게 활용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좀더 당당하고 책임감이 있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보다도 사실 내 마음을 더 움직인 것은 이 그림책의 그림이었다. 흑백 사진 얼굴부분을 콜라주하여 몸동작을 표현하는 그림 기법은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내용에 엄청난 활기를 주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가족 관계도를 이러한 기법으로 나타내 보고픈 마음이 생길 것 같다. 우선 나부터도 진지하게 구상 중이니 말이다. 그림책에 있어 그림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더더욱 그림이 더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내용도 중요하고 의미있지만 그림이 없다면? 이야기의 소재는 좋지만 그림이 없다면 좀 지루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따라서 이  그림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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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수염 생쥐 미라이 보림문학선 9
창신강 지음, 전수정 옮김, 김규택 그림 / 보림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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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띠인 아들은 남들보다 한글을 빨리 떼었다. 미라이를 보며 아들을 떠올렸다. 사실 이른 나이에 한글을 뗀 아들이 좀 못마땅했다. 감성을 잃어버릴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미라이를 보며 위안을 받았다. 미라이 같은 현명한 아들이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쥐에 대한 동화는 많다.  옛이야에도 많고 유명한 그림책 <프레드릭>을 비롯하여 많은 그림책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이야기 속에서 쥐들은 영리하고 부지런하다. 약삭빠르기도 하고 익살맞기도 하다. <파란 수염 생쥐 미라이>에 나오는 쥐들은 이 모든 유형들이 나온다. 권력욕에 빠진 미자자, 우직하지만 마음 따뜻한 미후, 뭔가 어정쩡한 또우즈 집안의 쥐들, 마음 착한 형 미상인, 그리고 현명하고 인격적인 미라이까지 다양한 유형의 인물들이 마치 우리 사람 세계를 보는 것과 같다. 물론, 사람도 나온다.

 

책은 무척 두껍지만 이렇듯 다양한 인물들이 갈등과 해결을 통해 오밀조밀 엮이며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때문에 전혀 지루하지 않다. 중국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경우도 많지 않지만 중국 작가의 동화책을 읽는 것은 처음인데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다. 구성이 돋보인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쥐 미라이를 보면서 즈루이와 그의 딸 리리가 그랬듯이 독자들 역시 마음의 변화를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다움'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다움 말이다.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는 모습들을 돌아보게 하는 것은  작은 파란수염 생쥐 미라이이다. 단지 그가 인간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신기한 것이 아니라 그가 인간의 마음으로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신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미라이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픈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이런 저런 많은 가치들을 발견하게 되지만 그중 가장 드러나는 가치는 '존중'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우리 인간들이 '존중'하며 살아가는 쥐 미라이를 통해 인간다움을 재인식하게 되는 것이 이 이야기의 주제라 할 수 있다. 그 변화를 가장 드러내는 것이 리리이지만 사실 즈루이도, 다른 쥐들도 모두 '존중'이라는 가치를 여러 사건들을 통해 배워가고 있다. 물론 책을 읽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서로의 언어로 서로를 감동시킨다는 행위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깨닫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미라이에게 푹 빠진 우리 가족은 얼른 아들이 자라서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다섯 살 난 아이가 읽기에는 무리가 있는 내용이라 그 아이를 기르는 어른들이 읽어보았지만 책을 읽고 우리는 우리 아이가 딱 미라이처럼만 인간다웠으면 한다.  할머니와 엄마의 이 바람이 아이를 기르는 가치관에 묻어나는 것을 희망해야겠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두꺼운 양장본인데 책갈피 끈이 없다는 것이 많이 불편했다.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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