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 진경문고
정민 지음 / 보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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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에서 벼리를 처음 알게 되었으니 지금 벼리는 중고등학생 쯤 되지 않았을까? 벼리의 이름을 오랜만에 들으니 반가웠다. 이 책은 그렇게 다정한 아버지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책을 잘 읽는 방법에 대한 궁금증은 책에 흥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 쯤 가져봤을 것이고, 아마 거기에 대한 답은 대부분 유보한 상태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정민 선생님은 고전문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통해 책을 잘 읽는 방법을 하나 하나 짚어준다. 사실 독서법에 대한 책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건 어른을 대상으로 하건 많이 나와있는 편이지만 전적으로 한국적인 방법을 제시한 이 책이 매우 신선하게 느껴진다.
 
<책 이야기>에서는 '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나라를 중심으로 중국, 이집트, 서양의 책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통해 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느끼도록 하고 있다. 다짜고짜 독서법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고 이렇게 '책'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을 짚어주는 것이 좋았다. 어떤 것의 방법론을 익히기 전에 그것에 대한 애정을 갖게 하는 것이 교육의 첫 걸음이 아니겠는가? 이 책에 나온 '침자리'에 대한 에피소드를 보면서 우리의 조상들이 얼마나 책을 소중히 다루었는지 느껴졌다. 정민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옛날엔 책이 귀해서 못 읽고 요즘은 책이 흔해서 못 읽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책을 좀 귀하게 여기면 좋겠다.
 
<책, 어떻게 읽어야 할까>에서는 독자들이 특히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가장 궁금해 할 독서의 올바른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우리는 익히 독서 방법 중 정독, 통독, 발췌독 등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 어떻게 읽는 것이 바람직한지 궁금해한다. 선생님은 정독할 책은 정독하고 통독할 책은 통독해야 한다고 운을 떼며 시작하지만 결국 가르침을 받다보니 쉽지 않은 그러나 아주 튼튼한 책읽기의 방법을 익히게 된다. 정민 선생님을 정민 작가님이라고 하지 않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무언가 가르쳐주고 싶은 내용이 있을 때 성급하게 그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않고 어린 독자들을 잘 다독이며 따라오게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령,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이 책의 제목에 걸맞게 어려운 고전을 예시로 들 수도 있건만 '여우누이'나 '만화 삼국지'로 말문을 열어 독자들이 두려움을 떨치고 가르침에 따르게 한다. 선생님도 아주 좋은 선생님이다.
 
다양한 그러나 그 중 골라하는 방법으로서의 다양함이 아니라 하나 하나 모두 따라야할 다양한 방법들이 지루하지 않게 제시된다. 박제가나 이덕무, 박지원, 이익, 정약용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위인들의 예화부터 양연이나 허조 등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분들의 독서법까지 아주 많은 예화들이 실려있다. 물론 내용에 걸맞는 그림자료들도 흥미를 끈다.
 
마음이 급한 독자는 이 쯤에서 사실 빨리 다 배우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읽을 수가 있는데 그것을 말리고 싶다. 많은 독서법을 선생님이 알려주시지만 사실, 그것들 중 우리가 골라 실천해야 할 것이 아니라 모두 체화할 필요가 있는만큼 천천히 읽어 이 책부터 이 책에 나타난 방법대로 읽으면 좋겠다. 여러 번 읽고, 옮겨 적어도 보고, 작은책으로 만들어보면서 말이다.
 
<책 아닌 것이 없다>는 책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책이 곧 세상이라는 말로도 해석이 되는데, 삶을 살 듯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책에서 손을 놓지 않듯 삶을 살아간다는 것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세상을 넓게 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많은 옛사람들의 독서 습관과 그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고도 의미있게 담겨 있는 이 책이 초등학생 어린이가 있는 집에 한 권씩 꽂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일찍부터 책읽는 튼튼한 방법을 습관 들이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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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7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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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이 리뷰는 <걸리버 여행기>와 같은 내용을 두 번 게재합니다.알라딘 서재에서는 리뷰 쓰기로 상품을 두 가지 이상 지정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대로 된 풍자이다. 인간이 곧 돼지이고, 돼지가 곧 인간의 모습을 하는 것 그리고 후이넘(말)의 격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야만스러운 야후(인간)의 모습 모두 아주 제대로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돼지와 같고 말보다 못하다는데 그보다 심한 모욕은 없다만 읽는 내내 그렇지 않다고 애써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동물 농장 - 조지 오웰 / 문학동네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 / 느낌이 있는 책

     

우선, 이 책의 표지가 조지오웰급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비가 내리는 배경은 돼지의 위치(물리적, 사회적)를 도드라지게 해 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조지오웰급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은 풍향계의 약자의 배치이다. NEWS로 묘하게 틀어놓은 방향! 아!! 볼수록 매력있다. 돼지 주제에 뉴스라니! 하! 감탄스럽다! 

 

"---인간은 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유일한 동물이요. ---그런데도 모든 동물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소.---." (13쪽)

 

그렇다. 인간은 알을 낳는 것도 아니고 우유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가죽을 내놓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들은 취하기만 할 뿐 다른 동물들에게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가끔 사랑을 제공한다는 이도 있으나 그것 역시 제공이라고 하기엔 이득이 너무 크다. 개인적으로 모든 동물은 평등해야 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메이저 영감을 통해 처음 해 보는 것 같다. 인간이 모든 동물의 우위에 있는 것, 그거 누가 정한걸까? 난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배워서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인간을 모든 동물의 우위에 스스로 올려놓고 산다. 동물의 왕인 호랑이가 콧방귀를 낄 노릇이군.

 

왼쪽의 저 돼지들의 혁명과 달리 <걸리버 여행기>에서 인간 세상을 풍자하는 것은 돼지나 말이 아닌 사람이다. 여행을 좋아했던 한 남자가 16년의 특별한 여행을 통해 인간보다 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리고자 썼다는 책. 인간의 입에서 소인국, 거인국, 후이넘의 나라를 동경하고 존경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은 다른 동물들에게 듣는 말보다 강했다.  

 

타락한 인간과 반대편에 있는 탁월한 네발짐승, 즉 후이넘들의 미덕이 내 눈을 밝혀 주고 이해의 폭을 넓혀준 결과, 인간의 행동과 욕망들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인간의 명예를 내세울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379쪽)

 

탐욕스럽고, 야비하고, 자신의 이성을 나쁜 일에만 쓰고자 하는 비인격적인 모습이 가장 사람다운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 걸리버는 거울을 보는 순간 가장 치욕스럽다. 자신이 야후(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의 종족 본성에 역함을 느끼게되는 그 시간이 우리에게 전혀 없는 걸까? 수많은 다툼들과 범죄들이 역겹다는 건 작가가 살았던 그 때보다 더 심해진 것 같다.

 아무튼 상이 변했다. 혁명을 통해 농장은 돼지들의 것이 되었고 그들에겐 자유가 있었고 풍족함과 여유로움, 민주적인 절차가 보장되는 듯 했다.이름도 <동물 농장>. 동물이 주인이 된 농장이다.

 

일곱 계명

1. 두 발로 걷는 자는 누구나 적이다.

2. 네 발로 걷는 자 또는 날개를 가진 자는 누구나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고 나면 결국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가지게 되면 돼지도 두 발로 걷게 하고 침대에서 자게 하며, 더 평등한 몇몇 동물이 되게 한다.

 

힘없고 선량한 동물들은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을 믿고 따르지만 결국, 그들은 점점 굶주리고, 속고, 버려진다. 그들이 노동한 대가는 더 평등한 몇몇 동물들이 취하게 되고, 그들이 그리워한 자유 역시 그 돼지들의 차지이다. 풍향계 위에 올라가서 새로운 소식이라며 거드름을 피우고 사기를 치는 모습에 분통해 하지만 이미 한참을 속은 뒤이다. 이름도 <매너 농장>으로 바뀌지 않는가.

 

벤저민이 믿었던 단 한 가지 "풍차가 있든 없든 삶이란 언제나처럼 고생스러울 것"이라는 항목만이 유효할 뿐이다. 어리석은 우리들이여, 권력을 차지한 채 언제나 새로운 소식이라며 우리를 현혹하는 돼지들을 조심할 지어다. 그것은 아주 인간적인 더럽게 인간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걸리버가 처음부터 인간에 대해 역겨움을 갖게 된 것은 아니었다. 릴리풋(소인국)이나 브로브당나그(거인국), 라퓨타 등에 갔을 때는 자신과 다른 존재들에 대한 넓은 이해를 하는 좀더 나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영국인으로서의 품위도 가지고 있었고 자긍심도 있었다. 각 지역의 특색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유연하나 태도가 있었지만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았고 영국에서의 삶도 별 탈없이 살 수 있었다.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인 걸리버는 동시에 당시로서도 무척 깨어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생각은 지금 세상에 태어나도 전혀 구닥다리같지 않다. 오히려 지금 세상에서도 매우 파격적이다.

 

모든 자녀들은 부모가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것에 대해 보답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여러 가지 고달픈 일들을 생각해 볼 때, 자녀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것이 그렇게 고맙게 여겨야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도 사랑의 결합을 할 때는 자녀가 아닌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75쪽)

 

이런 그이기에 후이넘의 나라에 가서도 그들을 존경할 수 있었던 것이지 일반적인 사람은 아마 후이넘은 후이넘이고 야후는 야후고 인간은 인간이라고 합리화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걸리버가 서술한 후이넘과 야후의 극단적인 대비는 독자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했다. 진화론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야후와 같다는 것을 결코 인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야후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란 말이야? 지금 우리는 그 야후에서 좀더 사기꾼 기질이 보태어진 악질 야후이고? 어떻게 그걸 쉽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거참, 인간의 본성이란 알고 싶어지지 않는다.

  두 작품은 모두 성추설에서 시작한다. 인간의 본성은 추하다. <걸리버 여행기>는 여기에 한 발 더 얹어서 가뜩이나 추한 본성에 이성이 자리하면서 더 추해졌다고 말한다. 정말, 이렇게 자기혐오를 하면서 살아야 할까? 비참하다.

  그러니 그 추함이 사라진 아름다운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덕을 쌓은 거란 말인가? 내가 후이넘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물 농장>의 선량한 동물들만큼은 가치있어야 할 텐데, 아무 것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이니 제발 자신을 먼저 돌아보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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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 초판본 완역판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강미경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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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대로 된 풍자이다. 인간이 곧 돼지이고, 돼지가 곧 인간의 모습을 하는 것 그리고 후이넘(말)의 격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야만스러운 야후(인간)의 모습 모두 아주 제대로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돼지와 같고 말보다 못하다는데 그보다 심한 모욕은 없다만 읽는 내내 그렇지 않다고 애써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동물 농장 - 조지 오웰 / 문학동네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 / 느낌이 있는 책

     

우선, 이 책의 표지가 조지오웰급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비가 내리는 배경은 돼지의 위치(물리적, 사회적)를 도드라지게 해 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조지오웰급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은 풍향계의 약자의 배치이다. NEWS로 묘하게 틀어놓은 방향! 아!! 볼수록 매력있다. 돼지 주제에 뉴스라니! 하! 감탄스럽다! 

 

"---인간은 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유일한 동물이요. ---그런데도 모든 동물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소.---." (13쪽)

 

그렇다. 인간은 알을 낳는 것도 아니고 우유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가죽을 내놓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들은 취하기만 할 뿐 다른 동물들에게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가끔 사랑을 제공한다는 이도 있으나 그것 역시 제공이라고 하기엔 이득이 너무 크다. 개인적으로 모든 동물은 평등해야 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메이저 영감을 통해 처음 해 보는 것 같다. 인간이 모든 동물의 우위에 있는 것, 그거 누가 정한걸까? 난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배워서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인간을 모든 동물의 우위에 스스로 올려놓고 산다. 동물의 왕인 호랑이가 콧방귀를 낄 노릇이군.

 

왼쪽의 저 돼지들의 혁명과 달리 <걸리버 여행기>에서 인간 세상을 풍자하는 것은 돼지나 말이 아닌 사람이다. 여행을 좋아했던 한 남자가 16년의 특별한 여행을 통해 인간보다 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리고자 썼다는 책. 인간의 입에서 소인국, 거인국, 후이넘의 나라를 동경하고 존경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은 다른 동물들에게 듣는 말보다 강했다.  

 

타락한 인간과 반대편에 있는 탁월한 네발짐승, 즉 후이넘들의 미덕이 내 눈을 밝혀 주고 이해의 폭을 넓혀준 결과, 인간의 행동과 욕망들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인간의 명예를 내세울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379쪽)

 

탐욕스럽고, 야비하고, 자신의 이성을 나쁜 일에만 쓰고자 하는 비인격적인 모습이 가장 사람다운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 걸리버는 거울을 보는 순간 가장 치욕스럽다. 자신이 야후(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의 종족 본성에 역함을 느끼게되는 그 시간이 우리에게 전혀 없는 걸까? 수많은 다툼들과 범죄들이 역겹다는 건 작가가 살았던 그 때보다 더 심해진 것 같다.

 아무튼 상이 변했다. 혁명을 통해 농장은 돼지들의 것이 되었고 그들에겐 자유가 있었고 풍족함과 여유로움, 민주적인 절차가 보장되는 듯 했다.이름도 <동물 농장>. 동물이 주인이 된 농장이다.

 

일곱 계명

1. 두 발로 걷는 자는 누구나 적이다.

2. 네 발로 걷는 자 또는 날개를 가진 자는 누구나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고 나면 결국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가지게 되면 돼지도 두 발로 걷게 하고 침대에서 자게 하며, 더 평등한 몇몇 동물이 되게 한다.

 

힘없고 선량한 동물들은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을 믿고 따르지만 결국, 그들은 점점 굶주리고, 속고, 버려진다. 그들이 노동한 대가는 더 평등한 몇몇 동물들이 취하게 되고, 그들이 그리워한 자유 역시 그 돼지들의 차지이다. 풍향계 위에 올라가서 새로운 소식이라며 거드름을 피우고 사기를 치는 모습에 분통해 하지만 이미 한참을 속은 뒤이다. 이름도 <매너 농장>으로 바뀌지 않는가.

 

벤저민이 믿었던 단 한 가지 "풍차가 있든 없든 삶이란 언제나처럼 고생스러울 것"이라는 항목만이 유효할 뿐이다. 어리석은 우리들이여, 권력을 차지한 채 언제나 새로운 소식이라며 우리를 현혹하는 돼지들을 조심할 지어다. 그것은 아주 인간적인 더럽게 인간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걸리버가 처음부터 인간에 대해 역겨움을 갖게 된 것은 아니었다. 릴리풋(소인국)이나 브로브당나그(거인국), 라퓨타 등에 갔을 때는 자신과 다른 존재들에 대한 넓은 이해를 하는 좀더 나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영국인으로서의 품위도 가지고 있었고 자긍심도 있었다. 각 지역의 특색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유연하나 태도가 있었지만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았고 영국에서의 삶도 별 탈없이 살 수 있었다.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인 걸리버는 동시에 당시로서도 무척 깨어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생각은 지금 세상에 태어나도 전혀 구닥다리같지 않다. 오히려 지금 세상에서도 매우 파격적이다.

 

모든 자녀들은 부모가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것에 대해 보답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여러 가지 고달픈 일들을 생각해 볼 때, 자녀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것이 그렇게 고맙게 여겨야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도 사랑의 결합을 할 때는 자녀가 아닌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75쪽)

 

이런 그이기에 후이넘의 나라에 가서도 그들을 존경할 수 있었던 것이지 일반적인 사람은 아마 후이넘은 후이넘이고 야후는 야후고 인간은 인간이라고 합리화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걸리버가 서술한 후이넘과 야후의 극단적인 대비는 독자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했다. 진화론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야후와 같다는 것을 결코 인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야후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란 말이야? 지금 우리는 그 야후에서 좀더 사기꾼 기질이 보태어진 악질 야후이고? 어떻게 그걸 쉽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거참, 인간의 본성이란 알고 싶어지지 않는다.

  두 작품은 모두 성추설에서 시작한다. 인간의 본성은 추하다. <걸리버 여행기>는 여기에 한 발 더 얹어서 가뜩이나 추한 본성에 이성이 자리하면서 더 추해졌다고 말한다. 정말, 이렇게 자기혐오를 하면서 살아야 할까? 비참하다.

  그러니 그 추함이 사라진 아름다운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덕을 쌓은 거란 말인가? 내가 후이넘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물 농장>의 선량한 동물들만큼은 가치있어야 할 텐데, 아무 것도 자신할 수 없는 것이니 제발 자신을 먼저 돌아보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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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와 연계하여 읽어준 책들

 

 

2학년 교과서에서 다루어진 책들 중 가장 많이 다루어진 책이 바로 <팥죽할멈과 호랑이>이다. 국어와 즐거운 생활에서 각각 한 단원 씩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어는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즐거운 생활은 2학년이 끝날 때의 시점이라 2학기 전체를 대표하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러 판본이 있으나 시공주니어판을 원작으로 싣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백희나 작가의 그림이 가장 맘에 든다. 교과서에는 인물들 중 많은 수가 생략되어 각색되었으니 원작을 읽으면 훨씬 내용이 풍성해진다. 아이들은 물론 그 동생들까지 좋아한 책!

 

 

오늘이는 즐거운 생활 교과에 영상 매체로 등장하는 텍스트인데 애니메이션 그림책을 먼저 보고 보니 역시 영상 매체에 대한 이해도 빨랐다. 다른 학급에서는 영상만 보았더니 아이들이 오늘이가 '야아'를 부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학의 이름을 영상매체에선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판본들이 많고 그림이 없이 이야기로만 들려줘도 좋겠다. 이 판본은 현재 품절로 알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읽은 책이다. 사실, 이야기 위주가 아닌 정보 위주의 책이라 크게 흥미를 가지진 않았지만 집에 두고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이 매우 간단하기 때문에 유아나 저학년 이하에게만 추천한다.

 

 

 

 

 

 

 

 

 

세계 인권의 날을 맞이하여

 

 

인권에 대한 이해가 2학년에게는 어렵다. 어린이 인권도 알려줘야 하는데 그 전에 인권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싶어 읽어주기 시작했다. 한 번에 다 읽어주기 보다는 조금씩 읽어주며 내가 부연 설명으르 하고 함께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아이들은 기대 이상의 관심을 드러냈고 인권에 대한 교육은 빠르면 빠를 수록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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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아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3
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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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극이다보니 그야말로 극적이었다. 뒤루아도 야심만만했고 포레스티에나 왈테르 역시 야비했다. 마들렌은 지적이었고 마렐 부인은 사랑스러웠다. 책과는 달리 뒤루아의 승진은 포레스티에의 죽음 이후가 아닌 그가 신문사에서 쫓겨나고(이것도 책과는 다른 설정) 왈테르 부인을 접견하자마자로 빨리 처리했다. 인물들은 펄떡펄떡 살아 있었으나 책에서 주는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았다.

 

  내가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느낀 인물은 뒤루아도 마렐 부인도 마들렌도 아니었다. 르베를 드 바렌. 그가 뒤루아와 걸으며 나눈 대화는 작가의 목소리에 가장 가까웠다.  그런 그가 영화 속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너무 직접적이라 그랬나?

 

"------인생이란 산길과 같소. 올라가는 동안은 꼭대기가 보이니까 행복을 느끼지요. 그러나 다 올라가면 갑자기 내리막길이 눈앞에 나타나고, 더욱이 그 끝은 죽음이오. 올라갈 때에는 천천히 올라가지만 내려갈 때에는 빠르단 말이오. 당신 나이에는 즐거운 일만 많아서 여러 가지 희망을, 결코 실현하지 못하는 희망도 가슴에 품지만 내 나이가 되면 이제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고 그저 죽음이 있을 뿐이오."

 

"------당신을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시험 삼아 빠져나와 보시오. 살아 있으면서 당신의 육체나 이익이나 사상이나 또 온갖 인간성에서 벗어난다는, 저 초인간적인 노력을 하고 거기서 밖을 바라보시오. 그러면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와의 다툼이라든가, 예산 논의 같은 것이 얼마나 무가치한지 알게 될 거요."

(184~187쪽)

 

  하지만 욕망에 찬 사람들이 늘 그렇듯 뒤루아 역시 이 대화를 애써 무시한다. 자신이 하는 일들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야비한 일인줄 알면서도 계속해 나아가는 것, 오직 그것만이 자신이 살 길인양 행한다.  그러하기에 인간이란 욕망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물론, 일면 그가 처한 상황과 당시 심각한 사회불균형을 생각해보면 그런 그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진실로 사랑하는 여인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 그 여인의 사랑도 마음껏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뒤루아의 성공에 대한 욕망, 왈테르와 라로슈 마티외의 부와 명예에 대한 욕망, 마들렌의 지적 욕망, 왈테르 부인의 몸의 욕망, 마렐 부인의 사랑에 대한 욕망 등 이 책에는 인간의 다양한 욕망이 당시 사회 배경과 얽혀 잘 드러나있다. 이 책이 1885년에 나왔다고 하는데 꽤나 파격적이다. 더욱이 자신의 미모를 무기로 삼는 인물이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점이 지금으로서도 파격적이다.  더구나 이 책의 결말이 권선징악적이지 않다는 점이 놀랍다.

 

   영화에서는 로버트 패터슨이 벨아미의 역할을 맡았는데 잘 어울렸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의문이 든다. 그의 미소가 벨아미와 어울렸다는 정도 외에는 몰입이 잘 안되었다. 다만, 마렐 부인 역의 크리스티나 리치는 내가 예전에 <페넬로페>에서 보던 그 소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책 중 인물의 역할 그 이상을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마들렌 역의 우마 서먼은 그에 비해 너무 나이 들어 보였고, 왈테르 부인 역의 크리스티나 스콧 리치는 입이 딱 벌어졌다. 특히 뒤루아가 질색하는 그 교태 연기는 나의 상상을 넘었다.

 

   이야기의 초반, 사랑스러운 마렐 부인이 식탁에서 말한다.

"그래요. 세상에서 즐거운 것은 연애뿐이에요. 그런데도 우리는 가당치 않은 조건 때문에 그것을 망쳐 버리는 일이 많아요."

  그 말에 마들렌이 덧붙인다.

"그래요......정말이에요....... 사랑을 받는다는 건 기쁜 일이에요."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것. 진심으로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기쁘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우리의 욕망이 얼마나 그 기쁨을 막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읽으며 어쩔 수 없이생각난 책>

위험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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