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바닷가의 하루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수상작
김수연 지음 / 보림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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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 중에 유리 슐레빌츠와 테지마 케이자부로오가 떠올랐다. 유리 슐레빌츠의 느낌이 더 먼저 들었고 테지마 케이자부로오가 후에 떠올랐다. 굳이 노래를 떠올리면  '섬집 아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기도 엄마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유리슐레비츠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그림에 글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그림을 아주 유심히 바라볼 수 밖에 없는데 이 책 역시 글은 첫 장면과 끝 장면에만 나올 뿐 그림으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그림을 유심히 볼 수 밖에 없다. 할머니와 강아지라는 다소 정적인 인물들의 느낌이 어느 바닷가의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면, 갈매기떼라던가 큰 물고기는 역동성과 변화를 느끼게 해 준다. 그로 인해 꿈의 세계로까지 연결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도 주된 분위기는 평온함인데 그 평온함이 도시에 살고 있는 내가 느끼기엔 참 좋았다.

 

테지마케이자부로오를 좋아하는 것은 역시 그의 판화 그림 때문이다. 얼마나 역동적인지 판화의 매력에 푹 빠지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 작품도 판화 그림으로 되어 있어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다. 다만, 이 작품의 경우 평온함을 더 많이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배경은 통일되고 여백의 미가 있되 인물에게만 역동성을 준 점 때문이다. 테지마케이자부로오의 판화 그림들이 웅장함과 비장함이 느껴진다면 김수연의 판화 그림들은 평온함과 아기자기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판화 그림의 또다른 면을 보게 되어 좋았다.

 

노래 '섬집 아기'가 떠오른 것은 이 그림책에 나오는 인물이라고는 할머니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눈이 먼 어부 할머니. 그러하기에 할머니와 강아지의 풍경이 평온하기는 하되,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 그런 느낌이 이 노래를 떠올리게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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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와의 약속
아이잭 신 지음 / 멘토프레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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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아닌 책을 찾고 싶었다. 인문학자의 깊은 철학적 사유가 담긴, 미학자의 깊은 연구가 담긴 책이 아닌 가볍게 그리고 따뜻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고 싶었다. 도서관에 비슷한 류의 책들을 뒤적여보던 중 이 책을 읽게 되었고, 마치 아무도 알지 못하는 보물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채 다 읽기도 전에 발견한 시인 김경주의 발문도 내겐 눈이 동그라지는 보물이었다.  

 

이 책은 르누아르의 이야기와 아이잭 신의 이야기가 교차 진행된다. 두 이야기가 모두 서사가 탄탄하여 읽기에 좋다. 특히 르누아르의 이야기는 시간적 흐름에 따르고, 작가 본인의 이야기는 시간을 오가며 진행하여 긴장감을 주는 점이 좋았다.

 

사실 인상파라고 하면 모네와 마네를 중심으로 떠올리게 된다. 특히 올랭피아의 마네로 인해 어떤 획을 그었다는 인식이 내 머릿 속에 있어서인지 작가가 왜 하필 르누아르에 촛점을 맞추었는지 사실 낯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다보니 르누아르가 당시로서 특출나거나혁명적인 인물은 아니었지만 당시 인상파의 시작과 전성기 등을 증언하는 역할로는 제격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근 80이 되도록 장수한 점과 인상파의 특징을 잘 드러낸 작품들이 그가 인상파 시기를 잘 표현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그 역할에 가장 충실한화가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물론, 김경주 시인의 발문을 보니 삶의 선명함에 비해 그림이 비밀스럽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앞서 거론한 화가들에 비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르누아르의 삶과 당시 인상파 화가들의 삶, 그리고 일반적인 화가의 삶에 대해 폭넓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 책의 선택은 책을 덮고 난 후에도 유효하다. 고흐가 아닌 다양한 화가들의 삶과 화풍이 이 책처럼 많이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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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꽃, 눈물밥 - 그림으로 아프고 그림으로 피어난 화가 김동유의 지독한 그리기
김동유 지음, 김선희 엮음 / 비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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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낭비하지 않은 화가, 김동유

 

책은 화가 김동유의 삶, 그림에 대한 이야기이다. 읽다보면 그의 철학은 일관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러한 일관성의 기본은 그가 시간을 결코 낭비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이며, 때때로 아니 종종 시간을 낭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말 수가 심하게 적은 그는 그림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화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써 내려간 글귀들의 많은 부분에 공감했는데 또 그 느낌이 묘한 것이 크게 감정이 섞이지 않게 저자와 독자고 교감한다. 그가 자신의 그림에서 어떤 사연을 읽지 말 것을 당부했듯이 그는 관계에 있어서도 상당히 신파적이거나 감정적인 것을 싫어하는 사람 같아 보였다. 그런 무덤덤한 표현이 어쩌면 더 진실된 교감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때론 독자가 아닌 가족이나 지인을 겨냥독자로 쓴 듯한 부분들이 보여 귀여웠다. 어쨌든 그가 전문 작가는 아니니까 말이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화가 김동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그의 그림은 눈에 익다. 전시회에서 봤을까, 인터넷에서 보았을까, 알 길이 없지만 분명 눈에 익다. 어쨌든 책을 읽다보니  그의 이름 앞에 붙는다는 최고, 고가, 유일과 같은 수식어가 그냥 붙은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겠다. 누구에겐들 가슴 아래 아픈 사연, 슬픈 사연이 없겠는가마는 그 과정 속에서 한 번쯤은 무너지기도 할 텐데 그에게 무너짐이 없었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지? 그게 가능한가? 독하다!라는 짧은 감상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그런 그의 태도가 지금의 화가 김동유를 만든 것만은 틀림없다.

 

자신의 촌스럽고 아웃사이더적인 취향에 대하여서도 확고했고, 자신이 하는 일과 창작 방법에 대해서도 확신했고, 가난과 재능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도 확고했다. 그런 확고함의 결과물이 그의 이중그림들을 비롯한 인정받는 다수의 그림이다.

 

이중그림, 그것은 사라지고 희미해진 이들의 과거에 숨을 불어넣는 작업이었다.

(159쪽)

 

부제에 쓰인 것처럼 그는 지독했다. 그 지독함을 따라 할 수 없기에 나는 예술가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지독함을 가진 예술가들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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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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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괴테와 나의 첫 인연은 수능을 마치고 난 후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읽었던 <괴테의 마지막 사랑>이라는 책이었는데 그때 나의 나이가 이야기 속의 괴테보다는 그가 사랑해 마지 않았던 소녀와 더 가까웠던 지라 괴테의 사랑을 다소 못마땅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그래서 괴테의 책을 일부러 멀리 했는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7년 후, <파우스트>를 읽었다. 읽으며 감탄했다. 괴테가 괜히 괴테가 아니구나! 그래도 읽는 과정에서 쉽지 않았던 탓인지 오랜 시간 또 괴테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다.

     이런 두 번의 만남은 내가 괴테를 나이 지긋한 대작가로만 떠올리게 했다는 한계를 만들었다.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읽어 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놀라움이었다. 듣기로만 치면 수 백 번도 더 들었을 이 제목이 그런 선입견 때문에 괴테의 당시가 아니라 괴테의 회고일 것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해 버린 것이다. 이 작품을 쓸 당시 괴테는 20대 초반이었다. 하! 괴테에게도 20대 초반의 나이가 있었구나!

    베르테르의 죽음을 감지하는 1771년 11월 30일과 12월 4일의 편지를 읽자면, 그의 괴로움과 외로움이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아픈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한 여인을 사랑함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하는 베르테르의 마음을 나 역시 괴로워했던 경험이 있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죽음을 결정할 것을 이미 알고 있다할 지라도 어떻게든 막아보고픈 마음도 생기고 말이다.

     죽기로 결심한 그날, 죽음을 감행한 그날은 12월 20일에서 21로 넘어가는 밤 12시이다. 오싹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이 바로 내가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랑을 감당하지 못하는 한 사내가 세상을 등진 그날 때어난 난 어쩌면 베르테르의 마음을 가진 채 태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래서 유독 이런 깊은 슬픈 감정에 마음이 더 짠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몰입해 본다면, 그는 12월 20일 밤 즈음부터 오직 로테만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해주어 자신이 소중한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던 때,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오직 그녀를 만날 생각만으로 충만하던 때, 그녀가 없다면 이 세상 그 무엇도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심정, 그녀를 포기하고 동시에 삶을 포기해야하는 현재의 마음까지. 12시이기에  결코 번복할 수 없는 베르테르의 결심이 이해가 되지만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다. 피끓는 그 마음을 당사자 아닌 그 누가 이해하겠는가.

   이 책을 읽고 나니 70대 노인이 되어서도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았던 괴테가 달리 보인다. 20대의 베르테르인 채로 괴테는 평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베르테르는 자신의 사랑을 얻지 못해 비극을 선택하지만 그 조차도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 사회적 여파야 어쨌든 간에 자신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증명한 것 아니겠는가. 차라리 미쳐버린 자를 부러워하는 베르테르를 볼 때면, 그의 선택이 무모하고 이기적이고 어리석을지언정 그의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해하는 마음도 든다.

    사실, 문학동네 번역을 읽고 나서 우연히 다른 출판사의 책을 들춰볼 기회가 있었다. 인상적인 구절을 찾아봤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때의 그 공감이 안 생겼기 때문이다. 낭만적이고 저돌적인 베르테르의 마음을 느끼기에 문학동네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좋지 않은가 권해 본다.  그리고 일부 출판사에서는 제목을 '고뇌'라고 했던데 원작의 느낌과는 상관없이 개인적인 후감으로는 '슬픔'이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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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 - 철학자 이진경의 세상 읽기
이진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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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 -이진경

2012/10/29

 

 

 

 

뻔뻔함이란 자신을 향한 어떤 시선도 개의치 않는 시선이고, 오로지 자신이 겨냥하는 것만을 보는 시선이며, 자신이 욕망하는 바에 따라 타자를 이용하고 공격하려는 시선만으르 가진다. 따라서 그것은 진심이나 열정어린 행동에서도 촉발받는 경로를 갖지 못하며, 그렇기에 사건이나 상황 속에서 자신을 바꾸어갈 계기를 갖지 못한다.p.153

 뻔뻔함이란, 이렇단다. 그렇다면 현 정부는 스스로 바꾸어갈 계기를 갖지 못하니 어쩌면 포기해야하는 것이구나 싶다.  저자도 그 점에 대해서는 그리 생각하는지 해결책을 딱히 여럿 제시해주지는 않았다. 나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해결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저자와 함께 민중의 힘을 부르짖는 수 밖에. 현 정권이 무서워하는 것이 딱하나 있다면 집단 행동, 너~~~무 무서워 하는 통에 도무지 민주주의 국가의 통치 방법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무대뽀적 대응을 하여 더 큰 불신을 얻는 악순환을 하는 바로 그 방법 말이다. 참말로 위선이 그리울 지경이니 참 뭐라 할 말이 없다.

  

 이 책의 부제는 '철학자 이진경의 세상 읽기'이지만 그 중 초반 3개의 장에서는 현재 우리 나라 정치의 꼬락서니를 보여주고 있다. 아주 뻔뻔하게 사유화되고 있는 정치 권력과 찌질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무능함이 돋보이는 권력자들. 오늘 아침 파업채널M을 듣고 있자니 김재철 사장 역시 이것에 아주 딱 맞는 행동을 하니 어찌 미니미라 하지 않으리오? 최필립씨와의 딜을 한 이진숙을 '성급한 희망'을 했다며 팽!하는 찌질함은 참 역시 뭐라 할 말이 없다.

 

  저자가 어버이연합 이야기를 하면서 그 내용의 말미에 '곱게 늙고 싶다.'는 바람을 적었는데 아직 늙었다고 하기엔 너무 야심이 많은 분들이 어찌 사고방식은 폭삭 늙으셨는지 도대체 건설적 의견, 창의적 의견, 이런 의견, 저런 의견 모조리 듣지 않고 차단하는 인풋이 고장난 전자제품이 되셨는지, 5년 동안 나라를 해 드시면서 "다 해놓고 보면 다들 좋아할 거"라는 자기한테만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고장난 라디오는 고장난 라디오인가보다. 아웃풋도 매번 똑같으니. 아, 나도 곱게 늙고 싶다.

    

 

국민 국가의 역사는, --- 인위적인 집합적 기억이다. 그 기억은 국민적 통합을 저해하는 모든 기억을 최대한 지우고, 사람들이 하나로 묶이는 것을 기껍게 여기도록 하는 것이라면 억지로라도 만들어 '기억'하게 한다. 그래서 그 기억은 소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삶의 기억을, 그들의 고통의 기억을 지운다. .p.59-60

 

 우리는 주입된 기억을 가지고 살아왔다. 특히 역사에 대하여 그래왔던 것 같다. 국민은 소극적이고 권력을 잡은 자들은 적극적이다. 그런데 이젠 그게 좀 어렵겠다. 우리에겐 김여진이나 나꼼수와 같은 이들이 있고, 수많은 SNS 사용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내용을 기억하게끔 자꾸만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이니까. 마치 자신의 업적인양 내세우는 일들의 이면에는 핍박당한 사실이 있고, 그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처참히 묵살당해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쇼하지 말자. 제발 정치하자. 사실을 가지고,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을 존중해야 하는 정치를 하잔 말이다.

    

트위터에 연예인은 정치를 하고 정치인은 연예활동을 한다고 쓴 적이 있는데, 이렇게 생각한 사람이 수도 없다는 사실 그대들은 알고 있는지. 자신들이 하는 것을 정치활동으로 보는 국민이 없다는 것을 아는지, 그대들의 쇼는 시청률도 굉장히 낮은 저급한 쇼라는 것을 아는지. 안다면 진작 그만두었을텐데 여전히 그런 방식으로 쇼하는 모습은 애처롭다. 그래가지고 정치 하시겠어요? 라고 묻고 싶어진다. 책의 한 챕터의 제목처럼 정치가 재난이다.

 

 하긴 책을 읽다보면, 그들이 의도한 행위들은 사실 저급한 쇼인데 그들이 하는 짓들은 참 웃기긴 웃기다. 이진경의 말처럼 아마도 이명박정부는 개그정권인가보다. 가령 이런 거다. 집권 3주년을 맞아 비서진들에게 한 말이 "우리의 업적을 너무 알리지 말라."였단다. 하하하! 정말 많이 웃었다. 각종 외국 수장들 모아놓고 같이 사진 찍으면서 설정한 것을 우리가 다 아는데 알리지 말래, 그것도 업적을! 정말 재밌다. 2010년 광복절 축사의 열쇳말이 또 '공정한 사회'라니! 아무래도 다른 나라 말을 쓰나보다 우린. 혹시 집무실에서 MB어를 창제하시는 중이신가? 

 

 사실, 이명박정부가 슬로건을 내걸지 않았을 때 고개만 갸웃거린게 화근이다. 자신감의 표출이라고 긍정적으로 넘어가 준 것이 큰 실수다. 이 정부는 슬로건을 만들지 않은 이유를 두 가지 방향에서 추론하자면 첫째는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무능한 정부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철학의 부재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 온 바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명확한 철학이 있는 것이다. 슬로건에 개인의 이름을 걸지 않았는가? 철저한 사유화. 내 나라, 내 땅, 내 돈!이라는 철학. 5년 안에 다 해 드셔야 하는 시일이 촉박한 마당에 슬로건 따로 만들 시간이 어디있겠는가. 먹튀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미친 속도로 마지막까지 뻔뻔함을 바짝 땡겨야 하리라. 아마 둘 다 일 것이다. 무능하고 뻔뻔한 정부! 아, 나 이런 나라에 살고 있는 거였어? 내가 애처롭다.

  

책의 중후반부터는 정치 외의 (그렇다고 무관하지는 않은) 세상 살이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의학, 과학, 채식주의, 선물, 예술 등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이슈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방향을 진단해보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말하듯이 마르크스주의자이다. 사실 철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까운 나로서는 그를 지지한다 안한다를 선택조차 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그가 가진 최소한의 소득을 누구에게나 보장해야한다는 복지의 입장에는 의견을 같이 하는 편이다. 물론 채식주의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다르다. 고기를 꼭 먹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범위를 어디까지 두어야 하는가 하는 것 때문이다. 양식되는 물고기는 먹어도 되는지에 대하나 의문과 인간이라는 동물이 초식동물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생각은 따로 빼어두고 그가 한 말 중에 가슴에 깊이 박히는 말이 있어 되새겨본다.

 

예술가는 주어진 재료로 작품을 만들지만, 우리는 바로 우리의 삶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삶을 예술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삶을 예쁘게 치장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과 진지하게 대면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감각, 자신의 신체,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바꾸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달라진 감각, 신체, 생각으로 다른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p350

 

인생이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삶에 대한 진지하고 따뜻한 태도를 지녀야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떠올릴 때 스스로의 가치가 높아지는 느낌이 든다. 아니 실제로 가치가 높아진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거짓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요즘 권력자들을 보면 조물주가 조만간 가마에서 나온 그 잘못된 작품을 깨 부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점쳐 본다. 물론, 개인으로서의 나도 조물주의 입장에서 깨 부수어야 할 잘못된 작품일 수도 있겠지만. 미안, 나로 인해 아픈 당신.

 

책은 전반적으로 철학가가 지었다는 선입견에서 자유로웠다. 쉽게 읽히고 공감이 갔다. 세상 읽기라는 부제에 맞게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지루하지도 않았다. 사용된 어휘가 어렵지 않았고 저자의 유머도 깨알 같았지만 간혹 문장의 구조가 번역본을 읽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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