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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사회학
김광기 지음 / 글항아리 / 2014년 8월
평점 :
요즘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에 '비정상회담'이라는 토크쇼가 있다. 여기에 출연하는 패널들은 모두 외국인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표적인 이방인의 사례들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우리는 '터키 유생'이니 '알서방'이니 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만 붙일 법한 수식어들을 붙여가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편을 들어준다. 이쯤되면 이들이 이방인인가, 라고 물을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이방인인가? 엔딩 송으로 MC 전현무가 '정상인듯 정상아닌 정상같은 너~~♬'라고 우스개로 부르지만 그 노래 안에 많은 의미가 들어있음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방인의 사회학]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호기심이 아직도 남아있다. 나에게 이방인은 오랫동안 카뮈의 소설과 같은 말로 자리했고 더 단순하게는 외국인이었다. 그들의 사회가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 부각되었을 때야 비로소 '이방인'은 외국인과 카뮈의 소설을 너머 사회의 한 현상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이 책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이방인이 바로 나임을 이해하게 만드는 힘 말이다.
이 책은 논문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요즘 쏟아지는 대중적 사회학 서적과는 달리 시작하기가 쉽지는 않다. 낯선 학자들의 이름과 이론들 거기에 저자의 수정되거나 반박하는 이론들이 이어지는 형식의 글은 길고 구체적이라 읽는 속도가 더딜 수가 있지만 단언하건대 일단 그 흐름에 익숙해지면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져 뒤로 갈수록 쉬이 읽힌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이방인의 속성들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라 그렇기는커녕 현대인들과 아주 밀접한 것들이기에 이 책에서 말하는 이방인을 이해하는 것은 곧 현재의 나를 이해하는 일과 같아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불안하고 위로가 필요한 존재, 유동적인 삶 속에서 부단히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여야 하는 존재가 바로 이방인이자 현대인의 모습이다. 책을 읽으며 많은 밑줄을 긋고 저자의 생각을 정리해가며 이방인을 이해하고자 애썼던 흔적들은 어느 새 나를 이해하려고 애쓴 흔적이 되어 있다.

우리는 이국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동경은 대체로 이방인 흉내내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행했고 보았던 이방인 흉내내기가 얼마나 유치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모두가 이방인인 현대 시대에 진정한 이방인은 사실상 없지만 우리에겐 이방인의 존재가 필요하다. 이국적인 것에 대한 허세어린 이방인 행세가 아닌 진정한 이방인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말은 다시 말해 우리는 끊임없이 본래의 자아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며 그제야 우리는 비로소 인간 존재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 '비정상회담'을 보자면, 출연하는 외국인들은 모두 타국에서 온 이방인이고 세 명의 MC는 이방인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이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만 가면 그 땅에서 그들은 순간 이방인이 된다. 그리고 외국인 한국인 따질 것 없이 모두 '정상아닌 정상인듯 정상같다'. 모두가 이방인인 동시에 이방인이 아니고 비정상인 동시에 정상이다. 매우 복잡하고 모호해 보이는 이 말이 내겐 전혀 복잡하지 않은 것이 이 책을 읽은 후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인듯'한 말들이 모두 성립한다. 가장 명확한 것은 그들이 모두 현대인이라는 것인데 그들이 가지는 이방성은 타국의 땅에서 그저 단순히 자신의 물리적 고향에 대하여 멜랑콜리와 노스탤지어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멜랑콜리와 노스탤지어를 가지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방인이 없는 사회에서 진정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현대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과 같고 이방인이자 현대인으로 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은 언제나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아가야한다는 점, 새길 말이다. 함부로 이방인을 동경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이방인의 태도를 지니는 것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의 자격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읽어볼 만한 구절을 첨부한다. 저자의 문체나 책의 성격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란 매 순간 '초월'하면서 동시에 '내재'하고, '내재'하면서 동시에 '초월'
-p129
사회 구성원들이 희생하지 않는 한 어떠한 사회도 존립할 수 없다. 그런데 현대인은 전통사회의 사람들처럼 사회에 대해 희생하려 들지 않는다. 희생해야 할 경우라도 한껏 거리를 두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전시적 희생이고, 기꺼이 마음을 내켜 하지 않는 희생이며, 매우 피상적이기에 속된 말로 무늬만 그럴듯한 희생일 뿐이다. 해서 구성원들이 보이는 그런 유의 희생 같지 않은 희생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결코 전통사회와 같이 굳건할 수 없고, 부실하며 불안정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부실한 사회의 건축자는 기꺼이 희생하려 들지 않는 현대인들 자신이며, 또한 그렇게 자신들이 만든 사회가 지닌 불안정의 최대 피해(희생)자 역시 현대인들이다. 마치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부실한 건축물에서 사는 거주자들이 늘 불안에 휩사여 안절부절못하듯 현대인은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불안'이라는 또 다른 희생을 떠안은 자가 된다.
p247
완전히 망각된 고향을 내 실존을 위해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 그것은 고향을 잃은 자들의 책무이자 권리이기도 하다. 결국 영원한 이방인이 되는 것, 하이데거가 말한 "이상한" 자가 되는 것, '실향성(낯섬)'을 담지한 자가 되는 것, 그리고 우리의 고향을 부단히 찾고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본연의 나의 모습을 찾는 유일한 길이다. p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