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변화시킨 결정적인 한순간
KBS 강연100℃제작팀 지음 / 김영사on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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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23명의 인생이 담겨있다. 지금도 방영 중인 <KBS 강연100°c>에서 추려낸 23명의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인생이. 내가 알고 있던 이들은 아니다 하나같이 모두. 내가 아는 사람 외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책을 읽어 가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사실,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뭔가 메시지를 주려고 시도하는 책은 이 책이 아니더라도 무척 많다. 그들은 대부분 유명인이고, 그들의 이야기는 이곳저곳에서 많이 들려오고 또 많이 각색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곤 한다. 더욱이 이 책에서처럼 이 책을 혹은 이 방송을 읽고 보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불특정인의 삶에선 뭔가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내 삶을 돌이켜보게 된다. 아직은 길지 않은 삶이고, 얼마나 길지도 잘 모를 삶이지만 큰 사고나 병이 없다면 아마 수십 년은 더 살아가게 될 삶이다. 그런데 그들의 삶의 방식과 나의 방식이 많이 달랐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겁쟁이고 비겁하고 이기적이다. 책을 읽었다고 내 삶이 갑자기 달라질 것이라고 믿을 만큼 순수하지도 못하다. 다만, 다른 이의 삶을 엿보았고 그 삶이 내 삶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나보다 더 어려움이 많았던 스물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며 내 삶의 방식을 한 번 돌이켜 본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충분하다. 잠시 멈추어야 할 시점을 만들어준 것이다. 멈추어 보니 한 번 웃게 된다. 뭐, 생각하니 내 삶은 평탄한 것 같아 보이네! 이런 마음으로.

 

스물 세 사람의 삶이 내게 모두 공감을 사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내가 방송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할만큼 궁금했던 사람이 다른 독자와 겹치는 것도 아니다. 읽는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어쨌든 내가 방송을 찾아보고자 했고 찾아본 사람은 산악인 박정현, 구두 수선점 운영자 한택주, 운전기사 출신 은행 지점장 이철희, 가수 김혜정, 지리산 서당 출신 교수 한재훈이었다. 20분이 채 안되는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자신의 삶을 드러내 보인 그들의 용기 자체에 감동을 받았다. 영상의 충격은 그런 부분이었지만 책은 좀더 섬세한 것 같다. 그들의 모습보다는 삶을 더 들여다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책을 권해주고 싶다. 나처럼 책을 읽고 찾아서 방송을 보는 것이 제일 나은 듯 하다.

 

책 가장 첫 번째로 소개된 산악인 박정현님의 글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산은 준비된 자만을 받아준다. 그러니 내가 산에 가려면 철저하게 몸을 만들어야 했다.

 

삶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러니 내가 살아가려면 철저하게 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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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자동차 또봇 로봇백과
서울문화사 편집부 지음 / 서울문화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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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8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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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제목을 보고도 처음엔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집오리가 하늘을 난다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나는(나라고 쓰고 우리라고 읽는다) 자연에서 멀어져 있다. 아주 멀리. 그러다 이 책의 첫 단편인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를 읽어보니 참 마음이 편해졌다. 요사이 읽은 책들의 내용이 나를 조금은 피로하게 하였던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도 했다. 사람이 사는 이야기는 늘 피곤하였던 것 같기도 하다. 때마침 읽게 된 이 책을 고맙게 읽기로 마음 먹었다.

 

이상권 작가의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는 생태작가라는 별칭에 맞게 6편의 자연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집오리, 수달, 족제비, 살쾡이, 들쥐, 개로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예로부터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왔던 동물들이다. 물론 사람은 사람의 삶으로, 동물은 동물의 삶으로 서로를 존중하면서 말이다. 책을 읽다보면 여러 단편에 이런 말이 적지 않게 나온다. 문장은 서로 달라도 뉘앙스는 같은데 가장 구체적으로 서술된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의 문장을 옮겨 적어본다.

 

짐승들 대부분이 그랬다. 배가 부르면 절대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으면 괜히 다른 동물을 잡거나 죽이지 않았다. 사람하고는 달랐다. 사람들은 많이 모을수록 욕심을 부린다. 하지만 육식 동물들은 배가 부르면 다리를 절면서 비틀거리는 동물을 보아도 잡아먹지 않는다. 반드시 배가 고파야만 사냥을 한다. 그래서 대자연은 조화를 이룬다. (22쪽)

 

밑줄을 치면서도 많이 미안했다. 동물의 한 종으로서 겸손하지 못하게 사람들은 너무나도 동물들을 잔인하고 무차별적으로 대한다. 인간이라는 종의 천박함이 느껴져 부끄러웠다. 족제비보다 영리하지도 못한 주제에 문태형은 족제비를 학대하였고, 거짓말까지 해가며 선생이라는 자가 수달을 잡아 돈 몇 푼을 챙겼다. 죽음을 각오하고 닭서리를 하다 잡혀 죽음보다 못한 치욕을 느끼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살쾡이에 비하면 사람답다는 말이 참 낯부끄러운 말이다. 하나의 종이 하나의 종에게 먹히거나 죽임을 당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 행위의 의도와 심보가 천박하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나온 동물 중에 실제로 본 적이나마 있는 것은 집오리와 개 뿐이다. 그 외의 동물들은 이름만 알 뿐 외양도 특성도 거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동물들이 예전엔 사람들의 입에 쉬이 오르내리는 동물들이었다고 하니 수십 년 새에 우리네 삶의 풍경이 많이 바뀌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눈 앞에 이 동물들이 고개를 들이민다고 생각하면 참아보려 해도 분명 경기를 일으키듯 놀랄 것이 뻔하다. 비닐 봉지 하나에도 개인가 고양이인가 하여 겁을 먹는 내가 아니던가. 그런 자신이 못내 못나 보였었는데 문태나 진우, 나산강 마을 사람이나 시베리안허스키의 주인 할머니처럼 동물을 얕잡아 보거나 동물에게 오만한 태도를 가지는 것보다는 떳떳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집오리가 한없이 약한 자신을 탓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집오리도 사랑하여 주는 야생 청둥오리가 있어 야생 오리를 낳고 키워 하늘로 날려 보내는 꿈을 이루었다. 우리가 양갑수씨처럼 동물을 동물로 존중하여 준다면 동물들도 자신의 꿈을 이루려 노력할 뿐 마당의 닭이나 토끼를 마구잡이로 잡아가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동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마음이 넓고 쿨하기 때문이다. 그저 쿨하지 못한 것은 인간일 뿐이다. 집오리야, 수달아, 족제비야, 살쾡이야, 들쥐야, 들개야 쿨하지 못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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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단단하게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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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우리 나라 역사 중에서도 근대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까막눈에 가깝다. 교육이 잘못된 탓이다. 그런 처지이니 중국의 근대화에 대해서 아는 바는 그것보다더 더 적은 것이 적어도 내 개인에겐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는 척 해봤자 아는 바가 없기에 이럴 땐 모른다고 말하고 시작하는 편이 낫다. 더불어 옌롄커라는 소설가도 처음 알게되었다는 것을 함께 밝힌다.

  이 책을 처음 보고는 그 두께에 압도당했고 그 다음엔<물처럼 단단하게>라는 제목에 반했다. 시적이다. 압도당한 두께는 매우 자주 등장하는 19금 장면 묘사와 사건 전환으로 인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제목은 소설을 읽을수록 뭔가 느껴졌다. 그 뭔가가 뭔지 알아내는 것 그것이 이 리뷰를 쓰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소설의 배경에 대한 사전지식이 거의 없다는 전제 하에서도 소설의 주인공인 가오아이쥔과 샤훙메이의 안쓰러울 정도로 몰두하는 삶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문화혁명이라는 이름 하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꾸려는 당시 중국의 시대상을 응집하여 보여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들의 행동은 매우 급진적이고 과장되며 전투적이다. 아마 당시의 시대상도 이런 특징으로 설명될 수 있으리라.

  사랑조차도 사랑이라 말하지 않고 혁명의 감정이라고 부르는 이 한쌍의 연인이 벗어나려고 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구시대의 낡은 것들이었다기 보다는 금지된 사랑에 대한 비난이었을텐데 자신들의 사랑을 혁명적 감정이라 정당화함으로써 단번에 벗어나려 했던 것이 소설을 읽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아마 이런 조마조마함을 작가는 노린 것일 테지만.

 

흔히들 하늘이 아무리 커도 사랑을 안을 수 없고 땅이 아무리 넓어도 정을 담을 수 없다고 하지요. 하지만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혁명의 감정뿐입니다. 혁명가의 감정은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습니다. 산이 아무리 높고 바다가 아무리 깊어도 한눈에 반해버린 혁명가의 감정보다 넓고 깊지는 못하지요.  (34쪽)

 

혁명이 토대라면 사랑은 토대 위에 세워진 집이고, 혁명이 근본이라면 사랑은 근본 위에 핀 꽃이니까요. (107쪽)

 

   바로 이 감정이 이 두 사람이 시대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뭔 사랑이 이리 이유도 크단 말인가. 뭔 사랑이 '오직'이라는 말로 단순화할 수 있단 말인가. 혁명이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사랑하지 않았으리라고 믿고, 또 혁명을 함께 하기에 두 사람의 사랑은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된다는 자기 합리화에 대한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우리라. 개인이 제도라는 이름하에 개인의 재산을 파괴하고 목숨을 없애는 것이 어느 시대엔들 용서받을 수 있으랴만은 실제로 어느 나라에서건 그래왔던 역사는 존재했다. 그들 모두는 가오아이쥔이 그러했듯이 자신들의 혁명을 이름삼아 욕망을 배설한 것뿐이다. 그러나 가오아이쥔에게 내가 어떤 동정심이랄까 안타까움이랄까 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가 너무나 맹목적이라는 것이다. 이상하리만치 맹목적인 그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로봇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때때로 그들은 바로 그 맹목성 때문에 내게 이해받기도 했고, 가끔은 아프면서 아름다워보이기도 했다. 자신도 사랑이 먼저인지 혁명이 먼저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을 시대이다.

     돌이켜 보건대 가오아이쥔과 샤훙메이는 혁명가로서의 삶에 모든 것을 걸었지만 둘다 그저 혁명 기능이 장착된 그리 중요하지 않은 혁명로봇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애정 기능이 훨씬 중요하게 장착된 로봇이었지만 말이다.  관서기처럼 조금만 더 혁명적 삶에서 수직상승했더라면 그 자신도 자신의 욕망을 알고도 묵인하는 다소 비열한 혁명가라도 될 수 있었을텐데(물론 우리는 그들을 진정 혁명가라고 부르진 않는다.) 아쉽게 그들은 죽을 때까지 그들이 혁명을 위해 사랑했노라 생각했을 혁명 로봇으로 살았다(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혁명가라고 부를 수는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방전되었다. 지금도 어느 혁명의 시대에 작은 마을에서 혁명 로봇이 탄생하여 맹목적인 전투력과 맹목적인 사랑으로 스스로를 태우고 있는지 눈여겨보게 된다. 도대체 우리는 이런 로봇같은 혁명가들을 반겨야 하는지 경계해야 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시대가 만들어낸 일종의 대량 생산형 혁명가는 아무래도 경계하는 편이 낫겠다. 그들은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도 모를 테니까.

 

  리뷰의 제목을 '물처럼 단단하게, 얼음처럼 뜨겁게'라고 해 보았다. 겉보기에 물은 덩어리처럼 보이나 그것은 결코 단단해질 수 없는 물질이다. 마찬가지로 얼음에서 김이 난다고 하여 그것이 뜨거울 수는 없다. 이는 가오아이쥔과 샤훙메이의 모든 사상과 행동이 혁명을 위한 것처럼 포장하였으나 결코 그것은 개인의 욕망을 넘어서는 것일 수 없는 것을 비난한 것이기도 하고, 그들의 사상과 행동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단단하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저 허무한 노릇이라는 허탈감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차라리 사랑을 위해 혁명도 내던졌더라면 그들은 좀더 편한 삶을 살았을텐데 그놈의 혁명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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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기계, 개화차, 자전거 작은 역사 2
정하섭 글, 조승연 그림 / 보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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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 '작은 역사' 시리즈의 신간이 새로 나왔다.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자전거 이야기가 '작은 역사'라고?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내가 알고 있기로 '작은 역사' 시리즈는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을 위한 역사 그림책이기 때문이었다. 첫 장을 펼쳐보니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니라 자전거에 대한 정의가 먼저 시작된다. 한참을 읽다보니 프랑스와 독일의 자전거 이야기가 지난 다음 (책의 중반부 쯤에서) 조선의 자전거 이야기가 나온다. 이 점이 '작은 역사'와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란 세계 속의 역사 그 안에서 가르쳐야 맞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에는 아주 많은 정보가 들어가 있다. 자전거의 정의,자전거의 구성 요소, 자전거의 발달 과정 등이 빼곡히 글자와 그림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럴 경우 흔히 지루하거나 딱딱할 수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한 것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우리가 이야기글에서 느끼는 스토리도 없건만 단순히 정보를 주는 글밥이 이렇게 안지루할 수 있는가 싶어서 저자의 이름(정하섭)을 확인해 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있어서는 글이 그림에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림책을 보면서는 이례적으로 인상적인 문장들이 있어 포스트잇을 붙여놓기도 했다.

 

자전거는 낭만과 모험을 상징하는 탈것이었어요. (17쪽)

사실 자전거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탈 것이에요. 누구나 특권 없이 오로지 자기 힘으로 바퀴를 굴려야 하니까요. (21쪽)

 

와 같은 문장을 읽으니 자전거는 단순한 탈것 그 이상의 발명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자전거는 환경, 건강, 자유 등의 상징하는 바가 더 확대되었다고 본다. 다만 아쉬운 점은 27쪽에 우리 나라 근대화 조약에 대한 글에서 그것의 불합리성에 대한 언급이 조금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어쨌든 이 책은 '작은 역사' 시리즈이니 말이다.

 

일제 시대 "쳐다보니 안창남, 굽어보니 엄복동"이란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일본 사람에 앞서 비행기와 자전거를 탄 사람들에 대한 말이니 당시 우리 민족의 한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의미로 여전히 활성화되고 있는 자전거에 대한 새로 보기가 된 계기가 되었다. 그나저나 조선 시대 자전거 경주에서 어린이들의 세발자전거 경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상상만 해도 귀엽다. 그 그림이 실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소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무척 인상적이다. 방금 아빠와 자전거를 타러 나갔던 아들이 돌아왔다. 아들의 노란 자전거가 오늘따라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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