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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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에코가 남긴 마지막 소설이다. 마크 트웨인이 그랬던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읽은 이가 없는 책을 고전이라고? 그렇다면 에코의 소설도 어쩌면 고전의 반열에 오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의 마지막 소설을 통해 그의 소설을 처음으로 만나본 독자이고 아마 지구상에 그의 이름은 알되 그의 소설을 전혀 읽지 않은 이들이 엄청 많을 테니까.  왜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을까? 우선, 그를 떠올리면 '천재'라는 말이 생각난다. 역사학자에 철학자에, 기호학자, 소설가 등등 여러 방면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러한 지식을 소설에 아주 치밀하게 집어넣는 사람. (거봐라, 내가 그의 소설을 처음 읽는 주제에 이렇게 평할 수 있다니, 그의 소설은 고전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겁을 먹고 소설을 읽는 것을 미루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죽음이 일어나고 이 책이 나오면서 깨달았다. 내가 그의 소설을 아직 읽지 않았다는 것을. 마지막 소설로 입문을 한다는 것이 조금은 아이러니하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겁먹을 정도로 복잡하거나 치밀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1992년 6월 6일에서 시작하여 두 달 전의 기억을 기술한 뒤 다시 1992년 6월 6일로 돌아오는 구성이나 당시의 이탈리아 언론과 정치의 유착을 풍자하는 글 안에 무솔리니에 대한 소문을 끼워넣는 방식 역시 두려움을 갖기엔 다소 단순한 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에코의 첫 소설로 이 소설을 읽는 것은 다음 소설에 대한 궁금증이나 접근성을 높여주는 데에 무척 효과적인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우리는 뉴스나 방송을 통해 베를루스 코니의 부패에 대해 적잖이 들어왔다. 그의 영향으로 이탈리아의 정부는 대체로 부패와 비리가 만연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새삼스러운 내용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에코가 썼다면, 그것은 새로운 내용이 될 수도 있다. 그는 베를루스 코니의 부패를 너머 신문이란 도대체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역설적으로 신문의 부정적 기능만을 보여주면서 질문한다. 소설은 내도록 어떻게 하면 '나쁜 신문'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낼 것인가를 두고 시메이와 기자들이 토론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마이아의 열정과 순수함은 묵살되기 일쑤이고, 음모와 음해와 오도가 목적인 신문만을 궁리한다.
 
그 사이사이 인물의 말을 통해 에코는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집어넣는다. 그 말들은 우리를 씁쓸하게 만들고 한숨짓게 한다. 세평을 만드는 신문으로서의 교묘함, 그것을 외면하는 우리의 수치심, 누군가를 보호하고 파멸하기 위한 정보들의 존재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현실(현재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 답답해. 나도 떠나고 싶어. 아니 모르고도 싶어.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 식으로 살자고도 하고, 차라리 비리를 공개적으로 하는 곳으로 떠나고도 하자던 마이아의 말에 공감을 하지만 동의할 순 없다. 바로 그 지점이 에코의 질문이다. 우리는 그 부패에 아는 척을 해야하고, 언론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감시해야한다는.
 
에코의 오랜 팬들은 이 책을 좀 허술하고 시시하다고 느낄 지도 모르겠다. 처음 읽는 독자에게도 문턱이 높아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자신의 마지막 소설일지도 모를 소설을 쓰며 '천재'라 불리던 지식인은 지식을 내려놓고 소설만을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의 다른 소설을 읽지 않아 뭐라 말할 입장은 못되지만 풍문으로 듣기에 그의 소설엔 방대한 지식들이 숨어 있다고 했다. 이 소설에도 역사적인 지식들이 알게 모르게 방출되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소설에 집중한 느낌이다. 다음 소설로 무엇을 읽을까? 겁도 없이 [장미의 이름]을 집어들어도 될까? 누가 알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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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11-22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미의 이름>은 정말 강추입니다. 꼭 한번 읽어보시길.

그렇게혜윰 2018-11-22 10:45   좋아요 0 | URL
바로 읽어도 될까요? 버겁진 않을까요?

비연 2018-11-22 10:47   좋아요 1 | URL
충분히 가능하실거에요~ 재미있거든요^^

그렇게혜윰 2018-11-22 10:48   좋아요 1 | URL
두려움을 떨치고! 집에 작가노트까지 있으니 도전 ㅋㅋㅋ

비연 2018-11-22 11:00   좋아요 1 | URL
완전 홧팅요!

카스피 2018-11-22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가 읽은 첫 책은 장미의 이름이지요.추리소설적 요소가 강행서 무척 재미있게 읽으실 거에요.다음에 읽은 책은 푸코의 추인데 책 내용에 많은 지적내용이 많이 있어 어찌보면 좀 난해하더구요^^;;;

그렇게혜윰 2018-11-22 13:40   좋아요 0 | URL
푸코보단 장미로!!! 누가 장미를 포기했다고 해서 겁먹고 있던 참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