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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29 <크리스마스 휴전> 깊이 읽기

 

존 패트릭 루이스 글 / 게리 켈리 그림 / 서애경 옮김

 

1914년, 격전지에 찾아온 크리스마스 휴전
맨 첫 장을 펼치면 주인공 오웬 데이비스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스무 살이 채 안 된 이 청년은 마치 자신을 부르고 있는 듯한 포스터를 보고 있습니다. 바로 1914년 영국 전쟁부의 장관이었던 키치너 경이 그려진 포스터입니다. 이 포스터는 직접적인 문구로 젊은이들을 선동했습니다. '영국인들이여, 키치너 경이 당신을 원하고 있다. Britons! wants you.' 이 포스터는 선풍적인 인기를 몰았고,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여러 나라들은 비슷한 포스터를 만들어서 전쟁터에 보낼 젊은이들을 모았습니다.


신병 모집 포스터의 인기를 통해, 당시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전쟁을 반대했던 아인슈타인은 '대중은 선전에 중독되지 않는 한 결코 전쟁을 열망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처럼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아주 작았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국가를 위하고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라고 젊은이들을 부추겼습니다. 수많은 오웬 데이비스들은 거짓 애국심에 눈이 멀고, 참전하지 않는다면 겁쟁이로 몰릴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또한 1차 세계 대전이 막 시작할 무렵엔 사람들은 전쟁이 그렇게 오래 지속되리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오웬 데이비스는 군복을 입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전쟁터로 떠나는 오웬 데이비스는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입니다.


전쟁터의 현실은 후방에서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었습니다. 특히 서부전선, 긴 참호의 현실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서부전선은 북해부터 알프스까지 이어지는 전선으로, 벨기에를 통과하여 프랑스 북동부를 잇는 전선입니다. 이 지역은 '플랑드르'라고 불리는데 '물에 잠긴 땅'이라는 뜻입니다. 지명 그대로, 삽으로 땅을 몇 번만 파도 축축하게 물기가 스며드는 땅입니다. 더욱이 독일군의 진군을 막기 위해서 바닷물을 막고 있던 댐까지 폭파해서 땅을 온통 물바다로 만들어 놓은 뒤였습니다. 그런 곳에 참호를 파니, 시도 때도 없이 차오르는 물은 아무리 퍼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진창과 추위, 밤낮으로 물어뜯는 들쥐를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보고, 그것이 자신들의 미래가 될 수 있음을 견뎌야 했습니다.


참호와 참호 사이에는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땅이 있었습니다. 무인지대. 이곳은 사람이 없는 땅, 죽음만이 있는 땅이었습니다. 습격을 감행한 아군과 적군의 시체들이 산을 이뤘지만, 그 누구도 죽은 병사들의 장례를 치러 줄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죽어 가는 동료를 그대로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방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병사들에게 위문 물품을 보내왔습니다. 영국에서는 메리 공주의 선물 상자가 배달되고, 독일군은 독일 황제의 초상화가 그려진 담배 파이프를 받습니다. 가족들이 보내온 선물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선물들은 크게 위안이 되지 않았습니다. 참호 속 병사들은 이미 너무 많은 죽음을 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 크리스마스의 기적 따위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독일군에서 희망의 작은 촛불이 타올랐습니다. 참호 위로 촛불을 켠 크리스마스트리를 올려놓고, 크리스마스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에 영국군도 크리스마스 노래로 대답을 해 줍니다. 하나의 목소리는 곧 합창이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휴전은 1914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벨기에 이프르를 중심으로 서부전선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프랑스군과 독일군, 벨기에군과 독일군 사이에도 휴전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국군이나 독일군과 다르게, 프랑스군과 벨기에군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의 고향은 이미 폐허가 되었고 적군에게 점령당한 상태였기에, 프랑스군과 벨기에군은 휴전에 대해서는 몹시 강경한 입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크리스마스 휴전은 독일군과 영국군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십만여 명의 독일군과 영국군이 크리스마스 휴전을 경험했습니다. 무인지대에서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기념품을 나눴습니다. 가족사진을 돌려보기도 하고, 서로 머리를 깎아 주기도 했습니다. 늘 마음의 짐이었던, 무인지대 도처에 널린 죽은 병사들의 장례도 치렀습니다. 죽은 병사들 가운데 먼 나라에서 온 인도인도 보였습니다.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에서 벨기에까지 와서 죽음을 맞이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장례를 마치고 축구 경기도 했습니다. 3:2로 독일군이 이겼지만, 독일군의 마지막 골은 분명 오프사이드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전쟁의 비통함에 가슴이 콱 멥니다. 크리스마스 휴전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병사들은 이것으로 전쟁이 끝나기를 바랐지만, 장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곧 전쟁은 다시 시작됩니다. 꽁꽁 언 참호에서, 황량한 적진을 바라보며 오웬 데이비스는 고향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날아온 총알이 오웬 데이비스를 죽음으로 이끕니다.


책을 덮고 오웬 데이비스의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목청 높여 캐럴을 부르던 앳된 청년의 얼굴. 그런 수많은 오웬 데이비스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실제로 크리스마스 휴전에 관한 이야기는 병사들의 편지를 통해 가족들에게 알려지고 신문에 실리고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현재 병사들의 일기, 편지 등은 런던에 있는 전쟁박물관 문서고 등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마음 깊이 바라는 평화의 노래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 전쟁 같은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작은 평화를 만들어 내는 힘은 늘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휴전은 그 힘에 대해 되새기게 하며, 그래도 희망이 있음을 마음속 깊이 일깨워 줍니다.

 

 

글 / 존 패트릭 루이스

경제학 교수로 여러 해를 보내다 문학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고 작가가 되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손꼽히는 어린이문학 작가이며, 70여 권이 넘는 그림책에 글을 썼다. 글을 쓴 그림책으로는 『그 집 이야기』, 『마지막 휴양지』, 『갈릴레오의 우주』 등이 있다.

 

그림 / 게리 켈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린 책으로 『검은 고양이 뼈(Black Cat Bone)』, 『어두운 바이올린 연주자 (Dark Fiddler)』 등이 있다.

 

옮김 / 서애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어린이책 기획과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빈터의 서커스』, 『길거리 가수 새미』, 『채마밭의 공주님』 등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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