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출판사 독서 코칭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27 <블룸카의 일기> 깊이 읽기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 이지원 옮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민주적인 학교 이야기

폴란드 바르샤바 크로흐말나 거리 92번지에 작은 고아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부모를 잃었거나 거리를 떠돌던 아이들이 고아원의 식구가 되었습니다. 한뎃잠을 자지 않고 필요한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아원은 일반적인 곳과 사뭇 달랐습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아무런 규칙이나 제한 없이 선생들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인격체로 당당하게 인정받으며 생활했고, 문제가 있으면 아이들 스스로 판단하는 '어린이 법정'에 나서 잘잘못을 가렸습니다. 오랫동안 사랑과 존중을 받지 못한 아이들도 '어린이가 실수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이해하고 그럼에도 어른과 똑같이 신뢰하고 존중하는' 이곳에서 차차 마음을 열고 자기를 찾아갔습니다.

 

이곳의 훌륭한 틀을 지은 사람이 야누시 코르착입니다. 국제적으로 어린이인권선언이 제정되기도 훨씬 더 전, 어린이의 인권을 알고 실천하려 애쓴 교육자입니다.


그림책은 이 학교와 코르착에 대한 이야기를, 한 아이가 쓴 일기의 형식을 빌어 전합니다. 블룸카의 일기장에 등장하는 코르착 선생님은 야누시 코르착이며, 열두 명의 아이들은 실제로 이 고아원에 몸담았던 200여명의 아이들을 대표합니다. 작가는 남아 있는 여러 자료와 코르착의 일기를 바탕으로 하여 이야기를 구성해냈습니다. 여기 나오는 열두 명 가운데는 실재했던 인물도 있고 작가가 지어낸 인물도 있습니다만, 코르착에 관한 건 모두 실재함을 밝혀 둡니다.


사랑과 존중을 실천한 교육자, 코르착

1879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1942년 독일의 강제수용소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기까지 야누시 코르착의 온 삶의 중심은 '어린이'였습니다. 젊은 시절 의사로 일하면서 거리의 아이들이나 가난한 집의 아이들을 돌보아 온 코르착은, 그러나 의술만으로는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함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곧바로 실천으로 옮겨집니다. 1912년 코르착은 고아원조협회의 도움을 얻어 스테파니아 선생(그림책의 스테파 선생님)과 함께 고아원을 엽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미래의 주인으로서의 의무는 강요하지만, 오늘의 주인으로서 누릴 권리는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야누시 코르착

 

코르착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아이들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었습니다. 거리를 떠돌던 아이들에게 가장 뿌리 깊이 박혀 있 건 어른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었으며, 코르착은 아이들과 생활하는 내내 이러한 불신을 걷어내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스스로 편견을 갖거나 차별을 하지 않으려 하였으며, 아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려고 했지요. 아이들은 미래를 준비하기도 하지만 현재의 삶을 살고 있으므로 그 순간순간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코르착이 지은 고아원에는 아이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어린이 법정'이 세워졌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판사가 되고 교사는 법정 서기를 맡았습니다. 누구라도 괴롭힘을 당한 사람은 괴롭힌 사람을 법정에 세울 수 있었습니다. 선생이든 아이든 법정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했지요. 코르착도 여러 번 법정에 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아이들이 스스로 주어진 상황을 깨닫고, 체험하고, 결론을 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1926년에는 <작은 평론>이라는 어린이 신문을 펴내기도 하였습니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 각 1명씩 신문의 편집자를 맡았습니다. 코르착은 가끔 편집회의에 참여할 뿐 관여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전국에 우편함이 설치되었고, 아이들은 이 우편함에 자기의 질문이나 고민을 쓴 편지를 넣어 신문에 보냈습니다. 세상에 신문이 생긴 이래로 처음 시도된 일이었으며, 이 신문은 전쟁이 나기 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바보는 아이보다 어른 중에 훨씬 더 많습니다.' - 야누시 코르착

 

국제연합은 1979년에 코르착의 사상이 깃든 글을 토대로 하여 어린이 인권 협정의 기초를 만들고, 이 해를 '어린이의 해'이자 '야누시 코르착의 해'로 명명합니다. 1989년에는 이 어린이 인권 협정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습니다. 그전까지 법적 강제성을 띠지 않고 선언에 그쳤던 어린이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호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가 죽고나서 몇십 년이 지난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지요.


1942년 유대인이었던 코르착과 아이들, 선생들은 독일의 강제 수용소로 떠나는 기차를 타러 기차역까지 무언의 행진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미 여러 저술과 교육 활동으로 세상에 알려진 그였기에, 여러 사람이 그만큼은 빼내려고 애썼지만, 그 모든 도움의 손길을 제지하고 코르착은 아이들과 함께 가스실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동안 아이들로부터 얻은 존중과 신뢰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림책에서 작가는 이 아이들 하나하나에 얼굴을 부여합니다. 단단한 화강암에 눌러 새기듯 이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다시금 되새기고, 하나의 존재로 거듭난 이 아이들을 통해서 이들이 어떻게, 얼마나 사랑받았는지를 세심한 일상의 언어로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이 그림책은 깊은 여운을 남기면서도 명랑하고 즐겁고 행복한 아이들의 한때를 놓치지 않습니다. 사랑과 존중이 가득한 이들의 학교를 보면서 독자들은 나에 대해서, 혹은 내 아이에 대해서, 내 교육과 우리의 학교 교육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블룸카의 일기> 출간 기념 저자 인터뷰 보러 가기 ▶

 

글.그림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Iwona Chmielewaka)
1960년에 태어나 폴란드의 중세 도시 토룬의 코페르니쿠스 대학에서 미술 공부를 하였습니다. 네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작가는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지금은 그림책 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현실과 상상이 만나는 글과 그림을 통해, 일상의 작은 몸짓에 숨겨진 의미를 끄집어내는 작업을 즐겨 합니다. 이번 그림책에서도 현실과 상상이 섞인 틀에서, 교육자 코르착과 비극적 운명을 맞이했던 아이들의 일상을 차분히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생각하는 ABC』로 'BIB 황금사과상'을, 『마음의 집』으로 '볼로냐 라가치 상'을 받았으며, 쓰고 그린 그림책으로 『파란 막대․파란 상자』, 『두 사람』, 『생각』, 『시간의 네 방향』, 『안녕, 유럽』, 『여자아이의 왕국』, 『학교 가는 길』 등이 있습니다.

 

번역 / 이지원
1974년에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 폴란드어과를 졸업하고 폴란드에서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한국외국어대학에서 폴란드어와 문화를, 서울시립대학 산업디자인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가르치며 어린이책 연구와 기획,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파란 막대․파란 상자』, 『두 사람』, 『생각』,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안녕, 유럽』, 『시간의 네 방향』, 『장미와 반지』 등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