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출판사 독서 코칭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26  <꿈꾸는 징검돌> 깊이 읽기
- 화가 박수근 이야기

 

김용철 쓰고 그림

 

영혼을 그린 화가, 박수근

소녀가 아기를 업고 있습니다. 여인이 맷돌을 돌립니다. 할아버지들이 한낮의 햇볕 아래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습니다……. 순한 사람들이 서정적인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그 순한 사람들을 순한 화가가 한 겹 한 겹 물감을 덧바르며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내었습니다. 그림책 『꿈꾸는 징검돌』이 이야기하는 화가, 박수근입니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습니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나 할머니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가장 즐겨 그립니다.'

 

자신이 남긴 글처럼, 화가 박수근은 평범하고 선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습니다. 수백 점의 작품 가운데, 사람이 그려져 있지 않은 작품은 그리 많지 않지요. 그만큼 사람을 좋아하고 마음을 이해하려 했던 화가입니다. 하루는 외출하며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과 나누어먹을 사과를 사려 했다지요. 광주리에 사과를 담아 파는 아주머니가 셋이 있었는데, 화가는 세 아주머니한테서 똑같은 개수만큼씩 사과를 샀다고 합니다. 한 사람 것만 팔아 주면 남은 둘이 서운해할 것을 미리 짐작하고 배려한 것이지요. 이처럼 넉넉한 마음을 지녔지만, 그의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박수근은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을을 둘러싼 첩첩 산들 사이로 크고 작은 바위가 널려 있는 고장이었습니다. 단단한 화강암 바위들에 깃든 옛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소년 박수근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림책의 본문에도 언급된 '광대바위'에는 윤씨 집안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하루는 조상의 묏자리를 찾고 있던 윤씨가 풍수를 잘 보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광대바위 맞은편에 조상의 묘를 모시게 되었다지요. 하지만 윤씨는 이 사람을 홀대하고 푸대접하였다고 해요. 그러니 앙심을 품은 이 사람이 마을사람들에게 산중턱 광대바위를 굴려 떨어뜨리면 마을이 잘 된다고 헛소문을 낸 것이지요. 그 크고 넓은 광대바위는 산 아래로 처박혔고, 그때부터 윤씨 집안은 가세가 기울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수많은 고인돌이 발견된 '파로호' 호수 속에 바위 대부분이 잠겨 있습니다.


바위마다 이름이 붙고 이야기가 전해 오는 고장 양구에서, 박수근은 그림을 무척 좋아하는 소년으로 자랐습니다. 산과 들로 쏘다니며 돌에 그림을 그리고, 해맑은 마음으로 미술시간을 기다리던 소년. 크레용을 처음 보고 무척이나 신기해하던 소년이었지요. 하지만 어릴 적만 해도 넉넉했던 집안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형편이 나빠졌습니다. 박수근은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도 없이 혼자서 그림을 익혀야 했습니다. 자기 그림의 수준을 알 길이 없어 해마다 전람회에 그림을 냈지만, 돌아오는 건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화단은 교육을 받지 않은 화가의 그림을 제대로 인정해 주려 들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불안하고 외로웠을까요?


하지만 화가의 곁에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심성이 고운 아내와 사랑스러운 아이들, 잠시 쉴 틈이라도 생기면 쪽마루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가는 이웃들, 장터에 나와서 묵묵히 생활을 이어가는 시장사람들, 일하는 아이들, 노인들…….

 

사람을 위로하고 사람에게 힘을 주는 건, 다름 아닌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순한 양구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자란 화가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평범한 사람들 틈에서 함께 울고 웃고, 가난에 꿇지 않고 묵묵하게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우직함을 순한 그림 속에 담아냈습니다. 그만큼이나 우직하게 물감을 바르고 바르고 덧발라서 우물처럼 깊고 아름다운 화면을 만들어냈습니다.


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알고, 또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1965년 그가 죽은 뒤, 유작전이 열리고 박수근미술관이 지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에 가서 그의 그림을 봅니다. 자연과 사람과 세상을 믿고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던 화가의 밝은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박수근 연보

1914년 2월 21일,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 정림리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1921년 양구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함.
1926년 프랑스 화가 밀레의 <만종> 그림을 보고 감동함.
1927년 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나,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함.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봄이 오다>를 응모하여 입선에 오름.
1933년~1935년   조선미술전람회에 낙선함.
1936년~1939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에 오름.
1940년 2월 10일, 이웃집 아가씨 김복순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림.
 <맷돌질하는 여인>으로 제20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에 오름.
1950년 6․25 전쟁으로 피난을 떠났다가 가족과 헤어져 혼자 월남함.
1952년 천신만고 끝에 월남한 가족과 다시 만남.
1953년 창신동에 집을 마련하고, 미군부대에서 일자리를 얻음.
 이때부터 그림을 알아봐 주는 이들이 많아짐.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집>이 특선, <노상에서>가 입선에 오름.
1956년 반도호텔 내의 반도화랑을 통하여 해외 애호가들에게 그림을 선보임.
1957년 짐머맨 부부가 간행한 『한국현대화가』에 소개됨.
1962년 창신동 집이 도시 계획에 따라 철거됨.
1963년 왼쪽 눈의 백내장이 심해져 실명함. 전농동으로 이사함.
1965년 4월 간경화 응혈증으로 입원하여 5월 6일 새벽 1시에 운명함.
 10월에 부인 김복순 여사의 노력으로 유작 79점을 모은 유작전이 열림.

 

 

글․그림 / 김용철

1960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그림을 그렸고, 어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 세상에 흠뻑 빠져 살았습니다. 지금은 이 귀한 체험을 밑천 삼아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린 그림책으로 『훨훨 간다』, 『낮에 나온 반달』, 『길아저씨 손아저씨』, 『하느님 물건을 파는 참새』 등이 있으며, 쓰고 그린 그림책으로 『우렁각시』가 있습니다.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