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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25 <박수근의 바보 온달> 깊이 읽기
박수근 그리고 박인숙 다시 씀
고구려 이야기가 만들어지기까지
6·25 전쟁이 끝난 뒤 박수근은 창신동에 작은 집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며 입을 것, 모든 것이 부족한 때였습니다. 박수근은 어려운 생활에 굴하지 않고 창신동 집 쪽마루에서 많은 작업을 해냈고 이 집에서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박수근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책한 권을 사 주기도 어려웠습니다. 박수근은 신문에 난 기사나 연재소설 등을 스크랩해서 아이들에게 읽을거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하루는 아예 수채 물감으로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책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버지 박수근이 자녀들을 위해 손수 그림을 그리고 부인이 정갈하게 글씨를 써서 한 권의 책을 완성했습니다.
박수근이 남긴 책에는 이야기 일곱 편이 실려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 ‘아버지를 찾는 유리 소년’,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 외에도 ‘천합소문 장군’, ‘활 잘 쏘는 주몽’,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장군’ 이야기가 원래 책에는 실려 있습니다.
『박수근의 바보 온달』은 총 일곱 편의 이야기 가운데 이야기성이 풍부하고, 장면이 넉넉한 이야기 세 편을 골라 새롭게 구성한 것입니다. 『박수근의 바보 온달』에서 소개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비교적 짧은 이야기들로, 이야기마다 그림이 한 점씩 그려져 있습니다.
박수근이 남긴 그림책을 보고, 우리는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로서의 박수근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박수근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이름에 매여 이 책을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소박한 마음으로 이 책을 대하면 그 바탕에 있는 아버지로서의 박수근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읽을거리를 직접 만들어 주는 자상한 아버지의 마음. 그 마음을 만나는 순간, 이 책의 가치가 더욱 돋보일 겁니다.
박수근이 남긴 그림책은 현재 강원도 양구에 있는 박수근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박수근미술관에 가면, 박수근의 여러 그림과 함께 그림책의 원본을 볼 수 있습니다.
화가 박수근과 그의 가족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팔레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물질적으로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 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고 당신은 훌륭한 화가의 아내가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박수근이 결혼 전에 부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박수근은 결혼 전에 아내에게 약속한 대로, 좋은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6·25 피난 이후, 박수근은 창신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창신동 집은 아이들이 뒹굴고 노는 곳이었고, 아내에게는 집안일을 하는 일터였고, 박수근에게는 하나뿐인 작업실이었습니다. 그 집은 이웃이 일손을 내려놓고 쉬어 가는 곳이며, 박수근의 그림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박수근은 아내를 친정 엄마가 딸을 아끼듯이 아꼈고, 자녀들에게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모범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죽을 때까지 남겨진 가족을 걱정하고 위로했다고 합니다.
박수근은 평생 동안 개인전을 해 보지 못했습니다. 죽은 뒤에야 뒤늦게 지인들의 도움으로 유작전이 열렸습니다. 살아생전에는 큰 성공을 얻지 못했던 화가 박수근. 하지만 그의 그림은 지금까지 우리 곁에 남아서 그처럼 고단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그림 / 박수근
1914년 양구에서 태어나 1965년에 생을 다했습니다.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하여 고유한 예술 세계를 완성했으며 오늘날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단순한 선으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민의 삶을 그렸으며, 마치 돌에 그림을 그린 것 같은, 울퉁불퉁한 질감이 드러나는 화풍으로 유명합니다.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리기 위해 일생을 바쳤으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그림으로는 <빨래터>, <나무와 두 여인>, <아기 업은 소녀> 등이 있습니다.
글 / 박인숙
화가 박수근의 큰딸입니다. 세종대학교 미술과를 졸업하고 미술 선생님으로 많은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다가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현재 양구 박수근미술관의 명예 관장이며,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 화가입니다. 아버지 박수근이 남긴 그림책의 글을 오늘날 어린이들이 읽기 좋게 다듬고 새로 썼습니다. 이번 작업을 통해서 아버지와 보낸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어 몹시 행복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