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출판사 독서 코칭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24 <그 집 이야기> 깊이 읽기

 

로베르토 인노첸티 그림 / 존 패트릭 루이스 글 / 백계문 옮김

 

매혹적인 그림책 속에 재현된 백 년의 역사
여기, 20세기의 새벽에 새로운 삶을 얻은 낡은 집이 하나 있습니다. 그 집은 1900년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무렵, 모험을 나온 아이들의 눈에 띄게 되면서, 새 삶과 새 가족을 얻게 됩니다.


『마지막 휴양지』에서 팀을 일구었던 로베르토 인노첸티와 존 패트릭 루이스가 다시 한 번 뭉치어 꾸려낸 매혹적인 그림책, 『그 집 이야기』는 오래도록 버려졌다 다시 생명을 얻게 된 낡은 집이 20세기, 백 년을 지나오면서 자기 안에 품었던 자연과 사람, 삶의 역사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입니다.

 

한여름이 연둣빛 드레스 입고 들러리 설 때,
언덕 집 아가씨는 앞날을 꿈꾸며
아랫마을 벽돌장이 청년의 손을 꼬옥 잡는다.
혼례를 치르는 동안, 삶은 잠시 숨을 멈춘다.
-1915년의 시

 

이 그림책에서는 짤막한 4행시와 작은 그림과 큰 그림이 짝을 이룬 형식이 열다섯 번 반복되어 보여집니다. 작은 그림이 그 해가 어떠했는지, 사람들에 포커스를 맞추어 보여주고 난 다음이면, 시가 그 다음 역할을 건네받습니다. 시는 이 그림책에서 '그 집'이 하는 말입니다. 이 리드미컬한 목소리는 때로는 장중하고 때로는 상큼하게, 그 해의 분위기를 전달해 줍니다. 우리는 시를 통해서, 그 해의 날씨가 어땠는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대강의 이야기를 알고 책장을 넘깁니다. 책장을 넘기면 나오는 큰 그림은 화면을 꽉 채울 만큼 시원하고 커다랗습니다. 커다란 그림 속엔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가득해 보입니다. 꼭 '내가 더 자세히 말해 줄게.'하고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열다섯 점의 그림이 이끄는 이야기 속으로

'나는 그림을 그리는 내 일을 아주 즐거워합니다. 내가 그리는 각각의 그림에서 드로잉과 페인팅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한 편의 이야기를 꾸려 내는 겁니다.' - 로베르토 인노첸티

 

마치 정해진 스텝을 밟듯, 작은 그림과 시, 큰 그림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집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전체 그림이 그려질 듯합니다. 대체 이 낡은 집에서 백 년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걸까요?

 

1905년, 삶의 시작
1900년, 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이 발견한 집은 1901년 사람이 살기에 알맞게 고쳐지고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낡은 집은 그림의 오른쪽에 붙박여 계속 등장하게 되지요. 1905년, 작은 그림이 담고 있는 건, 대가족의 식사 풍경입니다. 이들은 누구일까요? 큰 그림을 보니, 이들이 낡은 집에 이사를 온 모양입니다. 침대 머리맡에 놓는 철제 헤드며 돌돌말린 이불, 아기와 성모를 그린 그림 액자며 의자 같은 살림살이들이 여기저기에 부려져 있습니다. 1901년에 흰 소 두 마리가 갈던 밭에는 이제 연한 초록색을 띤 밀이 자라고 있습니다. 흰 소는 여기서도 등장합니다. 이번엔 이삿짐을 옮기는 짐수레를 끌고 왔던 모양입니다.


1915년, 한여름의 결혼식
결혼식 피로연이 한창입니다. 만돌린을 튕기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연주자들 앞에서 사람들이 민속춤을 추고 있습니다. 1905년에 이삿짐 수레를 끌고 왔던 흰 소들은 사진사가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도록 수레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뿔 쪽에는 빨간 꽃 장식을 달고 있는데요.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걸까요? 이 소들이 끄는 수레가 현대의 웨딩카 같은 역할을 하게 될까요? 아무튼 모두들 즐거운 분위기인데, 이 해의 작은 그림은 사뭇 이상해 보입니다. 신랑 신부가 사진을 찍으려고 포즈를 취한 모양인데, 신랑은 군복을 입었습니다. 어디로 떠나려는 걸까요? 1차 세계대전이 1914년에 시작된 걸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이제 이 농가에도 전운이 감돌 모양입니다.


1916년, 아기의 탄생
밀밭이 연둣빛을 띠고 있는 걸 보면 다시 봄이 돌아온 모양입니다. 작은 그림에서, 어머니는 갓 태어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습니다. 사제와 복사 아이들은 이 아기를 축복하러 집을 방문했을 겁니다. 수레를 끄는 흰 소가 있던 자리에는 사제 일행을 태우고 온 모양인 듯, 당나귀 수레에 앉아서 축복식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마부가 있습니다. 1905년, 일가족의 삶이 시작된 이래, 그 집에서 결혼식이 올려지고 이제 아기가 태어난 겁니다.


1918년, 남편의 죽음
1915년의 작은 그림에서 군복을 입은 신랑의 모습이 보였었지요. 1918년의 작은 그림에서 부인은 왜 울고 있는 걸까요? 부인의 옆에는 전사통지서처럼 보이는 편지가 놓여 있습니다. 1918년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입니다. 남편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는지의 여부는 미루어 짐작할 따름입니다만, 그가 죽은 건 확실해 보입니다. 아내에서 과부로…… 슬픔에 잠긴 부인은 온통 흰 눈이 내려와 덮인 집 밖에서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배웅합니다. 굴뚝으로는 시커먼 연기가 올라옵니다. 아이들을 배웅하고 난 다음에 부인은 무얼 할까요?


1936년, 수확
남편의 죽음은 서서히 잊혀지고 농가의 평화로운 삶이 이어집니다. 이제 밀을 수확하는 날이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밀단을 꾸리고 밀알을 골라내기에 바쁩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눈에 띕니다. 작은 그림을 보면, 표정이 굳어 보이는 아이들이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데요. 무슨 유니폼일까요? 아이들 뒤편으로 보이는 글자, EREMO는 무슨 뜻일까요? 당시의 이탈리아는 파시스트가 지배하던 나라였습니다. 파시즘, 독재가 팽배하던 나라였지요. 국민들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고, 모든 일이 국가의 통제 하에 이루어졌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림의 아이들이 입은 유니폼은 바로 파시스트 소년단(balilla)이 입었던 유니폼입니다. 여덟 살에서 열네 살까지의 어린 아이들이었지요. 몇 년 전, 짚가리 위에서 평화로이 놀던 아이들의 모습은 자취를 감춘 겁니다. EREMO는 이탈리아 어로 '은신처'를 뜻합니다. 이 글자는 무얼 가리키고 있는 걸까요?


1942년, 전쟁의 불길
이 그림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이탈리아에 대해 조금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1939년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 또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참혹한 전쟁이었지요. 이탈리아는 일본, 독일과 함께 2차 대전의 침략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 모두가 그러고 싶었을까요? 이탈리아의 많은 국민들은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독재에서 벗어나고 싶었지요. 그들이 원하는 건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국민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파르티잔(유격대)으로 활동하거나 파르티잔의 활동을 도왔습니다. 이들은 낫과 삽 대신 총을 들고 스스로 일어났습니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를 처단하고 독일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합군의 승리를 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파르티잔으로 몰리거나 도와준 혐의를 받는 바람에, 독일군에게 마을 전체가 몰살당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1942년의 두 작은 그림은 독일군에게 핍박받는 주민과 농민 출신 파르티잔을 그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해에 집은 전쟁의 핍박에 쫓겨 온 수많은 난민들의 은신처가 됩니다. 앞선 1936년의 그림 속 글자 EREMO는 바로 이러한 일을 암시했던 건 아닐까요?

 

1958년, 떠나는 아이들
어머니는 의연히 우유를 붓고 음식을 만들지만, 오늘 아들네가 이사를 나가는 날인 모양입니다. 흰 소가 끄는 짐수레가 있던 자리, 당나귀가 끄는 수레가 있던 자리, 연합군의 탱크가 있던 자리에 아들네의 이삿짐을 올린 자동차가 보입니다. 아들네가 왜 떠나는지 그림책은 말해 주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이 들고 날 때의 허한 마음이 전해져 올 뿐입니다. 이제 이 집에 남은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요?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고 노인이 남아 마을을 지키는 우리네 농촌을 떠올리는 풍경입니다.

 

1967년, 여주인의 죽음
손녀에게 밀짚모자를 만들어 주던 이 집의 여주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네의 이삿짐을 옮기던 자동차가 있던 자리에 조화를 단 검은색 자동차가 서 있습니다. 애도를 하려고 모인 사람들은 이제 집의 문을 굳게 잠그고 떠날 채비를 합니다. 집은 이제 가정을, 사람을, 삶을 잃었습니다.

 

1999년, 새로운 집
집은 새 주소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새 것이 꼭 좋은 건 아니라고도 말합니다. 1999년의 작은 그림에는 도로를 닦는 불도저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마을이 개발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집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집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다른 집이 되어 있습니다. 현대식으로 개조한 집에는 수영장이 있고, 경비견이 대문을 지키고,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와인저장고는 차고가 되어 있고, 1905년에 일가족의 이삿짐 수레가 있던 자리에, 현대식 이삿짐 트럭이 서 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친숙한 물건이 눈에 띄는데요. 마치 장식처럼, 철망 울타리에 붙어 있는 붉은 수레바퀴를 보세요. 혹시 1905년 이삿짐 수레에 달려 있던 수레바퀴는 아닐까요?

 

이 그림책에는 여전히 살펴볼 것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집의 외관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우물은 어떻게 변했는지, 이 집에서 키운 고양이는 몇 마리였는지, 사람들이 일하는 곳엔 왜 항상 와인병이 등장했는지(아마도 여기가 와인의 나라, 인노첸티의 조국인 이탈리아의 농가이기 때문일 테지만), 여러 가지 소소한 것들을 살펴보고 짐작해 보는 것도 이 그림책을 보는 재미일 겁니다. 한 세기의 엄숙한 진실을 담고 있는 그림들은 센 울림으로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그림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눈이 온 날 침묵이 내려온 소리를 듣고, 단단한 돌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고, 향긋한 포도 내음까지 맡아 볼 수 있을 겁니다. 한 장 한 장의 그림을 앞뒤로 넘겨 보며, 어른과 아이가 함께 그림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로베르토 인노첸티

이탈리아 플로렌스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마자 열세 살에 학교를 떠나 가족을 돕기 위해 철강 공장에서 일을 하는 바람에 독학으로 그림을 익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정교한 선과 여리고 섬세한 색으로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정확히 그려지곤 하는데, 이는 그가 독학한 화가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20세기의 신여성으로 재창조된 『신데렐라』, 어린 소녀의 눈으로 본 2차 대전 이야기를 담은 『백장미』, 유대인 대학살을 다룬 『에리카 이야기』,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 휴양지』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인노첸티의 정교한 상상력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독자와 평론가, 양편 모두를 사로잡은 이 행복한 화가는 1985년과 1991년 브라티슬라바 비엔날레 황금사과상을 두 번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으며, 2008년 최고의 그림책 화가에게 주는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림에 심취해 있습니다.

 

존 패트릭 루이스는 경제학 교수로 여러 해를 보내다 자신의 문학적 열정을 발견하고 작가의 길에 들어선, 시인이자 글 작가입니다. 운율이 살아 있는 시에서 리드미컬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그가 쓰는 글에는 항상 말의 리듬과 유머가 살아 있습니다. 다양한 시 형식을 넘나들며 실험하는 그에게 이 그림책 『그 집 이야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그림책에서 '그 집'을 화자로 택하여 품격 있고 균형 잡힌 4행시를 선보였습니다. 그의 시로 인해서 인노첸티의 그림은 독자들에게 더욱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었을 겁니다.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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