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출판사 독서 코칭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16 <도착> 깊이 읽기
- 2007년 볼로냐 라가치 특별상 수상작


그림 숀텐

 

그림으로 쓰는 서사시
이 그림책은 가난과 박해, 그리고 다른 어떤 이유에서건 고국을 떠나 낯설고 물선 나라에 정착해야만 했던, 그리고 해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그림으로 쓴 서사시입니다. 세계적으로 약 1억9천1백만 명의 이주민들이 고국을 떠나 생활하고 있습니다. 여기, 지구에 사는 사람 35명 중 1명이 다른 나라에서 거주하고 있는 셈입니다. 전쟁이나 재난, 정치적 박해나 가난 등 생존을 위협하는 일들이 사람들에게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향하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세기 말엽의 혼란과 일제 식민지 시대, 한국전쟁과 개발독재 등 고단한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 많은 이들이 한반도를 자의로, 타의로 떠나 이국에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시아, 남아메리카, 동유럽, 아프리카 등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정치적 박해를 피해 우리나라로 이주해오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책이 예전에 이 땅을 떠나야만 했던 수많은 이주자들, 그리고 지금 여기 이 땅으로 들어오는 또 수많은 이주자들을 우리들(떠나지 않은 자, 먼저 거주하는 자)이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글 없는 그림책 사용법

'글이 없음은 독자를 더 확고하게, 한 이주자 캐릭터의 처지에 서게 해 준다. 책 안에는 이미지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의미와 익히 아는 것들-이것들은 감춰져 있거나 드물게 있다-을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 글은 우리의 주의를 끄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글이 없을 때 이미지는 더 여유 있는 개념적 공간을 가질 수도 있으며, 독자의 관심을 더 오래 머물게 할 수 있다. 글이 있다면 독자는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설명글에 의해 상상력을 지배당할 수도 있다.'-숀 탠, '『도착 The Arrival』이 만들어지기까지' 중에서


어떤 책을 보든 글자를 먼저 찾아 읽는 사람에게는 처음 이 그림책을 볼 때 모든 것이 불확실해 보입니다. 총 841컷의 그림들로만 전하는 이야기가 잘 읽히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저자가 만들어낸 처음 보는 낯선 사물들의 세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훑어보기만 해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여유를 갖고 그림에 머물러야 합니다. 글이 없으니 읽을 게 없는 게 아니라 글이 없으니 그림을 읽고 또 읽어야 하는 책이 되었고, 읽을 때마다 그림에 숨겨졌던 의미들이 찾아집니다. 글의 행간을 읽듯 그림의 행간을 읽는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1장 아내와 딸을 남겨 두고 고국을 떠나다

이 1장의 그림이 있는 첫 번째 면 작은 그림 아홉 개와 마지막 장인 6장의 그림이 있는 첫 번째 면 작은 그림 아홉 개를 비교해 보세요. 앞의 것에 나오는 그림은 분명히 우리가 익히 아는 것들의 모습입니다. 종이 새, 시계, 중절모와 수건, 냄비와 수저, 아이가 그린 새와 식구와 해, 금 간 찻주전자, 이가 나간 찻잔, 여행가방, 가족  사진. 뒤의 것을 볼까요? 동물이지만 우리가 아는 동물 모양이 아닌 것, 시계이지만 우리가 아는 시계 모양이 아닌 것, 중절모(이것은 전자와 똑같군요.), 우리가 모르는 음식을 담은 그릇과 포크처럼 쓸 것 같은 포크 같은 것, 아이가 그린 하늘을 나는 배 같은 것, 찻주전자처럼 쓸 것 같은 찻주전자 같은 것, 차를 담은 찻잔 같은 것과 모르는 문자로 쓰인 신문, 가족사진(이건 정말 전자와 똑같습니다), 그리고 동전을 건네주는 어른의 손과 그것을 받는 아이의 손. 저자 숀 탠은 이처럼 낯선 것들의 탄생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 현실의 이미지들을 완전히 상상된 세계로 연결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생전 처음 가보는 나라를 여행하는 느낌을 가장 잘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나를 포함한 어떤 연령의, 어떤 배경의 독자라도 똑같이 익숙하지 않을 만한 허구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이곳은 물론 내 취향대로 상상한 이상한 나라였다. 새는 '새 같고' 나무는 '나무 같은' 것에 불과한, 사람들은 이상하게 옷을 입고, 주택 구조는 혼란스러우며 길거리의 일상이 굉장히 이상한 그런 곳 말이다. 나는 많은 이주자들이 이렇게 느꼈을 것이라 상상했다.'

 

2장 여정, 새로운 나라에서의 첫날

새로운 세계의 항구에는 악수를 하는 동상이 서 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듯한 동상의 두 인물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은 '당신을 환영합니다.'라는 메시지를 건네는 듯합니다. 하지만 다른 세계로 들어가려면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복잡하고 까다롭고, 게다가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하고 두렵기까지 한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고 이주자들은 제각각 흩어집니다. 남자는 기차를 타듯 애드벌룬에 매달린 우체통 닮은 것을 타고 이파리 같은 나무들이 있는 도시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온통 낯설고 괴상한 일상 속에 첫발을 디딥니다. 익숙한 것이라곤 자기 자신과 가족사진뿐인 세계로.


3장 새로운 만남과 호의

왜 남자 곁에 있는지 모를 괴상한 생물은 마치 고양이처럼 남자의 주변을 맴돕니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남자에게 호의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지도를 펴고 낯선 이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길을 찾고 탈 것을 타고 또 식료품을 삽니다. 그러면서 남자는 새로운 세계에 익숙해져 갑니다. 그러는 동안 남자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저마다 사연을 가진 이 새로운 세계의 사람들의 사연을 저자는 서너 페이지의 그림으로 간결하게, 상징적으로, 하지만 섬세한 묘사력으로 잘 보여줍니다.

 

4장 직장을 구하고 시간이 흘러간다

남자는 이제 괴상한 생물을 고양이 쓰다듬듯 어루만지고 먹이를 줍니다. 둘은 서로 의존하고 돌보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일자리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한 공장에 취직한 남자는 생산라인에 서서 불량품을 골라내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한 노인을 사귀고 그의 친구들과 어울립니다.

 

5장 식구들을 불러오다

3장에서 남자가 선물 받아 창턱에 놓아둔 조그만 항아리에 물고기를 닮은 새 같은 것이 둥지를 틉니다. 남자는 식구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항아리 둥지에도 식구가 생기고, 이파리 같이 생긴 식물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떨구고. 어느덧 눈이 쌓입니다. 남자는 두고 온 식구들의 소식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어느 날, 남자가 타고 왔던 우체통 같은 것이 도착하고 거기에서 아내와 딸이 내립니다.

 

6장 정착

따뜻한 김이 오를 것 같은, 즐거운 콧노래가 흘러나올 듯한 일상이 보입니다. 딸아이가 식료품을 사러 나갑니다. 괴상한 생물을 데리고 다녀오는 길에 지도를 펴든 젊은 여인을 보고 아이는 기꺼이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펼칩니다.

 

저자인 숀 탠은 이 책에서 좁게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룬 나라인 호주의 이민사를, 넓게는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자가 갖는 두려움과 고독, 그리고 극복의 과정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는 새로운 세계에 모인 자들이 서로를 돕고 위하는 마음씨와 따뜻한 정서가 흐르고 있어 긍정적이며 낙관적인 저자의 인생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림 / 숀 탠

1974년 오스트레일리아 퍼스 주의 프리멘틀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중국계 말레이시아 인이고 어머니는 오스트레일리아 인입니다. 문학과 미술을 좋아했으며, 많은 시간을 공룡이나 로봇, 우주선 따위를 그리며 보냈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하여 열여섯 살이던 1990년, 공상과학 소설에 처음으로 삽화를 그렸습니다. 대학에서 미술과 영문학을 공부했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그림책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회사인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와 픽사 등에서 원화를 그리는 일도 합니다.

 

1992년에 국제 미래의 출판미술가 상을 받았고, 2001년에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세계 판타지 어워드에서 '최고의 아티스트'로 뽑혔습니다. 쓰고 그린 작품 『잃어버린 것』으로 볼로냐 라가치 명예상을(이 작품은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빨간 나무』로 CBCA(호주어린이책위원회) 명예상를), 『도착 The Arrival』으로 볼로냐 라가치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그림을 그린 작품 『토끼들』(존 마르스덴 글)로  CBCA 올해의 그림책상을, 『Memorial』(개리 크루 글) CBCA(호주어린이책위원회) 명예상을, 『The Viewer』(개리 크루 글) 크릭턴 일러스트레이션 상을 받았습니다.

 

아래 글은 작가가 쓴 Comments on The Arrival(『도착 The Arrival』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전반부를 번역한 것입니다.


출처 : http://www.shauntan.net/books/the-arrival.html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또 글 작가로서 내가 해 온 작업들(『토끼들』, 『잃어버린 것』, 『빨간 나무』)을 돌아보면서, 나는 내가 '소속감'이라는 개념에 대해 관심이 많음을 깨닫는다. 특히 그것을 찾거나 잃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이것이 나의 삶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의식적인 관심보다는 잠재의식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뒷받침이 될 만한 하나의 경험으로는 거대한 사막과 더 거대한 바다 사이에 끼인, 세계에서 가장 단절된 도시 중의 하나인 호주의 퍼스에서 자란 것을 들 수 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 부모님은 뚜렷한 문화 정체성이나 역사라고는 거의 없는, 그저 공기 좋은 북쪽의 변두리에 자리를 잡으셨던 것이다. '원주민 추방'(나중에 『토끼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주목하게 된)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면서, 나는 불도저로 밀어버린 백지 상태의 바닷가 모래 언덕에 급조한, 벽으로 둘러싸인 집들이 있는 이 세계를 도대체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몹시 혼란스러웠다.


중국인 혼혈이 흔하지 않았던 시대에, 그런 곳에서 혼혈아로 살아가면서 나는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니?'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아야 했다. 그 질문에 '여기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너의 부모님은 어디 사람이니?'라는 질문이 이어질 뿐이었다. 그래도 이런 질문은 어릴 때 겪어야 했던 저질의 인종차별보다는 훨씬 긍정적인 시선이었다. 그리고 이런 차별은 종종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나의 중국인 아버지를 향해 있었다. 자라면서 나는 막연한 격리감과 뚜렷하지 않은 정체성 또는 뿌리에서 떨어진 듯한 느낌들을 가졌고, 그 위에서 'Australian'으로 사는 것은 무엇이고, 또 'un-Australian'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대하여 습관적인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그것이 무얼 의미하든지 간에).


개인적인 이슈를 넘어서라도, 소속감에 대한 문제는 아마 모든 사람이 종종 혹은 정기적으로 갖게 되는, 기본적인 존재에 관한 질문일 것이다. 이런 문제는 평안한 현실에 시련이 오거나 우리의 기대가 좌절되는 등 일상생활에서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경우에 표면으로 떠오른다. 대개 이런 순간들에서 좋은 이야기가 시작되며, 그것은 소설의 아주 좋은 에너지원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새로운 학교, 직장, 관계 혹은 국가 등 새로운 소속감의 창조를 필요로 하는 현실을 맞게 된다.

 

이 문제는 내가 이주 경험을 주제로 하는 책인 『도착 The Arrival』을 진행하는 오랜 기간 동안 내 마음에 꽉 차 있었다. 이미 '이상한 지역의 이상한 사람' 이라는 경험을 가진 나에게, 누군가 집을 떠나 알려지지 않은 나라, 지극히 평범한 일상마저 이상한,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그런 새로운 곳으로 가는 이야기는 분명히 다루어야 할 문제였다. 이는 이야기의 형태로 구체화되기 전, 여러 해 동안 내가 생각해오던 시나리오였다. (후략)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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