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출판사 독서 코칭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8  <길거리가수 새미> 깊이 읽기

 

찰스 키핑 글․그림│서애경 옮김

 

찰스 키핑의 이 그림책을 보노라면 다른 작가의 두 이야기가 끊임없이 떠오릅니다.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와 박경리의 「거리의 악사」라는 글입니다. 전자에서 주인공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하루 종일 자기가 걸은 원 넓이만큼 땅을 싼 값에 준다는 말에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자신이 출발했던 장소에 다다르자마자 죽고 맙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땅은 자기 몸 크기만 한 땅 한 뙈기였지요. 길거리 가수였다가 록 스타가 된 새미를 보면서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명성과 부가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대답은 새미가 훌륭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명성과 부가 아니라 '아무 걱정 없는 행복'이라는 것을요. 후자의 글 「거리의 악사」에서 글쓴이는 여행을 갔다가 등에 장판지를 지고 다니며 파는 할머니를 만납니다. 장사하고 남는 이문은 밥값이 다고, 잠은 친척 집에서 잔다던 그 할머니는 흥얼흥얼 구슬픈 노랫가락을 세상에 퍼뜨리며 걸어갑니다. 진정한 예술가란 이렇듯 생활을 하면서 몸과 마음에서 흥이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이들이 아닐까요? 새미도 그런 길거리 가수, 길거리 예술가이지요. 『길거리 가수 새미』는 이렇듯 삶과 예술에 대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현대 사회의 스타 만들기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대운을 좇는 이들, 예를 들면 '대운'을 뜻하는 이름인 '빅 찬스' 서커스단과 그곳의 이보르 찬스 같은 이들은 그럴싸한 흥행거리로 새미를 선택합니다. 새미의 마음 한 곳에 있는 부와 명성에 대한 갈망을 간파하고 그것을 잘 이용하지요. 대운을 좇다가 웃음거리가 되어 버린 새미의 좌절감을 큰 혹 덩어리 같은 빅놉이라는 흥행꾼이 이용합니다. 새미한테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뭔가, 즉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재주 같은 것이 있거든요! 새미는 최고의 인기 스타가 됩니다. 하지만 그 인기라는 것도 금세 사라집니다. 새미를 추어 주던 기자 미키 레이커가 다른 적당한 기삿거리를 찾았고, 빅놉도 다른 흥행거리를 찾았으니까요. 이윽고 아무도 찾지 않을 때에 이르러서야 새미는 자기를 발견합니다. 혼자서 노래하며 춤추는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는 길거리 가수를요.

 

작가는 이 모든 이야기를 풍자적인 글과 유려한 그림으로 풀어 나갑니다. 수식이 제거된 깐깐한 글은 스타 만들기의 허구를 날카롭게 파헤쳐 드러내고, 선과 색이 살아 흐르는 듯 미려한 그림은 주인공 새미의 흥분과 설렘, 좌절과 공허, 흥과 신명을 잡힐 듯 생생히 전해 줍니다. 특히 조명에 갇힌 록 스타와, 똑같은 표정을 한 수천 관중을 대비시키는 장면이라든가, 성공을 향한 광기에 휩싸여 일상의 행복을 잃고 허깨비가 되어 가는 새미의 모습을 스타카토로 끊어 보여 주는 장면들은 이 그림책의 메시지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명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 걱정 없는 행복은 가끔씩 우리를 찾아옵니다. 친구들과 놀 때, 아니면 하고픈 일을 할 때, 가족과 함께 있을 때 등등 사람마다 그 순간은 다르겠지요. 그리고 여기, 이 책이 독자 여러분께 그런 순간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페이지에 등장하는 춤추고 노래하는 새미의 행복을 여러분도 함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글.그림 / 찰스 키핑

192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하여 신문배급업자인 아버지가 가져다 주는 가판 포스터 뒷면에 그림을 즐겨 그리곤 했습니다. 평범했던 그의 삶은 그러나 여덟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죽고 이어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남으로써 깊은 상처를 안게 되었습니다.


열네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인쇄공으로 일하던 키핑은 2차대전 중이던 열여덟 살 때 군에 입대하였는데, 군 생활 중에 머리 부상을 입어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이 경험은 완치된 뒤에도 그의 내면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1946년 전역을 한 뒤 런던에 있는 리젠트 스트릿 폴리테크닉이라는 미술학교에 들어가 낮에는 가스 검침원 일을 하고 밤에는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석판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한 키핑은, 졸업 후 신문 만화 일을 시작으로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에 들어섰으며 이후 200여 권의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1966년 그림책 『검은 돌리』의 출간을 시작으로 평생 22권의 그림책을 쓰고 그렸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급속한 현대화 과정 속 대도시의 변화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린 작품들입니다.


빼어난 조형성과 색감, 깊은 주제의식으로 '어린 독자에겐 너무 어렵고 깊은 심리적 접근을 하는 것이 유일한 흠'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키핑은 『찰리와 샬롯과 황금 카나리아』(1967)와 『노상강도』(1981)로 케이트그린어웨이 메달을 두 차례 받았으며, 1988년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