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출판사 독서 코칭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7  <빈터의 서커스> 깊이 읽기

 

찰스 키핑 글․그림 / 서애경 옮김

 

빈터-낡은 주택과 공장, 창고 들이 헐린 자리에서 두 아이, 웨인과 스콧이 뛰어놉니다. 풀도 나무도 없고 꽃과 나비는 더더구나 찾아볼 수 없는 도시 한가운데 황량한 놀이터에서 말이지요.


공을 차며 질러대는 아이들의 고함과 웃음소리가 드문드문 생기를 일으킬 뿐,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음울한 잿빛 하늘과 잿빛 건물인 그 쓸쓸한 터에, 어느 날 가슴 설레는 일이 벌어집니다. 짐차들의 기다란 행렬과, 뚝딱 세워진 커다란 천막......, 서커스가 찾아온 것입니다!

 

웨인과 스콧은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가 돈을 타서 빈터로 돌아옵니다. 어찌나 빨리 달려왔던지, 표를 사 천막 안으로 들어선 두 아이는 아직 공연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서커스단의 모습과 마주칩니다. 마음속으로 그렸던 것과는 사뭇 다른 무대 아래의 서커스단원들, 낯설기만 한 돈점박이 말 두 마리, 잠들어 있는 사자들과 기함을 할 만치 커다란 코끼리.......

 

비어 있는 놀이기구를 실컷 탄 뒤에야 관악대의 드높은 음악소리에 이끌려 공연장으로 들어선 이들 앞에 서커스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우습고도 슬픈 어릿광대들, 우아한 마상공연과 정신이 아찔한 외줄타기, 존경심마저 일으키는 대담무쌍한 공중그네와 몸을 날려 불길을 뚫는 사자들, 코끼리와 아가씨들이 펼펼치는 대단원까지 두 아이가 지켜본 것은 다름 아닌 무지갯빛 환상의 세계였습니다.

 

이윽고 공연이 끝난 뒤, 천막이 걷히고 짐차들이 떠나자 빈터는 다시 잿빛 감도는 쓸쓸한 놀이터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아이, 웨인에게만 맞는 말이었습니다. 다른 아이 스콧에게 서커스가 벌어졌던 그 빈터는 더 이상 그 옛날의 빈터가 아니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 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이 그림책에서처럼, 서커스는 언제나 빈터에 찾아듭니다. 쓸모없이 버려진 황량한 빈터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가슴 설레는 꿈의 궁전을 우뚝 세워 놓는 것이지요. 서커스는 또한 언제나 아이들을 부릅니다. 비록 어른의 모습을 한 사람일지라도 그곳을 찾은 마음만은 아이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렇게 서커스가 찾아들고 아이의 마음들이 모여들었을 때 빈터는 바야흐로 꿈과 환상의 무대로 변화하고, 그 위에서 재담과 묘기, 모험과 낭만, 도전과 성취의 무지개가 펼쳐집니다.

 

서커스가 떠나고 나면 빈터는 다시 쓸쓸한 공간으로 돌아가지만, 어떤 이들에게 빈터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얻게 됩니다. 서커스가 문득 찾아왔던 것처럼, 환상적인 공연이 펼쳐졌던 것처럼, 그 어떤 놀라운 일이 언제 또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꿈의 공간으로 탈바꿈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씁쓸하게도 그것은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은 아닙니다. 다른 어떤 이들은 다만 한바탕 꿈에서 깨어난 듯 다시금 쓸쓸해진 빈터를 쓸쓸한 그대로 바라봅니다. 그게 바로 현실이요, 세상인 것이니까요.

 

빈터의 서커스, 버려진 땅에 찾아드는 꿈, 꿈이 현실이 되는 환상의 공연과 막이 내린 뒤의 쓸쓸함, 쓸쓸함 속에서도 꿈을 보는 아이와 현실을 보는 아이....... 이 짧은 그림책은 욕심 많게도 그 모든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황량한 현실에도 꿈은 찾아온다는 희망의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그것만이 전부인양 온 세상을 무지갯빛으로 발라놓는 섣부른 낙관으로 위안하려 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꿈을 보는 아이와 꿈을 보지 않는 아이, 아니 현실을 보는 아이를 나란히 담담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 앞에 놓인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판단의 문제를 독자들에게 열어 놓고 있습니다. 빈터와 서커스가 공존하면서, 때때로 빈터에 서커스가 찾아들기도 하고, 머물다 떠나기도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일 테니까요.

 

 

글.그림 / 찰스 키핑

192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하여 신문배급업자인 아버지가 가져다주는 가판 포스터 뒷면에 그림을 즐겨 그리곤 했습니다. 평범했던 그의 삶은 그러나 여덟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죽고 이어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남으로써 깊은 상처를 안게 되었습니다.


열네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인쇄공으로 일하던 키핑은 2차대전 중이던 열여덟 살 때 군에 입대하였는데, 군 생활 중에 머리 부상을 입어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이 경험은 완치된 뒤에도 그의 내면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1946년 전역을 한 뒤 런던에 있는 리젠트 스트릿 폴리테크닉이라는 미술학교에 들어가 낮에는 가스 검침원 일을 하고 밤에는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석판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한 키핑은, 졸업 후 신문 만화 일을 시작으로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에 들어섰으며 이후 200여 권의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1966년 그림책 『검은 돌리』의 출간을 시작으로 평생 22권의 그림책을 쓰고 그렸는데, 대부분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급속한 현대화 과정 속 대도시의 변화 한가운데 놓여 있는 어린이들의 내면 또는 자기 내면의 어린이를 그린 작품들입니다.


이 책 『빈터의 서커스』(1975) 또한 '현대화'가 도시에 만들어놓은 황량한 빈터와 그곳에 찾아든 서커스를 통하여 희망을 찾거나 혹은 현실에 눈뜨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잿빛 현실과 무지갯빛 꿈 사이를 오가는 아이들의 내면을 뛰어난 색채 감각으로 아름답게 묘사한 수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빼어난 조형성과 색감, 깊은 주제의식으로 '어린 독자에겐 너무 어렵고 깊은 심리적 접근을 하는 것이 유일한 흠'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키핑은 『찰리와 샬롯과 황금 카나리아』(1967)와 『노상강도』(1981)로 케이트그린어웨이 메달을 두 차례 받았으며, 1988년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료 제공 :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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