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출판사 독서 코칭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3 <세 개의 황금 열쇠> 깊이 읽기

 

피터 시스 글․그림 / 송순섭 옮김

 

이 그림책을 쓰고 그린 피터 시스는 체코(옛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이면서, 1980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금곰상을 받은 영화감독이기도 합니다. 1982년에 그는, 2년 뒤 열릴 LA올림픽에 관한 필름을 제작하기 위해 미국으로 파견되는데, 얼마 뒤 체코슬로바키아를 비롯한 모든 동유럽 국가들이 올림픽에 불참하기로 하면서 필름 프로젝트는 그만 무산이 되고 맙니다. 이때 그 또한 귀국 명령을 받았지만, 돌아가지 않고 망명을 택하여 미국에 머물게 되지요. 그 뒤 7년이 지난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전체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나서야 그는 고향 프라하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작가가 그 세월 동안 느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그 사이 미국에서 태어난 딸 매들린에게 자기 조국의 문화와 고향의 모습을 전해주고픈 마음을 담아 만든 작품으로, 애틋함 속에 거장의 풍모가 담긴 대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 개의 황금 열쇠』는 작가 자신이자 주인공인 화자 나가 딸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야기 속에서 나는 뜻하지 않게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옛 집은 자물쇠 세 개로 굳게 잠겨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성장시킨, 그러나 지금은 이미 떠나와 버린 옛 고향을 고스란히 다시 돌이키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은 것임을 뜻하지요. 이방인에게 쉽게 열쇠를 내어 주는 곳은 없습니다. 열쇠를 준다는 것은 상대방을 그곳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니까요. 하물며 세 개나 되는 열쇠를 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그때 기억의 단초처럼 나타난 것이 옛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 마법의 눈을 지닌 검정고양이입니다. 고양이는 나를 인도하고, 나는 그 뒤를 따라 어릴 적 뛰놀던 거리거리를 지나 추억이 서린 특별한 장소들을 차례로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 장소 하나씩을 거칠 때마다 어릴 적 듣던 옛이야기를 하나씩 듣고 열쇠도 하나씩 얻게 되지요. 마침내 세 개의 황금 열쇠를 모두 손에 넣고 옛 집의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단지 기억 속에만 있는 고향이 아니라 진정 피부로 느껴지는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저녁 준비가 다 되었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죽은 듯 조용하기만 하던 도시가 소리를 되찾으며 살아납니다. 그리고 나는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자며 딸 매들린을 부릅니다. 잃어버렸던 시간과 단절되었던 세대가 한 순간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프라하는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천년고도입니다. 피터 시스는 시적인 글과 정교한 그림으로써, 고향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 속에 유서 깊은 도시의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매우 조화롭게 짜 넣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그림책에서 세 개의 황금 열쇠를 완전하게 손에 넣는 일은, 나에게 뿐만 아니라 어린 딸 매들린에게도, 독자에게도 어려운 숙제입니다. 그림 하나하나, 글 한 줄 한 줄에 천년고도 프라하의 은밀한 비밀들이 교묘히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나가 맨 처음 열쇠를 얻은 곳은 프라하 성 근처의 스트라호프 수도원의 도서관이며, 열쇠를 건네 준 사서는 16세기에 체코에서 활동했던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가 그린 「도서관 사서」의 인용입니다. 또한 열쇠를 건네받은 세 곳에는 천구의가 하나씩 있는데 거기에는 각각 프라하, 수도, 왕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프라하, 왕국의 수도라는 글귀로, 1784년에 정해진 프라하 시의 슬로건입니다.

 

 내 고향이 프라하가 아닌 이상에야 작가가 글과 그림 속에 숨겨 놓은, 프라하의 오래된 골목길들처럼 복잡하고 찾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발견하려고 굳이 애를 써가며 이 책을 보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 책은 충분히 아름다우며 모든 이에게 의미 있는 보편 정서를 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조금만 더 여유를 갖고 천천히 책을 보면서 그 안에 숨은 의미들을 살펴본다면, 백탑의 도시 혹은 유럽의 심장이라 불리는 유서 깊은 도시 프라하의 비밀을 발견하는 기쁨까지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라면 탐정놀이를 하는 듯한 지적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며, 어른이라면 세계문화유산의 아름다운 유적들을 감상하면서 조용히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내밀한 시간을 누릴 수도 있을 테지요.

 

피터 시스는 그림책을 만드는 일 외에도 참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타임」이나 「뉴스위크」 같은 잡지에 그림을 그리고 「뉴욕 타임즈」 북리뷰에도 1000개가 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책의 표지나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공항의 벽면을 장식하거나 발레 무대를 설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의자, 달걀, 벽, 상자, 조개껍데기, 심지어는 모자에까지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딸이 태어난 뒤로 아이의 건강을 고려해 그림 그리는 도구를 펜과 잉크, 수채물감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나서 수채물감을 말리려고 가끔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오븐 앞에서 그림을 말리기도 해서 그림에서 닭고기 냄새나 빵 구운 냄새가 나기도 한답니다.

 

(자료제공 :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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