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좋은 어린이 책, <창비아동문고 대표동화 세트 - 전35권>의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 사무처장 김경숙 님 추천글입니다.
어른이 먼저 누리는 우리 동화
어려서는 우리 동화를 만나지 못했다. 책을 만나기 어려운 독서환경이기도 했고 소위 세계명작동화 일색이었던 때문이기도 했다. 20여년 전 내 아이에게 읽어줄 책을 찾으면서 우리 동화를 만났다. 그 때부터 어려서 못 보던 우리 동화를 한풀이 하듯 읽었다. 좋은 동화는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똑같은 감동을 준다더니 그 때 만난 창비아동문고는 내 정서와 독서수준에 딱 맞는 책들이었다. 어려운 어린이책 출판현실 속에서도 좋은 어린이 책을 내는 신념을 지켜 온 출판사들이 있어 고마웠다.
그 때 나는 소위 세계명작동화 일색이었던 우리 어린이문학의 현실을 신랄한 비평과 반성으로 보게 하는 이오덕선생님의『시정신과 유희정신』‘창비’에 크게 공감하던 때다. 우리 삶 저 바닥에 깔린 알지 못할 열등의식을 우리 책을 읽으며 극복해야 한다고 나도 생각했다. 거기다가 프랑스의 아동 문학가 폴 아자르는 ‘아동문학을 무시해도 상관이 없다. 다만, 민족의 넋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어 왔는가를, 무시해도 좋다면 말이다.’라고 말한다. 민족의 넋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힘이 바로 그 나라 어린이 문학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꽂혔다. 마치 내가 독립군이라도 되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린이를 삶의 주체로 보는가? 일하는 삶을 귀하게 여기는가? 생명을 귀히 여기는가? 우리의 역사적, 문화적 정서에 맞는가? 통일을 지향하는가? 꿈을 심어 주는가?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는가? 우리나라 작가가 쓰고, 우리나라의 생활 문화가 배경인가?’라는 어린이도서연구회의 우리 창작 동화 고르는 기준이 가슴에 더 와 닿았는지 모른다.
이번에 새로 나오는 ‘창비아동문고 대표동화’는 어려서 우리 동화를 누리지 못한 어른들에게 먼저 권하고 싶다. 드러내어 가르치려하지 않으면서 마음을 흔드는 감동이야 말로 오늘날 우리가 진정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사는 것이 우리 겨레 아이들에게 힘을 주는 것인지 말해준다. 어린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가장 큰 스승으로 다가온 분이 권정생선생님이다. 깨끗한 우리말을 잘 지켜 살려 쓰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많은 동화들을 보면서 나는 이 분이 이시대의 성자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우리 아이들을 시들게 하지 않을 좋은 동화를 쓰겠다는 작가정신을 지켜 온 동화작가들을 두루 다시 만나는 즐거움도 함께 누릴 수 있으니 반갑다. 우리 겨레 아이들의 삶 전반을 지원해주고, 우리 아이들의 평등한 독서환경을 누리는 곳! 학교도서관에서 아이, 어른 모두 함께 누릴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無 事 此 靜 座 일 없이 이리 고요히 앉아
有 福 方 讀 書 복 있어 바야흐로 책을 읽다.
책읽기도 복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분주한 일 잠시 내려놓고 고요히 앉아 책 읽는 일이 호사다. 수십 년을 곱게 쌓아온 우리 동화를 만나는 그 복을 모두 함께 누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