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창비아동문고 대표동화 전35권 세트 별책부록(길잡이책)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자료 제공 : 창비)

 

창비아동문고가 걸어온 길 
1970년대에 이원수 동화집 <꼬마 옥이>, 이주홍 동화집 <못나도 울 엄마>, 마해송 동화집 <사슴과 사냥개> 등으로 시작된 창비아동문고는 단행본 출판의 신기원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때만 해도 독자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어린이책은 전집뿐이었고 편하게 사서 읽을 만한 단행본은 거의 없었으며 출판시장 자체도 미약한 편이었다. 창비아동문고의 출범은 우리나라 창작동화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국내 아동문학이 출판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하나의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창비아동문고 출간을 처음 발의하고 추진한 분은 백낙청 선생으로, 당시 백선생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연유로 교수직에서 해직되어 창비 발행인을 맡고 있었다. 문학평론가 염무웅 선생 역시 1976년 해직당해 창비 편집진에 합류함으로써 창비아동문고의 산파역을 담당했으며, 정해렴 선생(현대실학사 대표)과 함께 아동문고의 편집, 교정을 맡아 보았다. 또한 창비아동문고의 출범이 내실있게 가능했던 것은 이오덕 선생의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창비아동문고의 가장 앞번호를 차지하면서 한국 아동문학의 고전이 된 이원수, 이주홍, 마해송, 권정생 같은 작가들의 작품집을 엮고 해설을 맡아준 분이 바로 이오덕 선생이었다.


창비아동문고 발간 취지는 초창기 문고의 권말에 실은 발간사(「'창비아동문고'를 펴내면서」)에 밝혀져 있듯이, 가격이나 내용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믿고 권할 수 있는 단행본 어린이책을 출간하자는 것이었다. "어린이를 상대로 한 우리나라의 출판계와 문학계는 다른 분야보다도 오히려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저희가 '창비아동문고'를 펴내기로 한 것은 (...) '창비'를 아껴주신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아들, 딸, 동생 들에게 마음놓고 권할 수 있고 (...) 어른들 스스로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이 취지문은 백낙청 선생이 집필한 것으로, 백선생은 초기 간행된 몇몇 아동문고의 교열교정을 직접 맡아하기도 하였다. 방문판매를 위주로 보급되는 세계명작전집들이 사실상 어린이책 출판의 전부였던 상황에서 일반 서점에서 찾을 수 있는 단행본을 새로운 시각으로 기획 출판해야 한다는 과제는 이후 10여년 이상 어린이도서연구회 등에서 줄기차게 주창한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창비아동문고 1번 <꼬마 옥이> 판권을 보면 간행일은 1977년 2월 20일이며, 4·6판형의 크기에 본문 삽화 없이 278면으로 요즘 책에 비해 판형이 작고 두께는 두툼한 편이었다. 101번이 출간된 것은 11년 만이고, 25년 만에 201번이 출간되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은 2012년 12월에 간행된 신인 김민령의 첫 동화집 <나의 사촌 세라>로 창비아동문고는 35년 만에 270번을 간행하였다.

 

101번 <개구쟁이 산복이>(이문구)부터는 지금과 같은 신국판으로 판형을 바꿨고 본문 글자가 커지고 그림도 시원하게 들어가게 되었다. 1990~91년에는 1번부터 100번까지도 신국판으로 전면 개정하여 이후 창비아동문고는 모두 신국판으로 나오고 있다. 1989년에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뀌는 등 한글맞춤법이 크게 달라지면서 구 맞춤법을 따른 책들을 더 이상 보급하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개정판을 내면서 바뀐 한글맞춤법으로 1번부터 100번까지 새로 펴냈다. 그때그때 책이 나올 때 붙여진 일련번호는 개정판에서는 그대로 유지하지 않고 영역별로 묶어 새로 번호를 부여했는데, <몽실 언니>가 61번에서 14번으로 바뀌는 등 대부분의 책이 새 번호를 받았다. 그 이후로도 2006년에 창비아동문고의 앞 번호 창작동화 22권은 다시 개정되어 새로운 독자에게 어울리는 편집을 갖추었는데, 현재 판매되고 있는 <꼬마 옥이>는 개정 3판이다.


1996년 창비아동문고는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다. 바로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제도의 시작이다. 좋은 어린이책을 쓰려는 어린이책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마련된 이 수상제도를 통해 채인선, 이가을, 이미옥, 안미란 같은 기성작가들이 재발굴되었고 <문제아>의 박기범,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김중미 같은 신인들이 탄탄한 작품으로 등장하며 평단과 시장에서 모두 크게 주목받았다. 지금 아동문고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인 <문제아> <괭이부리말 아이들>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 <지엠오 아이> <초정리 편지> <짜장면 불어요!> 등이 모두 수상작들이다.


1977년으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어린이책 시장은 매우 커지고 다채로워졌다. 창비아동문고가 처음 나왔을 때 초등학생이던 독자들은 지금 마흔 살을 훌쩍 넘겼고, 이제 그들의 아이가 아동문고의 독자가 되었다. 세대를 넘어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을 꾸준히 담아 오면서 예나 지금이나 창비아동문고는 우리 아동문학의 중심을 잡고 있다. 훌륭한 유산과 전통이 복원되었고 새로운 창작의 흐름이 개척되었다.


한편, 창비아동문고 출간이 계속되면서 독자의 부담도 생겨났다. 1977년부터 35년간 이어져온 발간 취지가 새로 나오는 단행본 한 권 한 권에는 그대로 적용되지만 이미 나온 책 전체를 두고는 그렇지 않게 되었다. 아무래도 270권 전체는 큰 부담 없는 규모라 하기 어렵다. 또한 창비아동문고의 방대한 규모 속에 다양한 작품들이 아우러져 있어서 지난 35년간 창작동화 전체의 성과를 일반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보여 주기 어려운 점, 그리고 일부 책들은 여전히 낡은 모습이어서 오늘날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은 아쉬운 면이었다. 창비아동문고가 뿌린 씨앗이 출판환경의 변화를 견디고 울타리를 확장하면서 널리 뿌리내릴 수 있도록, 또한 앞으로도 우리 아동문학의 요람으로서 창작자들과 독자들에게 깊이 각인될 수 있도록 발간 당시의 취지를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 갈수록 절실해졌다.


하여 2012년 말까지 간행된 270권의 작품들 중에서 대표적인 동화를 가려 뽑아 '창비아동문고'의 이름을 걸고 누구에게나 마음 놓고 권할 수 있는 '창비아동문고 대표동화' 선집을 구성하기로 하였다. 창비아동문고의 역사성을 바탕으로 오늘의 어린이들이 꼭 읽어야 할 단편동화를 선별하면서 특히 우리아동문학의 지형도를 바꿔온 작가들이 빠지지 않도록 안배했다. 큰 부담은 줄이되 창비아동문고 창작동화의 성과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든 이번 대표동화 선집이 어린이들에게 마음의 양식이 되고 아동문학의 앞길에 좋은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 원종찬/박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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