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전문서점 책과아이들 대표 강정아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1월의 좋은 어린이 책, <크리스마스 휴전>의 추천글입니다.

 

새해 첫 날부터 테러와 폭격 소식을 듣는다. 시리아, 파키스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 중동지역에선 새해 기념 폭죽이 아니라 살상을 위한 폭격이 있었다고 변함없이 뉴스는 떠든다. 아인슈타인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딱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기적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라 했다. 기적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이라면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것이고 종국에는 자기 곁에서 기적을 좀 더 자주 만날 것이다. 아니 기적임을 한 번이라도 ‘인식’한 사람이 더 정확한 표현일 거다. 쉽진 않지만 그저 내 주변에 놓인 기적을 발견하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문학과 영화, 연극, 음악 등 예술작품을 접하는 일들은 내가 따라잡지 못하는 기적의 세계, 곧 삶의 진실에 대해 타인과 대화하는 일이다. 현실에서 그 진실을 자주 놓치니 좀 다른 세계에서 확인하고 감동하고 그 신념을 공고히 해서 실천세계로 나갈 수 있는 거다. 그것이 사실이든 꾸며낸 이야기이든 감동은 내 몸을 움직인다. 거의 매일 아침 들려오는 메마른 뉴스에는 ‘어쩌지?’ 하는 혼란만 가중되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땐 다시 기적을 읽어야 한다.

 

오래전에 ‘전쟁축구’라는 애니메이션으로 접했던 거짓말 같은 사실을 ‘크리스마스 휴전’이라는 그림책으로 다시 접한다.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라 오히려 그림책으로 만들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범해지기 쉬우니까. 그림책은 키치너 포스터로 시작하는데, 이는 민족과 국가에 대한 의무를 강요하고 전쟁과 군인에 대한 환상을 조장하여, 생명에 대한 사랑과 경이를 저버린 채 그릇된 애국심으로 총을 들게 하는 인류가 저지르고 있는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다. 지금도 유사한 포스터가 우리아이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에 따끔한 경고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주인공의 파릇파릇한 목덜미를 보고 있노라면, 어리고 순수한 젊은이에 대한 마음의 빚이 느껴진다. 다음 장! 주인공의 두려움을 숨기고 있는 눈동자를 직시하고 싶지 않아 빨리 책장을 넘긴다. 이젠 그들이 내 아이 같기 때문이다. 20세기를 산 어른으로 도처에서 일어나는 전쟁, 불평등, 환경파괴 현장을 볼 때마다 부끄러움과 죄의식이 차올라 아이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다. 책임을 질 일들이다.

 

그 뒤 장면에서도 여러 번 등장인물이나 주인공의 눈동자와 마주친다. 놀라움, 의심, 포기, 무기력함, 갈구, 탄식, 내몰림, 죽음을 담은 눈동자를 정면으로 봐야 하는 그림책이다. 아, 불편하다. 하나같이 슬픈 눈동자이고 표정이고 몸놀림이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볼 수 있는 천사의 모습까지 온통 슬픔에 차 있다. 물이 많아 늘 질척였던 서부전선의 누르스름한 흙빛과 푸르스름한 칙칙함이 가득한 장면들은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그러나 그 슬픔을 넘어 사병들이 시작한 기적은 그날로 끝나선 안 된다는 웅변을 한다.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민중의 캐럴과 장교의 손가락질이 싸우고 있는 현장이다. 독일과 영국이 싸우는 전장이 아니고 사실 적은 따로 있음을 보여준다.

 

그날의 기적은 오래된 크리스마스의 전통에서 시작되었고 사병들 속에 차곡차곡 재워 있는 사랑과 평화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감동은 100여 년이 지난 오늘도 다큐로, 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책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이들이 ‘크리스마스 휴전’을 되새기고 있는 것은 여전히 그 기적이 유효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로지 민중들이 바라는 것은 사랑과 평화이며, 민중들은 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5000년 인류역사상 1만 5000여 건의 전쟁, 8% 기간에만 평화로웠고, 92% 기간에는 전쟁이었다는 통계! 전쟁을 경계하는 자극적인 통계자료이리라. 이런 자극, 슬픔들로 새롭게 세상을 기획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한 책이다. 할 수만 있다면 팔레스타인의 긴 분리장벽에 이 책의 그림을 걸고, 빛그림과 음악 공연을 해서 싸우고 있는 그들에게 기적을 회복하는 힘을 주고 싶다. 나토군, 미국, 이스라엘, 터키와 시리아, 이란, 파키스탄, 러시아! 그밖에 지금 분쟁을 벌이고 있는 모두는 누구보다 기적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에 놓인 자들이다. 결국 평화는 그들과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전쟁이 없는 곳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툼과 분열을 멈춰야 한다. 미국의 일부지역에선 총기를 반납하는 캠페인도 있다. 이런 일들이 이어져가야 하는 시대다. 그것을 돕는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슬픈 눈동자들을 직시하면서... - 강정아(어린이책 전문서점 책과아이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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