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이관용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8월의 좋은 어린이 책, <내 멋대로 스케치북>의 추천글입니다.


미술을 전공하고 일러스트레이션 작가로 활동하면서 '그림 그리기'는 이제 생업이 되었지만, 좋은 그림은 무엇인지, 그림 그리는 행위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아이들에게는 어떤 미술교육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늘 고민하게 됩니다. 더구나 이제 의사소통이 제법 가능해진 세 살배기 아들로 인해 미술을 통한 교육에 대해 점점 더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더군요.


작은 잎사귀나 개미 한 마리에게도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의 색깔을 구별해 부를 줄 아는 아들을 위해 자연스럽게 형태와 컬러를 말하는 그림책 들을 뒤적거리게 되더군요. 의욕이 넘치는 부모들은 그림 전시회를 다니기도 하겠지요. 물론 아이들은 그림보다는 그 공간을 뛰어다니고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더 재미있겠지만요! 렘브란트의 그림이나 고흐의 명화를 두 눈 반짝이며 쳐다보고 있는 아이의 눈빛을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들은 뿌듯하기 마련이거든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스케치북을 끼고 살기도 합니다. 주변에 그런 아이들이 몇 있어 대체 얘들이 무슨 그림을 그리나 몰래 떠들어보곤 하는데, 대부분 예쁜 옷을 입은 왕방울 눈의 공주님이거나 무슨 무슨 로보트 같은 캐릭터들이더군요. 그래서인지 서점에 가도 미취학 아동 대상의 그림책은 캐릭터의 모양을 밑그림을 따라 그려 완성하거나 이미 검은 선으로 외각라인이 그려진 캐릭터의 얼굴과 몸에 적당한 색을 칠하라는 일명 '색칠공부' 책이 많더군요.


여유가 있어 미술학원에라도 보내면 뭐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조물조물 그리고 만들어 보겠지만 이 역시 학부모에게 보여주기 위한 생색내기 작품일 공산이 큽니다. 얼마나 아이가 제 스스로 생각해 그리고 만들었을지는 사실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아동 미술교육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말이 '창의성'입니다.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를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것' 말이죠. 그러나 지금 서점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는 책들이 말하고 있는 건 '따라 그리기'가 대부분입니다. TV 광고까지 하는 미술 교재도, 들여다보니 사물과 대상을 어떻게 하면 '쉽고' '비슷하게' 그릴 수 있냐에 초점을 맞추었더군요.


저도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권유로 미술부에 들어갔지만, 미술부에서 배운 것은 미술학원 다니는 또래 여자애가 그리는 기와지붕과 나무 그리는 방법을 곁눈질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무 잎사귀 하나하나가 모여 커다란 나무가 만들어지니까 열심히 하나하나 작은 붓을 찍어 그리고 있는데, 그 여자아이는 둥근 형태의 덩어리를 큰 붓으로 그리고서는 나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단지 그 친구가 미술학원을 다닌다는 사실에 조금 주눅 들어있던 터라 따라 그렸지만 얼마 뒤 '정말 나무는 그렇게 그려야 하나?' 하는 의문이 따라왔습니다.


교육은, 특히나 창의성을 가르치는 미술교육은 방법과 규범이 사실 필요 없는 분야입니다. 도구야 자꾸 만지고 다루면 익숙해질 거고, 그리기도 자신이 보고 느낀 대로 표현하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니까 선생님과 책은, 그림 잘 그리는 방법이 있지도 않고 이런 저런 도구들도 꼭 이렇게 써야한다는 법도 없다는 걸 말해줘야 합니다. 아이에게도 방바닥에 누워 뒹굴거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미술교육에는 정말 충분한 여유와 여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내 멋대로 스케치북>를 만났을 때 들었던 느낌은 그런 여유와 여백이었습니다. 비록 두꺼운 수채화 종이에 컬러 인쇄된 그림책은 아니지만 책을 펼쳐드는 순간 짧은 말과 단순한 선들 사이의 여백에서 꿈틀꿈틀 피어나는 '그리고 싶다'는 흥미가 느껴지더군요. 정교하지 않은 자유로운 일러스트레이션들이 '와!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라고 말을 걸더군요. 더군다나 단순히 어떤 형태의 데생(묘사)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생활하며 부딪치고 느끼는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적인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거짓말 조금 보태 글씨를 뺀 여백이 온통 낙서투성이였습니다. 이상하게도 전체가 하얀 도화지보다도 교과서의 글과 삽화들 사이의 여백에 뭔가를 낙서하고 채워 넣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었습니다. 일면 아이의 심리 같은 건데, 백지가 아닌 덜 채워진 여백의 공간에, 너무 깨끗한 곳 보다는 적당히 어질러져있는 공간에서 자유로운 상상력이 발동하나 봅니다.


<내 맘대로 스케치북>은 물론 부모가 함께 책을 보며 대화하며 빈 공간을 채워 넣어도 좋겠지만 (저 같은 아이에겐) 혼자 놀기에 딱인 책인 셈이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낙서하는 스릴이야 없겠지만 누군가 흘리고 간 글 귀퉁이와 그림 조각의 틈에서 충분히 혼자 키득거리며 놀 수 있는 여유와 여백이 이 책 안에는 충분히 있으니까요. - 이관용(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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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케치북> 알라딘 서점이 추천하는 8월의 좋은 어린이 책
    from 시금치 2012-08-02 10:45 
    알라딘이 매월 선정해 진행하는 서평 이벤트 <전문가가 추천했어요 - 좋은 어린이 책> 코너에서 8월 좋은 어린이책으로 <창의력이 쑥쑥 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