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 편집자 백승온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월의 좋은 어린이 책, <책 좀 빌려 줘유> 의 추천글입니다.


그 시절, 민재가 그립다

책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앞서 이제는 좋은 책을 얼마나 어떻게 '고르는'지가 더 우선인 듯하다. 아이들도 넘쳐 나는 책 속에서 허우적대기는 마찬가지다. 부모나 교사는 발빠르게 아이에게 가장 좋은 책을 고르느라 열심이다. 그런데 정작, 요즘 아이들은 무슨 심정으로 책을 읽을까. 세상에서 가장 바쁜 시절을 보내는 초딩(?)들이 궁금했다. 밤 늦게까지 학원에서 영어 수학 학원을 오가는 잠 모자란 초3 조카에게 "이모 만든  책이다!" 자랑하며 새 책을 건네기가 망설여 질 때가 있다. 야근하다 들어온 이모보다 귀가 시간이 더 늦을 만큼 바쁜 초딩이다 보니 말이다. 


조카를 보면, 무작정 책을 쥐어 주기 보다 어떤 주제로 도움이 되는지, 어떤 인증을 거쳤는지 따져 본 책을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현실에서 어린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주제를 담아 '골라 주는 책'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숙제로 되돌아오는 게 당연하다. 아이들 스스로 찾아 읽을 여유가 없으니, 그게 맞다. 맞긴 맞는데, 솔직히 야속할 때가 더 많다.


나 같은 책쟁이들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자식 낳는 기분으로 세상에 책을 내 놓는다. 그토록 금이야 옥이야 키운 내 자식이 세상에 설 자리가  없을 때 부모 심정이 이런 걸까. 내가 만든 책이 수많은 책 속에 묻혀 햇볕도 못 받고 찬서리만 맞을 땐 참으로 가슴이 시리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니까...


현실에서 사랑 받지 못하다고 느낄 때 지난 옛 추억이 그립듯, 한 권으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여유 충만한 이 아이가 그립다. 닳고 닳은 낡아빠진 책 한 권을 붙들고 물고 빠는 주인공 민재 말이다. <책 좀 빌려 줘유>주인공 민재는 고작 동화책 한 권이 없어 어찌나 속을 끓이는지 모른다. 읽는 내내 나도 얼마나 속이 타던지 한보따리 챙겨 민재 고향 예산으로 당장 내려갈 심정이었다.


민재는 태어나 처음으로 동화책<걸리버 여행기>를 읽는다. 여름 방학 내내 읽고 또 읽더니 동네를 돌며 걸리버가 되어 온갖 상상 놀이를 즐긴다. 소도 되고, 닭도 되고, 개구리도 되어 그야말로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 준다. 나도 민재의 상상 세계에 푹 빠져 읽는 내내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외로운 내 신세를 위로 받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 민재는 내가 맹근 책도 푹 빠져 볼 것이여.'


책 속에서 허우적대며 즐겁게 같이 뛰놀 민재 같은 친구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아이한테 책 한 권에 푹 빠져 지낼 수 있는 여유를 찾아 주고 싶다. 그러면 나 같은 책쟁이들이 외롭지 않는 살맛나는 세상이 올 텐데 말이다. 밤낮으로 푹푹 찌는 이 여름날에도 책쟁이들에겐 외롭고 시린 겨울이다. 나도 꼭 한번 이렇게 넋두리 하고 싶었다. "아, 사랑받고 싶다!" - 백승온(어린이 책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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