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 작가 허은미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7월의 좋은 어린이 책, <아빠하고 나하고>의 추천글입니다.


아주 오래 전 큰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의 이야기다. 그때 나는 성남에서 살면서 서울에 있는 출판사로 출퇴근을 했다. 날마다 하는 출퇴근길은 전쟁이었고, 하루하루의 삶은 고단하기 짝이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는 왜 그렇게 까탈스럽고,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지. 그날도 그랬다. 내가 보기에는 멀쩡한데, 아이는 방금 산 물건을 바꾸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마음은 바쁘고 할 일은 태산 같았지만, 아이의 손을 잡고 발길을 돌렸다. 문방구 앞에 이르렀을 때, 어디선가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랬지?"


화들짝 놀랐다. 세상에,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내 대사를 그대로 읊는 사람이 있다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더욱 놀랐던 건 그 앞을 지나던 할머니의 일갈.


"그럼 애가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얼마나 대단한 것에 목숨을 걸겠노, 쯧쯧."


그때 알았다. 아이들이야말로 사소한 것에 울고 웃으며 목숨을 거는 생명체라는 것을. 나도 그랬고, 내 아이도 그렇고, 다른 아이도 그렇다는 것을.


강무홍은 참 이상한 작가다. 다들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 못해 안달복달 전전긍긍일 때, 그는 이상하게도 아이들의 소소한 일상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오해와 갈등, 그 서운함과 답답함에 천착한다. 모두들 우당당쿵탕, 야단법석 시끌벅적한 이야기에 목숨을 걸 때도 그는 아이들의 사소한 표정과 몸짓에 눈을 맞추고, 그 너머의 좌절과 열망을 이야기한다.


<아빠하고 나하고>에는 모두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재판'에는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다 삼천 원을 모아야 하는 아이의 갈등이 등장하고, '사과가 봉봉봉'에는 함께 놀아주지도 않으면서 바쁘기만 한 아빠 때문에 골이 난 아이가 나오고, '자랑스러운 거야'에는 얼떨결에 친구를 고자질하고 괴로워하는 아이가 등장한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에는 그런 아이를 묵묵히 바라보며 응원하는 아빠가 등장한다.


그런데 아빠가 건네는 응원과 격려가 수상하다. 밭고랑을 따라 쿨렁쿨렁 떠내려 오는 사과 한 알, 베개 밑에 숨겨 둔 밤톨 하나, 그리고 '자랑스럽다'는 말 한 마디가 고작이다. 그런데도 아이는 아빠 덕분에 방긋 웃고 당장의 고민을 털어낸다. 세상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는다. 어쩌면 아이들이 바라는 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진심이 담긴 말 한 마디, 따뜻한 관심과 손길, 작지만 소중한 그 무엇.


작가는 어느 글에선가 좋은 작가 이전에 '어린이의 진정한 아군'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래서일까. 그의 글은 참 따뜻하다. 읽다 보면 배시시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이 책의 그림 또한 글만큼이나 따뜻한데, 두세 가지 색만으로 이렇게 풍부한 느낌을 살려내다니 감탄스럽다. 글과 그림, 편집과 디자인이 잘 어우러져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마음을 꽉 채운다. 오랜 만에 마음에 꼭 드는 책을 한 권 만났다. - 허은미(어린이 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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