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동화집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의 바탕에는 어렸을 때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에 늘 불안했던 작가 자신의 모습이 있다. 자신과 닮은 등장인물들, 서로 다른 아이들 그 누구의 편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쉽사리 가치판단을 두지도 않는다. 최나미 작가는 어린 아이들의 세계,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껴안아 보호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 다른 사람과 섞이고 아프더라도 경험해야 할 것을 경험하며 건강하게 자라난다는 사실을 냉정하리만치 사실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보여준다. (기획 : 한겨레아이들 / 인터뷰 : 알라딘 이승혜) 

 


또 한 권의 책을 독자분들께 선보이는 소감이 어떠세요.


늘 걱정이 되는 게, 이 이야기들이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까 하는 거예요. 벌써 열 번째로 내는 책임에도 불구하고요. 어쩌면 이 글들을 보는 사람들이,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독자가 예전보다 많아졌을까, 적어졌을까 이런 생각까지 더 들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단편집, 그동안 모아 두었던 작품들이기 때문에 컨셉 잡는 것도 재밌게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항상 또 책이라는 거는 요때까지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출간하기 직전까지. 그 다음부터는 굉장히 불안하고 초조해지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쓰신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이란 작품은 얼마 전에 개정판이 나왔는데요. 서문 중에서 '책은 시간을 담는 그릇'이란 말씀을 하셨더라구요. 이번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 또한 그릇으로 비유해주신다면.


어떤 때는 원고가, 이야기가 찾아올 때가 있어요. 근데 그런 게 작가의 눈이란 게 굉장히 특별한 건 아닌 것 같은데 특별하게 그걸 찾아봐야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가끔가다 어느 순간 딱 맞아떨어지는 상황들이 있는데, 그건 독자분들이 좋아할 지는 모르겠는 거예요. 그렇지만 안 쓰면 안 될 만한 이야기들이 있을 때가 있는데, 그 지점 지점들이 이번 책에는 담겼던 것 같아요. 울컥했다든가 화가났었다든가 즐거워서 이 얘길 한번 해야겠다든가 이런 것들이 다 있는 거고요. 제일 처음에 썼던 작품은 다시 고쳐서 쓰기는 했지만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이야기죠. 그런 작품을 이제 와서 다시 읽어보니까, 내 생각이 예전보다 얼마만큼 더 나갔고, 안 나갔고 하는 것들이 확연하게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좀 부끄러운 부분들도 있었고요.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너무나도 풋풋해서 남한테 보여주기가 민망하다... 그런 작품들도 있었어요.


표제작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의 결말을 보고 놀랐거든요. 반성과 이해가 없는 결말. 이야기 자체가 사실 송현이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편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규미한테도 마찬가지고요. 갈등 관계에 있는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의 편에 분명하게 손을 들어주는 이야기를 자주 접해와서 그런지, 결말에 가치 판단을 두지 않은 이유를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걱정쟁이 열세살> 같은 작품은 제가 저랑 가장 비슷하고, 닮았다고 생각을 하는 작품이거든요. 근데 아마 이번 작품집에서도 다섯 편 중에 가장 닮았던 작품은 '천사를 미워해도 될까요'일 것 같아요. 그동안 살아오면서 저도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나쁘게 하려고 하지 않았고요.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로 저한테 잘하는 친구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상황을 보면 늘 민폐는 이 친구가 저에게 끼치고 있고, 죄책감은 제가 가지고 있고, 그런 상황들이 주변에 많았는데요. 어렸을 때는 이미 그게 착하다, 나쁘다로 늘 구분되어 있는 거죠. 그런데 저는 아무리 뭔가 잘하려고 해도 쟤보다 늘 안 착한 애고, 들 착한 애인 거예요. 왜 그때는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그런 마음을 가져도 될지 안 될지에 대한 걸 늘 고민했어요. 내가 안 착해서 벌을 받는 거구나, 안 착해서 이런 일이 오는 거구나라는 걸 굉장히 많이 생각을 하면서 컸던 것 같아요. 오히려 그게 아이이기 때문에,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훨씬 더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와 닿는 걸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세상에서 아이들을 착하고 안 착하고로 구분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냥 그걸 그 아이대로 그냥 봐주는 것, 이건 규미기 때문에, 이건 송현이기 때문에 인정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죠. 


너무 착해서 도리어 민폐를 끼치는 송현이 같은 친구 말고, 또 어렸을 때 싫어했던 얄미웠던 친구들의 성격은 어떤 것이었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되게 어중간한 성격인 것 같은데 제 스스로 생각할 때, 특히 저보다 더 세고 강한 성격의 사람들을 만나면 뭔가 나는 항상 그 사람들에게 맞춰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럼 그때 저는 이제 나중에 쟤네들은 후회하겠지, 나중에 반성하겠지, 뉘우치겠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세상이라는 건 그런 게 또 아니잖아요. 어떤 친구가 어느 순간 나한테 굉장히 나쁘게 한 게 있는데, 또 뒤돌아보면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반대로 그애한테 잘못을 한, 이런 관계들이 같이 어울려 있어서, 세상 자체는 관계라는 것은 굉장히 입체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단편집에 나오는 인물 중에 제일 끌렸던 인물이 '리모컨'의 선화였거든요. 제가 되돌아봐도 어린 시절 주변에 비슷한 성격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던 것 같고, 사실은 슬기도 선화를 좋아하는 건데 표현이 서투른 거잖아요. 선화도 마찬가지로 호감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러서 그런 거구요.


관계 상에서 일단 권력이 형성된 건데, 저는 그 권력이 일단 나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뭐냐면 제가 가끔 동화를 쓸 때 처음에는 학교 같은 데 가서 아이들끼리 노는 걸 잘 구경하고 그래요. 근데 그러면 옆에 같이 있으면 애들이 한 다섯여섯명만 모여도 곧바로 서열이 생기는 거예요. 말투만 들어도 이들의 서열 관계라는 것을 알겠고, 거기서 뭔가 비약이 돼서 왕따 문제까지 나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이들 성격 자체만 가지고 나눌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거든요. 근데 그러면서 거기에서 약간 과신하게 되는 관계가 '얘는 내 밑에 있고...' 라던가 이런 것들이 완전히 자리를 잡아 버리면, 슬기와 선화 같은 상황이 되는 거고, 알고 보니 상황 자체는 이렇게 될 수도 있다라는 것이죠.


슬기가 자기의 못된 성격, 치부 같은 것을 드러내게 된 원인이 선화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대목이 있거든요. 말씀하셨듯이 아이들 다섯명만 모이면 서열 관계가 형성된다고 하셨던 것처럼, 저도 어렸을 때 생각이 나서 뜨끔하기도 하고요. 어떻게 그런 아이들의 내면을 보시는지 궁금해요. 동화의 인물들이 너무나 실제 아이들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에 수록된 다섯 편 중에 한 세 편 정도는 어렸을 적 늘 불안했던 제가 바탕에 있어요. 관계에서 뭔가 잘 풀어내지 못하고 정말 잘하려고 하는데 뭔가 자꾸 어긋나는 게... 엄마 아빠가 주는 스트레스보다 친구들하고의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가 훨씬 더 컸어요.

 

제가 잠깐 아이들을 가르쳤던 적이 있었거든요. '리모콘'의 선화를 아마 조금 생생하게 느끼셨다고 하면, 그 아이의 실제 모델이 있었거든요. 그 친구를 제가 되게 좋아했었어요. 좋아하면서 그 친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황들 관계들을 바로 잡아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그건 어른의 고집이었던 거예요. 사실은 절대 관여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런 문제는 그 아이들 사이에서 해결하는 방식이 있는 거고, 그 방식에 되게 충격을 받기도 했고요. 실제 방식이 제가 쓴 동화랑 꼭 같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요. 아, 이게 어른이 얘기하는 게 다 맞다고 볼 수는 없는 거구나, 애들끼리 해결하는 과정이 있는 거고, 이들이 겪어야 하는 부분이 있구나 하는 것을 그때 알게 됐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방법을 잘 몰라서, 관계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때가 종종 있잖아요. 관계를 마음 먹은대로 이끌어나가기는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인데, 아이들에게는 오죽할까 싶기도 하고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요, 저는 아이들이 다들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요즘에 대안학교도 많고 굉장히 특별하게 키워지는 아이들이 많은데요. 저희 때는 그런 것 없이 굉장히 평범한, 심지어 과외도 없었던 그런 시기를 보냈는데, 어찌 되었건 각자가 통과하는 그 시기가 힘들 때도 있고, 나중에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문제들이 있는 것이고. 지나보면 그 시간들이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되고요.


제가 아이들한테도 잘 하는 말이 '아이들은 세상이 키운다'는 말이에요. 서로 다른 아이들이지만 학교에서 만큼은 그곳에서 같이 있는 동안 만큼은 여러 과정을 다 겪으면서 경험을 하는 게 건강한 게 아닐까 생각을 하거든요. 강연 갔은 데 가서 어린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너희들은 훌륭한 어른이 될 것이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자체로 소중하다고 꼭 말해요. 이 시간을 정말로 건강하게 잘 넘겼으면 좋겠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많거든요. 저는 그런 상황들을 만들어내는 어른들이나 불가항력에 지지 말아라, 이런 세상에 지지 말고 가야 한다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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