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몽을 꾸는 중이었다. 꿈 속의 syo는 요게 꿈이란 걸 알고 있었으므로 꿈을 쥐락펴락하며, 어차피 꿈인데 뭐 어때, 평소 한 번쯤 어떨까 생각해봤던 온갖 짓거리를 다 해 보았다. 어차피 꿈인데 한남대교에서 투신도 해 보고(미친 놈아), 어차피 꿈인데 사람도 막 쥐어 패 보고(으아, 미친 놈아!!!), 어차피 꿈인데 세상 사악한 표정으로 책을 한 장 한 장 뜯어 불살라도 보고(으아으아 왜 그랬어 미친 놈아아아!!!!!!!!!!!!), 뭐 이런 짓 저런 짓 다 해 봐도 역시 그건 꿈이었다. syo는 죽지도 않았고, syo한테 얻어터진 정치인은 암만 패도 한결같이 개소리에 개소리를 얹었으며, syo가 태운 책들도 여전히 책장에 기세등등 꽂혀 있었다. 자각몽을 꾸는 것은 신나면서도 허망한 일이군. syo가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지금 아등바등 살고 있는 이 세상도 꿈은 아닐까? 오늘 한 번 확 진짜 한강에서 확 그냥 막 그냥 응? 그러나 그럴 용기는 없었다. 아니면 어쩔 거야. 인생 한 갠데. 꿈 같은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 똑바로 살아나가자, 이 험한 세상에. 아자아자 화이팅.


하고 힘차게 다짐했는데 눈 떠보니 그것도 꿈임.


자각몽은 몇 번 꿔 봤지만, 자각몽을 꾸는 꿈은, 심지어 '자각몽을 꾸는 꿈인데 그 자체는 꿈이라고 자각을 못하는 꿈' 같은 희한발광한 꿈은 또 처음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싸다구라도 한 대 먹여(먹어) 볼까 했지만 진짜 안 아플까봐 겁나서 못 하고, 대신 이렇게 일기를 남긴다. 하루의 시작부터 아주 야무지게 농락당한 느낌입니다.




 "사비에르는 내 동생입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노인은 잔인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검지를 쳐들었다. "사비에르는 존재하자 않소. 그저 환상일 뿐이오." 그가 방 전체를 껴안는 몸짓을 했다. "우리는 모두 죽었소. 아직도 그걸 몰랐단 말이오? 나도 죽었고, 이 도시도 죽었소. 전투, 땀, 피, 영광, 나의 권력, 이 모든 건 죽었소. 아무짝에도 소용없게 되어버렸소."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어떤 것은 영원히 남아 있어요."
 "뭐가 말이오?" 그가 따졌다. "그의 추억이? 당신네들 기억이? 아니면 이 책들이?"

 노인이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온몸이 오싹했다. 노인 무얼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발치에 있던 조그만 주머니 같은 것을 장화로 걷어찼다. 보니까 그건 죽은 쥐었다. 그걸 바닥에 굴리더니 조롱하는 투로 중얼거렸다. "아니면 이 쥐가 영원하다는 건가?" 노인이 다시 웃었다. 그 웃음에 내 몸의 피가 얼어붙었다. "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다!" 노인이 부르짖었다. 그러자 목소리가 부드러워졌고, 나를 교수라고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신을 깨웠다면 용서해주시오."
_ 안토니오 타부키, 『인도 야상곡』




오른손


어제는 아침에 일어났더니 오른손이 왼손을 막 꼬집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만 오른손을 써 보기로 했다. 밥이 자꾸 볼을 때렸다. 국물이 돌아오지 않는 번지점프를 시도했다. 밥 한 끼 먹고 났더니 거지꼴이 되었다. 위대한 오른손. 그럼에도 오른손을 포기하지 않았다. 뭔가 더 재밌고 웃긴 일이 벌어질 거라고 기대하며. 그러나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역시 날로 먹으려 한 것이 패착이다. 시트콤의 길은 지난하다. 




이진경, 『철학과 굴뚝청소부』 이제 칸트의 멱살을 노린다.

발터 벤야민,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 베를린 연대기』는 당최 무슨 말을 하고 있나....

프랜시스 윈, 『마르크스 평전』우리 마르크스가 대학생이 되었어요.

존 치버, 『존 치버의 일기』치버가 본격적으로 남자를 만나고 다녀요.

박민영, 『그러니까 이게, 사회라고요?』를 마침.

이진우 외, 『대통령의 책읽기』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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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5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5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이 2018-02-05 1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자아자화이팅.

cyrus 2018-02-05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 <기생수>에 나오는 ‘오른손이‘처럼 syo님 오른손이 책을 읽을 수 있겠는데요. ^^

syo 2018-02-05 15:59   좋아요 0 | URL
제 오른손은 그만한 성능이 안 나옵니다.
보세요. 밥도 제대로 못 떠먹는 놈이 이놈이라구요.....

프리즘메이커 2018-02-05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른손잡이 좌파를 진지하게 필명으로 고민했었습니다...ㅎㅎ

syo 2018-02-05 16:01   좋아요 1 | URL
드디어 프메님과 저의 차이점이 하나 나왔군요. 손잡이가 다르네요.
그나저나 프메님 프로필 이미지하고, 위에 있는 사이러스님 프로필 이미지가 좀 많이 비슷해 보입니다.
프메님이 좀 더 잘생겼다는 게 결정적 차이네요.

마그리트 의문의 1패.

프리즘메이커 2018-02-05 18:00   좋아요 0 | URL
밍ㅠ 부끄럽구요 ㅎㅎ

유부만두 2018-02-06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 가 연상됐다고 쓰려니 넘나 가식적인 댓글 같네요;;;; 진짠데요...^^

syo 2018-02-06 11:57   좋아요 0 | URL
저는 프루스트를 안 읽어봤지만 어쩐지 들어서는 안 되는 거대한 말을 들어버린 느낌이네요ㅎㅎㅎㅎㅎㅎ

유부만두님 반갑습니당^^

chaeg 2018-02-10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을 쥐락펴락 하고 싶네요. 흐흐흐

syo 2018-02-10 14:43   좋아요 0 | URL
흐흐흐^ㅠ^
 


헤어지는 장면들


1


그는 서울에서 컴퓨터를 공부하고, 그녀는 경남의 유서 깊은 도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법을 배운다. 주고받는 이야기만으로 그는 그녀에게 빠졌다. 그는 시를 썼고, 책을 읽고, 그녀와 달리 사랑이 처음이었다. 그가 아는 누군가를 그녀는 좋아했었고, 버림받았다. 가을과 겨울을 옆에서 보듬다가 기어이 그는 그녀를 좋아하고 말았다. 세상이 갑자기 환하고 선명해졌다. 처음 겪는 감정이라서 오히려 확신했던 그와는 달리 그녀는 망설이는 중이다. 그 망설임이 그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큰 빛이 내리면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법이다. 봄이 왔다. 무엇 하나 못박지 못하고 그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마음은 들뜨고 그저 이야기만 분주히 오간다. 그는 만지고 싶다. 상상만으로도 몸이 가득 차올라 터져버릴 것 같다. 낮으로 밤으로 봉오리가 부풀어 오르고, 무심히 벚꽃은 떨어진다. 보고 싶다는 말을 문자로 찍어보내고, 미처 다 보내지 못한 백만 개의 말들을 반지하 하숙방에 차곡차곡 쌓아올린다. 말들이 밀집하여 굳으면 그리움이 된다. 그리움이 겹겹이 쌓이면 그것만으로도 어엿한 사랑이 된다. 그의 사랑은 혼자서 깊다. 그녀는 내 생각을 할까. 그는 항상 생각한다. 서서 생각하고 앉아서 생각한다. 그런 생각들이 높은 곳에 가 닿는 때가 가끔 있다. 그녀가 서울에 온다. 그녀의 학교가 여의도로 학생들을 보내 시위할 예정이다. 아직 벚꽃이 다 지지 않았다. 운이 좋다면 잠깐, 아주 잠깐 그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손이라도 쥐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몇 개의 밤이 더디게 지나간다. 무리 가운데서 그녀를 한 번에 찾아낼 수 있을거라 확신했지만, 그가 여의도에 도착하고도 꽤 긴 시간을 그들은 엇갈렸다. 그와 그녀는 무수한 사람 가운데 하나와 하나일 뿐이었다. 벚꽃이 한 장씩 홀로 떨어지는 것처럼. 그는 하얀 봄 속을 헤맨다. 마침내 마주섰을 때, 이미 그들에게 남겨진 시간이라곤 채 10분도 되지 않았다. 왈칵 눈물이 난다. 안녕, 안녕. 그 말만 주고받은 채 두 손 맞잡고 그대로 5분이었다. 밤 되면 쌀쌀해. 응. 너무 소리 지르지 마. 응. 빨리 찾아내지 못해서 미안. 아니야. 작은 비닐 봉지나 은박지 같은 것들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고, 그 위로 가끔 벚꽃이 내려 앉았다. 그러면 10분이었다. 안녕, 안녕. 손도 놓지 못한 채 입으로만, 안녕, 안녕. 다시 무리 속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본다. 자꾸 고개를 돌리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팔을 크게 흔든다. 봄이 진하고 진해서, 그 동작은 마치 깊은 늪 속에서 팔을 젓는 것처럼 힘겹다.




2


그녀가 그에게 입술을 가르쳤다. 가슴을 가르치고 엉덩이를 가르쳤다. 그 모든 것이 가고 나도 한참을 안아줘야 한다고 가르쳤다. 속삭임을 가르쳤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배웠다. 한참을 이불을 덮은 채 돌아 누웠다가 부스스 그녀가 몸을 일으키면, 그들은 손을 잡고 거리로 나간다. 때론 아직 밝고, 때론 벌써 어둡다. 편의점에 들러 콜라 한 캔을 산다. 콜라가 두 입술을 오간다. 5분 전까지 서로를 직접 더듬던 입술이다. 거리를 채운 젊은이들은 흥청망청 흔들거리고 있고 그와 그녀도 젊은이다. 손을 맞잡은 두 젊은이가 뚜벅뚜벅 걷는다. 때론 봄이고, 때론 여름이다. 그녀의 집은 서울 밖이다. 지하철을 타고 큰 박물관이 보이는 데서 내린 다음,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잡아타야 가는 곳이다. 자리가 나도 그들은 앉지 않는다. 문가에 서서 재잘대다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잠깐 입을 맞추기도 한다. 흥청망청 흔들거리고 있다. 젊음은 누구에게나 오고, 그래서 젊음을 통과한 그 누구도 그들을 손가락질하지 못하리라, 그는 그렇게 생각한다. 멀리 박물관이 보이고, 그의 집을 나오면서 잡은 두 손을 그들은 아직 한번도 놓지 않았다. 버스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맞아. 그러면 입을 맞춘다. 그럼 그냥 다시 돌아갈까? 그럴까? 그러면 다시 입을 맞춘다. 서서히 어둡고 여름이다. 늦게까지 매미는 울고 밤은 부옇게 망설이고 있다. 아직 버스는 오지 않는다. 우리 나중에 저기 살자.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이제 막 뼈대를 갖춘 키 높은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우리 돈 많이 벌어야겠다. 정말 그래야겠다. 그러면 다시 입을 맞춘다. 이번에는 좀 길다. 버스가 도착하고, 머뭇머뭇 올라탄 그녀가 창가 자리에 앉아 손을 흔든다. 전화 해. 전화 할게. 버스 후미등이 저녁을 둘로 가른다. 꽁무니가 보이지 않을만큼 멀리 버스가 사라지면, 그제야 그 자리에 밤이 내린다.



3


그의 생일을 맞아, 그녀는 약간 무리해서 서울에 올라온다. 선물을 고르고, 케이크를 사고, 편지를 쓴다. 무얼 가장 좋아할까?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당연히 선물과 케이크와 편지를 들고 온 그녀다. 많이 걷지 않고, 이르게 숙소로 들어간다. 아직 오지 않은 밤을 벌써 끌어다 붙인다. 그들은 평화롭게 서로를 더듬고, 온몸을 뒤적거리며 그간의 안부를 확인한다. 모든 것이 나아지고 있어. 아직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해 미안해. 하지만 다 괜찮아질 거야. 같이 가니까 다 괜찮아질 거야. 서로가 가장 원하는 말이 무엇인지, 지금 가장 필요한 말이 무엇인지 저절로 알게 되기까지, 그들은 오래 만났고, 그래서 더 오래 만날 것이었다. 말은 아무것도 확실하게 해 주지 못한다는 세상의 파상공세 속에서도 말만으로, 그저 말만 가지고도 그 긴 시간을 빚어온 그들이었다. 오롯이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긴 믿음에 올라타 여기에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문서가 불필요한 사랑이었다. 큰 침대 위에 손 잡고 누운 한 쌍의 확신범이었다. 아침이 오면 그녀는 다시 대구로 내려간다. 어떻게 하면 아침을 죽여버릴 수 있을까, 그는 턱없는 고민 중이고, 그녀는 새근새근 잠을 잔다. 바람이나 욕심만으로 아침은 결국 살해되지 않았고 서울역은 만남과 이별로 왁자지껄하다. 두 사람은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나눠 먹고, 프레즐과 커피를 손에 들고 발차시간을 기다린다. 창가 자리야. 계속 손을 흔들 수 있겠군. 어쩐지 슬플 것 같지 않아? 뭐가 슬퍼.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니고. 그는 코웃음을 친다. 그러나 막상 그녀가 자리에 앉고, 플랫폼에 서서 차창 너머의 그녀를 보는 순간 그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그녀는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러나 그는 손을 흔들지 못한다. 곧 그녀도 손을 내린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반투명한 유리 한 장이 세상의 모든 장벽을 겹쳐놓은 것처럼 비통하다. 시선은 부질없다. 만져야 한다. 그는 전차 안으로 달려들어가 거칠게 입맞추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눈물이 무거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도 이미 그녀의 눈물에 한없이 짓눌려 있다. 그들은 행복했다. 그러나 큰 슬픔은 언제나 행복의 한 가운데 있다. 그들은 기뻤으므로, 언제라도 울 준비가 되어 있는 두 마리 짐승이 되어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서로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오래 쳐다보고 있다.



            

마침내 시간이 몇 분밖에 남지 않았을 때 내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고, 아샤는 내가 울고 있는 걸 보았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말했다. "울지마. 안 그러면 나도 같이 울게 되니까. 나는 한번 울기 시작하면 너처럼 그렇게 빨리 그치지 못해." 우리는 힘껏 껴안았다. ...... 썰매에 올라타고 여기서 작별 인사를 하려다가 그녀에게 트베르스카야 거리 모퉁이까지 함께 타고 가자고 했다. 거기에서 그녀가 내렸고 이미 썰매가 출발하기 시작했을 때, 다시 한 번 대로변에 있던 그녀의 손을 내 입술에 대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서 있었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 역시 썰매에서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기가 무섭게 곧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무릎 위에 큰 가방을 올려놓은 채 울면서 어두워져 가는 거리를 지나 역으로 향했다.

_ 발터 벤야민, 『모스크바 일기』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마침.

제임스 설터, 『가벼운 나날』에 수없는 밑줄을 그음.

존 치버, 『존 치버의 일기』를 꿋꿋이 읽어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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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2-02 1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좋다. 좋으네. 좋다요...
쇼님 오늘 감성 포텐 터졌네요. 팡팡 팡팡팡팡팡!!

syo 2018-02-02 15:20   좋아요 0 | URL
벤야민-설터-치버-좁아터진 고시원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무슨 사람 울적하게 하는 버거-프렌치프라이-콜라-케찹 세트 같은 존재들이군요.

syo는 그저 한 장 냅킨일 뿐이구요. ㅎ

단발머리 2018-02-02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좁은 고시원에서도 이런 매력을 한껏 터뜨리는 syo님은 진정 누구인가요~~
누구신가요, syo님은~~~~^^

syo 2018-02-02 16:34   좋아요 0 | URL
고시생이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추억이나 들추며 소주대신 제로콜라 나발부는 망나니 고시생이요.....

단발머리 2018-02-02 16:39   좋아요 0 | URL
건전하다
이 고시생~~
소주 대신
제로 콜라~~

syo 2018-02-02 16:40   좋아요 0 | URL
못 마셔서 그런거지 마음만은 만취대취입니다! ㅎ

psyche 2018-02-03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너무 좋은데요!

syo 2018-02-03 08:34   좋아요 0 | URL
아 이런 너무 감사한데요!^ㅂ^~~ㅎㅎ

2018-02-12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12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가 사는 고시원 이 작은 방의 하나뿐인 창문은 욕실에 나 있다. 고시원을 전전하던 시절 syo가 들어가 살았던 방은 다들 침대 머리쪽에 창이 나서 밤에 누워 창문을 열면 좁게나마 밤하늘이 열렸었는데. 처음 이 방 문을 열어보았을 때, 창이 욕실을 통해 나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지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늘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땅만 내려다보며 허방 짚지 않고 한 발 한 발 디딜 자리를 찾기에도 바빴으므로. 어차피 하늘은 아무데도 가지 않고 거기 있을 거니까. 기다려줄 거니까. 나중에 늘어지게 한 번 올려다보면 되지 뭐. 하지만 한 달을 다 보내도 좀처럼 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없는 방안에서의 삶을 살며 이제는 생각한다. 혹시 내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이제는 걱정한다. 잠깐 멈춰 하늘을 보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을, 어쩌면 하늘이 기다려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고.


딱 한 뼘밖에 열리지 않고, 창틀의 꼭대기가 눈높이보다 낮은 곳에 있는 이 작은 창문은 보기 위해 있다기보다는 그저 있기 위해 있는 것 같다. 고시원에, 그리고 거기에 사는 어떤 인생에게 참 잘 맞는 창문이라고, 세수를 하며, 이를 닦으며,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그저 있기 위해 있는 삶. 어떤 구실도 하지 못하기에 어떤 구실도 갖다 붙이지 못한 사람. 설명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형용사가 겨우 '있다' 뿐인 사람. '있다'에서 다른 무엇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있었다'로 건너가는 옅은 사람. 저 창은 그런 사람을 위한 창이야. 저 좁은 하늘은 그런 사람에게 주어진만큼의 하늘이야. 하늘 보는 법을 잊은 사람들에게서 달아나느라 조금씩 작아지는 하늘의 먼 뒷모습이야.


좀처럼 만나보기 어려운 달이 뜬다는 소식을 듣고, 치약을 짜면서 창 밖을 훑다가 그 달과 눈이 마주쳤다. 내게 주어진 이 작은 하늘 안에 참 낯선 달이 떴다는 사실. 그건 아마도 몇 겹의 우연과 행운이 엉켜 이루어진 만남일 것이다. 창이 난 방향과 달이 뜬 방향이 만났다. 하늘이 그 만남에 구름을 보태지 않았다. 그 모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누군가 골방 안의 syo에게 알려왔다. 혼자 있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은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다. 창이 낮고 달은 높아서, syo는 칫솔을 문 채로 욕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한껏 쳐들고 하늘을 오래 올려다보았다. 좁은 구멍을 통해 달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낱낱이 훔쳐보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달과 달의 주변을 끈기있게 매만졌다. 달의 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 그만 만져. 양치나 해. 


두 시간 가까이 양치질하며, 잊어버린 하늘 보는 법을 차근차근 다시 배우고 있었다.  




어두운 시간이 찾아오면 당신을 구원하는 데 재산은 쓸모가 없다. 오랫동안 다녔던 스키장이나 시냇물에 이르는 오솔길도 마찬가지다. 그보다 더 위대한 무엇을 당신은 반드시 찾아내야만 한다.

_ 존 치버, 『존 치버의 일기』


성장한다는 것은 오직 보편성과 유사성, 존재의 유형에만 민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숲, 산, 평야..... 그리고 자기 집 주변의 모든 것은 똑같아진다. 어른에게 산책길은 똑같이 광할한 풍경 속에 포함된다. 어른은 그가 살아온 햇수의 높이에서 모든 것을 본다. 경험의 전망이 모든 것을 평평하게 하고 압축하고 무미건조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다 똑같다.

_ 프레데리크 그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살아왔던 길을 모두 폐지하고 널따랗게 새로 뚫린, 뚫렸다기보다 침범해 들어온 큰길을 향해 우리를 너나없이 달려가게 하는 이 욕망은 실상 비어 있는 욕망이지만, 그 비어 있음을 가리기 위해서는 또 다른 욕망이 필요했다. 욕망이 욕망을 몰고 온다. 달려가는 사람들 속에서 잠시 비켜섰을 때에야, 또는 더 이상 그 발걸음을 따라길 수 없을 때에야, 문득 사람들은 뿌리도 없이 유령들과 싸우고 있는 제 처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_ 황현산, 『우물에서 하늘 보기』


난 달을 사랑해서 울어요, 그 사람이 말했다. 어렸을 때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었을 때 단 한 번 봤어요, 하지만 이 궁전에 갇혀 있어 달에 닿을 수가 없어요, 밤중에 풀밭에 드러누워 달빛에 입을 맞추기만 해도 좋을 거예요, 하지만 이 궁전에 갇혀 있어요, 어릴 때부터 이 궁전에 갇혀 있어요. 그리고 다시 울기 시작했다.
_ 안토니오 타부키, 『꿈의 꿈』





윤성근,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 마침.

고병권, 『철학자와 하녀』마침.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반환점.

E.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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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2018-02-0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 창으로 넘치게 해가 들어오는 집으로
이사를

syo님도
나님도
가십시다.

6개월을 잘 보내야 하겠습니다. (묵념).

syo 2018-02-01 12:42   좋아요 0 | URL
그렇겠습니다......6개월 참 짧으면서 길면서....

페크pek0501 2018-02-0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치버의 일기』가 맘에 끌리네요. 그런데 9백 쪽이 넘다니...
끌리면서도 이 부담스러움!!! 때문에 고민에 들어갑니다.

달.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syo 2018-02-01 12:43   좋아요 0 | URL
저도 하루에 90페이지씩 10일에 돌파하자 해놓고 여직 100쪽 읽고 해메고 있습니다...... 좋다가 졸다가 막 그렇습니다.

cyrus 2018-02-0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에는 달이 잘 보였다고 하더군요. 반면에 남부 지역은 기상 여건이 좋지 않아서 달을 제대로 보기 힘들었어요. 저는 그럴 줄 알고 달 보러 밖에 나가지 않았어요. ㅎㅎㅎ

syo 2018-02-01 15:32   좋아요 0 | URL
잘 보여서 오래 봤습니다.
다음번에 만나려면 십 년 단위로 기다려야된다더군요.

비로그인 2018-02-0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있다’에서 다른 무엇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있었다’로 건너가는 옅은 사람.
이 구절이 마음 깊은 곳을 훅, 치네요. 밑줄 그어 봅니다...
그 앞과 뒤에 있는 문장들에도 조금씩.

syo 2018-02-02 07:59   좋아요 0 | URL
아니, syo의 문장에 밑줄씩이나요.....
슬프고 우울한 구절에 전혀 공감하지 않는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도 좋다면 좋겠지만, 그건 참 어려운 일이려나요.

아무튼, idahofish님 반갑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빨래를 하고, 옥상에 내려 앉은 눈 위를 삽작삽작 걸어보았다. 여전히 눈이 좋은 걸 보면 syo는 아직 애든가 개든가 그런가 봉가. 눈 내리는 신림 사거리의 밤은 적당히 분주하고 적당히 촉촉하여 내려다보기 참 좋았다. 오래 내려다보기에는 좀 추웠다. 네이버는 영하 1도라는데, 피부는 그 사실을 격렬하게 부인하고 있었다. 


영하 30도를 밑도는 겨울이 혹독한 곳에서 두 번의 겨울을 온전히 보내고 돌아왔을 때, 늘어있는 거라곤 허세 뿐이었다. 영하 10도? 러닝 바람으로 구보하기 좋은 날씨지. 영하 20도? 슬슬 내복을 준비해도 좋겠어. 지금 생각해도 열라 웃기지만, 실제로 수은주가 영하 35를 찍는 모습을 육안으로 목격한 사람이라면 저 정도 패기는 보여줘야 할 것 같았어. 안녕, 나는 syo. 추위를 모르는 남자지. 사실은 영하로 내려가는 순간 1도건 10도건 100도건 무조건 춥다. 그리고 나이는 먹으면 먹을수록 더 춥다. 이젠 피부가 추운 게 아니라 뼈 안이 추워. 추운 게 아니라 시려 막......


카톡을 보냈다. 자기야 서울에 눈 온다 펑펑 온다. 답이 왔다. 오래 나와 있지 말고 얼른 들어가 춥다. 실은 온몸을 달달 떠는 중이었지만 아닌 척 답했다. 흥, 나는 추위를 느끼지 않지. 그러나 실제로 찍힌 문장은 이랬다. "흐ㅜㅌ 나능 트뤼를늑기지 ㅇ랂지"


그래서, 안녕하세요. 트뤼를늑기지 ㅇ랂는 남자, syo올습니다.



2018 1월 : 22권



1. 집안의 노동자

: 탄탄한 자료를 가지고 단지 몇 개의 명제만 힘있게 증명하는 책. 그것들이 뭔지는 안 알려드리지롱요. 그렇게 털어 먹는 거 아니예요. 전반적으로 <캘리번과 마녀>로 가기 위한 준비운동 같은 느낌이다.


2.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
: 300쪽 되는 얇은(?) 책에 굵직굵직한 문학이론가들의 정수를 녹여넣어야 했으니 저자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만한 분량의 책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치를 달성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이 제공하는 참고도서 목록이 또 독서 리스트에 추가되면서 이제는 이 놈들을 다 읽으려면 인생이 적어도 7개쯤은 있어야 되지 않나 싶은 상황이다.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자주 한다, 그 봉착.

3. 일상적이지만 절대적인 양자역학 지식 50
: 이걸로 양자역학을 다시 시작해보려는 생각은 역시 욕심이었다. 쉽고 간결하긴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은 것 같다. 양자역학이 입고 있는 신비의 옷이 조금도 벗겨지지 않았다.

4. 담론의 질서
: 솔직히 푸코가 쓴 건 진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이정우 선생님의 해설과 푸코 사상 전반에 대한 세심한 설명이 하드캐리했다.



5. 미술사 아는 척하기
: 아는 척하기 책을 읽으면 얼른 아는 척하고 싶어지지만 꾹 참고 여러 권 읽고 나면 알고 싶어진다.

6.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
: 하나도 신비하게 살지 않았지만 알면 알수록 신비한 남자 벤야민. 아리까리한 그림자를 잡힐 듯 말 듯 던져주고는 휙 돌아앉는 콧대높은 남자 벤야민. 반드시 뭔가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하는 깊이 있는 남자 벤야민. 생전 아무도 가르치지 않았지만 그에게 배웠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이 강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그런 남자 벤야민.

7. 나의 첫 젠더 수업
: `첫 수업`은 이미 수료한 상태라는 걸 확인했다. 훗.

8. 공부 중독
: 아, 요즘 사는 게 전체적으로 왜 이렇게 재미가 없어졌나 했더니. 아무것도 될 수 없는 공부를 하면서도 마냥 즐거웠던 그때를 다시 한 번.



9. 당신의 직업이 사라진다
: 이것 저것 다양한 분야의 재미난 일화들을 섞어 꽤 괜찮은 읽을 거리를 만들었으나, 역시 딱히 이거다 할 만한 통찰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10. 일자리가 사라진 세계
: 조목조목 불안한 전망을 제시하는데,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부분은 "대안"이라고 이름 붙은 챕터 안에 대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학을 개편하여 일자리가 사라진 사람들을 재빨리 교육시켜 다른 일자리에 투입할 수 있도록 만들자고 주장하면서, 과연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을 그 "다른 일자리"가 뭔지를 제시하지 못한다. 뭔줄 알아야 준비를 하지. 주술호응이 맞지 않는 문장도 꽤 있다.

11.현남 오빠에게
: 눈 녹은 물이 얼어붙은 언덕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길을 다 녹이는 일이 내 맡은 바가 되지 못하더라도, 언덕의 허리께에, 가장 미끄러운 자리에 단단히 서서, 넘어진 이들에게 내밀 따뜻한 손이 되어 기다려야겠다고.

12. 시옷의 세계
: 김소연은 손보다 눈일까. 산문이 손에 꼽을만큼 걸출한 시인은 아니지만, 그 다정하고도 깊은 그의 눈길만큼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13. 영화로 읽는 정신분석
: 사실 내 깜냥에 뭘 믿고 안 믿고를 따지겠느냐만은, 김서영 선생님은 역시 정신분석 분야의 믿을필더. 

14. 수학으로 배우는 파동의 법칙
: 그냥 디립다 외우기만 했었던 푸리에 수식 일당들의 정체가 폭로되는 순간이었다. 분명히 학교 다닐 때 다 배우고 시험도 보고 했던 자식들인데 모르는 사이처럼 서먹서먹하다. 이 책으로 좀 친해진듯.

15. 꽈배기의 멋
16. 꽈배기의 맛
: 너 이 자식, 네가 그렇게 웃기다는 소문인데, 과연 그런지 어디 한 번 웃겨 봐 하는 태도로 눈을 가늘게 뜨고 보기 시작하면 웃기기도 어렵고 웃기도 어렵다. <베를린 일기>만큼 빵빵 터지지는 않았지만, 3할은 무난히 친다.



17.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 좋다. 좋은데 좀 현란하다. 현란한데 간혹 아름답고, 아름다운데 때로 졸린다. 졸다보니 오래 읽었고, 오래 읽다보니 가물가물하다. 

18.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두 점을 이어붙이고 묻는다. 왜 잇지 못할거라 생각했나요? 잇고 나면 이렇게 두 개의 점이 아닌 하나의 선일 뿐인데요.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조금 더 넓은 눈으로 글을 쓸 수 있다.

19. 난 네 편이야
: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한 사람이 내 편이라고 믿을 수 있는 것 또한 너무 든든한 일이다.

20.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
: 애들 읽히고 싶다. 읽힐 책은 있는데 애들이 없다. 그건 좋은 거 아닌가? 만세!?


21. 모스크바 일기
: 눈. 작은 것을 만나면 놓치지 않는 수준을 뛰어넘어 작은 것 안에서 기어코 큰 것, 많은 것을 읽어내는 벤야민의 눈.


22. 역사 고전 강의

: 이것은 역사 고전에 대한 강의기도 하지만 사실은 엄정하고 폭넓게 읽는 법에 대한 강의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좋은 책이 되기 위해서는 책 자체의 함량만큼이나 읽는 이의 함량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강유원 선생님께 배우고 싶은 것은 사실 잘 읽는 법 쪽이다.




22권이면 선방일까? 작년 기준 한 달치의 1/3~1/4 수준이다. 내 입장에 이것도 많은 것 아닐까. 이러다 망하는 거 아닐까. 아닐까? 으아아아아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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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1-31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예요. 책 안읽고 공부만 할것처럼 그러더니, 공부는 안하고 책만 읽은 거 아닙니까!!!!!!!!!!!!

syo 2018-01-31 11:51   좋아요 0 | URL
그런 거 같습니다!!!!!! 으아아아아안돼

단발머리 2018-01-3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안의 노동자>와 <캘리번과 마녀>를 함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 있어서 참 좋네요.
전, <캘리번과 마녀>를 먼저 읽었는데, 이제 <집안의 노동자> 읽으면 되겠죠? ㅎㅎㅎㅎㅎㅎㅎ

공부는 살살 하세요~~~^^


syo 2018-01-31 14:06   좋아요 0 | URL
2월에는 꼭 캘리번과 마녀 읽는 게 목표입니다!!

아 소박하다ㅎ

2018-01-31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31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졔졔 2018-01-31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뼈가 시립니다...ㅠㅠ 건강조심하세요. 연말부터 독서가 주춤했는데, syo님 만큼은 아니지만 분발해서 좀 읽어야겠습니다. <집안의 노동자> <공부중독> 읽고싶네용ㅎ

syo 2018-01-31 16:43   좋아요 0 | URL
시린 뼈를 부여잡고 분발합시다!! 저는 공부를 하고 최졔님은 독서를 하시고......ㅎㅎ

책읽는나무 2018-01-31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엄지 척!!!👍👍
요런 이모티콘 처음 사용했어요!
넘 멋져서요^^

syo 2018-01-31 19:57   좋아요 0 | URL
가....갑자기요?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
 


검은 맛


서른 살 생일날 먹은 케이크가 냉장고에 아직 몇 조각 남아 있던, 그러니까 풋풋한 시절의 따뜻한 어느 날, 이랬다. 젊었다.


키친 테이블 위에 올린 팔로 오른쪽 볼을 괴고 조용히, 테이블 너머에서 잘그락 잘그락 설거지에 열중하는 뒷모습을 본다. 아무렇게나 머리를 묶고 아무렇게나 옷을 걸친 저 사람. 아무래도 좋은 사람. 투명한 머그컵의 둘레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그 뒷모습을 지켜보기 좋은 사람. 괜히 한 번 불러 볼까. 슬그머니 다가가 안아 볼까. 아니면, 하얗고 따뜻한 저 목의 줄기 어디쯤에 하얗고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으며 슬쩍 가슴을 움켜쥐어 볼까. 뭐야, 저리 안가? 후후, 이것은 어제 저녁 설거지 하다가 난데없이 유린당한 내 엉덩이의 복수다. 에이, 됐다, 못 만지게 하는 것도 아닌데 뭐하러. 시선을 돌려 머그컵 겉면에 맺혀 있는 작은 물방울을 들여다본다. 뭔가 비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창이 넓은 집, 점심이면 스미는 햇살만으로도 초겨울은 거뜬히 넘길 수 있는 빛이 많은 집이라 유리로 된 물건들이 이 집 안에서 조금 더 아름다웠으므로, 혹시 저 사람 유리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그 뒷모습과 내 눈 사이에 머그컵을 가져다 들고는 이리저리 초점을 맞춘다. 커피 마실래? 뒷모습이 전기포트 스위치를 올리며 말한다. 응, 커피. 무슨 커피 마실래? 음, 갈색. 검은 거 마시지 왜? 갈색이 달잖아. 검은 건 써. 그럼 마시고 이 닦아. 알았어. 꼼꼼히 닦았나 볼 거야. 머그컵 좀 갖다주고. 뒷모습이 잠깐 앞모습이 되었다가 다시 뒷모습이 되어 찬장에서 커피를 꺼낸다. 아까 그냥 가슴 만져 볼 걸 그랬나? 갸웃갸웃 하는 동안 뒷모습이 양 손에 머그컵 하나씩을 들고는 앞모습이 되어 맞은편에 앉는다. 내 머그컵은 갈색, 앞모습의 머그컵은 검은색. 일루 와, 옆에 앉아. 싫어, 니가 와. 내가 간다. 그 사람 앉은 의자에 억지로 엉덩이를 들이민다. 에이 참, 멀쩡히 빈 의자 냅두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왼쪽 엉덩이를 살짝 들어 내 오른쪽 허벅지 위에 반쯤 걸쳐 앉는다. 불편해? 괜찮아. 안아 줄게. 오른손으로 어깨를 둘러 감고, 방금 전까지 앞모습이었던 옆모습과 조용히 커피를 홀짝인다. 있잖아, 아까 자기 설거지할 때, 가서 가슴 만지려다가 참았어. 대단하지? 변태. 뭐가 변태야. 자기도 어제 나 설거지할 때 엉덩이 막 만졌잖아, 야하게. 그건 자기 엉덩이가 만지고 싶게 생겨서 그런 거고. 자기 가슴도 보면 막 만지고 싶게 생겼거든? 야, 설거지하는데 뒤에서 엉덩이는 보이지만 가슴은 안 보이거든? 아닌데. 자기 건 뒤에서도 귀퉁이 조금 보이는데? 변태야,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그럼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뽀뽀나 하자. 


으, 검은 맛.  



사랑에 대한 글은 이제는 읽기도 쓰기도 싫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이 실은 본능, 충동, 욕망 등의 변장일 뿐이라고 단정하며 짐짓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자신이 성숙하다고 믿는 미성숙한 소년들을 뿌듯하게 만들기는 하겟으나, 그것은 사랑에 대한 온갖 미신과 기만을 재생산하는 담론들 속에서 달콤하게 허우적거리는 것보다 더 생산적인 태도라고 할 수도 없다.

_ 신형철,『정확한 사랑의 실험』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_ 가즈오 이시구로,『남아 있는 나날』



둘 다 지금까지 키스해 본 적이 없었지만, 한 시간이 흐르자 키스를 해 보았는지 못 해 보았는지는 거의 차이가 없어 보였다.
_ 스콧 피츠제럴드,『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검은 마음


이건 이 자리에서 지어낸 이야기다. 


"인간이 오감 중에 가장 크게 의존하는 것은 시각이야. 그렇지만 눈이라는 건 일방적으로 나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지. 오히려 시선은 때론 폭력이나 감옥처럼 동작하기도 해. 사르트르나 푸코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 귀와 코와 혀는 어떨까. 메커니즘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역시 그 감각들 또한 주체를 위해 복무하는 경향이 커. 객체를 분석하고 해체하는 데 쓰이는 메스나 망치 같은 거야. 어쩌면 우리 인간이 이렇게 서로 다투고,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이런 이기적인 감각들에 너무 의존해서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 그렇지만 촉각은 어떨까. 만지는 것은 상대의 체온을 느끼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대 역시 그 손을 통해 나의 체온을 느끼지. 맞닿아 있는 두 피부 사이에 우열은 없어. 경계만 있을 뿐이지. 그 경계 또한 우리가 모두 체온을 지닌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느끼면서 점점 흐려지고. 누구에게나 말없이 안아주는 따뜻함 속에서 자기 자신을 회복한 경험 한 번 쯤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난 생각해. 우리는 이제 촉각을 배우고 촉각을 익히고 촉각에 의지해 살아가야 한다고.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체온을 나누는 대상으로 인식할 때, 어쩌면 우리는 이 모든 슬픈 싸움들을 종식시키고 하나된 인간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저 눈동자만 굴리며 차갑게 쳐다만 보기보다 이 손, 오로지 이 뜨거운 손으로 말이지." 


"음, 시도는 좋았어. 그래도 아직 가슴은 안 돼."




어두운 생각에 휩쓸리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마음의 힘. 웃음과 함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핵심. 악마가 우리의 마음을 유혹하려 힐 때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_ 금정연,『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나는 동물이다. 나는 내 욕망의 전략에 이끌리어 내가 선택하고 사유하는 양 모든 것을 선택하고 사유하는 척한다. 그러나 내 눈에 들어오는, 예를 들어, 이쁜 여자의 젖·궁둥이, 내 코에 들어오는 최루탄 가스 냄새-오, 이것은 생각하기도 싫다. 벌써 맵다-물 비린내, 내 입에 들어오는, 맛있는 과일, 단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욕망이다. 내 욕망은 그것을 욕망하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그 나름의 필승의 전략을 짠다. 나는 백전백패다. 내 욕망은 나에게 억합하지 말라, 해방하라고 권유한다. 권유하는 것은 욕망이고, 나는 수락하고 선택한다. 끔찍하다.

_ 김현,『행복한 책읽기』



...


쓰고 보니 가슴 특집 같다. 가슴에 환장한 놈 같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모든 게 오해입니다!


물론, 넌 참 가슴 좋아해, 이렇게 요약되는 말의 다채로운 배리에이션들을 사귀는 사람들로부터 참 많이도 들었고, 지금도 착실히 듣고 있다. 생후 일주일만에 분유를 먹어야 했던 불우한 성장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프로이트 이야기는 꺼내 보지도 못했다. 그러고 보면 참 쓸모 없다, 그 할아범.  


그리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syo가 실제로는 꼭히 가슴이 아니라 그저 말랑말랑하거나 몰캉몰캉한 것이라면 어디든 좋아한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요즘은 가슴에 집착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편인데 사실 비결은 간단하면서도 굉장히 잔악무도하다. 바로 팔뚝, 등, 배로 옮겨 간 것이다..... 내 생각에도 정말 악랄하다..... 난 좋은데, 말은 안하지만 차라리 가슴 시절이 나았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나보다 가슴 큰 여자가 나타나서 너 꼬시면 어쩔래, 하는 식의 얼토당토 않은 질문을 어릴 적에는 많이 들었으나, 그녀들이 크게 간과하고 있는 두 가지는 첫째로, syo는 사실 가슴이 어찌됐건 그런 건 모르겠고 무조건 귀여운 게 장땡이라는 극성진성귀여움성애자라는 것과, 둘째, 이게 더 크리티컬한 건데, syo는 사실 가슴이 크건 작건 있건 없건 그런 것과 관계 없이 살며 그 누구에게도 "꼬심"을 당해 본 역사가 없는 인간이며, 미루어보건대 그런 기조는 앞으로도 한없이 무한하게 이어질 것 같다는 슬픈, 내게만 슬픈 진실......


하지만 귀요미 멍멍이들은 어쩐지 syo를 좋아하지. syo도 멍멍이를 좋아하고. 그럼 된 거야.


으하하하하 그럼 된 거야........ 




심상정,『난 네 편이야』를 마침.

스기타 아쓰시,『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를 읽는 중.

발터 벤야민,『모스크바 일기』를 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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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1-28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여움과 다정함이 세상을 구원할 것입니다!

syo 2018-01-28 23:0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구합시다! 멍뭉이를 풀어라~~

곰곰생각하는발 2018-01-28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달달하니 좋네요.. ㅎㅎ

syo 2018-01-29 00:08   좋아요 0 | URL
저땐 참 애긔애긔했네요 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18-01-29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귀여움성애자입니다ㅎㅎ 물론 가슴도...ㅋ

syo 2018-01-29 19:05   좋아요 1 | URL
아뇨 전 가슴은 아닙니다(단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